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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 - 문학과 예술로 읽는 서울의 일상
류신 지음 / 민음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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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산다는 것'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탈주

 

『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류신, 민음사, 2014. 1.

 

<응답하라 1994>는 hot하고 cool한 1994년 서울을 현재 시점으로 호명하였고, 케이블 방영이었음에도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서울에 출처를 두지 않고, 이방인으로 서울에 진입한 이들의 시점과 카메라 뷰포인트를 일치시켜 낯선 서울의 일상을 추억에서 현재로 불러오는데 성공했다. 정주민에게 포착되지 않던 사물과 사건은 이방인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시청자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서울과 드라마 상황을 중첩하면서 각각의 서울을 구성했다. 시청자 각자의 체험과 동떨어져 있는 시공간을 재구성한 것에 불과했다면, 그러한 반응을 끌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나 또한 신간 『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읽으면서 서울과의 개인적인 접점을 생각했다. 섬세하지 못했지만, 풍부한 느낌으로 기억되는 시절이었다. 지방 출신인 나의 사소한 어투와 취향이 서울 친구들 사이에서 얘깃거리가 될 만큼 그 시절 나는 서울의 타자였다. 호남선 열차를 타고 처음 가보았던 영등포의 밤과 새벽, 잠실 주공 아파트의 산책로였던 석촌 호수에 롯데월드가 들어서면서 주변의 변화되는 모습이 내가 기억하는 서울 역사의 일부다. 늘어선 쇼 윈도우 속에서 서울은 반짝 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삼설 코엑스 쇼핑몰은 그 자체로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이해할 수 있는 범례였다.

 

『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 저자 류신은 소설가 박태원에 의해 탄생한 ‘구보’와 벤야민의 산책자적 시선을 차용하여 2013년 서울을 산책한다. 객관적인 사실에 의존하기 보다는 저자가 경험한 서울 속에서 여전히 차고 넘치는 자본주의 속성을 섬세하게 호출한다. 구보와 벤야민을 향한 헌정과도 같은 이 책은 다른 시공간 속에서 벤야민, 구보, 류신 세 사람이 함께 산책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동 속도와 시선을 낮추면서 서울은 맨얼굴의 실체를 드러낸다. 도시 거주자에게 보이지 않는 것들이 도시 산책자의 눈에 게스탈트적으로 한꺼번에 속살을 드러낸다.

 

입체적 공간은 삶의 토대이고 결정자이기 때문에, 존재 방식을 읽어내는 확실한 단서를 제공한다. 미신 대신 과학이, 신(神)이 사라진 자리에 물신(物神)이 서울을 주관한다. 경제적 축적과 행복을 동일시하는 21세기 서울에서 소비 욕망은 그 자체로 삶의 목적이다. 소비를 위해서 일하고, 쉬고, 축적한다. 소비를 위해서 개발하고 부수고 교체하다. 소비는 무사무욕적일수록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시스템에 무소불위의 힘을 과시하는 것은 소비 능력이다. 서울은 자본주의 환등으로 넘쳐 난다.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을 감싸고 있는 사물들이다. 함성호의 시 “패션은 육체다”처럼 패션은 사물이 아니라 그 자체로 개인의 자아다. “모든 패션은 살아 있는 육체를 무기체의 세계와 결합시킨다. 무기체의 성적 매력에 빠져드는 행위인 페티시즘은 패션을 위한 실수적 신경계다(발터 벤야민) (117쪽).

 

