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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의 도시 -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점령운동까지
데이비드 하비 지음, 한상연 옮김 / 에이도스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사회 구조와 실천의 결합으로 이념을 구현하는 사회적 공간으로서의 도시

 

반란의 도시 -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점령운동까지, 데이비드 하비 지음, 한상연 옮김, 에이도스, 2014. 3.

 

정기용 건축 작품집 - 1986년부터 2010년까지, 정기용 지음, 현실문화, 2011. 7.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640229

 

 

 

정기용 선생님의 건축 작품집을 다시 읽는다. 그것은 건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삶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섬세한 안내서다. 곳곳에 선생님의 삶의 미학에 심취한다. 다큐 ,말하는 건축>에서 선생님의 건축적 사유에 공감하면서, 그의 철학이 담긴 풍부한 도면과 사진을 다시 본다. 주변과의 조화 속에서 튀지 않고, 사연을 만들어가는 건축물을 구현해 나가는 그의 모습이 여전히 눈에 선하다.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 흔적과 상상, 건축가 오기사의 서울 이야기, 오영욱 지음, 페이퍼스토리, 2012. 5.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583480

 

 

 

 

다시 오기사의 서울 이야기를 읽고 본다. 그것은 건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과거의 흔적에서 상상을 길어 올리고, 추억을 사랑하는 한 청춘의 이야기다. 발터 벤야민식의 관찰하는 시선은 이전의 건축과 다른 메시지를 전달한다. 공간은 시간의 흔적에 관한 모자이크다. 엔틱이라는 미명 아래 새것도 낡은 것으로 탈바꿈하여 상품화는 것에 대한 그의 이야기라든가, 서태지가 소유한 건물에서 건축주의 미학이 살아나지 않는 점에 대한 생각에 공감하며 잔잔하게 펼쳐볼 수 있다.

 

반란의 도시를 펼치며...

 

나이를 먹나 보다. 사람과 사람의 경계, 공간 지리학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싹튼다. 물리적 공간은 사람의 의식을 지배한다. 앞만 보고 달리는 청춘의 시절에는 시간이 삶의 지표였다. 시간의 효율성으로 삶은 의미를 갖는 것처럼 보였다. 풍요와 비옥함의 생성이 시간으로 이루어진다면, 공간은 고정되어 있는 정지된 영역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제 시간이 중첩되고, 추억이 켜켜이 쌓여서 한 개인의 삶을 지배하는 공간에 오랫동안 천착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리적 공간이 사회적 공간으로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물리적 공간을 가득 채운 시간의 궤적이 보이기 시작한다.

 

건축 관련 서적 사이에서 읽기 시작한 신간 도서 데이비드 하비의 반란의 도시는 자본이 지배하면서 도시 주변부로 밀려난 99%도시에 대한 권리를 이야기한다. 앞서 언급한 두 책이 연성(軟性)이라면, 반란의 도시는 경성(硬性)으로 도시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반란을 다루고 있다. 하비가 차용하여 사용하는도시에 대한 권리는 생태주의자 르페브르가 구상한 개념이다. 그는 도시가 자본주의 발전에 따른 계급적 예속과 대립을 심화시키는 착취와 지배의 중심이자, 동시에 구성원에게 진정한 공통 이익을 고취시키고 변혁을 창출하는 장소로서 양면성을 지닌다고 하였다. 도시는 단순히 행위자들이 거주하는 물리적 공간이면서, 동시에 사회 구조와 실천 행위의 결합이 역사적으로 축적되어 특정한 사회 질서와 이념을 구현하는 사회적 공간이다(이성민, 2013, 한국교원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 장세룡(2006)의 글 재인용).

 

 

도시가 누구의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자본으로 흡수된 도시에 대한 권리를 되찾기 위한 투쟁으로 이어진다. (이질성의 차이의 공간인) ‘헤테로토피아(자본이 만들어내는 합리화의 공간인) ‘이소토피사이에서 만들어지는 변증법적 공간 창출이 도시의 권리를 되찾는 최선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성장 우선의 신자유주의는 도시를 하나의 상품으로 소비한다. 엘리트가 추구하는 입장이 보편성을 획득하여 도시 정책을 정당화한다. 쇼핑몰, 멀티플렉스, 대형매장, 패스트푸드점, 수제품 시장, 부티크 문화(43)가 도시를 가득 채운다. 지대 수익을 최대화하기 위해서 저소득층과 증간소득 세대는 도시 중심부에서 내몰렸고, 이로 이해 계급 격차는 더욱 벌어졌으며, 아무 특권도 누리지 못하는 주민의 복리에 악영향을 미쳤다(66). 급속한 도시화를 이끈 추동력은 자본이었다.

