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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고원 - 자본주의와 분열증 2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지음, 김재인 옮김 / 새물결 / 2001년 6월
평점 :
불어도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본격적인 시비가림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돈 주고 책 산 독자의 불평쯤 될 것이다.
어려운 책이라 번역이 어려웠겠지만, 용어 선택에 있어서 납득할 수 없는 것이 많다.
예컨대, progression을 "진보", regression을 "퇴행", involution을 "역행"이라고 옮겨 놓았는데(446~453), 각각 "전진", "후퇴", "연루/엮임/얽힘/관계맺음"으로 옮겨야 말이 된다.
"진보"는 말 그대로 "시간의 화살"을 전제하는 근대주의적 개념이다.
이 책 <천 개의 고원>에서 progression은 "무엇을 향해 더 앞으로 나가다/전진하다"라는 공간적 이동의 의미이지, 시간의 흐름을 전혀 지시하지 않는다.
한편으로 <자연>은 단계적인 닮음에 의해 계열의 모델과 근거로서 존재자들 모두가 모방의 대상으로 삼는 신이라는 최고항을 향해 나아가면서 진보적이거나 퇴행적으로 끊임없이 서로를 모방하는 존재자들의 사슬이라는 형식으로 고려된다.
"나아가면서 진보적이거나 퇴행적으로" -> 전진하거나 후퇴하면서 - P446
우리들로서는 이처럼 이질적인 것들 간에 나타나는 진화 형태를 "역행(involution)"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단 이 역행을 퇴행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되기는 역행적이며, 이 역행은 창조적이다. 퇴행한다는 것은 덜 분화된 것으로 향해가는 것이다. 그러나 역행한다는 것은 자신의 고유한 선을 따라, 주어진 여러 항들 "사이에서", 할당가능한 관계를 맺으면서 전개되는 하나의 블록을 형성하는 일을 가리킨다.
1. 역행 -> 엮임, 휘감김 2. 마지막 문장 (영어본, p. 239) But to involve is to form a block that runs its own line "between" the terms in play and beneath assignable relations. 그러나 연루된다는 것은 서로 관계하는 항들 "사이에", 그리고 할당가능한 관계들 밑에 나있는 자신의 선을 달리면서 한 덩어리를 형성하는 것이다. (연루된다는 것은 복수의 항들이 한 덩어리가 된다는 것) - P453
회상들과 생성들, 점들과 블록들 생성들은 소수적이며, 모든 생성은 소수자-되기. 다수성이 지배 상태를 전제하는 것이지, 그 역은 아니다. 도시에서의 다수성은 투표권을 전제하며, 투표권을 소유한 자들 - 그 수가 얼마가 되었건 사이에서만 수립되는 것이 아니라 투표권을 갖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행사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세상에서의 다수성은 남성의 권리나 권력을 이미 주어진 것으로 전제한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여성, 아이, 그리고 동물, 식물, 분자는 소수파이다. 아마도 남성-기준과 관련한 여성의 특별한 위치가 소수파 그 자체인 모든 생성들이 여성-되기를 통과하도록 만드는 것 같다. 그렇지만 생성이나 과정으로서의 "소수 minoritarian"와 집합이나 상태로서의 "소수성 minority"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 P550
상태로서의 소수성 위에서 우리는 재영토화되거나 재영토화된다. 하지만 생성 속에서는 탈영토화된다. 블랙 팬더 활동가들이 말했듯이 흑인들조차 흑인이 되어야 한다. 여성들조차 여성이 되어야 한다. 유대인들조차 유대인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유대인-되기는 필연적으로 유대인뿐만 아니라 비유대인들도 변용시킨다. ... 여성-되기는 필연적으로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변용시킨다. - P551
여성은 여성-되기를 해야만 한다. 하지만 전 남성의 여성-되기 속에서 그래야 한다. ... 소수자 되기는 자신의 요소들인 탈영토화된 매체와 주체를 통헤서만 존재한다. 생성의 주체는 다수성의 탈영토화된 변수로서만 존재하며, 생성의 매체는 소수성의 탈영토화하는 변수로서만 존재한다. - P552
역사와 달리 생성은 과거와 미래라는 관점에서 사고되지 않는다. 혁명적인 것-되기(Becoming-revolutionary, 혁명가 되기!)는 혁명의 미래와 과거 문제에는 관심이 없다. 혁명적인 것(it)은 미래와 과거의 틈 사이를 통과한다. 모든 되기는 공존의 블록이다. 이른 바 역사 없는 사회는 역사의 밖에 위치한다. 불변의 모델을 재생산하거나 고정된 구조에 의해 지배되는 것에 만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역사 없는 사회 자체가 생성의 사회(전쟁 결사, 비밀 결사 등)이기 때문이다. 역사에는 다수성의 역사나 다수성과의 관계에 따라 규정되는 소수성의 역사빡에 없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다수성을 획득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지각할 수 없는 것의 진행과 비교한다면 완전히 이차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 P553
남성-되기(becmoing-man)는 존재하지 않는다. 남성은 그램분자적 존재물(molar entity)인 반면, 생성들은 분자적(molecular)이기 때문이다. ... "다수성"은 잉여로서 성립되는 것이다. 이처럼 남성은 중심점의 위치에 따라 거대한 기억으로 구성된다. - P553
생성의 선-체계(또는 블록-체계)는 기억의 점-체계와 대립된다. 생성의 운동을 통해 선은 점에서 해방되고, 점들을 식별 불가능하게 만든다. 나무성(arborescene)의 반대인 리좀은 나무성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생성은 反-기억이다. 물론 분자적인 기억도 있지만, 그것은 다수적 체계 또는 그램분자적 체계로 통합되는 요인으로서 그러할 뿐이다. 회상은 언제나 재영토화 기능을 갖는다. 이와 반대로 탈영토화의 벡터는 결코 규정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분자적 층위들에 직결되어 있다. 그리고 탈영토화의 정도가 높을수록 그러한 연결도 더 강해진다. 분자적 성분들을 한데 "모아주는" 것이 바로 탈영토화인 것이다. - P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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