얼마 전 80년대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인사동 카페에서 주인 언니의 하소연을 들었던 적이 있다. 대학생이었던 손님이 어느덧 중년의 사회인이 되는 세월 동안 느티나무처럼 그 자리를 지켰던 주인 언니는 - 이름만 대면 알만한 - 수많은 문화 예술들의 누나이자 언니였다. 그날 밤도 처음 만난 방송국에서 일하는 한 팀과 내 일행은 오래된 지인처럼 서울의 역사를 논했고, 함께 연주를 들으며 술을 마셨다. 연배를 달리했던 사람들이 모여서 각자가 기억하는 한 시대의 서울을 퍼즐처럼 맞추어갔다. 모든 잠든 시간에 서울의 한 카페는 영화 같은 시간들이 추억의 유적을 만들고 있다. 세월이 지나도 잊지 않고 찾아오는 그들의 사랑이 돈 없는 언니의 소중한 자산이다. 조만간 언니는 삶을 일궈낸 터전인 인사동을 떠나야 할 판이다. 치솟는 땅값도 감당하기 어렵지만, 대기업 따님들이 야금야금 인사동 가게를 하나둘 사들이기 시작한지 오래되어 월세, 전세로 운영하는 가게 주인은 오래 버틸 수 없을 것이라 한다. 자본의 환등 성으로 정신적 자산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 월세를 못 내는 언니를 위해서 많게는 몇 십년, 짧게는 수년의 인연을 가진 손님들이 공연을 준비중이라고 했다. 한때 스무살이었던 학생이 중년의 신사가 되어 카페의 명맥을 잊는 실날 같은 생명을 불어 넣는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인사동 카페를 생각했다. 류신이 걸으며 만난 서울의 문학과 예술 탓이리라. 벤야민의 수집가적 정신이 구보를 거쳐 류신으로 이어진다. 이 책을 쓰는 내내 행복했을 저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읽히는 책이다. 저자의 스타일리쉬한 글쓰기 또한 한몫하는 책이다. 연구자와 대중작가 사이에서 접점을 찾고자 하는 수고로움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소설처럼 읽히는 재미있는 문학 평론(문화 비평)”을 쓰고 싶었다.”는 저자는“창작과 비평을 합체”하는데 일정 정도의 성과를 만들었다. 단순한 소회에 젖지 않기 위해서 문학 작품들을 재인용하는 장치를 사용한다. 문화 비평가로서 둘 사이의 경계에서 시도하는 글쓰기 방식이다. 곽재구, 김소연, 남진우, 무라카미 하루키, 김영하, 심보선, 함민복, 파묵, 배수아 등 이름을 열거하기도 벅찬 수많은 작품들이 류신에 의해서 재해석된다. 문학 작품은 서울을 해석하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지만, 서울을 통해서 의미 있는 비평작업의 주체이기도 하다. 류신의 해석은 우리에게 동일하게 읽히지 않는다. 각자의 눈을 통해서 간주관성을 획득한다. 의미는 작자의 경험에서 접점을 찾아간다.

 

내게는 “하루 걸어서 하루를 산다.”는 걷기의 달인 이모, 이모부가 있다. “속된 도시” 서울을 탈주할 수 없는 벗들이 너무도 많다. 거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다른 해법을 찾아볼 수 있는 작은 저항을 류신에게서 발견한다. 이 책 하나로 우리는 서로 다른 시간에 함께 걷는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자본주의 물신 지배의 서울 비판만을 위해서 이 책을 쓰지 않았다. 21세기 서울이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탐색에 목적을 둔다. 사랑의 가치는 성패로 결정되지 않는다. 사랑이 없다면 이 도시는 삭막할 것이다.(258쪽) 사랑으로 은유된 이 가치를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지는 우리 각자의 몫일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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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틸다 2014-03-06 1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삼설 코렉스 쇼핑몰은 삼성 코엑스의 오타인가요?

더불어숲 2014-03-06 16: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타입니다.ㅠㅠ; 꼼꼼히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정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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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순례 - 옛 그림과 글씨를 보는 눈 유홍준의 미를 보는 눈 2
유홍준 지음 / 눌와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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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삶에 더 가까이 다가가서 작품과 만나다.

『명작순례 - 옛 그림과 글씨를 보는 눈』유홍준 지음, 눌와, 2013. 11.

 


 

십대 시절, 용돈의 십 할을 책 구입에 사용했다. 밥벌이를 시작한 이후에도 책을 사서 모으는 일은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한권의 책을 다시 읽을 여유 없이 새 책이 쌓여갔다. 책을 살 때는 분명 다시 이 책을 펼쳐들 날이 여러 번 있으리라는 기대했지만, 언제나 눈은 신간에 꽂혔다. 책을 끌어 모으는 것은 지적 허영의 한 측면이기도 했지만, 작가의 지적 생산에 대한 독자로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단돈 만원에 일기장을 공개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다보면 책값이란 세속적인 계산에 의해서 합리적일 뿐, 그 가치는 누구도 매길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물론 ‘책’이라는 물화(物化)된 지성에 대한 경도되었던 한 시절의 소회다.

 

책에 대한 사랑이 유난했던 그 시절 ‘유홍준’ 선생님은 인기 없던 우리의 관공서 ‘문화재’를 예술의 영역으로 가져와 친근한 해설을 곁들여 주면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학술적인 저술을 대중을 위한 글쓰기로 형식을 바뀌면서 천상(!!)의 미학에 머물던 한국의 미술품이 지상에 발을 디뎠고 답사여행이 순식간에 파급되었다. 나 또한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를 끼고 남도를 여행하는 학생 중 한명이었다. 정약용의 유배지를 서성였고, 해남, 강진 남도 답사 일번지에서 나와 비슷한 여행자들을 여럿 만나기도 하면서 선생님의 글쓰기 속도를 터덕거리며 따라갔다. 점점 발이 움직이지 않고, 눈으로 읽고 보는 것으로 끝이 났지만, 선생님의 저서를 읽다 보면 생각이 멈추고 망연해지는 순간만큼은 여전하다.

