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모양의 종이컵이 바람막이 역할을 하고 있는 역시 비슷한 모양새를 지닌 초들과, 바람의 방향이나 구호에 따른 팔의 움직임에 맞춰 비슷한 모양으로 춤추는 촛불들이 강박적인 수십만의 되돌이표로 복사되고 있었지만, 이 초들을 들고 있는 손들의 집합은 '다중(multitude)'이라고 할만했다. 촛불처럼 곱고 작은 서너살짜리 꼬마의 손, 촛불보다 뜨겁게 서로를 붙잡고 둘이 하나가 된 연인의 손, 촛농처럼 울퉁불퉁 투박한 노동자의 손, 금방이라도 초를 가래떡 썰듯이 썰어서 떡국을 끓여줄 것만 같이 넉넉한 어머니의 손, 촛대인 양 멋적은 듯 뻣뻣한 넥타이 중년 아저씨의 손, 초를 또 하나의 악세사리로 만드는 멋쟁이 아가씨의 가냘픈 손, 초가 으스러지도록 불끈 주먹쥐고 촛불이 꺼지도록 구호에 따라 흔들어대는 청년의 손, 한 손에는 초 다른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연신 메시지를 날려대는 여중고생들의 풋풋한 손...

빠올로 비르노는 그의 저서 <다중>에서 '다중의 양가성', 즉 다중이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변용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그것을 예증하듯, 한국 다중의 집단 지성은 '디워빠'들이나 '황빠'들의 비이성적인 국수주의 논리로 표출된바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빠'들의 파시즘적 행동들(사이버상에서만 주로 나타났지만)을 보면서, 나는 인터넷 다중으로서의 네티즌들에게 한없는 절망감을 느꼈었다. 몇몇 이성을 잃지 않은 소수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인터넷 게시판에서 마녀를 불태우라고 외치는 무시무시한 좀비의 합창이 울려퍼졌던 것이다.

그러나 6월 10일의 거대한 촛불집회에 참석하고서야 나는 비로소 비르노가 이론적으로 서술한 긍정적 다중의 진면목이 실제세계에서 어떻게 구체화되는지 체득할 수 있었다. 그들은 발칙하도록 유쾌하고, 유순하지만 결코 쉽게 분쇄되지 않으며, 관료주의에 물든 적의 공세가 무색하도록 극적인 유연함과 순발력을 보여주었다. 위압적인 4중 컨테이너 성벽을 '명박산성'으로 칭하면서, 삽시간에 그 위력 자체를 웃음거리로 만들어 버린 그들의 초월적인 유머를 보라! 진압하는 경찰에게 장미꽃을 선사했다는 전설적인 68혁명의 여유가 40년 후 이토록 진화한 모습으로 이땅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개개인에 비해 영리하기까지하다. 모든 순간에서 '비폭력'이란 구호가 먹힐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촛불집회 참석 바로 전까지만 하더라도 다소의 강력한 저항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이 짧았음을 촛불의 집단 자아는 생생히 보여주었다. 축제하듯 유연한 시위를 즐기는 현재의 응집된 다중은 약간의 폭력성에도 끓는점 이상으로 온도를 올린 물처럼 모두 증발해 버릴 수 있는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으며, 그들은 스스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촛불 다중은 '명박산성'과 청와대로 통하는 모든 골목골목을 틀어 막아버린 '닭장차'들을 비단 빗자루로 쓸 듯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행진했다. 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기발하고 신랄한 풍자적 작품들을 남긴 채...

그럼 다중의 진짜 모습은 무엇인가? PD 수첩을 보이콧해서 잠깐이나마 문닫도록 만든 그들과 조중동 광고주를 압박해서 조중동 폐간을 유도하는 그들의 모습은 놀랍도록 유사하지 않은가? 바로 이것이 우리가 주의해야 할 '양가성'이다. 개개인도 마찬가지지만 다중은 때로 실수도 잘못도 벌인다. 그럼 우리가 다중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을까? 착하다가도 악해지는, 결국 윤리적으로 제로섬일 수밖에 없는 다중이라면... 그러나 나는 어제의 다중이 내일의 다중과 같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비슷한 행동일지라도 그 정당성과 윤리성에서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똑같은 고함이라 하더라도, 그 대상이 누구인지에 따라 그 고함의 정당성은 극적으로 다를 수 있다. 아무 잘못없는 배우자에게 쏟아내는 고함과 큰 비리를 저지른 부패관리를 성토하는 고함은 그 의미가 전혀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조중동 광고주에 대한 압박은 PD 수첩에 대한 보이콧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다중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성인으로 성장해 가고 있다. '디워빠'의 초딩스러운 모습은 여러가지 사회적 변화를 거치면서 '촛불소녀'의 한층 성숙한 모습으로 진화해가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많은 '황빠'들이 6월 10일 서울 심장부에서 촛불을 들지 않았겠는가? 그들을 향해 혀를 끌끌 차다가도 이제는 그들을 칭송하는 것은 그래서 모순이 아니다. '디워빠/디워까', '황빠/황까', 그리고 촛불소녀로 이루어진 이 나라의 다중은 하루에도 수차례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사춘기를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머지않아 번듯하고 정의로운 성년의 모습으로 새로운 차원의 민주주의의 지평을 열게 될 것이다. 이것이 6월 10일의 집회에 참석한 후 가지게 된 확신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