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일찍 번쩍 눈을 떠서 스맛폰을 들고(이러면 안되는데..) 북플에 들어와 한 번 쭉 훑은 뒤에, 아아 늦잠 자도 되니까 다시 자자 하고 누웠는데, 오늘은 토요일 아무때나 졸리면 잘 수 있는 날이니 지금은 일어날까? 하고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실로 나와 물을 한 잔 마시고 차가운 도시여자답게 네스프레소에 캡슐을 넣고 커피를 내리면서 아아, 직장 여성의 주말이란 넘나 좋아.. 하다가 커피가 내려지길 기다리며 책장이 있는 나의 서재방으로 갔는데, 아아, 언제나 보이는 그 풍경을 물론 오늘도 어김없이 또 보게 된다.






아아.. 심각하구먼.. 이걸 도대체 어쩌면 좋을까.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나는 주저 앉아 책장을 하나 주문한다. 어떤 책장을 주문할까 고민하진 않았다. 기존에 주문해서 조립해두었던 것과 같은 것을 주문하면 되니까. 한 번 조립해보았으니 더 쉽겠지. 그 책장은 이것. 지금은 페미니즘 책 전용 책장이다.



요거 하나 더 사서 옆에다 두면 저기 책들 다 꽂히겠지. 그런데.. 그럴까? 두 개.. 사야할까? 하다가 다 내려진 커피를 후후 불어 마시면더 다시 책장 앞에 선다. 나는 오늘 할 게 많았는데. 저녁엔 스테이크를 구워 와인을 마실 거고, 그 전에는 읽어야 할 책들을 하루종일 읽을 계획이었는데. 읽기 싫다 오바마... 하고 책장을 보다가, 정리를 하면.. 그러면 좀 깔끔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고, 그렇게 나는 무모한 정리의 여정을 시작한다.


책장을 정리해본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경험한 바 있겠지만, 저 바깥의 책들을 꽂기 위해서는 어딘가의 책들을 빼내야 한다. 그러면 그 뺀 책들은 어쩌나? 어딘가에 다시 꽂아야 한다. 그럼 어디다 꽂나? 무언가를 빼야 한다. 그러니 책의 개수를 줄이지 않는한, 공간을 늘리지 않는한, 어차피 이러나 저러나 아주 깔끔해지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 이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변명이자 핑계이다)


게다가 이 책을 하나 빼어서 저기다 꽂고 저거 빼서 여기다 꽂고 하다가, 아아 나한테 이런 책이 있었지.. .하고는 책 하나 꺼내서 좀 읽어보게 되지 않나? 그렇게 내가 뜬금, 갑자기, 꺼내든 책은 이것이다.
















아아, 나한에 이런 책이 있었네? 나는 포르노 책장을 한 칸 따로 만드는 것도 생각해봐야겠다.. 하면서 이 책을 펼쳐서 작가 소개를 보고 추천사를 보는데, 아니 이것은 내 생각과 넘나 다르네. 그러니까 포르노에 중독된 남자들의 뇌... 는 거룩하게 우리 신앙으로 고칠 수 있다는 건가 싶어 좀 읭? 했는데, 저자는 서문에서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오, 별 책이 다 있구나.. 이 책을 누가 샀다? 내가 샀다.  그렇게 내친김에 서문을 읽게 되어버린 것이다.



사실 나는 포르노그래피를 항상 보고 있다. '어디에나' 포르노그래피가 있기 때문이다. 포르노그래피는 피할 수 없다. 굳이 찾지 않아도 그냥 눈에 들어온다. 결과적으로 포르노그랲피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여자의 몸을 물건 취급하다 보면, 우리의 뇌는 서로를 바라보는 방식이 변하게 된다. 특정 자극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신경 회로가 형성된다. 학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포르노그래피는 무엇을 학습시키며, 포르노그래피를 주기적으로 소비하는 사람은 어떻게 변화될까? -p.13


오오, 이 부분을 읽는데 일전에 읽었던 책, [문명과 혐오]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적어놓고 나니 세 구절). '데릭 젠슨'의 책이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이 책 추천합니다. 여러분 한 번들 읽어보삼..

두 번 읽어도 됩니다. 데릭 젠슨의 문명과 혐오, 별 다섯!!



