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와 개발독재시대 - 5.16에서 10.26까지 청소년과 시민을 위한 20세기 한국사 2
조희연 지음 / 역사비평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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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61년 집권해서 1979년 막을 내린 박정희 정권 하의 남한 역사에 대한 다각적 개괄서이다. 20년이 좀 못되는 세월 동안 한반도의 남쪽을 지배했던 이 시기는 성공한 쿠데타 5·16으로 시작해서 실패한 쿠데타 10·26으로 끝이 난다. 나는 그 정권의 시작과 끝이, 또 그 사이의 철권적 통치와 경제발전이 도저히 이후의 역사에서는 재현될 수 없는 예외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남한의 역사란 고작 60년에 지나지 않는다. 60년 중 20년의 세월을 지배한 이 비정상적 정권에 대한 평가는 극단으로 나뉘며,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남한 사회의 좌우를 가르는 중심적 패러미터이다.

이 책의 지은이 조희연 교수는 박정희 시대를 둘러싼 진보와 보수 간의 기존의 소통불가능 상황을 타개하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 진보와 보수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보편적 설득력을 확보하고자 노력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내가 읽은 바에 따르면, 난 그의 의도가 비교적 잘 실현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박정희에 대한 당대 대중 일부의 자발적 열광의 실체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오늘날 그에 대한 향수가 단지 보수세력의 조직적 동원으로만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육사생도들 뿐만 아니라, 서울대 총학생회까지도 5.16 군사쿠데타 지지 성명을 했다는 사실이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또 혁신계 언론였던 『사상계』와 『민족일보』마저도 쿠데타에 기대를 표명했다는 사실은 당시 국민들이 쿠데타에 의구심을 품었으면서도 쿠데타세력=나쁜 세력이라는 식으로 (민주주의를 정상적인 체제로 여기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식으로) 단순 반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963년 대선에서 여순사건에 연루되었던 박정희의 경력이 문제되자, 오히려 이는 진보성향의 표를 흡수하게 하기도 한다

이 책은 박정희 개인과 그 시대의 복합적 모순성에 주목하면서, 이 체제를 위로부터 사회를 조직하고 재편하며 아래의 동원을 이끌어내는 체제개발동원체제”(developmental mobilization regime)로 정의한다 (12). 조희연박정희 체제 뿐만 아니라, 독일의 비스마르크 체제, 스탈린 체제, 북한의 사회주의 건설경제체제, 현재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 타이완의 장제스 체제 등이 이 체제의 예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흥미롭게도 그는 남한의 박정희 신드롬과 러시아의 스탈린 신드롬을 병치시키기도 한다 (233)). 이 체제는 국가가 사회의 반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사회에 대해 역작용하는 체제이며, “사회에 대한 일종의 국가적 기동전체제이다. 이 체제 속에서 국가는 “‘개발·조국근대화·산업화·수출증대같은 국가의 지상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사회와 그 구성원들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고 훈육하고 독려하는” ‘훈육국가의 형태를 띠게 된다 (173, 218). 사회체제 (혹은 축적체제)와 국가형태의 이러한 개념화는 이 책이 그 동안에 나온 다른 박정희 시대에 관한 책과 차별되는 지점이라고 생각된다. 이전의 역사책들은 그것이 어떠한 관점에서 서술되든 간에, 역사적 사실에 대한 서술(description)과 서술자의 정치적 입장에 기반한 해석(interpretation)이 무매개적으로 혼융됨으로써, 정치적인 논란을 유발했을지언정 학술적인 논의 구도 성립을 힘들게 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시류와 달리 조희연은 서술과 해석을 개념적 설명(explanation)으로 매개함으로써 신도, 악마도, 그렇다고 평범한 한국 남자도 아니었던 박정희와 그의 시대에 객관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기초를 놓은 것으로 보인다.

