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열두 방향 어슐러 K. 르 귄 걸작선 3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 시공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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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나는 SF는 고사하고,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 드문 예외들이 있지만 논외로 하면, 내가 소설을 읽는 경우는 거의 한 가지뿐이다. 내가 읽고 있는 책에서 읽지 않은 소설이 나왔을 때 나는 그 소설을 봐야 하겠구나 마음먹는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먹은 것을 실제 독서로 옮기는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독서를 시작했다 해도 마치지 못한 경우들이 있다. 죄와 벌이 대표적이다. 언제 차분히 신들의 계보를 비롯한 그리스-로마 신화, 단테의 신곡, 괴테를 읽을 수 있을까? 셰익스피어, 발자크, 카프카, 멜빌, 메켈라스의 단편들을 읽은 것은 소설이 그 자체로 재미있어 보여서가 아니라, 공들여 읽은 데리다, 피케티, 들뢰즈, 에나프의 책에서 이들의 작품이 소재로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곧 책이 또 다른 책을 소개해준 경우이다. 르 귄을 읽게 된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해러웨이가 소개해줬기 때문이다. 저자를 신뢰하고 그의 저작을 더 이해하기 위한 경우에만 소설을 읽는다. 따라서 나는 소설을, 소설을 읽는 법을 잘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저자의 책에 소설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것이 전혀 불편하지도 아쉽지도 않다. 그러나 덕질 수준에 이르는 일방적 애정을 품게 된 경우에 이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해러웨이를 읽기 위해서는 르 귄을 읽어야 했다.


1. 

이 책에는 1962년부터 1974년까지 르 귄이 발표한 판타지와 SF 단편 열일곱 편이 수록되어 있다. (각 단편 앞에 르 귄이 짧은 작품 해설을 붙여놓았는데, 사실 그 이야기가 소설만큼이나, 어쩌면 소설보다 더 재미있다.) 이 중에 <샘레이의 목걸이>, <겨울의 왕>, <해제의 주문>, <이름의 법칙>은 이후 그녀가 쓴 장편의 단초 역할을 하였고, <혁명 전날>은 장편 빼앗긴 사람들의 일부로 쓰여진 것이다(10). 르 귄의 SF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마블이나 DC코믹스의 히어로 액션 영화와 전혀 상관없다. 그보다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들과 상대적으로 유사한데, 실제로 미야자키 하야오는 르 귄의 작품을 좋아했다 한다. 그렇다고 두 사람의 작품세계가 매우 밀접하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현대 문명에 대한 생태주의적 비판이라는 주제에서는 겹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중에서 과학자가 주인공이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르 귄의 단편들에서는 곤경에 처한 마법사 또는 과학자가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하고, 이들의 심리적 갈등으로 이야기가 주로 전개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 미야자키 고로가 르 귄의 머나먼 바닷가<게드 전기: 어스시의 전설>로 제작하였으나, 르 귄은 이 작품을 혹평한 바 있다. 대현자인 마법사와 함께 하는 모험 이야기이지만 끝으로 갈수록 재미없었던 기억이 난다. 마블 히어로 무비와 달리, 르 귄의 SF는 액션물이기보다는 심리신화(psychomyth)이고, 기술이 발전한 미래뿐만 아니라, 과학이 이단으로 단죄되던 과거에서도 펼쳐진다. 르 귄은 존 톨킨이나 J. K. 롤링과 달리 마법보다는 과학이, 미야자키 하야오와 달리 테크놀로지보다는 과학 자체가 관심인 듯하다. 르 귄은 반인종주의를, 미야자키는 반전평화를 더 강조하는데, 모국이 처한 사회적 맥락의 차이가 저자의 작품 속으로 연장된 것으로 보인다. (SF 문외한의 이 빈약한 비교란...) 어쨌든 르귄에게 중요한 것은 세계의 낯선 곳으로의 모험이라기보다는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내면 세계, 곧 마음의 이야기이다(306).


