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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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를 읽으면서 "존재의 세가지 비밀"의 아이들이 조금 겹쳤다. 자기 앞에 놓인 생을 너무도 냉정하게 파악하고, 그러면서 그냥 그대로 앞으로 내달리는 모습. 그래서 슬펐다. 엉엉.....로자 아줌마에게 가 닿은 애정의 끈을 놓지 못하는 모모를 보면서 맘이 아프다.  

또 하나, 이 책은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내놓은 것인데 그래서 책 내용은 논외로 하더라도, 이런 전대미문의 사건에 대한 궁금증이 당연히 일었다. 왜 그랬는지에 대한 그의 해명은 죽기 전에 그가 직접 쓴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이라는 짧은 글에 담겨 있다. 자기 등짝에 붙여진 '어떠 어떠한 작가'라는 꼬리표가 너무 싫었다는 그. 그래서 그 틀안에서 더 이상 무언가를 쓰고 싶지 않았다는 그. 어디 작가뿐이랴. 이제까지 살아온 나말고 다른 사람으로 살아보고/인식되고 싶은 욕구인들 누군든 없으랴. 여러 사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작품으로 평가되는 작가인 경우에야 더 심하겠지.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그런 틀안에서가 아닌 순수한 창작의 열정으로 써보고 싶은 욕구, 이전의 나라는 타이틀을 없애고 써보고 싶은 욕구인들 누구에게나 있는 것 아닐까. 동일한 사람이 쓴 작품을 다른 이름으로 출간했을 때 비평가들이 '예리하게도' 그 두 작품을 동일인이 썼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리라는 걸 그렇게 확신했다는데, 그런 장난기와 조롱이 무척 맘에 들었다.  

다시, 그로 칼랭을 집어 들었다가, 아니... 책을 읽고 난 내 감정도 좀 숙성시키자.싶 어서 잠시 쉴란다. 여운이 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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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전영애.박광자 옮김 / 청미래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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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좀 일찍 일어나서, 마리 앙뚜와네트의 '마지막 길'을 읽었다. 눈물이 났다. 한 나라의 왕비였다가 저잣거리의 구경꾼으로 전락해버린 여자. 기요틴의 계단을 올라가면서도 한 인간으로서의 당당하고 의연한 모습을 잃지 않고 싶었던 그의 심정이 너무 절절하게 이해가 되는 거다.  

어릴 적 만화책으로, 만화영화로 꽤 많이 나왔던 이야기들인데, 난 어떨땐 동년배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공유하는 그런 경험을 아예 인식조차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것도 그런 경우. 하여, 내가 갖고 있던 그녀에 대한 이해라고는 '빵을 달라' '빵없으면 고기나 우유를 먹으면 되지'라는 오만방자하고 낭비벽에 빠진 현실감없는 프랑스의 어느 왕비의 이미지 정도였다. 사실, 많은 글들이 그런 에피소드들에 기대어 재미위주로 그녀의 이미지를 부당?하게 왜곡시킨 것도 일정부분은 사실인 것 같다.  

그런데, 츠바이크는 마리 앙뚜와네트들 프랑스 혁명이라는 거대한 역사적인 의미를 설명하는 데 필요한 조연으로서가 아니라, 마리 앙뚜와네트를 주연으로 해서 한 인간을 삶을 조명한다. 저자 후기에서 그 스스로 말하듯, 이 책은 여기저기서 넘쳐나던 너무나 과장되고 저자의 의도대로 편협하게 치우친 마리 앙뚜와네트의 이야기들에 기대지 않는다. 대신 인간에 집중한다. 그래서 더 흥미롭다. 역사라면 겁먹을만 하지만, 인간에 대해서라면 누구나 편하게 읽어봄직 하지 않는가? 

말하자면, 왕비의 자리에 마땅치 않은 평범한 기질로 태어난 아이가 환경의 영향으로 어떻게 이렇게 큰 비극으로 치닫게 됐는지를 보여준다. 어머니, 남편 또 그녀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녀가 어떻게 성장하고, 변하가는지. 사실, 시련이 닥치고서야 그녀는 성숙한다. 기요틴에서 목숨을 잃던 해가 38세가 되던 해라면.... 아, 그녀는 정말 얼마나 파란만장한 삶을 산 것인가.     

그래서 트리아농에서 흥청망청 철없이 즐기기만 해대며 진정어린 조언자들을 물리치던 그 때만 빼놓고는 내심 그녀를 응원하게 된다. 군중심리, 대중이라는 익명성에 숨겨져서 함께 행동해버리는 인민의 악마적인 힘을 보면서 씁쓸했다. 왕과 왕비까지 모두 기요틴으로 사라지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간 혁명가들도 결국엔 같은 길을 가게 되니까.   

