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다시 일기를 써 볼까 한다(긁적긁적). 삼 년만에 쓰는 일기. 

그런데, 갑자기 드는 생각... 왜 알라딘에 일기를 쓸까? 나는 일기를 공개함으로써 쾌감을 느끼는 이상한 족속이기 때문이며, 그렇다고 너무 많은 이들이 내 일기를 훔쳐보는 것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기는 짧게 쓰던 길게 쓰던, 심각하건 장난같건, 아무도 상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 모든 댓글은 금지되어 있다.)

언젠가 이 짓의 쾌감도 무뎌질 무렵... 다시 끝날 것이다.

그런데, 오늘 방문자수가 40명이다. (내가 다른 PC로 두 번 들어왔으므로, 타인은 38 명.) 갑자기 웬일일까? 그런데, 아무 흔적도 없다. 숫자의 낚시에 낚인 것일까?

오늘 출근하면서, 그리고 퇴근하면서 <Multitude>의 1장을 끝냈다.

자기 전에 <Theological-Political Treatise>의 Introduction을 조금 더 읽을 것이다. (<TTP>의 본문은 17장까지 읽은 상태다.)

그리고, 아마도 내일은 일기를 쓰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회사 회식이 있기 때문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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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인간 2008-06-26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댓글이 써지쟎아!
 

비슷한 모양의 종이컵이 바람막이 역할을 하고 있는 역시 비슷한 모양새를 지닌 초들과, 바람의 방향이나 구호에 따른 팔의 움직임에 맞춰 비슷한 모양으로 춤추는 촛불들이 강박적인 수십만의 되돌이표로 복사되고 있었지만, 이 초들을 들고 있는 손들의 집합은 '다중(multitude)'이라고 할만했다. 촛불처럼 곱고 작은 서너살짜리 꼬마의 손, 촛불보다 뜨겁게 서로를 붙잡고 둘이 하나가 된 연인의 손, 촛농처럼 울퉁불퉁 투박한 노동자의 손, 금방이라도 초를 가래떡 썰듯이 썰어서 떡국을 끓여줄 것만 같이 넉넉한 어머니의 손, 촛대인 양 멋적은 듯 뻣뻣한 넥타이 중년 아저씨의 손, 초를 또 하나의 악세사리로 만드는 멋쟁이 아가씨의 가냘픈 손, 초가 으스러지도록 불끈 주먹쥐고 촛불이 꺼지도록 구호에 따라 흔들어대는 청년의 손, 한 손에는 초 다른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연신 메시지를 날려대는 여중고생들의 풋풋한 손...

빠올로 비르노는 그의 저서 <다중>에서 '다중의 양가성', 즉 다중이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변용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그것을 예증하듯, 한국 다중의 집단 지성은 '디워빠'들이나 '황빠'들의 비이성적인 국수주의 논리로 표출된바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빠'들의 파시즘적 행동들(사이버상에서만 주로 나타났지만)을 보면서, 나는 인터넷 다중으로서의 네티즌들에게 한없는 절망감을 느꼈었다. 몇몇 이성을 잃지 않은 소수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인터넷 게시판에서 마녀를 불태우라고 외치는 무시무시한 좀비의 합창이 울려퍼졌던 것이다.

그러나 6월 10일의 거대한 촛불집회에 참석하고서야 나는 비로소 비르노가 이론적으로 서술한 긍정적 다중의 진면목이 실제세계에서 어떻게 구체화되는지 체득할 수 있었다. 그들은 발칙하도록 유쾌하고, 유순하지만 결코 쉽게 분쇄되지 않으며, 관료주의에 물든 적의 공세가 무색하도록 극적인 유연함과 순발력을 보여주었다. 위압적인 4중 컨테이너 성벽을 '명박산성'으로 칭하면서, 삽시간에 그 위력 자체를 웃음거리로 만들어 버린 그들의 초월적인 유머를 보라! 진압하는 경찰에게 장미꽃을 선사했다는 전설적인 68혁명의 여유가 40년 후 이토록 진화한 모습으로 이땅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개개인에 비해 영리하기까지하다. 모든 순간에서 '비폭력'이란 구호가 먹힐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촛불집회 참석 바로 전까지만 하더라도 다소의 강력한 저항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이 짧았음을 촛불의 집단 자아는 생생히 보여주었다. 축제하듯 유연한 시위를 즐기는 현재의 응집된 다중은 약간의 폭력성에도 끓는점 이상으로 온도를 올린 물처럼 모두 증발해 버릴 수 있는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으며, 그들은 스스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촛불 다중은 '명박산성'과 청와대로 통하는 모든 골목골목을 틀어 막아버린 '닭장차'들을 비단 빗자루로 쓸 듯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행진했다. 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기발하고 신랄한 풍자적 작품들을 남긴 채...