그 동안 박정희와 그의 시대에 대한 보수진영의 논의는 그 시절의 경제 발전의 성과와 그의 서민적 이미지를 집중 부각시키는 반면, 그 이면의 어두운 부분들 - 일본군 장교 복무, 남로당 활동, 쿠데타, 일체의 민주주의 부정, 노동·인권 탄압, 정치공작, 정경유착, 부패 등 - 을 각색·왜곡하거나 이에 면죄부를 주고자 하였다. 우파들은 박정희를 통째로 지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그에 대해 좋아보이는 것만 취사선택하는 입장을 취해온 것이다. 이에 반해 진보 진영은 이 모든 것들이 하나로 맞물려 있기 때문에 취사선택 자체가 불가능한 악으로 인식해왔다. 이는 기본적으로 보수진영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는 대결구도이다. 따라서 얼마전 백낙청이 박정희지속불가능한 발전의 유공자로 칭하면서 박정희의 공과 과를 동시에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은 (진보까지는 아니더라도) 박정희에 대한 반()수구적 해석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했던 시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이번 대선 구도 초기에서 잘 보여졌듯, 한나라당과 대통합민주신당이라는 양대 기득권 정치세력이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으로 스스로를 표상하려는 것과도 맞닿아 있다

조희연은 기존의 보수, 진보, 그리고 백낙청 식의 양시양비론적 절충과 이 책에서 자신이 하고자 하였던 것 간의 차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 박정희를 둘러싼 이러한 해석 차이란 결국 산업화 이후의, 그리고 민주화 이후의 대안을 둘러싼 각축전이다 (232). 보수는 민주주의, 인권, 복지를, 진보는 개발, 성장, 개방, 경제 운용의 문제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도달했다는 것이 이 각축전의 배경이다. 그에 따르면, 박정희와 그의 시대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고 그 여럿 간의 모순과 갈등이 응축되어 있다. 현재적 시각에서 보고 싶은측면만을 봐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236). 조희연 (백낙청처럼) 박정희를 둘러싼 보수와 진보의 화해를 제시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현재의 소통불가능의 교착국면을 좀 제대로 된 싸움으로 만들기를 원하는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 보수는 어떻게 역사적 박정희를 뛰어넘을 것인가하는 과제를, 진보는 박정희의 개발독재체제와는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 국가와 경제를 운영할 것인가하는 과제를 풀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의 지은이 조희연 교수는 결코 쉬운 글을 쓰는 양반이 아니다. 그의 글을 보면 고난도 사회과학적 개념이 난무한다. 하지만 이 책은 사회과학 논문이 아니라 역사책이다. 따라서 쉽다. 이 책에서는 개념 사용이 극도로 절제되어 있다. 기본적인 역사적 사실의 서술에 충실하면서도 그 사실이 상이하게 해석되는 현시대적 배경도 잘 서술되어 있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박정희 시대에 대한 교양과 지식의 업그레이드를 원하는 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박정희 시대나 조희연의 연구에 관심이 많은 학문하는 사람들은 봅 제솝(Bob Jessop)의 설명틀에 의거하여 발전국가를 논의 했던 이전의 글(『동아시아 경제변화와 국가의 역할 전환』(한울) 4)과 곧 후마니타스에서 나온다고 광고하는 책(『한국민주주의와 개발동원체제』(후마니타스, 근간))과 같이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오자:

23쪽 밑에서 두번째 줄: 조취 조치

129쪽 밑에서7째 줄: 1972년에 → 1972

207 9째 줄: 성장했다는 성장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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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이카 2008-06-11 0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http://www.hani.co.kr/arti/SERIES/185/292136.html
원로언론인 임재경이 한겨레 신문에 연재하는 [길을 찾아서]의 한 회인데, 7.4 남북공동선언과 8.3조치 등으로 유신을 정당화하려고 했던 관변먹물들의 시도와 이로 인한 헷갈림에 대해 잘 서술하고 있다. "정말 헷갈렸"지만 그것은 확실히 "위장"이었다가 임재경의 결론.

2008-11-08 04: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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