 

재력이 풍부하고 신용이 높은 사람이 부동산을 매수하고 나면 그 다음으로는 그보다 소득이 낮고 위험이 높은 계층이 부동산을 매수하고, 맨 마지막으로 수입과 자산이 없는 계층도 부동산 매수에 뛰어든다. 이들은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는 한 부동산 전매를 통해 이득을 올릴 수 있다. 이런 일은 버블이 터질 때까지 계속된다. 금융기관은 수수료 수입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버블을 최대한 오래 유지해야 하는 강력한 유인이 되는 셈이다(94).

 

저자 데이비드 하비는 자본이 다양한 방식으로 도시화과정을 재생산하는 과정을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논증 자료로 활용한다. 미국 뿐 아니라, 유럽, 중국 등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에게 삼성 공화국이 낯설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본가 계급은 국가기구는 뿐 아니라 일반 주민을 지배한다. 이런 지배 수준에 도달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도시 그 자체를 만들어내는 도시 형성 과정은 정치투쟁, 사회투쟁, 계급투쟁이 일어나는 주요한 장소다(122).

 

도시에 대한 권리를 되찾기 위한 산발적인 대항 운동이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도시 공간은 정치 활동과 저항의 중요한 장소로 기능한다(205). 투쟁의 방식으로 머레이 북친이 주장하는 연합주의와 엘리너 오스트롬이 내세우는 다극적 거버넌스는 수용할 만하다. 국가를 대신하는 지자체 회의의 연합 네트워크는 지자체가 공개적 회의의 장에서 시민기구가 되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방식이다. 단 하비가 진단한 것처럼 이 또한 - 하트와 네그리가 주장한 공동체처럼 국가 시스템으로 기능하는 한계를 갖는다. “공동체에 가입하지 않은 개인에게 가해질 억압(256)”을 경시하기 때문이다.

 

보수든 진보든 다양한 이유로 자신들만의 공유재화를 실천하고 있지만,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 우리만의 리그라는 점에서 별반 다르지 않다. 문화인들의 마을, 정치적 공동 행동을 추구하는 코뮌에 가서 느끼는 점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외부 세계와 이질적인 사람들에 대한 배척일 때가 더러 있었다. 지난 30년간 신자유주의의 긴축정책으로 줄어든 공공재를 확대하기 위한 투쟁이 요구된다.

 

도시의 공기는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현재의 상황에 대한 계급 전쟁이 존재한다. 내가 속한 계급, 부자계급은 이 전쟁을 먼저 시작했고, 지금 한창 이기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유일한 문제는 언제 민중이 반격을 가할 것인가이다라고 말한 (102) 워런 버핏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도시의 공기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 소외되어 있는 99%의 연합 이외의 방법은 없다. 이 지점에서 화두로 떠오르는 것은 어떻게 99%가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있는가에 대한 방법론이다. 불평등을 허용하고 재생산하는 정치권력의 불평등에 대한 점령 운동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정확한 답은 (하비가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정확한 질문에서 시작될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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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의 도시 -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점령운동까지
데이비드 하비 지음, 한상연 옮김 / 에이도스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사회 구조와 실천의 결합으로 이념을 구현하는 사회적 공간으로서의 도시

 

반란의 도시 -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점령운동까지, 데이비드 하비 지음, 한상연 옮김, 에이도스, 2014. 3.

 

정기용 건축 작품집 - 1986년부터 2010년까지, 정기용 지음, 현실문화, 2011. 7.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640229    

 

 

 

정기용 선생님의 건축 작품집을 다시 읽는다. 그것은 건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삶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섬세한 안내서다. 곳곳에 선생님의 삶의 미학에 심취한다. 다큐 ,말하는 건축>에서 선생님의 건축적 사유에 공감하면서, 그의 철학이 담긴 풍부한 도면과 사진을 다시 본다. 주변과의 조화 속에서 튀지 않고, 사연을 만들어가는 건축물을 구현해 나가는 그의 모습이 여전히 눈에 선하다.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 흔적과 상상, 건축가 오기사의 서울 이야기, 오영욱 지음, 페이퍼스토리, 2012. 5.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583480

 

 

 

 

다시 오기사의 서울 이야기를 읽고 본다. 그것은 건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과거의 흔적에서 상상을 길어 올리고, 추억을 사랑하는 한 청춘의 이야기다. 발터 벤야민식의 관찰하는 시선은 이전의 건축과 다른 메시지를 전달한다. 공간은 시간의 흔적에 관한 모자이크다. 엔틱이라는 미명 아래 새것도 낡은 것으로 탈바꿈하여 상품화는 것에 대한 그의 이야기라든가, 서태지가 소유한 건물에서 건축주의 미학이 살아나지 않는 점에 대한 생각에 공감하며 잔잔하게 펼쳐볼 수 있다.

