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국주의 한울아카데미 737
데이비드 하비 지음, 최병두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1. 주요개념

(1) spatio-temporal fix

개념을 한국말로 옮기기 쉽지 않은 이유는 여기서 'fix' 중의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첫째, 문자 그대로의 뜻은 '고정' 정도로 번역할 있다 (내가 기억하기로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인가 [자본의 한계]인가 (아님 [희망의 공간]?) 에서는 시공간 고정으로 번역되었던 같다). 투하된 총자본 일부는 상당기간 동안 물리적 형태로 토지에 '고정'된다 (건물, 하수도, 도로, 공공 교육체계, 의료복지 체계, etc.). 둘째, 은유적 함의로서, 어떤 오작동이나 고장에 대한 '수리'라는 뜻으로부터 도출된 것으로, 자본주의적 위기에 대한 해결책을 뜻한다. 자본주의의 과잉축적 위기에 대한 대응책으로는 가지가 있을 있다. 하나는 단기적 이윤 확보가 용이치 않은 공공 하부구조에 대한 장기적 투자를 함으로써, 고용창출 효과와 더불어 미래의 경제 활성화의 기반을 마련하는 (케인즈주의적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잉여가치 실현의 위기를 맞고 있는 상품들의 판로를 개척하거나 값싼 노동력을 고용하여 비용을 줄이기 위하여 지리적 팽창을 도모하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제국주의적 방식)이다. 실제의 경우에서는 양자가 조합되기도 한다. 전자의 경우는 이윤이 회수되는 시점을 시간적으로 지연시킴으로써, 후자의 경우는 자본의 순환범위를 공간적으로 확장시킴으로써, 위기에 처한 잉여자본의 순환과 잉여가치의 실현을 가능케 한다.

 

그러나 가지 의미들 - , '고정' '수리' - 서로 충돌한다. 자본이 고정된 곳에는 자본이 투여된 건축물들 뿐만 아니라, 자본에 고용된 인간들과 그들의 가족들, 생활공간들, 사회적 관계들이 존재한다 (첫번째 ). 만약 자본이 위기에 대한 타결책으로 보다 값싼 노동력이 있는 외국으로 이동했다고 해보자 (두번째 ). 사회적 관계는 자본이 철수한 후에는 공장 건물들만 남는 것이 아니라, 공장과 동네의 활기를 구성했던 사람들이 남는다. 사회적 관계는 관성을 갖고 있으며, 관성은 자본 철수에 대한 저항을 유발한다.

 

사회적 관계의 관성이 야기하는 저항은 하비가 'switching crises'라고 칭하는 - 자본의 흐름이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움직임으로써 야기되는 효과 - 중요한 부분을 구성한다. 자본주의 전체는 상대적으로 안정성을 유지한 남아 있게 되지만, 부분들이 감내해야 하는 어려움들(금융위기, 탈산업화, 가치감소 devaluation) 갈수록 격화된다. 전지구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과정은 '강탈에 의한 축적 accumulation by dispossession' 동반한다.

 

(2) accumulation by dispossession

개념을 통해 하비는 하나의 오래된 난국을 피할 있었다. 개념이 나오기 전까지 세계체계 시각의 학자들(아민, 프랭크, 월러스틴)이나 Socialist Register 필진 일부는 지속적인 원시적 축적, 혹은 지속적인 본원적 축적 (ongoing primitive/original accumulation)이라는 모순적 개념을 써야 했다. 형용모순의 시발점은 로자 룩셈부르크인데, 그녀는 자본주의의 확대재생산과 본원적 축적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동시에 진행되고 있으며, 이것이 제국주의의 본질이라고 주장한 있다. 자체는 그녀의 통찰력을 보여주는 것이었지만, 결론을 도출하는 방식에 있어서, 룩셈부르크가 보여준 이론적 설명은 맑스의 확대재생산도식에 대한 오해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부하린에 의해 철저하게 공박된다). 로스돌스키 또한 룩셈부르크의 자본주의 확대재생산과 본원적 축적의 동시적 진행 테제에 대해 비판한 있는데, 지금 기억하기로는 맑스에게 있어 소위 본원적 축적은 자본주의에 역사적으로는 선행하는, 그리고 분석적으로는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라는 내용이었던 같다. 세계체계 시각의 학자들이 양자의 유기적 연결과 동시적 진행을 이야기했던 것은 맑스가 본원적 축적이라고 보았던 것이 현재의 고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는 맑스가 소위 본원적 축적이라고 불렀던 것의 어떤 내용이 현재도 존재하고 있다는 뜻이지, 그것 자체가 본원적 축적인 것은 아니다. (? 맑스의 본원적 축적이나 아담 스미스의 사전적 축적은 자본주의 이전에 존재한 것이니까; 또한 맑스에게 소위 본원적 축적은 자본주의의 확대재생산에 있어 계기로 고려되지 않으니까) 하비의 기여는 세계체제 분석이 본원적 축적의 지속적 진행이라는 잘못된 개념을 통해 제기하고자 했던 올바른 관찰을 '강탈에 의한 축적'이라는 개념적 교정을 통해 정당화한 것이다. '강탈에 의한 축적' 맑스가 본원적 축적이라고 것의 핵심이면서도, 자본주의 확대재생산의 내적 계기로서 여전히 지속되는 것이다. 이것의 효과는 재생산 도식에 대한 맑스의 설명을 제한시키는 것이다. 대신 하비는 ‘자본축적의 분자적 과정’(아쉽게도 여기에 대한 충분한 분석은 제시되지 않는다) 강탈에 의한 축적의 동시적 진행이라는 자신의 테제를 제시한다. 그리고 강탈에 의한 축적의 주요 담지자로서 국가와 금융기관을 들고 있다. 

