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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종말 ㅣ 동녘선서 99
엘마 알트파터 지음, 염정용 옮김, 이병천 감수 / 동녘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1.
2008년 1월 2일, 뉴욕상업거래소가 1983년 문을 연 이후 최초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언론에서는 파키스탄 부토 전 총리의 암살과 나이지리아에서 무장세력의 봉기 등을 이유로 들고 있다. 하지만 페르낭 브로델의 표현을 빌자면, 이러한 사건들은 유가 급등에 있어 아마도 ‘먼지’만큼의 무게를 갖는 비중의 원인일 것이다. 조금 더 브로델 식으로 접근해보면, 유가 급등은 상이한 시간대에 걸친 역사적 진행의 중첩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단기지속적인 석유의 금융상품화와 이로 인한 투기자본의 장난, 중기지속적인 미국 달러화의 하락, 장기지속적인 세계 석유소비의 증가와 이 결과로서 석유 매장량의 고갈. 만약 이 세 요소 중 하나에서라도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지 않는 한 국제유가의 상승세는 돌이키지 못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미래를 예측할 때 과거의 역사는 힌트를 제공한다.
우리가 “1차 석유위기”라고 부르는 1973년의 사건은 산유국들이 유가를 배럴당 2.89달러에서 갑자기 11.65달러로 올린 것을 말한다 (229). 배럴당 100달러 시대에 피부에 잘 안 와닿을 수 있는 얘기일 수도 있지만, 이는 세계적으로 엄청난 결과를 유발하였다. 특히 석유를 수입해야 했던 개발도상국가들과 석유를 수입하기 위해 차관을 도입해야 했던 제3세계 국가들에게 이는 재앙적 사태를 초래하였다. 이런 일, 곧 기름값이 하루 아침에 네 배나 뛰는 일이 앞으로 또 일어날 수 있을까? 배럴당 100달러에서 400달러로? 아마 그런 일은 안 일어날 것이다. 왜? 당시 산유국들은 달러 외의 대안을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미국 달러화로 유가를 인상하였지만, 지금처럼 달러의 가치가 계속 하락하는 상황 속에서는 유로화 같은 다른 통화를 결제 통화로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242).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하나 확실한 것은 그 결과를 예측하는 것보다는 이 보이는 패를 갖고 딜에 나서게 되는 당사자들 간의 상호작용을 예측하는 게 더 현실적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어쩌면 이미 이 거대한 판짜기의 용틀임 국면을 목격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지난 2007년 11월 17-18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7년만에 열렸던 OPEC 정상회의에서 이란과 베네주엘라는 원유결제통화를 달러에서 다른 통화로 바꾸자고 공식적으로 제안하였다.
[2008. 3. 26. 추기: 어찌 보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재임 기간 8년 동안 석유값의 등귀는 꾸준히 이루어져서 1차 석유위기의 상승폭을 달성한 셈이다. 2001년 IT 버블이 터졌을 당시, 원유의 가격은 배럴당 26달러였다. 최근 배럴당 100달러 안팎을 오르내리는 상황과 비교해보면, 부시는 8년에 걸쳐 1차 석유 위기 때처럼 원유 값을 네 배나 올려놓은 셈이다. 물론 중국의 산업화나 엄청난 투기 자금의 유입 등의 요소도 고려해야 하긴 할테지만, 참 장하다.]
[2009. 10. 10. 추기: http://www.hani.co.kr/arti/SERIES/59/380754.html . 원유결제통화 변경에 관한 논의에 대한 유철규의 분석. 산유국들의 원유결제통화 바스켓의 설치 문제를 미-중간의 글로벌 불균형 해소 문제와 맞물린 것으로 제시하는 흥미로운 글이다. 1985년의 서독과 일본처럼 중국이 미국의 뒷정리를 군소리 없이 해줄 수 있을지, 아님 미국 달러가 나락으로 급락할 지 흥미롭다. 지켜보자.]