 

반란의 도시를 펼치며...

 

나이를 먹나 보다. 사람과 사람의 경계, 공간 지리학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싹튼다. 물리적 공간은 사람의 의식을 지배한다. 앞만 보고 달리는 청춘의 시절에는 시간이 삶의 지표였다. 시간의 효율성으로 삶은 의미를 갖는 것처럼 보였다. 풍요와 비옥함의 생성이 시간으로 이루어진다면, 공간은 고정되어 있는 정지된 영역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제 시간이 중첩되고, 추억이 켜켜이 쌓여서 한 개인의 삶을 지배하는 공간에 오랫동안 천착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리적 공간이 사회적 공간으로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물리적 공간을 가득 채운 시간의 궤적이 보이기 시작한다.

 

건축 관련 서적 사이에서 읽기 시작한 신간 도서 데이비드 하비의 반란의 도시는 자본이 지배하면서 도시 주변부로 밀려난 99%도시에 대한 권리를 이야기한다. 앞서 언급한 두 책이 연성(軟性)이라면, 반란의 도시는 경성(硬性)으로 도시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반란을 다루고 있다. 하비가 차용하여 사용하는도시에 대한 권리는 생태주의자 르페브르가 구상한 개념이다. 그는 도시가 자본주의 발전에 따른 계급적 예속과 대립을 심화시키는 착취와 지배의 중심이자, 동시에 구성원에게 진정한 공통 이익을 고취시키고 변혁을 창출하는 장소로서 양면성을 지닌다고 하였다. 도시는 단순히 행위자들이 거주하는 물리적 공간이면서, 동시에 사회 구조와 실천 행위의 결합이 역사적으로 축적되어 특정한 사회 질서와 이념을 구현하는 사회적 공간이다(이성민, 2013, 한국교원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 장세룡(2006)의 글 재인용).

 

 

도시가 누구의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자본으로 흡수된 도시에 대한 권리를 되찾기 위한 투쟁으로 이어진다. (이질성의 차이의 공간인) ‘헤테로토피아(자본이 만들어내는 합리화의 공간인) ‘이소토피사이에서 만들어지는 변증법적 공간 창출이 도시의 권리를 되찾는 최선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성장 우선의 신자유주의는 도시를 하나의 상품으로 소비한다. 엘리트가 추구하는 입장이 보편성을 획득하여 도시 정책을 정당화한다. 쇼핑몰, 멀티플렉스, 대형매장, 패스트푸드점, 수제품 시장, 부티크 문화(43)가 도시를 가득 채운다. 지대 수익을 최대화하기 위해서 저소득층과 증간소득 세대는 도시 중심부에서 내몰렸고, 이로 이해 계급 격차는 더욱 벌어졌으며, 아무 특권도 누리지 못하는 주민의 복리에 악영향을 미쳤다(66). 급속한 도시화를 이끈 추동력은 자본이었다.

 

재력이 풍부하고 신용이 높은 사람이 부동산을 매수하고 나면 그 다음으로는 그보다 소득이 낮고 위험이 높은 계층이 부동산을 매수하고, 맨 마지막으로 수입과 자산이 없는 계층도 부동산 매수에 뛰어든다. 이들은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는 한 부동산 전매를 통해 이득을 올릴 수 있다. 이런 일은 버블이 터질 때까지 계속된다. 금융기관은 수수료 수입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버블을 최대한 오래 유지해야 하는 강력한 유인이 되는 셈이다(94).

 

저자 데이비드 하비는 자본이 다양한 방식으로 도시화과정을 재생산하는 과정을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논증 자료로 활용한다. 미국 뿐 아니라, 유럽, 중국 등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에게 삼성 공화국이 낯설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본가 계급은 국가기구는 뿐 아니라 일반 주민을 지배한다. 이런 지배 수준에 도달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도시 그 자체를 만들어내는 도시 형성 과정은 정치투쟁, 사회투쟁, 계급투쟁이 일어나는 주요한 장소다(122).