그럼 다중의 진짜 모습은 무엇인가? PD 수첩을 보이콧해서 잠깐이나마 문닫도록 만든 그들과 조중동 광고주를 압박해서 조중동 폐간을 유도하는 그들의 모습은 놀랍도록 유사하지 않은가? 바로 이것이 우리가 주의해야 할 '양가성'이다. 개개인도 마찬가지지만 다중은 때로 실수도 잘못도 벌인다. 그럼 우리가 다중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을까? 착하다가도 악해지는, 결국 윤리적으로 제로섬일 수밖에 없는 다중이라면... 그러나 나는 어제의 다중이 내일의 다중과 같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비슷한 행동일지라도 그 정당성과 윤리성에서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똑같은 고함이라 하더라도, 그 대상이 누구인지에 따라 그 고함의 정당성은 극적으로 다를 수 있다. 아무 잘못없는 배우자에게 쏟아내는 고함과 큰 비리를 저지른 부패관리를 성토하는 고함은 그 의미가 전혀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조중동 광고주에 대한 압박은 PD 수첩에 대한 보이콧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다중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성인으로 성장해 가고 있다. '디워빠'의 초딩스러운 모습은 여러가지 사회적 변화를 거치면서 '촛불소녀'의 한층 성숙한 모습으로 진화해가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많은 '황빠'들이 6월 10일 서울 심장부에서 촛불을 들지 않았겠는가? 그들을 향해 혀를 끌끌 차다가도 이제는 그들을 칭송하는 것은 그래서 모순이 아니다. '디워빠/디워까', '황빠/황까', 그리고 촛불소녀로 이루어진 이 나라의 다중은 하루에도 수차례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사춘기를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머지않아 번듯하고 정의로운 성년의 모습으로 새로운 차원의 민주주의의 지평을 열게 될 것이다. 이것이 6월 10일의 집회에 참석한 후 가지게 된 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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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공때라면 소지만 해도 잡혀 갈만한 책들...

그러나, 앞으로도 주의해야 할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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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공화국으로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 비(도서출판b)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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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국가를 (어쩔 수 없이) 긍정하는 점잖은 불온서적
1968- 희망의 시절, 분노의 나날
수잔 앨리스 왓킨스 외 지음, 안찬수 외 옮김 / 삼인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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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태어나기도 전인데도 너무나도 친숙한 1968년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굴레를 벗고 자주의 새 역사를 여는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 혁명 연구모임 지음 / 시대의창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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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련한, 그러나 낭만적인 차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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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네그리 & 마이클 하트 지음, 윤수종 옮김 / 이학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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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를 준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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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4-09 0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대학 시절에는 '분노','어둠'따위의 단어들을 참 많이 썼어요.
아침에 학교 가는 길에 대자보를 읽으며 흥분하고 길들여졌던 그 시절이 꿈같습니다.
님께선 아직 태어나기 전인 1968년에 저는 아기였어요.

전자인간 2008-04-10 23:06   좋아요 0 | URL
'분노', '어둠' 따위의 말을 쓰지 않고는 설명될 수 없는 시절이었기 때문이었을까요? 80년대의 대학은 '최루탄 냄새'로만 기억하는 저로서는 짐작할 따름이지요. (제가 다녔던 중/고등학교를 둘러싸고 고대/경희대/외대/서울시립대 등이 있었죠. 그래서 데모의 고통(?)을 코로는 잘 알고 있습니다.)

비로그인 2008-04-11 22:01   좋아요 0 | URL
친구가 고대다녔기에 가끔 그 근처에서 만나려다 못 만났던 적이 있습니다.휴대폰은 커녕 삐삐도 없었기에 그냥 집으로 가서 전화를 다시 기다리곤 했었지요.
고대 경희대 외대 서울 시립대라면 상당히 큰 분포인데 안암동에서부터 청량리를 지나 회기 휘경역까지 아우르잖아요.
학교가 그렇게 컸나요?ㅎㅎㅎ

전자인간 2008-04-15 09:54   좋아요 0 | URL
학교도 컸지만.. ㅎㅎㅎ 최루탄 유효구간이 꽤 크더라고요...
 

