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편견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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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의 부정을 완화하는 다정함이라니.

 

다정한 편견, 손홍규 산문, 교육서가, 2015. 5.

 

  제목에 끌림이 있다. 다정한 편견,은 소설가 손홍규가 200811월부터 20125월까지 경향 신문에 연재한 칼럼을 하나로 묶었다.

 

손홍규의 글은 다정하다. 한 사람의 고귀한 인격을 만난다. 호기를 부리지도 않는다. 자신만의 반듯함은 있으나, 부러지기 쉬운 올곧음은 없다. 작은 이야기로 큰 울림을 만든다. 누구나 했을 법한 경험에서 작가만의 사유를 발견한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작가의 삶에는 농촌과 도시가, 근대와 현대가 공존한다. 실제 나이보다 오래 묵은 이야기를 오늘 이야기처럼 풀어간다.

 

  한동안 서늘한 기운을 느낀다. 부끄러운 일이 아닌 가난이 발목을 붙잡는 아픈 청춘을 생각하며 책 읽기를 멈추기 몇 번이다. 이것이 가스통이 이야기한 느린 독서일 것이다. 이는 독자의 노력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독서를 느리게, 그러나 끝까지 가게 하는 힘은 저자에게 있다.

읽다보니 읽는 것으로 멈추어지지 않아서 필사를 시작했다. 작가가 보냈을 숱한 밤 시간들이 내게 출산을 경험하게 한다. 참 의미 있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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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지음 / 마음의숲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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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지 않아도 좋다. 우리는 지지 않았다.

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마음의숲, 2012.

 

소설가의 에세이는 한 편의 잘 다듬어진 자전 소설이다. 저자의 경험과 성찰이 모인 한편의 단편 소설은 서로 어깨를 맞대고 연작 소설을 이룬다. 소설가는 사소한 경험조차 망각하지 않는다. 그는 물리적 시간을 몇 겹의 층위로 바꿔 확장하는 인터스텔라다. (분명 독자가 할 수 있는 진심어린, 최고의 찬사다.)

 

김연수의 글은 나의 성장기를 반추하게 한다. 내게도 글밭을 일구고, 글 밥을 먹고 살고 싶은 청춘의 한 시절이 있었다.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싶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나를 스친 인연들을 가장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나를 위로하기 위함이다. 펜과 종이만 있으면 허락되는 글쓰기를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

 

내 의지와 무관하게 삶은 시작되었다. 삶을 마감하는 것도 내 의지와 무관한 가능성이 매우 높다. 참 사는 일은 내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 이번 생이 이 세계와 마지막 안녕이기를 늘 바랬다. 나이를 먹으면서 결정적인 사건 없이 나는 변하고 있다. 마흔 중반에 도착하자 나는 윤회에 대한 공포에서 자유로워졌다. 나의 다음 생은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 사는 것이 그렇게 비관적이기만 하지 않다는 생각이 스며들었다. 겪을 일은 겪게 되어 있다. 내가 그것을 극복할 능력이 있든 없든. 김연수의 글을 읽으면서 고정된 내 생각이 파열음을 내기 시작했다. 그의 글을 읽을 수 있어 좋은 가을이다.

 

작가 스스로 잘 알겠지만, 그가 앞에 있다면 단정하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지만 소설이 별로이거나, 또는 성실하지만 소설이 형편없는 작가가 아니다. 사람도 좋고, 성실하고, 훌륭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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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듯 천천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영희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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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듯 천천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영희 옮김, 문학동네, 2015. 8.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모두 챙겨본 것은 평론가 이동진 덕분이다. <아무도 모른다>(2004) 이후, 히로카즈의 영화는 조금씩 가벼워지고, 높여간다. <환상의 빛>(1995), <원더풀 라이프>(1998), <아무도 모른다>(2004), <걸어도 걸어도>(2008)는 모두 죽음을 모티브로 한다. 관객으로서 불편함이 조금씩 덜어진 것은 영화 주제의 변화에 있다. 애초에 삶과 죽음을 분리하는 것 자체가 부조리하지만, 그의 작품에서 죽음을 향한 포커스가 삶으로 옮겨졌다. 죽음은 기억하는 자의 몫으로 남는다. 실패조차 오랫동안 기억하는 것, 이 과정에서 인간은 성장한다.