 

도시에 대한 권리를 되찾기 위한 산발적인 대항 운동이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도시 공간은 정치 활동과 저항의 중요한 장소로 기능한다(205). 투쟁의 방식으로 머레이 북친이 주장하는 연합주의와 엘리너 오스트롬이 내세우는 다극적 거버넌스는 수용할 만하다. 국가를 대신하는 지자체 회의의 연합 네트워크는 지자체가 공개적 회의의 장에서 시민기구가 되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방식이다. 단 하비가 진단한 것처럼 이 또한 - 하트와 네그리가 주장한 공동체처럼 국가 시스템으로 기능하는 한계를 갖는다. “공동체에 가입하지 않은 개인에게 가해질 억압(256)”을 경시하기 때문이다.

 

보수든 진보든 다양한 이유로 자신들만의 공유재화를 실천하고 있지만,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 우리만의 리그라는 점에서 별반 다르지 않다. 문화인들의 마을, 정치적 공동 행동을 추구하는 코뮌에 가서 느끼는 점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외부 세계와 이질적인 사람들에 대한 배척일 때가 더러 있었다. 지난 30년간 신자유주의의 긴축정책으로 줄어든 공공재를 확대하기 위한 투쟁이 요구된다.

 

도시의 공기는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현재의 상황에 대한 계급 전쟁이 존재한다. 내가 속한 계급, 부자계급은 이 전쟁을 먼저 시작했고, 지금 한창 이기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유일한 문제는 언제 민중이 반격을 가할 것인가이다라고 말한 (102) 워런 버핏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도시의 공기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 소외되어 있는 99%의 연합 이외의 방법은 없다. 이 지점에서 화두로 떠오르는 것은 어떻게 99%가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있는가에 대한 방법론이다. 불평등을 허용하고 재생산하는 정치권력의 불평등에 대한 점령 운동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정확한 답은 (하비가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정확한 질문에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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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한다는 것에 대하여- 상실한 사람들을 위한 애도심리학』 채정호 지음, 생각속의집, 2014. 4.

이 생(生)에서 다시 만날 수 없는 ‘이별’이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넘어서 이전의 삶으로 복구될 수 없는 깊은 상처로 남는다. 살아남았다는 자책감, 주변에 대한 원망, 사건 이전의 사태를 가정법으로 복구하면서 현존할 수 없게 된다. 화인(火印)의 상처는 지워지지 않고, 살아남은 자의 삶을 파괴한다. 살아도 살아있는 것이 아닌 삶을 극복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함께 성찰해야 할 시간이다.

 

 

 

 

 

 

 

 

 

 

 

 

 

 

『참을 수 없는 거짓말의 유혹』, 리아 헤이거 코헨 지음, 서정민 옮김, 생각과사람들, 2014. 4.

『The Reader』가 떠오른다. 문맹을 밝히는 것이 범죄자라는 오명을 얻는 것보다 더 두려운 여자. 거짓말의 유혹은 지극히 사적인 것인지, 집단적인 것인지에 대한 사회학적 고민을 함께 해볼 책이 출간되었다. 무지에 대한 공포가 자연스럽게 거짓말로 이어지고, 인종, 성별, 연령, 권력 등에 따라서 그 유혹의 강도와 방식이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지 궁금하다.

 

 

 

 

 

 

 

 

 

 

 

 

 

 

 

『옹호자들』, 손아람 외 지음, 궁리, 2014 4.

2014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이란 영화 <진실은 불타지 않는다>를 보았다. 진실을 검열하고 통제하고 생산하는 모든 과정에 ‘국가 권력’이 있다. 국가요원들은 잔혹한 여론(언론) 탄압을 아주 ‘성실하게’ 수행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경계에서 싸울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평온한 일상의 이면에서 목숨을 걸고 투쟁했던 사람들의 지난 오년. 미네르바에서 용산참사까지 말 못 하는 이들의 목소리로 살고자 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되어 준 변호사들의 투쟁기가 여기 있다.

 

 

 

 

 

 

 

 

 

 

 

 

 

 

 

『진보의 착각 - 당신이 진보라 부르는 것들에 대한 오해와 논쟁의 역사』, 크리스토퍼 래시 지음, 이희재 옮김, 휴머니스트, 2014. 4.