2005년에 독일어로 출판된 이 책, 『자본주의의 종말』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장기적인 추세로는 배럴당 100달러를 훨씬 넘어설 수도 있는 가격으로 상승한다” (224). 불과 2-3년 전에만 해도 배럴당 100달러가 넘는 것은 미래의 어느 날 올 수 있는 시점이었던 것이다. 그게 바로 오늘이라니… 다소 황당해서 2005년의 유가를 찾아보았더니, 6월에는 배럴당 60달러를 돌파했고, 8월에는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여파로 80달러를 상회했다고 한다. 확실히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한 유가 급등은 그 상황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하였고, 그 상황은 시간이 걸리긴 해도 허리케인에 의해 파손된 멕시코만의 정유시설들이 복원되면 정상의 상태로 내려오리라는 가정을 희망으로 갖게 하였다. 지난 2년의 시간은 그 가정이 단순한 희망이었음을 분명히 웅변하고 있다. 아마도 이 국제유가 급등은 부시 정부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목으로 수행한 뻘짓의 직접적인 결과일 것이다. 그렇다면 물어보자. 버락 오바마나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이 된다고 이 유가 급등세가 잠잠해질 수 있을까? “테러와의 전쟁”이 유가급등의 직접적인 원인일 수는 있지만, 동시에 이는 앞에서 말한 중기지속적 진행과 장기지속적 진행에 대한 미국 보수파의 대응 결과이지, 그 진행 자체를 뒤집을만한 원인은 될 수 없다. 이란이 달러가 원유결제통화로 사용되는 것을 거절한다면, 대통령이 누구건 과연 미국이 전쟁이라는 패를 택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유가 급증세를 둘러싼 질문들에 대답하기 위해 보다 근본적인 역사적 진행들에 눈을 돌려야 한다. 이 책 엘마 알트파터의 『자본주의의 종말』은 이를 위한 훌륭한 지침서 역할을 한다.
2.
엘마 알트파터는 1970년대 서독 국가도출논쟁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독일어와 영어의 거리는 한국어와 일본어의 거리보다도 훨씬 더 가깝기 때문인지, 독일어로 주로 작업하는 사람들의 저작은 영어로도 잘 번역이 되지 않는 것 같다. 따라서 이 책을 보기 전에는 알트파터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도 사실 잘 몰랐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신자유주의의 공세 속에 전망 없이 부유하는 좌파들이 이 책을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과장이 아니다.
알트파터의 책은 페르낭 브로델의 잘 알려져있지 않은 구절에 독자들의 주의를 집중시키면서 시작한다 (이 책의 14쪽에 인용되는데 번역이 별로다. 따라서 주경철이 번역한 까치판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III-2』861쪽을 따른다.): “사실 나는 자본주의가 ‘내부적인’ 쇠퇴로 인해서 저절로 붕괴하리라는 예상은 전적으로 틀린 견해라고 생각한다. 그와 같은 붕괴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극단적으로 격렬한 외부충격과 믿을 수 있는 대체방안이 있어야만 한다.” 브로델의 이 말은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맑스주의 정치경제학 비판이 암묵적으로 혹은 공개적으로 차용하고 있는 붕괴론적 가정에 대한 정면비판인 셈이다. 알트파터는 브로델의 이 진술이 어떻게 옳을 수 있는 지 설명하는 것에 이 책 한 권을 다 할애하고 있다. 난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그의 역사적 설명과 정치적 전망에 완전히 설득되고 말았다.
3장에서 알트파터는 자본주의에 존재하는 사적 전유를 네 가지 형태로 구분한다 (‘전유’appropriation는 쉽게 특정 사용가치에 대한 특정인의 소유가 새로이 확립되거나 이전되는 과정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1. 아직 가치화되지 않은 것을 최초로 “가치화”하는 것. 자본의 본원적 축적.
2. 절대적 잉여가치의 창출. 자본에 대한 노동의 형식적 포섭.
3. 상대적 잉여가치의 창출. 자본에 대한 노동의 실질적 포섭. 포드주의.
4. 새로운 제국주의. 박탈에 의한 축적.
사적 전유에 대한 이러한 구분은 데이비드 하비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인데, ‘기계적 잉여가치’와 ‘사회적 잉여가치’라는 범주를 발명한 것을 그 범주에 상응하는 독립적 실체를 발견한 듯 하는 이진경의 주장보다는 훨씬 더 겸손하면서도 훨씬 더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이진경의 주장은 일단은 좀 미심쩍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고 있노라면, 이 범주들을 과연 어디에 쓸 수 있을 지 대략 난감하다. 인간주의 비판? 그거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거든요… 알트파터는 애매모호한 잉여가치의 종류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전유의 형태를 구분함으로써 각 형태에 고유하게 연결되어 있는 역사적 특징들에 주목하게 한다. 예컨대, 상대적 잉여가치의 창출이라는 세 번째 유형은 화석 에너지원과의 연결 속에서만 가능하였고, 케인스주의와 포드주의라는 포지티브 섬 게임이 가능했던 틀을 만들어 냈다. 이에 반해 네 번째 유형인 새로운 제국주의는 이전의 포지티브 섬 게임의 틀을 해체한다. 금융 자유화와 더불어 실질금리와 투자 수익률이 상향 조정됨에 따라 임금의 분배 몫은 줄어 들게 된다. 그리고 이전에는 생산과정에 투입되는 원료였던 석유가 투기의 대상으로서 금융상품으로 변한다.