<명인들 The Masters>, <아홉 생명>, <제국보다 광대하고 더욱 느리게>, <땅속의 별들>, <시야>는 장편을 구성하지 않고 단편 자체로 완결되는데, 모두 과학자들이 주인공이다. <명인들><땅속의 별들>은 과학이 이단으로 탄압받던 과거의 이야기라면, <아홉 생명>, <제국보다 광대하고 더욱 느리게>, <시야>는 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하여 지적 권위를 획득한 뒤에도 과학자들이 마주하게 되는 역경과 경이에 관한 이야기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상상력이 부족한, 아니 어쩌면 이제 나이들어 세속적인 바램 이외에는 꿈이라 할 만한 것이 별로 없는 나는 어떤 곤경 속에서 윤리적 결단을 내려야 하는 이 과학자 이야기들이 좀더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2. 과학과 예술, 가이아, ...

과학()에 대한 이 단편들이 더 좋았던 이유는 사실 나의 해러웨이 덕질, 또 그것의 일환으로 직전에 읽었던 마굴리스의 공생자 행성때문이다. 마굴리스는 시카고대학교 학부생 시절에 받았던 과학교육을 오늘날의 기술중심사고방식과는 전혀 다른 참교육으로 예찬한다(공생자 행성52-55). 교과서가 아니라 위대한 과학자들이 직접 쓴 글을 읽게 한 그 과목을 통해 마굴리스는 과학을 통해서 중요한 철학적 질문들의 해답을 찾아나가는 방법을 배웠다고 회상한다. 그녀에게 과학은 교양 학문(liberal art), 하나의 사유 방식(a way of knowing)이었다.” 마찬가지로, 르 귄에게도 과학과 예술(art)은 동의어이다(364). [오늘날의 대학은 이런 교육을 하고 있는가? 설령 그렇다 해도 정작 학생들이 마굴리스처럼 생각할까? 누구의 잘못일까? 학생인가, 대학인가, 혹은 그들이 속해 있는 더 큰 시스템의 문제인가? 해러웨이의 표현을 빌자면, 모두의 책임/응답-능력(response-ability)의 문제이다. 그러나 누가 더 책임이 있는가의 문제는 남는다.]


<제국보다 광대하고 더욱 느리게>는 마굴리스의 "가이아"와의 연관성을 명확히 드러낸다. 이 단편은 모든 생명 현상은 광합성이나 사물 기생을 통해서만 이뤄지는 식물로만 존재하는 행성 탐사에 관한 이야기이다(321). 그러나 이 행성의 거대 식물 생태계는 탐사대를 타자로 인식하고 공포를 느끼며 경계한다(354). 생각하지는 않지만 느끼고 반응을 조절한다. 이는 바로 마굴리스와 러블록이 고유감각 체계(proprioceptive system)를 갖고 끊임없이 새 환경과 새 생물을 만들어내는, 조절이 이루어지는 행성 표면으로 개념화한 가이아의 정의(공생자 행성, 200, 212)에 상당히 들어맞는 묘사이다. 딱 들어맞지 않는다면, 이 행성의 거대한 식물 군체가 공포라는 인간의 감정을 느낀다는 것인데, 마굴리스는 가이아를 인간의 성질을 지닌 어떤 것으로 묘사하는 속류적 의인화에 질색을 하기 때문이다.

 

3. 소중한 타자, 부분적 연결, 진창 속에서 함께 세계 만들기, ...