마리 앙투와네트를 편들게 하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재능에 또 한번 감탄. 츠바이크의 글은 항상 별 다섯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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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12-04-24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읽어볼까하고 검색한 후
리뷰를 살펴보다가 북큭콤님의 리뷰를 발견하게되었습니다.
쩜 반갑~^^

서른 여덟의 나이라니요...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도 꼭 읽어볼 것입니다 북큭콤님~

북극곰 2012-04-25 13:48   좋아요 0 | URL
아이고~ 메일 확인하러 갔다가 알라딘에 댓글이 떳단 소리에 와 봤습니다.
츠바이크가 쓴 책들 좋아해요.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있는 사람 같습니다. 실망하지 않을실 거에요.

그나저나 잘 지내시죠?!^^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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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글은 순식간에 읽게 된다. 요것까지만, 이 편지에 대한 답장까지만, 이 편지에 대한 다음 답장까지만...  이렇게 이렇게 읽다보면 책을 놓을 수가 없고, 그냥 하루밤이 꼴딱 가버린다. 나는 또! 새벽 2시에 깬 것인데, 아침까지 그냥 한자리에서 훌라당 다 읽어버렸다. 그러구 보니, 편지글을 읽는데, 유달리 속도가 빠른 것은 남의 것을 훔쳐보는 듯한 스릴과 긴장감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전쟁 중에 만들어진 건지 섬의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회원 중 한 명이 헌 책에 씌여진 줄리엣의 주소를 보고, 책을 청하면서 이어진 인연의 끈. 전쟁 중 건지섬 사람들과 북클럽에 관심을 가지게 된 줄리엣.그리고 그들과 이어지는 편지. 이후에는 건지섬으로 건너간 줄리엣과 사람들의 이야기. 전쟁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줄리엣의 연애 이야기가 어쩐지 더 흥미 진진하다.  

체링스크로스 가 84번지가 어느 정도? 격식을 차리면서 서로을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를 느끼게 해서 따뜻하다면, 이 책은 좀더 캐주얼하다고나 할까? 줄리엣은 쉬지않고 조잘조잘 떠들어대니깐. 건지섬 사람들 말고도, 작가인 줄리엣의 책을 출판하는 출판사 편집자인 (친한 친구의) 오빠, 그리고 친한 친구 소피와의 편지에서도 자잘한 재미가 있다. 뭐랄까, 말하자면 "이건 창피하니깐 읽고 찢어버려 줘."이런 류의 편지를 훔쳐읽는 재미랄까?  

또 하나 맘에 든건, 북클럽 회원들 각자 자신만이 좋아하는 작가를, 좋아하는 책을 가지고 있다는 거다. 책에 관해서라면 뭐든 다 아는 북클럽 멤버들이 아니라는 거. 우리가 주위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이 책의 주인공들이라는 게 좀 더 인간적이게 느껴진다. 

(물론!)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킷에게 애정이 가는 것, 도시만 등장하면 왠지 듬직해지는 것, 엘리자베스를 열심히 응원하고 있었던 것을 보면, 줄리엣에게 아주 깊이 감정이 이입 되어 있었던 것 같다.     

 

* 줄리엣은 정말이지 글을 재밌게 쓴단 말야. 뼈 있는 말도, 고민도!  

  물론, 간결하게 한마디씩 날려주시는 시드니 오빠님도 멋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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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 대신 마음을 여는 공감 글쓰기
이강룡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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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관련한 책은 처음 사 봤는데, 결론은 재밌고 유익했다는 거다. 사실 제대로 쓰지도 못하면서, 왜 이런 류의 책을 보는 것에 대해 삐딱했던지.  

지극히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예들이 마구 등장해주니까 글에선 생동감이 넘치고 킥킥거리면서 웃게 되고.... 공감지수도 올라간다. 그러면서도 말하고자 하는 큰 줄기를 잃지 않으니, 몸소 좋은 글쓰기를 보여주는 셈이다. 그래서 이해도 100%. 적어도 내게는 저자가 설정한 목적을 달성하지 않았을까? 

기억에 남는 조언을 들자면,  

자신의 아는 한계를 또는 모르는 부분을 인정하라. 솔직하라. 자기 글에서 부정직해서는 안된다. 메모하라. 뻐기거나 결심하지 말고 부단히 계속 써 보여라.라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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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된 언어 - 국어의 변두리를 담은 몇 개의 풍경화, 개정판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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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된 언어를 순화하자는 언어순결주의의 주장이 담겨있으려니 했다. 제목만으로는 정반대의 주장으로 읽은 것이다. 게다가 나는 무의식적으로 '감염'을 '오염'으로 읽은 것 같다. 이는 고종석의 이름 석자만 들어봤을 뿐, 한번도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이고,또한 한국어가 '오염'되었다는 나의 편견과 세뇌당한 사고가 어느 정도 작용한 탓이다. 어떻게 보면, 이 제목은 한국어뿐만이 아니라 언어라는 것에 대한 보편적이고 거스를수 없는 공통의 특질을 나타내고 있다. 언어순결주의나 순수 혈통이라는 것들의 존재자체가 상상 속 신화일 뿐이라는.    