 

유홍준 선생님은 작품과 나 사이의 거대한 창문이다. 유일하게 언어의 힘에 기대어 세상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나와 같은 고전 작품 문외한들에게 유홍준 선생님은 (하나의 인격이 아니라)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망원경이자 현미경이다. 이번 저서에게 선생님은 - 작품의 기본 정보를 제공하여 -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지만, 이미 작품 선택 자체가 개입인지라,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섣불리 판단하기는 어렵다. 늘 그의 작품 보는 법을 모방하였듯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의 작품 보는 안목에 기대어 감상할 수밖에 없다.

 

그가 취사선택한 옛 그림과 글씨 49점, 그에 곁들여지는 100여점의 도판은 사람과 작품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명작순례』는 작품보다 작가의 삶에 더 가까이 위치하기 때문에 작가의 삶과 작품을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풍죽도>를 통해서 대나무처럼 꼿꼿한 자신을 표현한 것 같은 탄은 이정의, “능숙한 필치와 간일한 묘사로 재료상의 제약을 모두 극복(68쪽)”한 겸재 정선, 함께 어울릴 벗이 없이 고독했기 때문에 그림이 관념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현재 심사정, 그중에서도 능호관 이인상이 <수하한담도>에 그림을 그린 연유를 써 넣은 것에서 작품 너머의 것을 이해하게 된다. “내 친구 임매는 내 그림을 애써 받고도 그의 너그러운 성품 때문에 다른 이가 가져가도 상관하지 않아 내 그림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이번에는 남이 그림을 가져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임매가 내 소심함을 비웃을 것을 무릅쓰고 이를 (임매에게 주는 그림이라고) 쓴다.(79쪽)” 진심을 전하면서 유머를 잃지 않는 능호관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표암 강세황이 자화상에 쓴 찬문의 유머 감각은 요즘 대세인 드라마 <별에서 온 남자>의 천송이에 버금간다. “가슴에는 만 권의 책을 간직하였고 / 필력은 오악(五嶽)을 흔들만하지만 / 세상 사람들이야 어찌 알리오, 나 혼자 즐기는 것임을”이라는 글 속에서 유머가 차고 넘쳤을 강세황이 현현하는 느낌이다. 그런 성품을 지녔기에 제자 단원과의 망년지우(忘年之友)가 가능했을 것이다. “내가 단원과 사귄 것은 전후하여 모두 세 번 변하였다. 처음에는 단원이 어려서 내 문하에 다닐 때 그의 재능을 칭찬하기도 했고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치지도 했다. 중간에는 관청에 같이 있으면서 아침저녁으로 함께 거쳐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예술계에 있으면서 지기(知己)다운 느낌을 가졌다.(101쪽)”고 한다.

 

모든 작품의 사연도 각별하고 훌륭하지만, 평소 좋아했던 화가에 더 오래 머물고 집중했다. 이때부터는 저자를 벗어난 읽는 자들 각자의 독법이 가능해진다. 아는 만큼 보이니 어쩔 수 없다. 대책 없이 돌출한 <취화선>의 오원 장승업이 매력적이고, 고국과 고향을 떠나 실향민의 심정으로 점을 찍는 김환기의 삶에서는 목울대가 뻐근해져서 한참을 창밖만 바라보기를 여러 번 했다. 예술의 용법과 용도는 다양하지만, 예술은 유한한 삶속에서 무한한 꿈을 꾸는 자들의 사유에 물질성이 부여된 것이기도 하다. 김환기의 삶과 작품이 그러하다. 오래전 내가 가르쳤던 제자의 이름이 ‘김환기’였다. 화가였던 그 아이의 아버지가 자식에게 준 이름이었는데,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화가의 이름을 자식에게 붙여준 (뵌 적도 없는) 아버지의 마음이 충분히 느껴져서 그 아이 이름을 부를 때는 남다른 감흥에 젖기도 했다. 모더니스트 김환기의 우수에 찬 작품이 선연하다. 다산 정약용의 삶에 대해서도 새삼 다시 곱씹어 생각한다. “다산에게 유배란 강요된 안식년”이라는 의견에 대한 유홍준 선생님의 재해석에서는 말문이 막혔다. “그의 18년 귀양살이에는 비록 ‘강요된’이라는 단서를 붙인다 해도 감히 ‘안식년’이라는 단어를 쓸 수 없다.(237쪽)”는 말씀에서 어떤 표현은 누군가를 향한 폭력이라는 생각에 한참 머물러야 했다.

 

“세상엔 한석봉을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아는 사람도 없고, 추사를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추사를 아는 사람도 없다.(221쪽)” 여전히 우리는 아는 만큼 볼 것이며 사랑할 것이다. 남과 다르게 보고 해석하며 관계 맺을 것이다. 앞서 깨달은 분들에 기대어 앎을 확장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낮은 지평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드라마 <별에서 온 남자>의 도민수처럼 오백년을 사는 외계인이 아니고, 영화 <어바웃 타임>처럼 타임슬립할 수 없다면, 우리가 온전히 기댈 곳은 책을 통한 시간 여행이다.

