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발전의 사회학 나남신서 170
윤상우 지음 / 나남출판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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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상우 교수가 이전에 발표했던 논문 10편을 모은 것인데, 7-80년대에 유행하던 발전이론들과 동아시아 발전국가에 대한 이론적 검토로부터 시작하여, 개별 발전 국가의 상이한 형성·성숙·쇠퇴의 역사적 경로와 타이밍에 대한 비교를 시도하고 있다. 5(한국의 금융정책 변화와 발전국가해체), 8(대만)에서는 한 국가를 집중적으로 다루지만, 3, 4, 7장에서는 한국과 대만이 비교되며, 6장에서는 한국, 일본, 대만이 비교된다. 9장에서는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발전경로를 기존 동아시아 발전국가 모델과의 비교를 통해서 분석한다. 10장에서는 비교 방법이 아니라, 대만과 중국 간의 양안관계 변동과 이것이 양국의 국가 정책 및 대만 기업에 끼친 영향에 대한 다층적 분석이 시도된다.

사실 예전의 발전 이론들을 검토하는 1장을 보면서 너무나 자의적이고 편의적인 재단 때문에 실망이 컸지만, 이후의 장들은 그 실망을 상쇄하고도 충분히 남았다. 특히 나로서는 한국과 대만 발전국가의 역사적 기원과 전개를 다룬 3장이 제일 인상적이었고, 한국 발전국가의 해체를 금융자유화의 전개 속에서 고찰한 5, 중국의 경제성장을 다룬 9, 중국과 대만 간의 경제통합이 대만의 발전국가 해체에 끼치는 영향을 분석한 10장도 좋았다.

먼저, 일본, 한국, 대만의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추출된 발전국가 모델은 다음과 같은 이념적, 조직적, 정책적, 관계적 특성으로 구성된다 (284-285, cf. 46, 324).

(1)    이념적 요소: 경제성장이 국가 정책의 최우선적 고려사항이었으며, 동시에 실적 정당성의 근거.
(2)    조직적 요소: 자율적이고 조직적 응집력을 확보한 유능한 국가관료기구에 의해 행사되는 전략적 시장개입.
(3)    정책적 요소: 여러 적극적인 정책수단을 통해 자원의 전략적 할당과 민간부문의 생산적 투자를 유도하고 경제의 효율성을 강화.
(4)    관계적 요소: 배태된 자율성.

카스텔에 따르면, 이러한 발전국가 모델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서구보다 산업화가 늦은 후발산업국가이면서도, 다른 제3세계 국가들의 종속을 모면하며 국제사회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선택한 길이었다 (the politics of survival, 83, 268, 285). 그러나 이 생존의 정치가 다른 제3세계 국가들과 달리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국가관료기구의 일관된 방향설정에 의한 것은 아니었으며, 세계체제적인 기회구조, 헤게모니 세력의 개입과 같은 외적 요인, 그리고 최고권력의 리더십, 관료조직 내의 갈등과 같은 내적 요인의 복합적 산물이었다 (67, cf. 137). 이는 발전국가의 성공과 마찬가지로 그것의 해체 또한 복수의 요인들의 복합적 산물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기존의 발전국가론은 발전국가 해체의 요인을 주로 국가자율성의 내적 모순으로부터 야기되는 일종의 '무덤 파는 세력'(grave-digger)의 출현과 국가관료기구의 응집력 및 제도적 능력의 약화에서 찾고 있는데, 지은이는 발전국가론이 발전국가 위기의 원인을 지나치게 사회내적인 요인에서 찾고 있다고 비판한다 (107-109). 윤상우세계체제의 기회구조가 압박구조로 전환되었다는 사실을 주지시키며, 이에 대한 보완적인 설명을 제시하고 있다 (113-114).

윤상우는 세계의 다른 나라들과 구분되는 동아시아 발전국가의 일반적 특성을 위와 같이 제시하면서도, 동아시아 발전국가들, 특히 그 중에서도 한국과 대만의 상이한 발전경로를 비교한다. 간단히 정리하면, 대만이 약탈국가(본토의 국민당 정권 시절과 대만으로 패퇴 후 외삽국가로서 존재했던 1950년대까지) → 발전국가(1960년대 이후 1980년대 중반까지) 연성발전국가(soft-developmental state, 1980년대 중반 이후)의 경로를 걸었던 반면, 한국은 약탈국가(이승만 정권) → 발전국가(1960-1980년대 중반) 탈발전국가(post-developmental state, 1980년대 중반 이후)의 경로를 거쳤다 (130-136).

한국의 탈발전국가경로와 대만의 연성발전국가경로 간의 대비는 한국의 1997년 경제위기와 비슷한 시기 대만의 생존 간의 대비로 더욱 강조된다. 그러나 윤상우는 마지막 10장에서 대만의 연성발전국가 모델 역시 중국 경제와의 통합 속에서 위험에 처해있음을 암시한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1장을 제외하곤, 각 장의 질과 완결성이 무척 높다. 좋은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트집을 잡자면, 비단 이 책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지만, 원래 독립적으로 발표되었던 논문들을 묶은 것이라, 반복되는 내용이 꽤 많다. 출판 업적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과학계의 고질병 중 하나이겠지만, 이전에 발표한 논문들을 묶어서 책으로 낼 때에는 원래 논문에서는 지면 제약 때문에 자세하게 못 다루었던 사실을 풍부하게 담아내는 것을 넘어서, 좀더 유기적인 체계를 갖춘 하나의 책의 모습을 갖췄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이 책의 지은이 윤상우의 후속 작업들이 무척 기대된다. 특히, 그가 탈발전국가연성발전국가처럼 기존에 나온 발전국가와의 대비 속에서 이루어지는 부정적 개념화를 넘어서 현재 등장하고 있는 국가 유형에 대한 좀더 긍정적(affirmative)인 방식의 개념화를 시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또한 마지막 10장에서 시도된 중국과 대만 경제 간의 연동을 분석한 것을 이제 막 태동하고 있는 남북한 경제 간 연동 분석에 적용하고, 나아가 두 경제 연동 간의 비교를 할 수는 없을까. 물론 어렵겠지만 그럴 수 있다면, 그가 이 책에서 시도한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다양성의 추적을 1장에서 잠시 소개되고 있는 필립 맥마이클의 통합적 비교방법론을 통해 재구성함으로써, 21세기 동아시아 자본주의 이해의 새 지평을 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현재 유치한 수준에 머물고 있는 '분단체제론'을 발전, 지양하는 하나의 길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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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23 01: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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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23 09: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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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30 00: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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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30 10: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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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10 01: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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