오늘 아래와 같은 글을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민주노동당 카페에 올렸다.

이 카페는 내가 만들고 내가 매니저로 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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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탈당계 제출했습니다.

이로써 민주노동당이라는 울타리내에서 ***라는 인물은 사라지게 되네요.

저는 지금 이순간에도 민주노동당과 다름보다는 훨씬 큰 동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정적 의미에서의 '정치'가, 이러한 동질감에도 불구하고 저와 여러분들을 갈라놓게 되네요.

제 의도와는 상관없는 이별...

제발, 누군가 진보적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아쉬울 때,

저를 불러 주세요.

아니면, 그냥 술 한잔 하고 싶을 때에도...

제목은 '안녕히...'지만, 저는 안녕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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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보고 싶은데, 이런 표현은 모순된 것이지만, 염치가 없다.

술 취하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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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소리소문없이 개봉했다가 금방 잊혀진 영화지만, IMDb(http://www.imdb.com)에서 이 영화를 검색해 보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IMDb에 등록된 모든 영화들 중에서 평점으로 톱 250 내에 들었다는 것!(글을 쓰는 시점 기준으로 181위이다.) IMDb 영화 순위로 말할 것 같으면, 나로서는 그리 신뢰하지 않는 것이기는 하지만(이를테면, 좋은 영화이긴 하지만 그리 훌륭한 영화라고까지 생각되지는 않는 <쇼생크 탈출>이 IMDb에서는 언제나 1위 아니면 2위다.), 어쨌든 IMDb 영화순위 250위 내에 들어 있는 영화라니, 그러면서도 이 나라에서는 무명에 가까운 영화라니, 도대체 어떤 영화일까?

독립영화의 정확한 정의는 모르지만, 이 영화는 독립영화가 분명하다. 그걸 뒷받침하는 몇 가지 사실들: 제작비 문제로 완성될 때까지 5년이 걸렸음, 가장 값나가는 소품이라고 해 봤자 구닥다리 폭스바겐 미니버스 정도 뿐, 영화의 거의 모든 재미를 배우들의 연기와 각본으로 충당하고 있음,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계최고의 독립영화제인 선댄스 출신이라는 사실... 이런 기본적인 조건에 덧붙여, 넘치는 블랙유머와 기발함, 금기를 넘나드는 소재의 선택 등을 볼 때, 아주 훌륭한 독립영화가 분명하다. 단, 독립영화라는 말에서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무거운 이미지들이 교묘하게 가려져 있거나 효과적으로 억제되어 있다. 뭐랄까, 이 영화는 설교하려 들지 않고, 주제를 너무 진지하게 다루지 않으며, 무엇보다 정말 유쾌하다. 기름기 좔좔 흐르는 감동을 짜내려고 애쓰는 디즈니 풍 가족영화의 대책없는 천박함도 찾아볼 수 없으면서도 말이다. IMDb의 네티즌 평론가들을 매혹시켰던 것이 바로 이런 균형감각이 아닐까? 최근에 본 영화중에서 이런 훌륭한 균형감각에 가장 근접한 예로는 <헤어 스프레이> 정도를 찾을 수 있겠지만, 삶을 바라보는 태도의 성숙함에서 이 영화가 조금 더 앞선다. (물론, 유쾌함으로 따지면 <헤어 스프레이>를 따라가긴 힘들겠지만...)

사족으로 제목에 대한 잡설: 원제는 <Little Miss Sunshine>인데, 한국 제목은 <미스 리틀 선샤인>이다. 듀나는 이에 대해 굉장히 어이없는 실수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내 생각에는 마케팅 잔머리가 아닐까 한다. '리틀'이 강조되는 것보다 '미스'가 강조되는 것이 '애들 영화'라는 오해를 피하고 왠지 미녀들이 우글거릴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만드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물론 <리틀 미스 선샤인> 쪽이 영화와 더 어울리는 제목인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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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4-07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녀들이 우글거릴 것이라는 기대감'을 순간적으로 갖게 되나봐요?
저는 그저 단어의 위치가 왔다갔다 하는구나...할 뿐이었는데.

전자인간 2008-04-07 22:52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제가 수컷이다보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