 

다음 주에 이사를 해야 하는 내가 포기한 물건은 결국 책이다. 서재를 지금 사는 집에 그대로 두고 가기로 결정하면서 생각해낸 아이디어가 책꽂이를 잘 찍어서 새집 벽에 걸어야겠다는 것이다. 서가 사진이라도 있어야만 위안이 될 것 같았다. 여가가 없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그림 ‘책가도’를 보면서 옛사람들도 나와 같았다는 생각에 웃음이 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나 보다. “정조는 화공에게 명하여 책가도를 그리게 하여 자리 뒤에 붙여두시고 업무가 복잡하여 여가가 없을 때는 이 그림을 보며 마음을 책과 노닐게 했다.(266쪽)”고 한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책’을 사랑한다. 나쁜 책도 도움이 되었다는 막심 고리끼처럼 한시절은 호불호를 가리지 않고 책을 읽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작순례』를 읽으면서 일상이 고고해지는 느낌이다. 예술작품을 보고 읽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이번 생의 시간 여행은 이것으로 대신해야한다. 내 삶을 예술로 가꾸는 과정에 대해서 다시 생각한다. 세네카, 푸코처럼 주체의 윤리로 자신의 삶을 예술로 만들어야 한다. 영화 <어바웃 타임(About Time)>(2013)은 시간이 되돌릴 수 있는 부자(父子)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는다. 타임 슬립 없이도 충분한 행복을 누렸을 것 같은 현명한 아버지에게 아들이 묻는다. “그 능력으로 얻는 남보다 많은 시간 동안 아버지는 무엇을 했느냐?”고. 영문학 교수인 아버지는 남들이 세익스피어를 한번 읽을 때 나는 여러 번 읽을 수 있었다는 것으로 답한다. 재산을 탐하지도 않았고, 세상의 이치를 깨트리지도 않으면서 시간이 줄 수 있는 최고를 누렸던 것이다.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2075

 

고교 동창 P는 “음악을 귀에 걸고 사는” 아이였다.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놓치지 않으면서 최상위 성적을 유지했고, 우여곡절 끝에 S대학교에 입학했다. 대기업 직원이 된 그 아이가 여자 친구에게 했던 말, “한 달의 휴가가 주어진다면 영화 보고, 책 읽고, 음악 듣고, 여행하고 싶다.”였다. 언제든지 누릴 수 있는 자의 - 투정처럼 느껴졌다. 그 친구 지금 뇌졸중으로 쓰러져 뇌수술을 세 번 받고 투병중이다. 새털 같은 많은 날들이 있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엔 참 많다. 오늘의 행복은 오늘의 몫이다. 그 친구가 꿈꾸었던 시간을 이번 생에서 반드시, 여러 번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한다. 충분히 누릴 자격이 있는 아이니까, 체리 향기 같은 시간이 그에게 허락될 것을 믿는다. 나 또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소중한 것을 놓치지 않기 바라는 마음으로 『명작순례』를 다시 펼쳐 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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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나무 아래
아이미 지음, 이원주 옮김 / 포레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아이 엠 러브>(I Am Love, 2009) 감독 : 루카 구아다니노, 주연 : 틸타 스윈튼

<산사나무 아래>(Hawthorne Tree Forever, 2010) 감독: 장이모우(張藝謀)

 

 

“나는 사랑이다, 나는 오로지 사랑으로 존재한다.”

- 순수한 사랑<산사나무 아래> VS 욕망하는 사랑 <아이 엠 러브>

 

햇빛이 창호지를 투과해 방안 깊숙이 들어오는 가을 오후, 빛을 따라 먼지가 춤을 추는 시간은 익숙한 사물이 다른 기호로 말을 건다. 손때 묻은 가구와 책장의 책들은 마치 벽에 걸린 정물화처럼 차원이 달라진다. 그때 느껴지는 시적(詩的) 슬픔, 그와 유사한 느낌을 담아낸 영화들이 있다. 영화는 사랑을 무한 변주하며 단조로운 일상을 낯선 에너지로 가득 채운다.