포르노는 나의 무의식적인 공상까지 바꾸어놓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나의 판타지는 대화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즉 어떤 여성을 봤는데 관심이 간다면, 즉시 ‘저 여자에게는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까?‘하고 생각했다. 어떤 창조적이고 열띤 대화를 할 수 있을지를 상상하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포르노를 보았을 뿐인데도, 가끔 여자를 보면 저 여자의 음모는 무슨 색일까, 성기는 어떤 모양일까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건 질색이다. 나는 예전 방식으로 돌아가고 싶다. 곧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 P179



인터넷에서 ‘강간‘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하면, 다른 범주(성폭력 상담 전화, 지지 그룹, 학분적 분석, 역사, 뉴스 등)에 대한 정보보다 포르노 사이트가 훨신 더 많이 뜬다는 사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모르겠다. 포르노그래피가 강간 관련 사이트 전체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검색어가 섹스나 누드가 아니었다는 것, 질, 페니스, 좆, 씹 같은 것이 아니라 강간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신체기관이 아닌 행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것도. - P50


진실을 말하자면 인종차별적 사이트중 그 어떤 것에서도 이런 포르노 사이트에서와 같은 뚜렷하고 거칠고 노골적인 폭력의 100분의 1도 본 적이 없다. 인종차별 사이트가 해롭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모두 많은 문제점을 낳는다. 가장 명백한 문제이기도 한 첫 번째 문제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그린 사진 등이 왜 혐오 선전물로 간주되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 P51





그렇게 펜과 형광펜을 꺼내와서 자, 본격적으로 이 책을 읽어볼까, 하고 서재방에 펜 꺼내러 갔다가 다시 늘어진 책들을 보게 되고 아차차, 내가 하려고 했던 건 정리였지! 하고는 다시 정리를 시작한다.  얼마 시간이 흐르지도 않았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거실의 선반을 정리하고 잇었다. 아니, 왜? 내가 왜 여기있지? 다시 서재로 돌아가! 하고는 서재로 돌아가서 책을 빼고 꽂고 빼고 꽂고 하다가 난리가 났다.





아 쉬바.. 쌍욕 나와. 내가 이 짓을 왜 하고 있는거지... 


아무튼 이렇게 쌍욕하며 정리하는 와중에, 나는 나의 진심을 마주치게 된다. 무엇으로?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로.




왼쪽에 시디로 보이는 것..은 오디오북이다.  무려 독일어... 나란 여자.. 

게다가 일곱번째 파도는 왜 두 권이냐.. 한 권, 처분하자...



독일어, 영어 버전의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와 영어 버젼의 일곱번째 파도, 그리고 독일어 오디오북.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나의 절절한 진심이 여기 드러나지 않는가. 


내가 진심인 게 그렇다면,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뿐일까? 아니아니죠. 그럴 리 없죠. 이게 진짜일 리 없죠~

자, 내가 애정해마지않는 수키. 수키 시리즈에도 나는 진심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1권의 원서가 있고(안읽었다, 물론) 영어로 된 오디오북도 있다 ㅋㅋㅋ 저 오디오북은 아마 죽는게 나아.. 였을것이다. 껄껄. 저 오디오북은 내가 수키 시리즈 좋아하는 거 알고 친구가 생일 선물로 사준 거였는데 너무 좋지만 안들었다. 때론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뭐 그런 거, 다들 있잖아요? 껄껄.


자, 그리고 내 진심은 이승우에도 있고!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에도 있고!



줌파 라히리에도 있다!



줌파 라히리의 원서에 대해서라면 정말이지 할 말이 많은데, 나 때문에 줌파를 알게 되고 좋아하게 됐고 그렇게 줌파를 좇아 이탈리아를 가게 됐다며 이탈리아에서 이탈리아어 원서로 줌파 책을 사가지고 돌아온 친구가 선물을 주기도 했고, 처음 책을 냈을 때 친애하는 알라디너 분이 출간을 축하한다며 보내주기도 했고, 네가 좋아하는 줌파의 새 책이 나왔다며 미국 사는 친구가 선물해주기도 했고, 싱가포르의 한 서점에 갔다가 너무 좋아서 흥분해가지고 내가 한 권 사가지고 오기도 했고, 단편 <지옥 천국> 너무 좋아서 한 권 사기도 한 것. 이것이 나의 줌파 원서 히스토리. 


이제 나의 원서 책장도 터지고 있다. 한 칸 줬는데 어쩜 좋아. 물론 다 안읽었고(아니, 읽은 게 아주 적다), 그리고 아직 여기에 오르지 못하고 방바닥에 방치되어 있는 것도 있는데 책장이 이 지경이다.



어디로 가나요 아저씨... 


그리고 내게는 소중한 한 칸이 있다. 일전에도 한 번 공개햇었던 나의 소중한 한 칸.



당연히 내가 좋아하는 줌파 라히리의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다니엘 글라타우어가 보인다. 맨 오른쪽의 생뚱맞은 <사랑의 미래>는 먼 곳에 살던 애인이 내 애인이 되기 전, 세상말로 '썸을 타고' 있을 때, 이 책을 읽고픈데 절판되어 읽을 수가 없다고 아쉬운 마음을 트윗에 올리자, 그 트윗을 보고 그 먼 데에서 한국의 서점을 수소문해 구해서 보내준 책이다. 책의 내용도 좋지만, 나의 개인적인 히스토리도 너무나 완벽하지 않은가. 한국에 있는 내가 한국어로 쓰여진 책 못구해서 안타까워, 했는데 외국에 있는 남자가 구해서 보내준거다. 뷰리플 스토리.. 그는 그러다 나의 애인이 되었고, 이 뷰리플 스토리는 이내 핫 스토리...가 되고야 마는데... 라기에는 사실 우리는 애인이기 전부터 핫핫 거려가지고.. (나한테 왜그랬어? 왜 나만 보면 그렇게 불붙어 버렸어? 왜그랬어? 왜 그렇게 나한테 홀딱 반했어?)