가이아와 더불어 번번이 등장하는 타자와의 조우는 르 귄이 마굴리스, 해러웨이와 공유하는 테마이다. 식민화한 행성에 살고 있던 타자들을 분류하고 서열화하여 관리하는 것(<샘레이의 목걸이>), 서로 다른 시간대에서 온 타자들이 각기 잘 어울리는 커플로 발전하는 이야기(<파리의 4>),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의 어려움(227), 아홉 명의 다른 자아와 늘 함께 살며 대화하다가 혼자 살아남은 클론이 타자들 속에서 진정한 외로움을 느끼는 장면(<아홉 생명>, 258), 고립 속에서 평화로이 살다가 새로 등장한 타자에 대해 느끼는 공포(354), 인간, , 자동차 등을 타자(the other)로 인식하는 나무의 이야기(<길의 방향>), 절대적 타자라 할 수 있는 희생양 아이의 존재(<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 이 단편집은 타자와의 만남, 그리고 그들과 맺는 다양한 방식의 관계들을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타자와의 완벽히 조화롭고 평화로운 공존도, 반대로 타자와 교류·소통하지 않는 완전한 단독자의 삶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인간은 - 그리고 아마도 거의 모든 생명과 사물들도 누군가에게 그리고 무언가에 의존하며 살 수밖에 없다. 악어와 악어새, 연리지처럼 금슬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지만 잡아먹고 잡아먹히기도 하고, 또 잡아먹은 것이 소화가 안 된 채 포식자의 몸의 필수적 일부를 구성하여 개체변이를 일으키기도 하고, 모두에게 총체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채 부분적 연결의 매듭이 다시 맺어지고 시간이 지나 풀려지기도 하면서 우리들은 세계를 함께 만들어나간다. 시야를 인간 세계 바깥으로 훨씬 더 넓혀 보면 이 부분적 연결 방식에 규범적·정상적 양태는 존재하지 않는다. (초점을 인간 세계만으로 좁힌다는 것이 이제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중심적으로 생각할 때 이것은 철학, 인류학, 정치학, 사회학의 주요 연구대상이다.) 때로는 낯선 자들의 친밀성”(트러블과 함께하기, p. 109), 때로는 (음의 되먹임을 통한) 적대적 공생이, 또 때로는 준항구적 착취가 더 지배적일 수 있을 것이다.

 

더듬이, 촉수, , 혀를, 그리고 뭐든 뻗어 타자를 만지고, 간 보고, 끌어당기고, 밀어내고, 찌르고, 쏘고, 때리면서 존재들은 엉킨다. 해러웨이는 진흙속에서 엉키는 우르보로스의 형상으로 촉수 있는 것들이 서로 얼키고 설키며 함께 만드는 세상을 표현한다(트러블과 함께하기59-64, 해러웨이 선언문345-346). 지금은 숨쉬고 먹고 배설하지만 우리는 죽어 퇴비가 되고 진흙이 되고, 다른 촉수 있는 것들의 몸에 흡수될 것이다. 그런데 이 진흙의 모티브도 르 귄에게서 취해진 것으로 본다면 지나친 것일까?

 

하느님이 진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듯당신이 사람이라면 그리고 가진 것이 진흙뿐이라면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그러나 자신이 진흙보다 낫다고 생각했던 자들은 누구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이제물은 저절로 수평을 찾아가고진흙진흙으로그리고 라이아는 더럽고 시끄러운 거리를 발을 질질 끌며 지나갔고라이아 세대의 추하고 약한 모든 존재는 고향에 와 있었다스프레이를 뿌려 멋을 내려 했지만 망가지고 찌그러진 머리를 한 졸린 눈의 창녀들야채를 사라고 기진맥진해 소리를 질러대는 외눈박이 여인손을 내저으며 파리를 쫓고 있는 반푼이 거지이들이 라이아의 고향 여인들이었다라이아와 비슷해 보였고 모든 슬프고역겹고비참하고 불쌍하고끔찍했다라이아의 자매들이고 라이아의 사람들이었다.” (494)


4. ... 그리고 SF

<스타트랙> 시리즈를 한 편도 본 적이 없다는, 따라서 대중적인 SF에는 별 관심이 없어보이는 마굴리스는 <스타트렉> 우주선 안에서 비인간 생명체, 특히 식물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꼬집는다. 그녀는 먼 우주공간으로의 항해에는 폐기물을 식량으로 재순환할 인간 이외의 다양한 생물로 이루어진 생태계가 필수적임을 지적한다(공생자 행성, pp. 185-186). 르 귄이 이 글을 읽었는지는 미지수이지만, 마굴리스라면 르 귄의 SF를 좋아했을 것 같다. 르 귄이 1942년 열두살 때 처음으로 기고했다 퇴짜맞았던 단편의 주제는 지구 생명체 기원에 대한 것으로 SET 이론을 통해 진화를 설명하고자 했던 마굴리스의 기획과 큰 방향에서 일치한다(54). 그리고 나무는 르 귄에게 특별한 영감의 원천이다. 또 르 귄은 복잡한 기술은 지루해 하지만, 생물학과 심리학을 좋아하며, 천문학과 물리학의 사색의 결과(speculative ends)를 매우 좋아하는 SF 작가이다(80).