 

영원한 노스텔지어, 순수의 사랑 <산사나무 아래>

 

<산사나무 아래>는 항일전쟁에서 학살당한 선열의 붉은 피 때문에 흰꽃이 붉게 핀다는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장이모우 감독은 혁명정신을 촉구하는 문화혁명 당시를 배경으로 거대담론에 묻혀 있는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섬세하게 복원했다. 시대의 아픔을 상징하는 산사나무를 매개로 한 순수한 사랑은 한편의 동화와 같다. 다정하고 친절한 이 영화는 관객의 마음에 애잔함을 꽃피운다. 혁명의 의지가 붉은 꽃 전설의 기원이라면, 남녀의 지고지순한 사랑은 다시 인간 본연의 심성으로 돌아가서 흰꽃을 피운다. 사회적 제약 안에서 이별을 알고 가는 사랑은 헌신적일 수밖에 없다. 장이모우는 문화혁명을 밑그림으로 사용하면서도 정치적 논쟁을 비켜감으로써 온전히 사랑, 그 자체에 집중한다. 문화대혁명, 계급, 농촌, 빈부 갈등이 배경이지만, 영화는 느린 속도로 조용히 제 길만을 향하여 간다.

 

실화에 토대를 둔 <산사나무 아래>는 실제 인물인 여주인공 징치우가 썼던 회고록에서 이야기를 가져왔다. 장치우의 친구 아미(艾米)의 원작소설을 영상화한 작품이다. 문화대혁명 기, 교재편찬을 위해 항일 운동의 역사를 간직한 시골 마을로 내려간 징치우는 그곳에서 지질탐사대원 라오산을 만난다. 라오산은 당 간부의 아들이지만, 징치우는 사상이 더 무장되어야 할 학생 신분으로 자신의 당성(黨性)을 보여주어야 할 과업을 안고 살아간다. 징치우의 집은 아버지가 정치적인 이유로 투옥되고, 가세가 몰락한 상황이다. 하지만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라오산의 사랑은 책임감으로 괴로워하는 징치우의 마음을 천천히 열어간다. 그들의 사랑은 세월의 무게나 변화된 환경 속에서도 굳건하게 본연의 모습을 지켜나간다. 그 '순수함'은 남성 감독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섬세하고 정감 어린 연출을 통해 표현되고 있다.

 

이야기는 만남, 사랑 그리고 이별로 이어지는 단순한 플롯이다. 이 단조로운 이야기를 안받침하고 있는 토대는 ‘진정성’이다. 주동우(징치우 역), 두효(라오산 역) 두 신인 배우가 엮어내는 담백하고 자연스런 연기를 통해서 진정성을 형상화한다. 그간 장이모우 감독의 영화가 주윤발, 유덕화, 장쯔이, 공리 등 이름난 스타들과 함께 빛이 났다면, 이 영화는 신예를 기용하여 순수함을 부각시킨다. 장이모우 감독은 초기에 <산사나무 아래>와 같이 역사 주변부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드라마를 많이 다루기도 했다. 다시 보통 사람의 일상에 현미경을 들이댔다는 점에서 장이모우 감독에게 이 영화는 십년만의 귀향과도 같다. 헌신적이고 순수한 사랑 이야기는 <책상서랍 속의 동화>, <집으로 가는 길> 등과 같은 초기작을 돌아보게 한다. 대작에서 소박한 사랑 이야기로 돌아온 장이모우 감독의 행보는, 감독으로서의 자기 자신 역시 초창기의 순수한 작가정신을 잃지 않았음을 항변하는 듯하다.

 

온전히 순수한 사랑에 집중한다는 점은 이 영화의 치명적인 단점이기도 하다. 지나치게 단조로운 스토리는 제작 당시부터 감독의 염려를 낳았던 부분이기도 하다. 때문에 진부한 사랑 이야기로 읽혀질 수도 있고, 지나치게 상투적인 표현이 거슬리기도 한다. 그러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시대적 배경의 아픔이 더해진 순수한 남녀의 사랑은 과장 없는 연출로 빛이 난다.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연출뿐 아니라 제작을 맡은 장이모우 감독의 자신감으로 재탄생했다. 장이모우는 <영웅>, <연인> 등 스케일이 큰 영화로 거장의 반열에 올랐고, 정형화된 리얼리즘에 충실했던 중국 5세대 감독이기도 하다. 블록버스터에서 베이징 올림픽 공연까지 스펙터클한 연출로 정평이 나 있는 장이모우 감독은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이 작품으로 다시 한번 잔잔하면서도 소박한 연출력을 보여주었다.

 

존재를 뒤흔드는 욕망하는 사랑, <아이 엠 러브>

 

밀라노를 배경으로 한 <아이 엠 러브>는 이탈리아의 명문 레키가(家)의 일원인 엠마가 가식의 굴레를 벗어나서, 자신의 욕망과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일상에 균열을 일으키는 두 가지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엠마는 외적으로 재력가 시부모, 명망 있는 남편, 잘 성장해준 자녀를 둔 성공적인 삶을 살아간다. 이 평온한 일상의 파국은 아들의 친구, 안토니오와의 급격한 사랑과 딸의 레즈비언 선언으로 시작한다. 엠마는 안토니오가 요리한 음식을 먹고 그에게 완전히 마음을 빼앗기고, 딸의 레즈비언이라는 고백을 통해서 자신의 욕망과 사랑을 성찰한다.