 

이번에 출간된 히로카즈 책, 걷는 듯 천천히는 영화 <걸어도 걸어도>(2008)를 연상하게 한다. 아직까지 자동차가 없다는 저자의 삶이 읽히는 제목이다. 이 책은 2011년부터 니시니폰 신문에 연재했던 글이 중심이 된 첫 에세이집이다. 일상을 가볍게 그리고 있지만, 감독의 영화를 이해하는 배경을 만들어준다. 오디션 프로를 연출할 당시, 오디션을 받는 젊은이들에게 다가갈 때 저자의 자세는 걷는 듯, 천천히.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 그는 늘 그렇게 세상을 다른 사람들과 다른 속도 속에서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동일한 대상을 다르게 바라볼 때, 남들이 보지 못한 이면을 보게 된다. 그렇게 그 대상은 예술이 된다.

 

현란한 언어, 철학 담론에 갇힌 글이 아니라서 참 좋다. ‘천지유정(만물에 사랑이 깃들어 있다.)의 사유 방식을 갖고 있는 저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따뜻한 마음으로 읽다 보면, 눈가가 촉촉이 젖어 온다. 나의 사적 경험과 감독의 생각이 빚어내는 천지간 슬픔이 베어 나온다. 저자의 아버지 상중에 도착한 타임캡슐 편지, 15년 전 아버지가 써두었던 편지다. 한 통의 편지로 현재에서 과거와 미래가 만난다. 가령 <어쩌면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서 아버지로 분한 오다기리 조가 한 이야기에서 말이다. 이렇게 툭하고, 눈물샘을 자극한다.

 

세상에는 쓸데없는 것도 필요한 거야. 모두 의미 있는 것만 있다고 쳐봐. 숨 막혀서 못 살아.”

 

히로카즈의 영화를 본 독자에게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있다. 영화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장소를 확장한다. 현재 내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의 이란성 쌍둥이 같은 문제투성이의 주인공이 문제에 직면한다. 감정이입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평범한 인간이 커다란 올바름과 작은 고통 사이(216)에서 흔들린다. 영화뿐 아니라, 문학 또한 그러하다.

각각의 영화에 등장한 배우들에 대한 감독의 생각이 한 장을 채운다. 히로카즈의 GV에 초대받은 듯하다. 좋은 영화는 쉽게 부서지지 않는 감독에 대한 배우의 신뢰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히로카즈의 질문에 케 로치 감독이 다음과 같이 답했듯이.

 

괜찮았어요. 많은 시간을 들여 신뢰를 쌓았으니, 비록 일시적으로 부서지더라도 회복할 자신이 있었습니다.”(153)

 

걷는 듯 천천히는 히로카즈 영화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당연히 읽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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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가가 되기로 했다 - 파워라이터 24인의 글쓰기 + 책쓰기
경향신문 문화부 외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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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가가 되기로 했다, 강신주 외, 메디치, 2015. 4.

 

독자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 작가가 되어도 좋고, 되지 못해도 좋다. 글을 쓰는 것은 많은 사람의 존재 방식이다. 소멸하는 시간에 묻혀 사라지는 것을 붙잡아 두려는 수고로움이기도 하다. 내 안에 맺혀 있는 보이지 않는 실타래를 푸는 작업이기도 하다.

 

마음이 복잡할 때는 읽고 쓴다. 읽고 쓰는 시간은 온전히 혼자이므로 고독하다. 반면 함께하는 충만함으로 심장이 딱딱했던 심장이 부드러워진다. 시공을 함께할 수 없는 저자들이 온전히 나와 함께 한다. 저자들은 독자에게 최선의 자세로, 정중하게 말을 건다. 빤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솔깃해진다. 내 이해와 해석의 대상이 된다. 그들에게 전하고 싶은 나의 피드백은 포스트잇에 기록되어 답 글로 남는다.

 

나는 작가가 되기로 했다, 는 알라딘 보관함에 담아두고, 도서관에 즉각 신청하며 애인처럼 기다렸던 책이다. 경향신문이 2011, 2013년 연재했던 논픽션 저자들의 글을 한곳에 묶었다. 이 대화에 참여한 24인의 파워라이트 중 13명이 내 선호 순위 안에 드는 라이터들이다. 그러니 꼭 읽어야하지 않겠는가? 도서관에 두 권이 도착했는데, 몇 달이 지나서도 책이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았다. 괜찮은 책이니, 나라도 서평을 써서 힘들 보태기로 했다.

 

철학자 고병권의 사유의 저장소일기를 통하여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사건보다 일어난 감정이나 정서(33)”임을 생각한다. 한번 쓴 글은 묵혀야 한다. 하얗게 밤을 밝힌 글은 낮의 온도로 다시 살펴야 한다. 감정이 잉여를 조절해야 한다.