“소비도 이념으로 하냐?”는 정용진 이마트 사장, 국민의 미개한 정서를 꼬집는 정몽준의 아들의 SNS에 올린 글들을 보면서, 그들에게 서민(국민)은 합리적 이성이 없는 불가촉 천민쯤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한다는 사족을 달면서, 나 또한 그들과 다른 입장에서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가질 수 없다. 나는 여전히 소비를 이념으로 하지 않으면 부끄럽고, 내 존재 기반에 바탕을 둔 감정으로 사는 ‘미개한 국민 정서’를 가진 한 사람으로서 ‘진보’에 기댈 수밖에 없다. 진보가 장밋빛 미래는 아닐지라도 끊임없이 함께 고민하고 더 나은 방향을 고민하는 ‘서민의 철학’이기 때문이다.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 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김동광 옮김, 현암사, 2014. 4

원작은 1991년이다. 나의 아킬레스건인 자연과학 이야기만은 아니라는데 위안을 받으며 지평을 좀 넓혀볼까 한다. 과학(사)를 배경 삼아서 철학, 신학, 영화가지 넘나든다고 하니, 유머에서 쉬어가며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될 것이다. 이질적인 주제들을 통합하는 소통의 힘을 발휘하는 책일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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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신간 도서 추천입니다.

하루에 이십 사계절이 있다는 속담은 이제 유럽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닌가 봅ㄴ다.

꽃샘이라니... 꽃을 시샘하는 바람이 에사롭지 않은 주말입니다.

서둘러 핀 꽃들... 쉬 떠나지 않길 바라며... 책과 창문을 번갈아 보게 되네요^^*


『투명사회Trarnzgesellschaft (2012년)』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4. 3.

푸코가 강조한 ‘자기 배려 윤리’가 한동안 신자유주의 자기 계발의 의지로 오인되고 있다. 자기 의지처럼 받아들여지지만 좀 더 분석적으로 살펴보면 타자의 가치와 윤리가 자연스럽게 강요된 것일 때가 많다. 마찬가지의 역설이 ‘투명 사회’와 ‘통제 사회’에도 나타난다. 정보화 사회에 들어서면서 세상은 좀 더 평등하고 투명했진 듯 보이지만, 곳곳에 설치된 CCTV와 정보 이용 흔적들은 개개인의 삶을 통제하는 수단이 되어가고 있다. ‘디지털 파놉티콘’의 효과적인 감시망에서 과연 참된 민주주의, 정보의 평등이 실현될 수 있을지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고민이 요구된다. 『투명사회』는 우리에게 『피로 사회』로 알려진 재독학자 한병철 교수님의 최근작으로 현대 사회를 이해하는 지침서가 될 것이다.

 

 

 『단속사회- 쉴 새 없이 접속하고 끊임없이 차단한다』, 엄기호 지음, 창비, 2014. 3. 10.  

엄기호의 책을 읽고 나면 저절로 리뷰가 쓰고 싶어진다. 실천하는 지식인 엄기호의 글에는 삶과 관념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가 상식으로 통용하는 현실 속에서 자동화되어버린 습관적 사고를 정지하게 하는 강력한 메시지가 그의 글에 담겨 있다.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등을 통해서 알려진 엄기호의 신간은 앞으로도 계속 사서 읽고 리뷰를 쓸 예정이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누구와 접속하고 소통해야 하는지, 주어진 아젠다에 어떻게 새롭게 접근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론을 얻을 수 있다. 사회적 문제를 메타적으로 바라보는 놀라운 힘이 엄기호의 글에 있다.

 

 

『영화 읽어주는 인문학』 안용태 지음, 생각의길, 2014. 3.  

영화를 읽는 가장 답답한 태도는 시대를 지배하는 도덕 담론 안에 갇히는 것이다. 영화를 통해서 안전한 일상을 추구하는 생활인으로는 포섭할 수 없는 위험한 상상력에 불을 지피고, 생각의 지평을 넓혀가야 한다. 성찰을 길러내지 못한다면 영화는 무한반복을 거듭하는 같은 길을 반복하는 레일에 불과할 것이다.

