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의 역사 1
존 로 타운젠드 지음 / 시공사 / 1996년 12월
평점 :
절판


-존 로 타운젠드John Rowe Townsend라 고 하면 역시 ABE 전집이 낳은 걸작 중 하나인 [우리들 정글Trouble in the Jungle]의 작가라는 사실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만, 그는 그 외에도 많은 인기작을 낸 영국 아동문학계의 스타입니다. ABE 전집에서 [우리들 정글]을 읽으신 분은 아시겠지만 이 작품에는 소년소녀의 모험을 그리는 중에도 독특하게 어두운 시각이 깃들어 있습니다. 완벽한 보호자도 나오지 않지만 극단적으로 사악한 악당도 없고, 어른들은 사악한 대신 때로 한심하며 그 한심함의 양상은 매우 구체적입니다. 그리고 [어린이책의 역사]는 어떤가 하면... 타운젠드는 이 책을 쓴 목적을 책 첫머리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읽다 보면 이 책은 절반 이상 개인적인 쾌락을 위해 쓴 것이 틀림없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 정보 제공이 일차적인 목적인 책인데도, 못된 영국식 유머를 섞어가며 수많은 영미권 아동문학의 역사를 엮어 가는 솜씨 덕분에 지루해 하기보다는 오히려 소리죽여 낄낄거리게 됩니다.

저런 유머가 발생하는 것은, 작가인 타운젠드 본인이 (여전히 전지구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개념입니다만 그래도) '현대 교양인의 상식선'을 적당히 널널하게 설정하고서 그 기준으로 볼 때 작품들이 어떻게 보이는가를 서술과 비유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유행했던 아이들 책, 기독교도 아이들의 순결한 삶과 어려서 맞이하는 영광된 죽음을 매우 본받을 만한 것으로 간주하는 책에 대한 설명이 그러합니다. 저도 그 기분 잘 알지요. 한국에는 새벗이야기들이란 게 있었거든요. 좀 더 후의 작품으로는 엄격하고 강압적인 기독교인 아버지 슬하에서 자라는 소녀의, 바른 아이가 되어 보려고 하지만 늘 뭔가 놓치고 좀처럼 제대로 되지 않는 슬픈 나날을 다룬 이야기가 있는데 작가는 사악하게도 이 소녀가 우는 페이지를 세어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 작품에 대해서 타운젠드는 또다른 할 말이 있는데 그건, 저 아버지가 정말로 딸을 사랑해서 엄하게 훈육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가 소녀를 굶기고 야단치는 장면 뿐만이 아니라 말만한 딸을 무릎에 앉히고 쓰다듬는 장면 또한 등장한다는 사실입니다. (...) 비슷한 계열의 다른 작품에서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헨리, 네가 아이인 동안에는 내가 네 신이다. " 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부분에서는 작가가 의도치 않은 유머가, 읽는 사람 개인(저 말입니다)의 성향에 따라 발생하기도 합니다. 상당히 앞부분에 등장하는 각주입니다만 중세에 유행했던 '이야기' 들 중 하나로 이런 것이 있다고 합니다. 아무개는 하인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전쟁에 나가 기사 작위를 얻고 아름다운 여인의 사랑을 얻고 큰 공을 세웠다. 그 후 그는 갑자기 세상을 버리고 은둔에 들어갔으나 죽을 때는 반지로 신분을 증명하고 사랑했던 여인의 품에서 죽었다.

......

'큰 공을 세웠다' 와 '세상을 버리고 은둔에 들어갔다'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미친 듯이 궁금해지는 것은 저뿐이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경우에 정답은 '아무 일도 없었다' 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중세여...)

농담에 관한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이 책은 본래의 목적에도 충실합니다. 제 경우 가장 큰 수확이라면 [물의 아이들The Water Babies]과 [북풍의 등에서At the Back of the North Wind]를 알게 된 것을 꼽겠습니다. (여담이지만 저 두 권은 모두 번역본이 나와 있습니다. 며칠 전에야 발견하고 쓰러질 듯이 놀랐습니다. ) 타운젠드는 흠 없는 걸작인 [앨리스]에 비할 바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물의 아이들]을 [앨리스]와 거의 나란히 놓고 있습니다. 로얼드 달에 대해서는 혹평에 가까운 평을 했지만 어쨌든 그것은 작자가 생각하는 '어린이책의 요건'에 비추어 본 것이기 때문에, 어른이 된 이후에 느긋이 로얼드 달을 즐기고 있는 저는 불평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

또 하나의 발견은, 전에도 언급한 것 같지만, ABE 전집의 구성이 얼마나 훌륭한가를 깨달은 겁니다. 이 책의 2부에서 언급하는 책의 *상당히* 많은 수가 ABE 전집에 포함되어 번역된 적이 있습니다. 이 전집의 구성에는 늘 경탄해 마지 않고 있습니다만 그 자세한 내막은 아직까지 수수께끼에 싸여 있지요. (혹시 아시는 분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이 책에는 몇 가지 단점들도 있습니다. 이 책은 [해리 포터] 시리즈의 역습 이전에 씌어진 책이기 때문에 그 사건 이후의 영-미 아동문학간 구도의 변화를 담고 있지 않습니다. 또, 1940년대를 사이에 둔 전반부와 후반부의 밀도 차이가 상당히 크게 느껴집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작가가 머리말에서 충분히 설명하고 있지만 그래도 제게는 좀 아쉬웠습니다. 타운젠드 옹의 연세가 86세에 이르렀으니 이제 더 이상 개정판이 나올 일은 없겠지요? ;_;
번역은...좀 심각한 수준입니다. 같은 인명/도서명에 표기가 다른 것을 포함해 여러 가지 오류가 포진해 있습니다. 원래의 구성과 별개로, 한국판의 모양새는 정보를 찾기에 그렇게 좋지 않습니다. 유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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