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학교 우리문고 9
조반니 모스카 지음, 김효정 옮김 / 우리교육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ABE 전집 1권 [나의 학교 나의 선생]을 2004년 새로 출간된 버전으로 읽었습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저 별 두 개는 원작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잘못 집으면 짧게는 반나절에서 길게는 반평생까지 우울해지는 것으로 유명한 ABE 전집의 책들 중에도 트라우마 걱정 없이 남에게 권할 수 있는 사랑스러운 이야기들이 가끔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이 [나의 학교 나의 선생]입니다. ABE 전집을 고분고분 순서대로 읽어제꼈던 저는 가장 먼저 읽은 [나의 학교 나의 선생]을 예나 지금이나 사랑하고, 저 전집에서도 손에 꼽을 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책 [추억의 학교]는 아닙니다.

이 책의 원제가 '추억의 학교Ricordi di scuola' 라고 해서, 이 소설의 가치가 '추억' 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추억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다만 어떤 추억이냐가 문제지요. ABE 전집에서 [나의 학교 나의 선생]을 꺼내 읽을 때, 생각하면 좀 아득해지는 것 같은 상황들조차도 결과적으로는 행복하게 넘어갈 수 있게 했던 것은 작가 조반니 모스카 선생의 다소 뻔뻔하고 따뜻한 유머감각이었습니다.

새 책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물론, 문체가 바뀌었습니다. '합니다' 대신 '한다' 로 바뀌었습니다. 좀처럼 이런 종류의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 저도, 이 작품에는 '합니다' 체가 어울린다고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문체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새 판에서는 유머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기가 힘들다는 점입니다. 아래 인용문은 ABE 전집 판에서도 제가 상당히 좋아했던, '옛날 시험문제와 요즘 시험문제의 차이' 대목의 도입부입니다만 새 버전에서는 이렇습니다.

   
  (...) 교사 생활을 한 지 이십 년이 지난 뒤에도 교사들은 모두 똑같다. 모두 똑같은 패션의 넥타이를 구입한다. 벤젠 냄새를 풍기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똑같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아이네아스는 어린 아들 아스카니우스와 함께 테베레 강 하구에 상륙했다' 혹은 '로렌초 씨는 지름 14미터의 둥근 지붕을 가지고 있는데, 그 지붕을 구리판으로 덮으려고 한다' 등등.
그러나 나이 든 교사들만 그렇게 말한다. 젊은 교사들의 수학 문제엔 여러 사람과 장소가 등장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공책에 이렇게 적는다. '늙은 옷감 장수가 48미터의 천을 산다.' 혹은 '고모가 돌아가셨다. 잔네토와 루이지노는 한 송이에 0.05리라 하는 꽃을 가져가려고 한다. 잔네토는 1리라를, 루이지노는 50첸테시모를 가지고 있다.' 또한 이런 말도 있다. 늙은 옷감 장수는 길고 하얀 수염을 기르고 있다. 그런데 그가 깃털이 아름다운 앵무새를 어깨에 놓는 걸 누가 방해할까? 아이들은 그러므로 앵무새를 상상한다. 늙고 착한 상인의 상점에 행복하게 들어가서 앵무새를 쓰다듬으면서 문제를 푼다.
 
   

문제가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저는 위 문장들에 상당히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느낍니다.
무엇보다, 저는 조반니 모스카가 저런 문장을 썼다고 믿고 싶지가 않습니다.

 
모스카 선생님과 아드님들.


이 책에는 ABE 판에는 없던 챕터 세 개가 더 포함되어 있습니다. 잘린 이유는 알겠어요. 아마 '비교육적' 이라서일 겁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그러니까 젊은 시절의 조반니 모스카 선생이-대학 입시 준비를 하면서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장면 따위가 나오거든요. :] 그 부분도 나름대로 재미는 있었어요.

하지만 이 책에는 '저의' 모스카 선생님이 없습니다.
덕분에 다시 이탈리아어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참 공부를 안 했더니 원제를 보고 겨우 사전 없이 무슨 뜻인가 알 수 있고, 위키페디아 첫부분 한두 줄을 이런 뜻인가 넘겨짚고, 이걸 읽어보고 어느 장면인가 겨우 알 수 있을 정도의 쪼렙이 됐지만...이 책을 원문으로 읽고 싶다는 소망은 여전합니다.

Trivia
1. 물론 이 책에는 그런 종류의 아주 끔찍한 애들은 나오지 않습니다. 미화라기보다는 생략이라고 생각해요.
2. 늙어서 다시 보니, 이렇게까지 눈물나는 이야기였던가 싶은 부분이 꽤 있었습니다. (안토니오 가르비니 선생님 ;ㅁ;)
3. [나의 학교 나의 선생] 하면 역시 이 분 빼고 갈 수는 없지요. : ] 다들 기억하시죠?


 
Camillo Benso, conte di Cav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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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2008-11-24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발췌하신 부분을 보니 확실히 어색하네요. 느낌이 다릅니다, 달라요! 자칫하면 꽤 우울할 수 있는 이야기까지 참 따뜻하고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재미있는 책이었는데.
기억을 더듬어보면 갓 부임한 선생님이 문제아 반을 맡아서 큰 파리를 종이총으로 잡는 걸로 아이들의 존경을 얻는 이야기라던가, 국가에서 요구하는 자격 때문에 시험을 치는 노동자 아저씨들의 시험을 감독하게 된 선생님이 슬쩍 힌트를 주는(?) 그런 이야기가 기억이 나네요. 다시 읽고 싶어요.^^ 근데 새로 나온 책은 사야 하나 고민이 되네요.

eppie 2008-11-25 10:07   좋아요 0 | URL
내용이 저 짝인데도 다시 내 줄 계획은 아마도 없지 않을까 싶어서, 좀 난감합니다. ㅠ_ㅠ 그냥 ABE 판을 가지고 있어야 할까봐요. 저도 그 자격시험을 보러 온 노동자 아저씨들 이야기가 굉장히 좋았는데요. 노처녀 선생님 이야기도 좋았죠. 마르티넬리의 금화를 돌려받으려고 여선생한테 공작(?) 하는 얘기는 예나 지금이나 좀 씁쓸하지만...가르비니 선생님(저축한 돈으로 말을 한 마리 사고 싶어했던 그 분이요)이야기같은 아예 슬픈 이야기랑은 다른 종류의 씁쓸함이 있었어요. 그래도 보석 님 말씀대로, 전체적으로 분위기 조절이 잘 된 책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