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어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반드시 채워야 한다는 강박이 내 안에 있다. 그 강박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 바로 독서이다. 나는 재미있어서, 흥미로워서 책을 읽지만, 이 재미있고 흥미로운 것이 모든 빈 시간을 메꾸는 데 어찌나 효과적인지 모른다. 친구를 기다리는 까페 안에서, 출퇴근길의 지하철 안에서, 잠들기 전 침대에 앉아서. 나는 그 시간들을 책으로 채운다. 잠시라도 혼자 있는 시간이 생길라치면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어떤 책을 읽을까이다.
김진영이 입원을 해야 한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엉뚱하게도 그 시간동안 책을 읽어야지, 라고 내가 되어 생각했다. 내가 입원한다면 병실 안에 내내 혼자 있을테니, 책을 엄청 많이 읽을 수 있겠네! 라고, 애도 일기를 읽으면서 부끄럽게도 그런 생각을 했다. 죽음을 앞에 둔 철학자의 가만한 내면 일기를 읽으면서, 입원에 이르기까지 그 고통은 또 얼만한 크기였을까를 생각하기보다, 책을 계속 읽을 수 있겠구나, 한것이다. 이 병의 크기를 무시한채로. 아, 나란 인간..
한 번 든 생각은 쉬이 사라지질 않아서 자꾸만 자라났다.
입원하면 하루종일 병실에 있으니 책을 많이 읽겠지, 그렇다면 그 책을 다 어떻게 마련하나. 일단은 집에 있는 책들을 좀 가져갈 수 있겠지만, 입원 시간이 길어진다면.. 병실로 책 배송을 시키면 안되겠지? 그러면 내가 가져온 책을 다 읽으면... 누구한테 가져다달라고 하지? 엄마 아빠는 무거운 거 들고 다니시면 안되는데.
남동생? 남동생한테 야, 오면서 내 방에 들러 이 책 저 책 가져와, 라고 해야할까?
친구들? 친구들이 온다고 하면, 친구야 책 좀 사다줘, 해야할까. 헌 책이라도 좋으니 책 좀 사다줘, 해야할까.
병실에 오기전에 연락해 친구들아.
어쩌면 병원 근처에 서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면 잠시 외출해서 여러권 사가지고 와야지.
편의점이 있다면, 그렇게 읽은 책들 차곡차곡 중고샵에 팔고 또 서점 가서 책 사오고, 책 사오고...
라고 생각하다가 내가 입원하는 상황이면 몸이 무척 아플 거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친다. 아, 돌아다니고 책을 하루종일 읽을 수 있으려면 도대체 입원은 왜 한거냐, 그걸 할 수 없는 상황이니까 입원한 거 아니냐, 하고... 나여.....
그러고보면 책만 있으면 혼자 있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은것 같다.
<나는 자연인이다> 보면서 '나도 자연인 되고 싶다'고 생각할 때도, 그 산 속으로 책만 잔뜩 가져가면 지내는 데 별 문제 없지 않을까, 한 것. 물론 밤에 자는 건 다른 문제..그거슨 초큼 무서울 것 같아. 그래도 낮에는 해를 벗삼아 비를 벗삼아 산새소리를 벗삼아 책을 읽으면 혼자 산 속에서 지내는 것쯤은 해낼 수 있을 듯.
그렇지만 별로 자연에서 살고 싶진않다...
원래도 책이 좋았지만 점점 더 좋아진다.
이런 일은 되게 드물기 때문에 너무 소중하다.
조카가 태어났을 때 그리고 조카가 자라는 걸 계속 보면서,
와, 어떻게 어제보다 더 사랑할 수가 있지..라는 신기한 감정을 경험했었는데,
칠봉이랑 연애하던 시절에,
와, 어떻게 어제보다 더 사랑할 수가 있지..라는 감정에 스스로 벅차했었는데,
책이 그렇다.
어릴 때도 책이 좋아서 읽었지만 요즘에는 책이 진짜 더 좋다. 책 읽는 거 진짜 너무 좋아. 책 만만세다.
그리고,
바르트의 《애도 일기》를 뒤적인다. 부끄럽고 괴롭다. 그의 고통들은 모두가 마망 때문이다. 마망의 상실 때문이다. 그의 고통들은 타자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그러면 나의 고통은 무엇 때문인가. 그건 오로지 나 때문이다. 나는 나만을 근심하고 걱정한다. 그 어리석은 이기성이 나를 둘러싼 사랑들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사실 나는 바르트보다 지극히 행복한 처지다. 그는 사랑의 대상을 이미 상실했다. 그러나 내게 사랑의 대상들은 생생하게 현존한다. 나는 그들을 그것들을 사랑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기만 하면 된다. (p.254)
안부를 묻고 싶어졌다.
그럴 수 있다면, 그래도 된다면,
당신 자신을 잘 보살피라는 문자메세지를 따뜻하게 보내고 싶어졌다.
당신 자신을 잘 보살피도록 해요.
베란다에서 세상의 풍경을 바라본다. 또 간절한 마음이 된다. 한 번만 더 기회가 주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 P046
내 안의 텅 빈 곳이 있었다. 돌아보면 그 텅 빈 곳을 채우기 위해 돌아다녔던 세월이 나의 인생이었다. 도서관을 헤매던 지식들, 애타게 찾아다녔던 사랑들, 미친 듯이 자기에게 퍼부었던 히스테리들, 끝없이 함몰했던 막막한 꿈들 …… 그것들은 모두가 이 텅 빈 곳을 채워서 그 바람 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몸부림들이었다. 그러나 그 무엇도 그 텅 빈 곳을 채우지는 못했다. 이제 또 무엇이 내게 남아 있는 걸까. 무엇으로 이 텅 빈 곳을 채울 수 있는 걸까. 이제 남은 시간은 부족한데 과연 나는 그 텅 빈 곳의 주인을 찾을 수 있을까. - P144
"얼마나 걸어가야 절이 나오나요?" 라고 물으면 촌부는 이렇게 대답한다. "이자뿌리고 그냥 가소. 그라면 나오니께 ……" - P182
나의 존재 자체가 축복이고 그래서 사랑받을 자격이 충만함을 알게 하고 경험케 한 부모님에 대한 기억. - P226
언젠가 어딘가에 적었던 말, 간절할 때 마음속에서 혼자 또는 누군가에게 중얼거리는 말들, 그게 다 기도란다-기도하는 법을 배운다. 나를 위해서, 또 타자들을 위해서 ……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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