팟캐스트 ‘영화와 함께 보는 인문학’의 저자 안용태는 스무 편의 영화를 통하여 낯선 자신과의 만남을 주선한다. ‘이터널 선샤인’, ‘라이프 오브 파이’, ‘어둠 속의 댄서’, ‘쇼생크 탈출’, ‘마이너리티 리포트’,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타인의 살’, ‘아무르’, ‘눈먼 자들의 도시’, ‘설국열차’, ‘피에타’, ‘지구를 지켜라’, ‘사랑을 카피하다’, ‘공동경비구역’, ‘식스 센스’, ‘인셉션’, 뷰티풀 마인드‘, ’다크 나이트‘, ’바람이 분다‘, ’캐빈에 대하여‘ 총 스무 편의 영화에서 과연 우리는 얼마나 다른 ’자아‘를 만날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이 스무 편의 영화 중 한편도 빠트리지 않고 모두 보았다. 이 영화들은 몇 편을 제외하면 대중적으로도 성공한 영화들이니 모두 무난하게 접근할 수 있으리라.^^)

 

 

『나이를 속이는 나이』 패트리샤 코헨 지음, 권혁 옮김, 돋을새김, 2014. 3. 31.

나이에 대한 집착은 우리 사회 불평등의 일부다. 청춘에 대한 과도한 가치 부여는 노년에 대한 역차별을 불러일으킨다.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서 청담동 재벌녀로 분한 여배우 김정난의 말처럼 “세월 앞에 당당할 수 있는 젊음은 그 어디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일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할 기세다. 아쉽게도 외모는 항상 내면에 앞서 평가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자본주의 산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젊음을 유지하기 위한 소비의 규모를 보면 정확히 알 수 있다. 저자는 ‘중년’을 하나의 발명품이라고 보고, 150년

  

『콜럼버스의 교환- 문명이 만든 질병, 질병이 만든 문명』 황상익 지음, 을유문화사, 2014. 3. 1.

책 제목을 보는 순간 오래전 읽었던 『총, 균, 쇠』가 떠올랐다. 유럽에서 대서양으로 이동하면서, 유럽 가축사육에서 발생한 세균에 아메리카 원주민 절반 이상이 감염되었다. 아메리카 정복의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야생동물을 사육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인류사와 질병의 역사는 이렇게 짝패를 이루며 하나의 역사를 써나갔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황상익 교수가 EBS에서 강연한 ‘역사 특강 : 질병과 인간, 의학과 문명’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질병의 역사이기도 하다. 질병과 과학, 세계사를 함께 살펴보는 의미 있는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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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을 체포하라 - 14인 사건을 통해 보는 18세기 파리의 의사소통망
로버트 단턴 지음, 김지혜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촘촘하게 역사 읽기, 현재의 나침반 『시인을 체포하라』

 

로버트 단턴 지음, 김지혜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3. 12.

 

미시사학자 로버트 단턴의 18세기, 파리로의 초대는 시종일관 흥미진지하다. 예측불허의 상황이라든지, 반전에 대한 기대 때문이 아니다. ‘시인 체포’라는 사건이 이미 일어난 지점에서, ‘왜’ 혁명을 선동하지 않은 자들을 향하여 노골적인 공권력이 행사되었는지에 대한 해답을 촘촘하게 분석해나가기 때문이다. 우디 앨런 감독의 <미드나잇 인 파리> (Midnight In Paris, 2011)처럼 낭만적인 시대의 예술적 만남도 아니고, 리처드 커티스의 <어바웃 타임> (About Time, 2013)처럼 가상현실도 아니지만, 시종일관 독자를 붙잡는 힘이 이 책에 있다. 하나의 지점을 향하여 올곧게 나아가는 집념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역사가 잠시 나선형으로 후퇴하면서, 권력이 언론을 장악하여 의제 설정에 개입하기 시작하면, 진실은 보도되지 않았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왜곡된다. 사적인 삶으로 침잠하는 순간, 정치는 우리의 삶의 전혀 무관한 일시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2014년 한국은 공중파에 대한 불신을 넘어서서 ‘뉴스에 관심 두지 않는다.’라는 표현이 지식인의 양심처럼 떠돌기 시작한다. 잠시의 움츠림은 힐링일 수도 있고, 패배자들 간의 다독임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낮은 포복으로 숨을 죽인 가운데에서도 바른 삶,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하는 소극적인 저항이 필요하다.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단순한 독서나 교양을 의미하지 않는다. 현재가 침묵을 요구할 때, 역사는 현실을 읽는 나침반이 되어 준다. 연대기 순으로 기록하는 편년체나 군주 중심으로 기술하는 기전체는 역사적 사실의 인과 관계를 드러내주기는 하지만, 역사를 움직이는 파도를 만들었던 민중의 실체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나의 객관적인 사실로서 역사를 받아들이기 보다는 사건과 사건 속에 감추어져 있는 변인들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한 작업이 될 것이다. 역사를 통해서 단순히 과거의 아니라, 현재로 호출되어 새로운 의미망을 형성해야 하고, 새롭게 읽고 해석하는 관점과 문장력을 겸비한 사학자가 절실하게 필요한 까닭이다. 사건과 사건 사이의 빈 공간을 채우고, 숨겨진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구전(口傳)되는 이야기의 힘은 놀랍다. 전(前)세대는 후(後)세대에게 이야기 방식으로 축적된 자산을 전수했다. 전달의 과정에서 이야기는 풍부해지고, 약간의 간극 속에서 의미는 심도가 깊어졌다. 여기에 기억력의 한계를 이겨내는 장치가 바로 음악이다. 시(詩)처럼 만들어진 이야기가 음악과 만나면 암송은 더 쉬워져서 더 많은 사람이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시를 강력하게 단속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인을 체포하라』는 프랑스 혁명 직전인 18세기 중엽, 14인 체포 사건을 문화사가 로버트 단턴이 연구한 결과물이다. 당시 “시인을 체포하라”는 왕명이 내려지자, 경찰의 14명을 추출하여 바스티유 감옥에 감금한다. 물론 14명은 대부분 법률가와 성직자였으나, 시를 유통한 민중의 절반 미만의 사람만이 글을 읽을 수 있었다. 당시 문맹률이 50%가 넘었음에도 어떻게 민중들은 정보를 유통할 수 있었는지에 대하여 생각해볼 수 있는 지점이다. 기록보다는 기억과 암송으로 인류의 유산을 지켜왔던 시대가 훨씬 더 길었다.