 

<아이 엠 러브>는 한 여성의 선택을 통해서 여성의 자유와 상류층의 몰락을 한꺼번에 폭로한다. 남편과 안토니오 모두 그녀에게 문제적 상황에 직면하게 만든다는 측면에서 완벽한 타자이다. 남편은 떠나는 엠마에게 “넌 존재하지도 않았어.”라고 말한다. 그 말은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남편과 엠마 사이에는 ‘사랑'이 부재하였고, 엠마는 오직 사랑으로 존재할 수 있음을 드러낸다. 이러한 외적 스토리 내부에서 자본주의 상류층의 붕괴를 포착한다. 외적 삶과 내부 갈등을 중첩함으로써, 두 공간이 비틀려 균열하는 과정을 탁월하게 영상화한다. 가면을 쓴 얼굴로 피상적인 관계를 이어가는 재벌들의 파티에서 엠마는 - 같은 공간에 있어도 - 항상 고립되어 있다.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하고 있지만, 귀족의 몸에 밴 습성은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고 있어서 늘 엄숙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식사 시간조차 팽팽한 긴장이 이어져 누구도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지 못한다.

 

감각적이고 퇴폐적인 이야기는 감독의 연출력과 배우의 연기를 통해서 고전적이고 우아한 예술로 창조되었다. 진부하고 도식적인 서사를 끌어안고 가면서도, 다양한 영화적 방식을 동원하여 강렬하고 뜨거운 에너지를 생산한다. 영화가 제 7의 종합영화임을 확인시켜주는 <아이 엠 러브>는 관객이 오감을 느낄 수 있도록 모든 영화 장치를 활용한다. 엠마의 일상에 균열이 생기면서 극단으로 치솟을 때, 음악과 미장센이 전환을 일으키며 드라마틱한 반전을 이룬다. 또한 시청각을 공감각적으로 교차 편집하여 자연스럽게 감각의 전이가 일어난다. 안토니오니가 만들었던 요리는 시각에서 출발하여 미각을 자극하고, 미각은 다시 청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공간을 활용한 감정의 영상화 또한 탁월하다. 엠마와 남편의 정사는 어둠 속에서 이루어진다면, 내연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안토니오와의 정사는 창문이 활짝 열려 빛이 들어오는 공간에서 시작되어, 외부 공간인 숲에서 절정을 이룬다. 아직 잔설이 쌓인 밀라노의 거리에서 시작하는 영화는 닫힌 창문을 비춤으로써, 엠마의 내면 상태를 포착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엠마가 사랑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문들은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다가 결국 활짝 열리는 현관으로 빛이 쏟아진다. 또한 남편과 함께 살아가는 레키가(家)의 닫힌 문과 안토니오의 오두막집의 열린 문들은 엠마의 심적 상태를 그대로 반영한다. 두 공간의 대비는 물리적으로만 존재할 뿐 철저한 부재인 엠마의 상태를 잘 보여준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그녀는 평탄한 저지대의 대저택에 살고 있고, 안토니오는 좁고 굽은 길을 한참 올라가야 하는 고지대에 살고 있다. 엠마의 감정은 그대로 공간적 높낮이로 드러난다. 인물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대신 활용한 부감 샷은 더 많은 감정을 이끌어내는데 성공적이다.

 

진부한 캐릭터일 수 있는 엠마에게 활력을 불어넣은 것은 배우 틸타 스윈튼이다. <아이 앰 러브>는 틸다 스윈튼의 영화라고 해도 무방하다. 감정을 그대로 실어 나르는 드라마틱한 얼굴의 표상을 완벽하게 완성한다. 그녀는 이지적인 상류여성의 모습과 사랑으로 불타는 관능미까지 상반된 모습을 동시에 소화했다.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러시아인으로 이태리어를 써야하는 엠마 역이 영국 출신 틸타 스윈튼에게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더불어 존 아담스가 담당한 음악 또한 놓치면 안된다. 엠마가 처음 안토니오가 요리한 음식을 먹는 장면, 엠마가 집을 뛰쳐나가는 장면에서 음악은 그 자체로 엠마와 동일시된다. <아이 엠 러브>는 음악이고, 공간이며, 사랑이다.