소중한 작가의 책들이 모여있고 뷰리플 스토리가 담긴 책이 있고, 그리고 샤론 볼턴이 있다. 나는 샤론 볼턴이 진짜 너무 좋다. 너무 짱 되는 작가인 것이다. 그러니까 미스테리 장르의 소설을 쓰는데 미스테리로도 좋지만, 이 책이 왜 대단하냐면, 여성이 주체적인 스토리를 끌어가는 건 기본이면서 거기에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을 법한 신비한 이야기를 담는다. 그래서 '어떻게 이런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그걸 풀어가다보면 결국 신비한 일이 아니라 인간이 벌인 짓 이라는걸 보여주는 거다. 이렇게 보여서 깜짝 속을뻔 했지만, 이거봐 나쁜 인간들이 벌인 짓이야, 라고. 아 정말이지 짜릿해서 미쳐버리겠어. 인간이 벌인 짓 같지 않은 것을 결국 인간이 벌인 짓이라는 걸 보여주고 있달까. 그러니까 책 한 권에서 할 말을 다 하고 있는 거다. 샤론 볼턴의 세 권의 책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뱀이 깨어나는 마을> 이지만, 읽고 나서 막 감정이 어떻게 주체가 안돼가지고 왼쪽으로 돌아누웠다 오른쪽으로 돌아누웠다 한 책은 <피의 수확> 이다. 이 책을 읽고 나의 별명은 다람쥐가 되었다. 누가 해준 건 아니고 내가 나를 다람쥐라고 하고 다니고 있다. 아무도 그렇게 불러주진 않는데, 그래도 친구 한 명은 아직까지도(오늘도!) 이모티콘으로 밤 던져주고 그런다... 고마운 친구.....


















그리고 왼쪽에 있는 책들은, 막 별점이 높은 책이라기보다 문학적으로 뛰어나다기 보다, 내가 원하는, 내가 좋아하는 류의 이야기가 담긴 책들이다. 결국 내가 닿고자 하는 곳, 만나고자 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움직이거나 기다리는 내용의 책들. 나는 이런 이야기, 그래서 결국 그들이 오랜 후에라도 만나게 되는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이런 이야기는 나를 정말이지 미치게 한다니까? 만날 사람은 결국 만나야만 하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해주는 책들이 좋다.



이렇게 진심이 가득한 책들을 보다가 어쨌든 책장의 정리를 마쳤다. 나는(우리는) 이렇게 정리가 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이야 말로 비포앤 애프터의 <애프터> 되시겠다.




어휴  고생 많았다 나여. 오늘은 오늘치의 에너지를 다 쓴 바, 책장정리 완료 축하 파티를 혼자 벌이도록 하겠다. 크하하하하하하하하.


아, 그리고  깜짝 이벤트!!

이 벤 트!!

책장 정리하다가 좋아해서 아껴둔 책인데 다시 읽을 것 같지 않아 이제야 겨우 내놓을 수 있게 된 책들, 원하시는 분께 드릴게요. 댓글 달아주시면 보내드리겠습니다. 다른 분들과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 신청은 일단 <공개댓글>로 해주시고요, 보내드리기 전에 미리 말씀드리자면 제가 읽었고 또 오래 보관했던 책이기에 밑줄이 그어져있거나 색이 좀 바래거나 했습니다. 그래서 차마 판매할 수도 없고 그렇지만 아까워서 이렇게 원하시는 분께 드리고자 하는 거랍니다? 책들의 목록은 아래와 같고, 원하시는 분 신청하세요. 한 권 씩만 신청 가능합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1,2권을 한권으로 칩니다.)










<이갈리아의 딸들>은 저 표지 아니고 구판 표지입니다. 모두 제가 좋아하고 재미있게 읽은 책들입니다. 흑흑 ㅜㅜ



아무튼 이렇게나 좋아하는 것에 있어서 화끈한 저는 이제 빨래 널러 갑니다. 세탁기가 다 됐다고 좀전에 삑삑 거렸는데 진심을 담아 페이퍼 쓰느라 널기를 미룸.... 나여....



그럼 여러분 빨빨룽!



**** 책방출 현황****


<클라우드 아틀라스 1,2> -미미 님께 보내드립니다.

<파리좌안의 피아노 공방> -그레이스 님께 보내드립니다.

<일곱번째 파도> - 새파랑 님께 보내드립니다.

<연인들을 위한 외국어 사전> - 공쟝쟝 님께 보내드립니다.


아직 세 권이 책이 남아있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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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4 2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2-15 06: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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