오랫만에 학교 때 국어책을 읽듯 정독했다. 서체도 크기도 딱 교과서만하다. 게다가 적확하고 읽기 쉬운 국어로 잘 쓰여져 있으니 말이다.  수년 전에 뜨겁게 달궈졌던 복거일의 '영어공용화'에 대한 논의가 제일 흥미롭다. 그 자신도 가장 많은 장수를 할애하고 있기도 하고. 복거일의 글은 읽지도 않고 언론에서 떠들어대던 글들만 잠시잠깐 보았던지라, 제대로 파악도 못하고 있었는데 저자의 생각에 공감이 간다. 한국어를 버리고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니! 너무 과한 거 아닌가.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소리나는대로 읽고 쓰는 독창적인 한글을! 이런 지독한 사대주의가 어딨담! 그런데, 그의 제안(그 용어만으로도)을 거부하고 싶었던 내 내면을 들여다보면, 내 안에 민족주의적인 사고와 정서가 자리해, 스스로를 객관화하지 못했던 것 같고, 나야말로 사대주의적 사고에서 기인한 자격지심 때문이 아니었던가 싶다. 그래서 아~무 생각없이 앞도 뒤도 없이 무조건 방어적인 거부반응이 일었던 건 아니었을까.   

한국어도 한국어지만, '자유주의'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해 준 책.  

집단적 수준의 주체성이 아닌 개인적 수준의 주체성.

   
  국어 순화의 '순화'는 제 5공화국 초기 삼청 교육대의 저 악명 높은 '순화교육'의 '순화'다. 실상, 순결을 향한 집착, 즉 순화충동은 흔히 죽임의 충동이다. 믿음의 순결성, 피의 순결성, 이념의 순결성에 대한 집착이 역사의 구비구비에 쌓아놓은 시체더미들을 잠깐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국어순화'의 충동에 내내된 위험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 p.150  
   
   
  여기서 강조돼야 하는 것은 영어공용화의 반대가 지닌 계급적 함의다. 공용어로서의 영어를 반대한다는 것은, 지식과 정보를 특정집단이 독점하는 걸 허락하겠다는 뜻이다. 라틴어와 한문을 읽고 쓸 수 있었던 중세의 엘리트들이 지식을 독점했듯이 말이다...영어가 공용어가 되든 안 되든, 우리 사회의 지배계층은 자기 자식들에게 영어를 열심히 가르칠 것이다. 그리고 영어에 익숙해진 그들의 자식들은 영어에 익숙하지 못해 지식과 정보에서 소외된 일반 대중의 자식들 위에 다시 군림할 것이다. ... 한 사회가 습득할 수 있는 지식을 특정 계급이 독점하는 사회와 전 구성원이 공유하는 사외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잇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 p.206   
   

나는 고종석이 정직하다고 생각한다.  

 

앞에 말한 복거일과 관련된 논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좀 흥분을 좀 풀어제끼고 있는데, 욕 얻어먹는 최원식에, 큭... 하고 고소했다.  

   
 

...최원식의 무성의한 글에서 독자를 가장 불쾌하게 하는 것은 논쟁상대를 거꾸러뜨리기 위해 궤변을 일삼는 것이다. "서구주의와 국수주의는 단순한 대립물이 아니라, 일종의 동전의 양면과 같다." "서구주의의 뒤집혀진 형태가 국수주의다."....... "갑와 을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갑의 뒤집혀진 형태가 을이다"따위의 말투는 논리와 수사를 멋들어지게 결합해서 듣는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긴다. 멋쟁이 지식인들이 애용하는 이런 '지적'논법의 명제들이 어떤 맥락에서는 그리고 깊은 수준에서는 더러 진실을 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맥락, 그런 수준의 진실들은 굳이 말한 필요도 없는 진실이다. 그리고 발언의 맥락이 그런 깊은 수준이 아닐 때는 궤변이 되고 만다. ..... 

예컨대 나는 최원식의 말투를 빌려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박정희와 장준하는 단순한 대립물이었던 것이 아니라 일종의 동전의 양면과 같았다,....자유주의의 전화가 파시즘이고, 파시즘의 전화가 민주주의고....그래서 색즉시공이 공즉시생이다...." 이런 말투는 도사들에게나,.....

 
   

 '우리는....'  이외의 다른 챕터들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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