 

순수와 욕망의 대척점에 있는 이 두 편의 영화는 사랑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껴안는다. 도처에 널려 있으나, 쉽게 발견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하여 성찰하게 한다. 안개 속을 유영하는 듯한 낮은 톤의 색감과 음악으로 가득한 <산사나무 아래>는 희미한 첫사랑의 기억과 접속하게 한다. 과거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미덕인 그리움과 만날 수 있는 한편의 서정시와 같은 영화다. 반면 아들의 친구와 사랑에 빠진 엠마의 극단적인 사랑은 관계에 균열을 일으키고 씻을 수 없는 상처로 일상의 평화를 파괴한다. 상류사회 일원으로 소비되는 사물에서 주체적 결단을 내리는 엠마는 불안하게 흔들리지만 넘실대는 생(生)의 의지로 불탄다. 색깔 다른 두 편의 영화는 우리 내면의 채워진 잠금 쇠를 열고, 순수와 욕망의 사랑을 들여다보게 하는 단초를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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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 향기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 호마윤 에르사디 외 출연 / 스타맥스 / 2002년 9월
평점 :
품절


‘바디’라는 이름의 한 남자가 있다. 생애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 군대였다는 이 남자의 시선은 황량한 거리에서 누군가를 찾는다. 그는 자신의 사후(死後)를 마무리해줄 ‘인간적인 만남’을 위해서 길을 나섰다. 부탁을 들어줄 법도 한 앳된 얼굴의 군인,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을 것 같은 젊은 신학도는 죽음의 언급을 단호하게 외면한다. 그는 일몰까지 자신을 도와 줄 적임자를 물색하며 흙, 돌, 먼지로 뒤덮인 사막 이곳저곳을 누비며 돌아다닌다.

 

다행히 마지막에 만난 단 한사람, 자연사 박물관의 박제사로 일하는 노인만이 그의 제안을 수락한다. 때를 맞추어 당도한 신(神)의 메신저와 같은 노인은 한때 자살의 문턱을 넘을 뻔 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노인은 에돌아가는 길을 선택하여 바디와 긴 이야기를 나눈다. 신(神)과의 대화는 영성을 넘어 인간을 통하여 드러난다. 노인의 이야기는 세상을 주관하는 절대자가 삶에 지친 인간에게 건내는 나지막한 말씀처럼 공명한다. 그의 이야기 속에 펼쳐지는 삶의 작은 기쁨들은 사소하지만 포기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밤이 오자 바디는 수면제를 먹고 자신이 파놓은 구덩이 안에 눕는다. 조금은 긴장된 그의 얼굴 위로 푸른 달빛이 비추더니, 어느새 폭우가 쏟아진다. 어둠 사이 번갯불이 바디의 얼굴을 드러낸다.

 

페르시아 문화의 소산인 <체리향기>는 유럽 작가주의 영화와 마찬가지로 플롯을 파괴한다. 짜여진 플롯에 따르다 보면 현실세계나 인간 내면을 표현하는데 제약을 받기 때문에, 문제의 발생에서 해결로 이어지는 네러티브를 단호히 거부한다. 감독은 막대한 자본을 투입한 화려한 세트, 각종 특수 효과, 컴퓨터 그래픽 사용을 일체 배제하고, 삶에 내재한 본질을 능숙하게 꺼내 놓는다. 카메라는 시종일관 철저하게 관객의 눈높이에 맞추어져 있다. 자동차에 고정된 두 대의 카메라로 사물과 풍경을 응시하는 이 영화의 프레임 구성은 대부분 클로즈업된 바디의 얼굴과 주변에 퍼지는 먼지가 다일뿐이다.

 

영화 종반부에서는 암전을 이용하여 프레임의 서사를 모두 허구로 만들어버린다. 사실과 허구의 경계선에서 영화 작업을 하고 있는 감독의 메타적 접근이다. 또한 카메라가 고정된 롱 테이크 촬영은 지루한 현실을 고스란히 영상에 담아 놓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키아로스타미는 촬영 내내 랜드로버의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영화가 무엇보다도 현실적이기를 바랬고, 바디가 보는 그대로를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바디의 자살하려는 의도를 끝까지 드러나지 않음으로써, 관객은 바디가 되어 스스로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할 기회를 제공받는다. 그런 면에서 <체리향기>는 관객이 채워야 할 여백이 많은 영화다. 이것이 키아로스타미식 영화적 화법의 특징으로 해답과 결론을 드러내는 것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감독이 해야 할 일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일 뿐”이라고 언급하였듯이 관객이 각자의 답을 찾아서 헤매기를 원한다. 그는 프랑스와 트뤼포의 말을 인용해 “관객에게 메시지를 주고 싶으면 차라리 우체국에 가서 전보를 쳐라”고 주장하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상상을 북돋워주는 것으로 만족하다고 역설한다.

 

<체리향기>는 1994년 <올리브 나무 사이로> 이후 3년여의 공백기 만에 발표한 작품이며, 키아로스타미가 직접 제작까지 맡은 첫 영화이다. 이 영화는 이란 정부의 출국금지 조치 상태였다가 97년 깐느 영화제 폐막 삼일 전에야 출품되어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무엇을 만들어낸다.”는 서구 평론가들의 말처럼, 서정이 불가능할 것 같은 지역에서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허물어버리는 시네마 베리떼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는 여전히 새로운 경지에서 ‘마음의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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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이사 갈 때마다 가장 고역스러운 짐이 책이다.

