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나무 뿌리 앞에서 - 캄보디아에서 박정희를 보다 유재현 온더로드 3
유재현 지음 / 그린비 / 200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게 캄보디아는 이미지의 파편, 정보의 조각일 뿐이었다. 가까이는, 아마 1년도 더 된 일인 것 같은데, **님의 알라딘 서재에서 봤던 인상적인 사진과 글들이었다. 그 전에는 앙코르와트 사원이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화양연화였다. (왕가위도 좋고, 장만옥, 양조위도 좋아하지만, 이 영화는 난 참 별로였다. 서사가 너무 약하다. 글쎄요즘 다시 본다면 어떨지사랑에는 서사보다는 격정과 이미지가 더 중요한 것일텐데이런 소리를 하고 있는 걸 보면 화양연화를 봤을 때보다는 나이가 먹은 것인가? 모르겠다.) 그리고 기억의 아주 먼 저 편, “킬링필드”…

이 책은 이런 캄보디아의 동떨어진 이미지들을 지식과 연결시켜주었다. 6개월 동안 프놈펜에서 머물면서 찍은 사진들과 짧막한 글들을 통해 현재 캄보디아의 독재자 훈센과 정희의 이미지를 오버랩시킨다.

"위대한 박정희는 남한뿐만 아니라 이곳저곳에 살아있고 건재하다. 중국공산당을 훈육한 박정희에 대해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독재자들은 경의를 표하고 있다. … 그 중 캄보디아는 동남아시아에서도 특출하게 박정희유훈을 실현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적극적이다. … 2006 7월에서 그 해 12월까지 6개월 동안 프놈펜에 머물면서, 나는 파노라마처럼 생생하게 펼쳐지고 있는 박정희 시대의 인간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나는 무엇보다 캄보디아의 훈센 개발독재라는 부활한 박정희 시대가 풍기는 비역하고 참혹한 냄새를 통해 내 자신이 관통했고 우리 모두가 관통했던 그 시대의 벌거벗은 실체를 더듬을 수 있었다. 박정희 시대를 살아야 했던 인간의 얼굴과 체온이 그곳에 있었다." (11-12)

지은이 유재현이 훈센의 캄보디아에서 한국의 6-70년대 박정희와 그 시절의 인간의 데자부를 보았다면, 유재현의 글을 보면서 얼마전 서평을 썼던 조희연의 책을 연상하게 되었다. 유재현이 훈센을 보면서 박정희를 떠올리는 것은, 조희연역사적 박정희현재적 박정희와 대면시키겠다는 문제의식에 기반하여서, ‘개발동원체제라는 개념을 통하여 그러한 체제 성격 – “이런 체제는 사회를 군대식으로 조직화해서 성장효과를 극대화하고, 독재자를 근대화의 영웅으로 만든다” (조희연, 2007: 13) – 이 남한의 박정희 정권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유재현의 이 책은 마치 조희연의 주장을 알고서 뒷받침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박정희에 대한 세계의 유명한 독재자들 (북한의 김정일, 파키스탄의 무샤라프, 싱가포르의 리콴유)과 독재정권의 이데올로그들의 찬양을 싣고 있다 (80-81).

유재현박정희 신드롬의 연장 속에서 이명박을 해석한 것도 흥미롭다. 스승이 제자를 두어 후대를 예비하는 데, 첩첩산중에 유폐되었다거나 하는 비상한 경우가 아닌 다음에야 혈육을 적제(適弟)로 삼는 우둔한 짓은 멀리하는 법이다. 근친교배란 열성유전자밖에는 보장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후대를 위해 천릿길이라도 헤매야 하는 법인데, 예컨대 무림의 세계가 그렇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혈육에게 심심풀이로 무공을 전수하는 경우에도 진정한 제자는 어느 날인가 어느 곳에서 흘러들어온 까까머리가 차지하게 마련이다. 무림의 국민교육헌장에 명시된 철칙 조항이다. 누가 박정희의 신실한 제자인가? 이명박이다 (9).

이명박은 2000년부터 현재까지 캄보디아 훈센 총리 경제고문의 직함을 갖고 있다고 한다 (58). 캄보디아 한국 교민지에 실린 말에 따르면 훈센은 죽은 사람 중에서는 박정희, 살아 있는 사람 중에서는 전두환을 제일 존경한다고 한다 (80). 대통령 선거가 있는 내일 저녁, 그는 아마 웃고 있을 거다. 그가 이명박이든, 캄보디아의 훈센이든, 전두환이든, 지하의 박정희든 말이다.

캄보디아가 어떤 나라인 지 알고자 하는 이라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권해주고 싶다. 물론 그들이 원하는 게 지식이 아니라, 네이버의 지식인이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정보 쪼가리라면 이 책은 좀 머리가 아플 수도 있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7-12-20 1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2-20 1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