사실 알트파터의 독창성이 빛을 발하는 것은 4장 이후부터이다. 그는 4장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역사적 체제는 (1) 자본주의적 형태, (2) 화석 에너지원, (3) 유럽 합리주의의 삼위일체라고 주장한다. 맑스는 주로 (1)에 대해 말했고, 베버는 (3)이 어떻게 (1)을 갖고 왔는지를 분석하였다면, 알트파터는 그 엄청난 중요성에 비해 이제까지 간과되어 온 (2)가 어떻게 (1)과 (3)과 맞물려 있는가를 분석하고 있다. 이 삼위일체는 “인류사에서 유일무이하게 모든 경제∙사회적 과정의 가속화를 불러오며 …. ‘국가의 부’를 크게 증대시킨다” (107). 동시에 이는 세계 불평등의 심화와 자연의 파괴를 야기한다. 화석 에너지 체제 외의 그 어떤 것도 자본주의가 지난 200년 동안 거둔 엄청난 성과를 가능하게 해줄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화석 에너지는 자본주의의 가속화와 영토 확장의 극단적 비약을 가능케 하였다.
이 삼위일체는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의 황금기까지 크고 작은 문제들을 노정하면서도 비교적 잘 굴러 왔다. 무엇보다 경제 성장의 측면에서 그러했다. 그러나 이는 불평등의 증가와 생태적 문제를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문제로 대두시켰다 (5장). 6장부터 9장까지는 본격적으로 앞서 소개된 브로델의 진술에 대한 역사적 해석을 제공하고 있다. 6장에서는 브로델보다는 맑스의 목소리에 가깝게 금융화 현상을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의 첨예화로서 다룬다. 7장에서는 브로델이 말하는 외부의 충격이란, 곧 삼위일체 중 핵심적 역할을 하였던 화석 에너지 체제의 소진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8장에서는 브로델이 그나마 약간의 희망을 가졌던 사회 내부에서 움트는 신빙성 있는 대안들을 다룬다. 알트파터는 사회운동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신자유주의 질서로부터 탈환할 것을 주장한다 (‘사회영토운동’과 ‘시간의 자치권’). 또한 아래로부터 ‘도덕적’ 혹은 ‘연대적’ 경제의 출범을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한다 (292-4). 또한 이러한 연대적 경제의 출범을 위한 세계적 수준의 제도적 배열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월든 벨로를 인용하며 역설하고 있다 (294-298). 또한 결정적으로 전세계적으로 피크 오일(peak oil, 석유채굴의 정점)이 경과하고 있는 시점에서 지속 가능한 태양 에너지 사회로의 이행을 준비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브로델이 현실적으로 희망할 수 있었던 자본주의 이후 사회가 오는 방식이었다. 외부의 충격 (석유시대의 종말)이 내부 모순의 전개 (신자유주의 금융화) 속에서 배태된 신빙성 있는 대안들 (연대적 경제와 태양 에너지 사회)과 결합하는 것.
3.
이 책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많은 저자들이 나온다. 다소 거칠게 말하자면, 알트파터는 존 홀로웨이, 알렉스 캘리니코스, 마이클 하트와 토니 네그리, 에르난도 데 소토 등이 제시하는 현실 분석과 이에 따르는 대안들에 대해 무척 비판적이다. 반면, 그의 주장은 맑스, 브로델, 폴라니, 하비, 비릴리오, 퍼킨스, 벨로 등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영어로도 번역되지 않은 책을 한국어로 번역해준 출판사와 역자에 감사한다 (책 내용 중 일부가 Socialist Register 2007에 영어로 발표되었을 뿐이다). 번역자가 전공자가 아닌 독일어 전문 번역자이기 때문에 출판사 쪽에서는 이병천 선생에게 감수를 부탁하였나 본데, 읽어본 결과 번역은 엉망이다. 감수를 제대로 안한 것 같다. 번역을 전문으로 하는 비전공자들이 하는 실수들이 고스란히 반복된다. 예컨대, 당연히 “매판 부르주아지”라고 번역해야 하는 것을 원문대로 “콤프라도르 부르주아”라고 번역한다든가, 문맥이 안 맞아서 중간에 번역하기 힘든 부분을 건너뛴 게 아닌가 의심스러운 곳도 많다. 가장 황당한 오역은 수잔 스트레인지를 수잔 손탁으로 옮긴 부분이다. 감수자까지 있는 번역 치고는 궁색하기 이를 데 없다. 책 읽으면서 오자와 오역들을 표시해두었는데, 긴 서평을 쓴 후 또 그것까지 할 성의와 여유가 내겐 없다. 어쨌든 좋은 책이다. 번역이 후졌지만, 그래도 원문을 접할 길 없는 내게 이 좋은 책을 접하게 해주었으니 여전히 출판사와 번역자에게는 감사한다. 많이 팔아서 재판 찍을 때에는 좀 제대로 성의 있게 고쳐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