 

2. 이론적 개입으로서의 의의

(1) 레닌주의적 제국주의 개념의 교정

평화적인 초제국주의 시대의 도래 가능성을 점친 카우츠키를 비판한 레닌에게 제국주의는 표현이 어떤 식으로 이해되든 간에, 그것이 자본주의의 최고의 단계이든, 최후의 단계이든, 최근의 단계이든 간에 자본주의의 임박한 파국을 알리는 하나의 단계이며, 이는 다섯 개의 표지를 통해 있는 것이었다. 하비는 좌파 내에서 지배적이었던 레닌주의적 개념을 한나 아렌트의 제국주의 개념과 대비시킨다. 레닌과 달리, 아렌트는 19세기 후반 - 20세기 초반의 제국주의를 부르주아의 첫번째 정치적 지배의 시대로 이해한다. 하비는 이런 대립적인 개념화 (최후와 최초) 간의 대비를 통해, 제국주의의 지배적 이미지(1. 레닌주의적 개념화따라서 2. 오류) 불식시킨다. 동시에 그는 맑스 뿐만 아니라 슘페터와 브로델에 의해 영향 받은 아리기의 자본주의적 팽창 논리와 영토적 팽창 논리 간의 교체 진행 테제를 도입한다. 여기에 위에서 '강탈에 의한 축적'이라는 자신의 개념적 교정을 통해 로자 룩셈부르크의 문제의식을 정당화시킴으로써 새로운 제국주의 논의를 진행해나간다.

 

(2) 보편주의와 특수주의 사이 어디선가에서의 새로운 주체 구성

하비는 하트와 네그리의 [제국]에서 상정된 무차별적, 동질적, 비정형적 집단인 '다중' 어느 마법처럼 분연히 떨쳐일어나 지구를 접수하게 거라는 한편의 순진한 환상과, 반대로 특수한 투쟁 고유의 1차적 중요성만을 강조함으로써 다른 집단과의 소통과 연대를 힘들게 하는 다른 한편의 국부적, 특수주의적 주체관 사이 어디 쯤에 새로운 주체를 구성하는 것의 중요성을 지적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반자본주의 반제국주의 투쟁 주체의 표적은 금융기관과 국가기구이다. 어느 정도의 공감에도 불구하고, 허탈함이란... 아마 그것은 하비가 채울 몫은 아닌 같다.

 

3. 아리기의 하비 수용

하비의 이 책에 끼친 지오바니 아리기의 영향력은 상당히 크다. 하지만 동시에 이 책에서 개진된 하비의 분석들 역시 아리기에게 영향을 끼쳤다. 얼마전 아리기는 New Left Review에 하비가 이 책에서 개진한 내용들을 역사적 자본주의의 전개에 관한 설명에 자신이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 지를 흥미진진하게 밝혀 놓은 바 있다 ("Hegemony Unravelling" I & II , New Left Review. 32: pp.23-80, 33: pp.83-116). 그는 대체로 하비에 공감하면서, 그를 추켜 세우기도 하고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의 공간적 표현이 어떻게 나타나는 지 하비가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식으로), 이의를 제기하기도 (예컨대 하비가 자신의 논리를 오독했다거나 하는 식으로) 한다. 아리기는 하비의 spatial fix라는 개념을 기존에 자신이 주장해왔던 축적체제 주기와 헤게모니 교체 메커니즘에 적용함으로써 자신과 하비의 설명 모두를 풍부하게 하고 있다. 이 글을 통해 아리기는 클린턴 시대의 신경제를 헤게모니 쇠퇴 직전의 번영기 (belle epoque)로 해석하며, 신자유주의로부터 신보수주의로의 전화를 이 번영기의 종말로 이해한다. 또한 이는 클린턴 시절 경제정책의 기조 역할을 했던 글로벌리제이션 담론이 아들 부시 시대에 이르러 급격히 소멸되었다는 점을 통해 강조된다. 현재 미국에 군사적으로 대적할 국가는 아무도 없다. 그러나 (피터 고완이 그의 역작을 통해 개념화한) '달러-월스트리트 체제'는 갈수록 위기를 맞고 있다. 이전의 쇠퇴하는 헤게모니는 모두 채권국이었던 데 반해, 현재 미국은 채무국이라는 점은 미국 헤게모니 쇠퇴가 이전의 역사적 헤게모니의 쇠퇴와 구분되는 가장 특이한 점이다. 아리기는 이를 통해 미국 헤게모니의 쇠퇴가 이전보다 훨씬 더 가파를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또한 이전까지는 헤게모니의 교체에 (현재 이라크에서의 전쟁보다 훨씬 규모가 큰) 대규모 전쟁이 동반되었다. 과연 미국 헤게모니의 몰락은 어떠할 것인가? 몰락하기는 몰락하는가? 아리기보다 오래 살면서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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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20 04: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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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8 08: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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