 

통합(사실은 국정) 역사교과서 논쟁에 맞추어 정치학자 김원의 글도 새롭게 읽힌다. 통합이라는 미명 아래 김원식의 독한 글이 자리 할 공간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통합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보면, 같은 자료도 사관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해석이 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더더욱 어불성설이다. 통합은 강력한 프레임에 역사를 가두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의미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전에도 한번 인용한 적이 있는 디자인연구자 박해천의 주거공간으로서 아파트를 성찰한다. “그 민자 평면은 인간의 꿈이나 생활의 두께와 깊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한 생애의 수고를 다 바치지 않으면 이런 공간에서조차 살수가 없다.”는 김훈의 자전거 도둑의 한 부분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다수 한국인이 공감할 표현이다.

 

문학 평론가 신형철의 좋은 문장또한 인상 깊다. 정확한 문장이 좋은 문장이라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정확한 문장이란, 문법적으로 정확한 문장이 아니라 사태의 본질에 대해 정확한 인식에 도달함으로써 다른 그 어떤 문장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문장(129)을 말한다.

 

문화학자 엄기호 역시 문장 보다 중요한 것은 글의 분위기(140)이라고 말한다. “책이란 내가 뭘 공부했는지 정리하고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들려줄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결과물”(144)이라는 그의 (미래의 저자들에 대한) 조언이 귀에 들리는 듯하다. 불과 얼마 전에 읽은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의 저자 임승수의 글도 반갑다. 좋은 글은 삶의 지향점에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나만의 글쓰기가 나를 잘 드러내는 수단이면 좋겠다. 봉우리 맺힌 누군가를 터뜨리는 손짓이면 더욱 좋겠다. 역사저술가 박천홍처럼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듯이 글 안에 나만의 지문이 느껴지도록 표현(92)”하고 싶다. 미술사학자 이주은처럼 일상의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일상의 경험과 예술적 체험을 연결하면 나만의 글이 써질 것이다. 경계를 넘나드는 글감들이 만나 제대로 된 화음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이현우식 단정한 글쓰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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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쓰는가 - 글로 먹고사는 13인의 글쓰기 노하우
김영진 외 지음 / 씨네21북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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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쓰는가-글로 먹고사는 13인의 글쓰기 노하우, 김영진 외, 씨네북스, 2013. 3.

 

글쓰기에 관한 글은 읽어도, 읽어도 재미있다. 재생산되는 로맨틱 드라마처럼 중독성이 있다. 빤한 이야기인데도, 늘 새롭게 읽힌다. 풀 먹인 듯 아직 빳빳한 책장을 넘기는데 살짝 흥분이 인다. 책을 읽는 내내 서핑 하듯 심장이 울렁인다. 글을 쓰는 이의 감성을 엿보는 일은 글을 쓰는 사람에게 충분한 의미가 있다. 모든 글들에 마음이 꽂히지만, 개인 취향을 반영하여 몇 가지 기억을 유추한다.

 

기자 안수찬의 글에 진한 울림이 있다. 맛소금, 진간장 하나로도 제대로 된 밥을 먹는 70대 고물상, 위안부 김순악 할머니, 평화운동가 박진목 선생이 삶은 안수찬 기자의 자판을 통해서 세상에 알려졌다. 정보가 아니라, 공감을 불러낸다.

 

삶으로 글을 쓰는 아동작가 김중미의 글은 읽는 내내 눈물이 났다. 동화의 무게가 웬만한 사회과학 서적보다 훨씬 묵직할 수 있음을 실감한다. 아름답고 예쁜 세계가 동화가 아니라는 걸 새삼 확인한다.

 

칼럼리스트 임범의 글에도 몇 번의 공감을 얹어 읽었다.

 

정부가 형편없게 일을 해버리면, 누가 봐도 명백하게 잘못된 일을 하면, 그걸 비판하는 칼럼도 재미없어진다. 세련된 논리도, 유머도, 아이러니도 다 사라지고 만다. 그런 일이 자주 생긴다. 정부가 후지면, 글도 문화도 다 후져진다. 정부를 비판하는 쪽까지도. 그럴 수밖에 없다. 참 기분 나쁜 아이러니다.(231)

 

영화평론가로 알고 있던 듀나의 SF 소설 과정을 읽는 동안은 내내 웃었다. 글의 용도와 저자 성향에 따라서 전혀 다른 글쓰기 방식이 존재한다. 나의 글쓰기는 역시 마감이다. 언제쯤 내 글도 능동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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