 

시인(詩人)은 단독자일 수 없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투박한 구어에 시적 형태와 운율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내용 또한 단순한 분노의 표출에서 정치적 신념으로 깊어졌을 것이다. 파리 정부가 14인을 체포해서 처형했다고 해서 지은이를 색출해서 제거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사람들의 입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시는 불리는 과정에서 계속 변주되고 있었다. 이 사건은 “집단 창작의 한 사례였다. 최초의 시는 다른 여러 시와 합쳐지거나 그 속 포함되고 한데 어우러져, 시적 자극의 장을 만들어냈다.(18쪽)” 다만 당시 사람들은 떠도는 시(詩)의 의미를 알고 있었고, 자신의 분노, 신념, 소망을 슬쩍 시에 섞어 넣었을 것이다. 대중에 관한 다음의 묘사가 시를 쓴 ‘글쓴이’에 대한 정확한 지명이 될 것이다.

 

【대중이라는 분】(153쪽)

 

그것은 규정할 수 없는 하나의 합성체다. 어던 화가가 그 진정한 특색을 모두 갖춘 모습으로 대중이라는 분을 그려내고자 한다면, 그는 아마도 이렇게 그릴 수 있을 것이다. 〔농부의〕 긴 머리칼, 〔신사의〕레이스로 장식된 코트, 〔성직자의〕모자를 머리에 쓰고, 〔귀족의〕검을 차고, 〔노동자의〕짧은 망토를 입고, 〔귀족의〕빨간 힐을 신고, 손에는 〔의사의〕문장이 달린 지팡이를 들고, 〔장교의〕견장을 차고, 왼편 단춧구멍에는 십자가를 꽂고, 오른팔에는 〔수도사의〕망토를 들고 있다. 당신은 이분이 차림새만큼이나 멋진 이성적 판단을 할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미셸 푸코(M. Foucault)와 위르겐 하버마스(J. Habermas)의 접점에서

 

모든 권력자는 여론이 형성하는 담론을 규제하기 위해서 언론을 장악하여 적극 활용했다. 물자체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발화하는 순간 사건이 만들어진다. 푸코는 여론을 권력과의 관계로, 하버마스는 합리적 의사소통 과정으로 파악한다. 푸코는 미시 권력이 어떻게 개인을 통제하고 관리하게 되었는지의 역사적 과정을 탐색하였다는 점에서 담론 형성 과정을 이해하는데 큰 통찰을 제공한다. 니체 『도덕의 계보학』의 연구 방법을 차용한 푸코의 『지식의 계보학』은 시대를 지배하는 담론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고고학자의 탐사처럼 치밀하게 파헤친다. 다만 수동적으로 형성되는 과정 속에서 인간의 능동성을 간과하였다는 아쉬움이 있다. (물론 푸코는 죽기 직전까지 『성의 역사 3』에서 미학적으로 삶을 형성하는 자기 테크놀로지에 대해서 기술하였다.) 하버마스는 합리적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의 합리적 이성에 기초한다. 근대적 기획이었던 계몽주의가 실패했다는 지점으로 다시 돌아가서 토론할 수 있는 인간의 수용 능력을 토대로 공론장 개념으로 이론을 정립한다. 이성적이고 비평적인 의사소통 잠재력과 이성이 하버마스 이론 체계의 핵심이다. 로버트 단턴은 푸코와 하버마스의 중간 지점에서 자신의 연구 방법을 설정한다.