 

해러웨이는 마굴리스와 르 귄을 모두 사랑한다. 해러웨이의 중의적인 SF는 과학소설(science fiction), 사색적인 이야기 만들기(speculative fabulation), 실뜨기(string figures), 사색적 페미니즘(speculative feminism), 과학 사실(science fact) 등 이 모든 것이다(트러블과 함께하기, 10). 마굴리스의 SF가 사색을 통해 과학 사실을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르 귄의 SF는 사색을 통해 과학 사실의 은유(metaphor)라 할 수 있는 과학 소설(허구)을 이야기로 창조해낸다. 해러웨이는 자신이 처한 상황 안에서 이들을 또 다른 영감의 원천들과 함께 실뜨기해낸다. (여기까지 쓰고 그 다음을 한참을 썼다 지웠다 반복했다.)

 

지금은 내 말로 명확히 정리할 수 없는데, 과학자와 소설가를, factfiction을 실뜨기로 함께 엮는 해러웨이의 SF는 일련의 선언들을 통해 줄곧 강조한 기호학적 육신성, 물질적인 기호, 기호적 물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열쇠인 것 같다. [이 부분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는데, 미래의 나는 이에 대해 조금더 잘 알겠지. 그치? ^^ 아자! (이런 것이 정리하고자 했던 언어의 수행성인데, 말로 정리가 잘 안 되네...)].

 

5.

확실히 나는 글을 매우 천천히 읽고, 매우 천천히 쓴다. 그렇기 때문에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소설을 소설답게 읽지 못한 탓일지 제대로 리뷰도 못 쓴 것 같다. 이 글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쉬운 글은 아니었다. 애초의 목적은 여행 중에 이것 말고 르 귄이 쓴 다른 책도 보고, 르 귄에 입덕할지 고민 좀 해보겠다는 거였는데, 공들여 읽고 리뷰 쓰느라 낑낑대다 보니 생각이 좀 바뀌었다. 르 귄 입덕 고민을 위한 독서는 좀 미루겠다. 해러웨이가 소개해준 다른 사람 책을 더 먼저 보아야 할 것 같다. , 그것도 당장은 못해서 좀 아쉽다. 8월 한 달 열심히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르 귄의 책을 다음에 읽는다면 먼저 봐야할 책들을 네 권만 꼽아 본다.

 

1) 해러웨이 세상에서 르 귄 세상으로의 킥

① 『세상 끝에서 춤추다: 언어, 여자, 장소에 대한 사색(이수현 옮김, 황금가지)

②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최준영 옮김, 황금가지): 해러웨이 선언문348쪽에서 언급

 

2) 바람의 열두 방향에 실린 단편이 들어가 있는 장편

① 『로캐넌의 세계(이수현 옮김, 황금가지)

② 『빼앗긴 자들(이수현 옮김, 황금가지)

 

날씨가 너무 좋았던 섬에서 보낸 여름 휴가 일주일을 마치고, 여행 빨래하듯 리뷰로 정리한다. 빨래, 사진 정리, 리뷰, 일상으로의 복귀. 이렇게 7월이 흘러가버렸다.

이번 여행의 교훈: 1) 책은 한 권만 가져간다. 2) 혼자 있는 시간은 여행에서 더욱 소중하다. 3) 일상에 충실하자. 다음 여행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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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31 18: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로이카 2022-08-01 0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네.. 열심히 읽는다고 다 좋아하게 되는 건 아닌데, 해러웨이는 정말 좋아 합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