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나에겐 <새벽 세시> 라는 이름의 모임이 있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 모임의 멤버는 모두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너무너무 좋아했다. 그 구성원은 여자 셋과 남자 하나였는데 우린 서로 각기 다른 지역에 살면서 순전히 그 책이 좋아 멀리까지 가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지금은 한 명이 아예 외국으로 가 버리고 각자의 삶에 충실하다보니 그 모임으로 다시 만나는 일은 사라졌지만, 그 멤버중 하나인 J 는 여전히 내게 크리스마스면 멀리서 카드를 보내온다.


'즐거운 크리스마스와 복된 새해가 되시기를 빌어드립니다.'


그 한줄은 새벽 세시를 읽은 사람들이라면 절로 웃을 수 있는 그런 한 줄이다.















A 는 그 멤버중의 유일한 남자사람이었는데, 아마 내 주변에서 그 책을 읽고 좋아한 유일한 남자 사람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아 그건 아닌가? 그러고보니 좋아한 남자사람 또 잇었던듯).  우리가 멀리 가야할 때면 기차를 타야했고 서울에 사는 A 와 나는 같은 기차를 탔지만, 각자 예약하고 각자 앉아서 갔다. 같은 길을 가는데 같이 앉진 않았다. 처음 '그냥 각자 알아서 따로 가서 거기서 만나자' 라고 내가 말했을 때 혹여라도 상대가 서운해하진 않을까 했는데 그는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그러자고 했다. 그 일에 대해서도 훗날까지 그는 내게 서운하다고 말하지 않았고 그 일에 대해서도 어떤 식으로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 그를 만나는 게 편했다. 그리고 그가 내게 그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서운하다 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역시도 나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어제 비로소 확실히 알았다. 


어제, 오랜만에 A 를 만났다.



쿠알라룸푸르에서 올린 인스타 그램에 며칠 뒤 A 로부터 댓글이 달렸다. 너 쿠알라룸푸르냐, 한국에 언제 오냐는 댓글이었다. 이미 한국에 와있던 나는 나 한국이야, 라고 답했는데 그의 댓글에선 어쩐지 나를 기다리는, 나를 보고싶어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아니나다를까, 내 댓글을 읽은 A 는 내게 연락해왔다. 보고싶은데 볼 수 있니? 하고. 우리가 그간 살갑게 자주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었지만(둘다 그런 사람들이 아님) 서로의 인스타를 통해 대략 어디에서 뭐 하고 있구나 알고는 있었기에 나는 그에게 최근에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했고, 그래, 만나야겠다, 만나서 힘을 줘야지, 그리고 글을 쓰라고 말해야지, 라고 다짐하고 나갔다. 그는 내가 있는 곳으로 오겠다고 했고 나는 나의 단골 레스토랑에 예약을 했다. 글을 쓰라고 말해야지, 글은 자신을 위해 쓰는 거라고, 너는 이전에 글을 썼던 사람이니까 다시 쓸 수 있을 거라고 말해야지, 라는 마음으로 나는 레스토랑에 먼저 도착해 그를 기다렸다.


그는 알라디너였다. 그와 우리 새벽세시 모임이 한창 알라딘을 하던 그 때, 그는 이미 꽃미남으로 알라딘에서 유명했다. 알라딘의 꽃미남 이라고 하면 다들 누구를 말하는지 알 정도였다. 그가 사진을 공개한 적이 있었는데 그 사진으로 소문이 나기도 했고, 그를 오프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얘기하기도 했다. 나는 어제 레스토랑에서 그를 기다리면서, 그러나 시간이 흘렀고 그러니 그도 영락없이 아저씨가 되어 내 앞에 나타날 거라고 생각했다.  


레스토랑의 문이 열리고 나는 그에게 손을 들어 내가 여기 있음을 알렸고 그는 내게로 와 채 인사를 나누기도 전에 자신이 들고 온 책 두 권을 내게 선물했다. 그리고는 마주한 자리에 앉아 서로의 안부를 묻고 반갑다고 인사를 나누었는데, 와, 안늙은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 안늙었다 ㅋㅋㅋㅋㅋㅋ 내가 너무 놀라서, 아니 너 뭐냐, 왜 그렇게 안변했어 안늙었어? 나는 아저씨를 만날 줄 알았는데! 했더니 아니라고 늙었다고, 배도 조금 나왔다고 그는 내게 말했다. ㅋㅋㅋ 아니 완전 젊고 잘생겼는데? 꽃미남 그대로인데? 마주앉아서 잘생겼다는 생각 오천번은 한듯 ㅋㅋ 그래, 이러니까 알라딘 꽃미남으로 이름 날렸었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 그게 젊고 잘생긴 모습 그대로 와서 기분이 좋았던 게 아니라, 나는 자신이 처한 상황 때문에 우울해있을 그에게 용기와 격려를 주고 싶었는데, 아니, 그는 이미 잘 헤쳐나가고 있는게 아닌가! 그는 자신이 맞닥뜨린 상황의 부당함과 그로 인한 절망에 대해서도 얘기했지만, 그래서 바닥으로 가라앉는 시간들이 있었음도 인정했지만, 그러나 이렇게는 안되겠다 싶어서 다시 움직이고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그리고 미래를 다시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시도를 했는지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 나를 만나러 나오기까지 어떤 일들을 새로이 맞이하고 또 해결했는지에 대해 얘기했다. 나는 그를 만나러 나오면서 그는 똑똑하고 야무지니까 힘든 상황이라고 해도 결코 무너지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정도로 잘해냈다는 것이 너무 기뻤다. 너무너무 좋았다. 나는 그에게 너에게 그런 사람이 있고 또 네가 그런 상황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이 그간 네가 무언가를 해왔기 때문이라고, 네가 한 일이라고 얘기했다. 잘했네, 고생했네 한껏 얘기해주었다. 그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잘 살고 있어서,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적극적이고 능동적이고 따뜻한 사람이어서 너무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를 위로해줘야지 마음 먹고 나갔다가 오히려 내가 힘을 얻고 돌아왔다. 나는 알아서 잘 사는 모습을 보는게 왜그렇게나 좋은지 모르겠다.