 

푸코에 따르면 담론은 특정의 제도적이고 물질적인 실천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고 재생산될 수 있다. 푸코의 담론이론은 담론이 순수한 언어 내적인 것도, 언어외적인 것도 아닌 의미생산체계로 보아 담론적인 것과 교육, 법제도, 감옥같은 비담론적인 것의 복합적인 관계에서 산출되는 효과를 사고할 수 있게 한다. 더 나아가 푸코의 관점은 담론을 자율적인 사회실천으로 보기 때문에 존재와 의식이라는 철학적 구분 속에서 사회적 의식을 사회적 존재의 반영 또는 표현으로 보는 관점과 대립된다. 푸코에 따르면 담론 실천은 일종의 독자적인 사회적 실천이기 때문에 비담론적 실천과의 관계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비담론적 실천은 담론구성체의 규칙성에 영향을 줌으로써 특정한 담론이 출현하게 되는 조건들에 관계하고 그것의 기능 작용에 영향을 미친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담론 형성과 대화를 통한 수용가능성은 의사소통 참여자의 참여적 태도로부터 규정된다. 객관주의적 의미의 관찰자의 시각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다. 하버마스는 근대사회에서 공공영역의 발전을 화용론적 합의를 지향하는 탈억압적 의사소통 공간으로 규정하였다. 공공영역이란 "쟁점이 토론되고 의견이 형성되는 공공 토론의 장"이며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나가는데 있어서 필수적이다. 로버트 단턴은 그러한 공공영역의 출현이 18세기였다고 본다.

 

촘촘하게 역사 읽기

 

역사와 관련한 역설은 항상 존재한다. 국가가 역사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나서는 순간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역사주의와 국가주의가 보수의 무기가 되어서는 안된다. 소치 올림픽에 출전한 김연아 선수를 겨냥해서 만들어진 “김연아 당신은 대한민국입니다.”는 개인의 삶을 국가로 환원하는 심각한 해프닝을 연출했다. 역사를 바로 읽는다는 것은 거대담론 속에 묻혀서 드러나지 않는 잔가지를 들추고 빈틈을 메워서 새로 쓰는 작업이다. 열린 해석과 가능한 상상을 통해서 역사는 이야기를 품고 무한대로 펼쳐질 수 있다. 푸코가 염려했듯이 의사소통과 관련한 역설도 존재한다. 올바르지 못한 정보가 사실처럼 유통되면서 ‘합리적인’ 의사소통 체계가 무너지는 디스토피아가 될 수도 있다. 정보화, 세계화 속에서 우리가 지금 제대로 소통하고 있는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된다. 『시인을 체포하라』 는 그 역설에 대한 고민을 제공한다.

 

우리는 정보기술 자체의 문제가 아닌 ‘정보기술의 발전과 확산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결국 어떤 정보화 사회로 나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기술의 차원이 아니라 정치의 차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정보사회가 가져오는 편익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동시에 더욱 민주적이고 더욱 인간적인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메커니즘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최근 정보사회에 따른 새로운 움직임들은 희망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노동자 정보화 사업단이 발족하여, 정보통신운동과 노동운동의 결합을 추진하고 있으며 통신이용자와 노동자의 연대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정보사회에서 ‘기계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불평등의 구조에 대한 도전은 많은 사람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연대를 통해서 현재의 정보 불평등을 당연시하는 사회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시를 추적하는 일에 공권력을 동원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그 시대의 의사 소통망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보는 단초를 제공한다.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절반 넘는 시대의 소통방식을 알아볼 수 있는 책이 될 것이다. 단선적이지 않았을 인과 관계를 그려내는 일, 사건의 원인과 영향, 우연과 필연 사이의 결정 인자일 수도 있는 사건을 밝혀내는 연구를 통해서 현대 사회 의사소통의 문제점과 대안을 탐색하는 계기를 마련한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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