브뤼헐의 회화는 비밍중적이라는 점에서도 다른 매너리즘 예술과 공통된다. 이 점 역시, 우리가 그의 양식 전체를 건강하고 소박하며 분열되지 않은 자연주의로 간주하는 것이 그렇듯 잘못 이해되어온 점이다. 사람들은 이 화가를 ‘농민 브뤼헐’이라고 불렀고, 서민들의 생활을 묘사한 그의 예술이 곧 서민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오류에 빠졌다. 그러나 실제는 오히려 정반대이다. 예술에서 자신들의 생활방식을 그대로 모사한다든가 자신들의 사회적 환경을 묘사하는 것은 대체로 보수적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사회계층, 말하자면 사회에서 그들의 위치에 만족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억압되어 있거나 상승하려는 계층은 그들이 목적으로 설정한 생활상태의 묘사를 보기 원하지, 그들이 어떻게 해서든 빠져나오려하는 현재 생활상태의 묘사를 원하지 않는 법이다. 소박한 생활에 대해 감상적인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란 일반적으로 그런 생활을 넘어서 있는 사람들이기 쉽다. 이런 사정은 오늘날에도 그러하고 16세기에도 역시 다르지 않았다. 마치 오늘날의 노동자나 소시민이 영화관에서 그들 자신의 협소한 생활환경이 아닌 부유한 사람들의 생활을 보고 싶어하고, 19세기의 노동자연극이 민중극장이 아닌 대도시의 상류층이 애용하던 극장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듯이, 브뤼헐의 예술 역시 농민들을위한 것이 아니라 농민들보다 사회적 신분이 높은 계층, 아무튼 농민이 아닌 도시인들을 위한 것이었다. -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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