우리는 그렇게 닥친 어려움에 대해서도 얘기했지만 연애와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얘기했고 과거의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을 얘기했고 무엇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요가 얘기를 졸라 많이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는 남자로써 요가를 하기에 어려운 지점에 대해 얘기했는데, 수련하러 갔는데 자기 혼자만 남자면 맨 앞에 서야 하지 않을까 괜히 뒤에 서면 여성 회원들이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부터 요가복을 사는 어려움까지 얘기했다. 그리고 사바아사나와 음악 그리고 자세들에 대해서 얘기하고 나는 얘기 도중 그에게 추천 영상을 링크 보내주고 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한참 웃으면서 요가에 대해 얘기했다. 와 내가 널 만나 요가 얘기를 할 줄은 몰랐네? 어제도 그런 얘기를 했는데, 우리는 알라딘에서 책으로 만났는데 시간이 흐르니 요가를 얘기한다. 와 내가 이렇게 요가 얘기를 할 수 있는 남자사람이라니! 칠봉이 이후로 두번째다 ㅋㅋ 너무 씐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요가인들이여, 복받으시라! (뜬금)



헤어지면서 반가웠다 잘가라 또보자 인사하는데 친구는 악수하느라 잡은 손을 놓지 않은채 내게 '널 만나길 잘했어' 라고 말해주었다. 그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너무너무 기분이 좋았다. 내가 워낙 사람을 만나 에너지를 받는 편이긴 하지만, 친구가, 힘든 상황에 있을 것 같았던 친구가, 그 상황을 스스로 극복해나가고 그렇게 좋은 미래를 다시 스스로 획득했다는 걸 들으니까 진짜 너무 좋은거다. 내가 막 힘이 나는 거다. 아, 나는 역시 잘 지내고 있다는, 잘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그게 너무 좋아. 나는 나의 행복도 바라지만 인간 누구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삶을 충실히 살면서 저마다의 기쁨과 보람을 찾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게 나는 너무너무 좋다. 그래서 만나길 잘했다는 생각을 천 번쯤 했다. 집으로 가면서도 그리고 집에 도착해서도 내내 기분이 너무너무 좋았다. 흑흑 ㅠㅠ 내 친구가 잘 살고 있어 ㅠㅠ 너무 좋아 ㅠㅠㅠ



여러분, 잘 삽시다. 잘 지냅시다. 여러분이 잘 지내면 그것은 여러분에게도 기쁨이요 여러분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해줄 수 있는 최선이며, 그리고 또 그것은 여기, 멀리 떨어진 다락방에게도 큰 기쁨이 됩니다. 



그러고보니 알라딘에서 정말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났네. 지금 내 옆에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며 인연을 이어나가는 사람들 대부분을 알라딘에서 만났다. 3주전이었나, 같이 족발 먹었던 여자1, 남자1도 알라디너들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마 다음에 내가 새로이 만나게 될 친구도 알라딘을 통해서가 아닐까?(저격)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도 알라딘에서 만났고 지금 좋아하는 친구들도 알라딘에서 만났다. 친구를 만나려고 연인을 만들려고 알라딘을 한 건 아니었지만, 알라딘을 하다보니 좋은 사람들과 관계 맺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책을 통해 만나게 됐지만 우리가 계속 이어지는 건 책 때문은 아니었다. 


아, 너무 기분 좋은 만남이었다. 여운이 길게 남는다.

만나서는 친구가 잘 살고 있음에도 원래 준비했던 말을 했다. 글을 쓰라고. 원래 너를 만나서 하려고 했던 말이라고, 글을 쓰라고 했다. 너는 썼던 사람이니까 다시 쓸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깨알같이 투비 얘기해줬다. 거기 글 쓰면 돈 들어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한 달에 몇만원씩 들어와. 써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 요즘 너무 일에 치어서 글을 못쓰고 있긴 하지만, 그래서 들어오는 돈이 확 줄어들겠지만, 짬을 내어 또 써보도록 하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넌 글을 돈 때문에 쓰니? 응 나는 내 자신을 위해서 쓰는데 돈도 내 자신을 위해 필요해! 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기쁨주고 사랑주는 알라딘, 친구 주고 애인 주고 결혼할 상대도 주는(또 저격) 알라딘,

이쁘다.


책 사야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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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2-25 20:31   좋아요 1 | URL
하하 저는 1010235 만 알았습니다!! 몰랐어요 1052.. 는요. 잠자냥 님이 그냥 아무 숫자나 쓰신 거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껄껄껄.

2024-02-24 15: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2-25 2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2-26 1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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