버리고 버려도 줄지 않고 쌓여가는 서가를 보면서 이번에 또 어떻게 이삿짐을 싸야할지 고민이다.

모든 아날로그적 취향을 포기해도 책의 물성에 대한 집착은 버리지 못할 것 같다.

지적 허영의 표상이라 할지라도 풀 먹여 다린 듯 정갈한 책장을 넘길 때의 짜릿함을 포기할 수 없다.

하루 종일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축복받은 1월이다.

다음날 아침을 두려워하지 않고 늦은 밤까지 책장을 넘기면서... 행.복.하.다.

이래서 버트란트 러셀은 게으름을 찬양했나?

행복은 삶의 과정에서 가끔 만나는 순간의 축복.

신간을 살피면서 또 다시 책과 연애한다.

 

 

 

 

 

 

 

 

 

 

 

 

 

 

 

 

 

 

 

 

 

 

 

 

 

 

 

 

 

『시인을 체포하라- 14인 사건을 통해 보는 18세기 파리의 의사소통망』로버트 단턴 지음, 김지혜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3. 12.

현재가 침묵을 요구할 때, 역사는 현실을 읽는 나침반이 되어 준다. 이 책은 - 프랑스 혁명 직전이었던 - 18세기 중엽, 14인 체포 사건을 문화사가 로버트 단턴이 연구한 결과물이다. 당시 “시인을 체포하라”는 왕명이 내려지자, 경찰의 14명을 추출하여 바스티유 감옥에 감금한다. 시를 추적하는 일에 공권력을 동원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그 시대의 의사 소통망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보는 단초를 제공한다.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절반 넘는 시대의 소통방식을 알아볼 수 있는 책이 될 것이다.

 

『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 문학과 예술로 읽는 서울의 일상』류신 지음, 민음사, 2013. 12.

‘수유 너머’에서 권용선 선생님의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해석 강론에 참여한 기억이 새롭다. 모자이크식 글쓰기, 일상을 낯설게 바라보며 산책하는 벤야민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여행을 다녀와 바라보는 서울이 낯설다. 정권과 패러다임이 바뀌자 풍경이 낯설어진다. 거대한 이야기 속에 숨겨진 사소한 이미지들이 망각되고 있다. 시야 밖에 있는 사람들의 생활사 속에서 우리는 새롭게 변주되는 풍부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서울을 벤야민 식으로 읽어내는 류신 교수의 생각이 궁금하다. 언젠가 2013년 서울에 응답을 요청할 우리에게 ‘미리 온’ 책이 아닐까?

 

『지구를 구하는 창조의 현장에서- 세계 환경운동의 구루 레스터 브라운 자서전』레스터 브라운 지음, 이종욱 옮김, 도요새, 2013. 12.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이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시간을 확장하는 것이다. 한 세대의 생명을 벗어나고 우주적으로 공간을 확장하여 문제를 바라보면 좌우 경계 없는 공통의 화두를 만나게 될 것이다. 『지구를 구하는 창조의 현장에서』는 근면한 삶을 살았던 세계 환경 운동의 구루 레스터 브라운의 자전적인 삶을 바라볼 수 있는 책이다. 앎과 삶을 일치하는 온전한 삶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파트리시아 카스, 내 목소리의 그늘- 샹송의 디바, 파트리시아 카스의 자전적 에세이』파트리시아 카스 지음, 백선희 옮김, 뮤진트리, 2013. 12.

샹송을 취향으로 즐기지 않은 사람도 파트리시아 카스을 알고 그녀의 노래를 흘려 듣는다. 파트리시아 카스는 대중적이면서도 살아있는 전설의 디바다. 이 책은 “에디트 피아프의 탁월한 계승자”인 그녀가 자신의 육성으로 이야기하는 듯 자신의 삶을 기술한 에세이다. 예술이 예술가의 삶을 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 유용한 책이다. 고뇌하는 예술가의 떨림 가득한 삶을 들여다보고 나면 관능과 매혹을 동반한 그녀의 노래가 친근하게 다가올 것이다.

 

『다이어트의 배신- 왜 뚱뚱한 사람이 더 오래 사는가』아힘 페터스 지음, 이덕임 옮김, 에코리브르, 2013. 12.

이 책은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다이어트 담론에 대항한다. 다이어트는 한번 시작하면 영원히 해야 하는 정신적 압박을 가져온다. 지속적인 스트레스와 불안이 비만을 만들고, 다이어트는 또 다른 스트레스로 정신과 몸을 망가지게 한다. 비만을 질병으로 바라보기 전에 메타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비만을 대하는 사회적 시선과 방식에 대해서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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