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지음 / 마음의숲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기지 않아도 좋다. 우리는 지지 않았다.

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마음의숲, 2012.

 

소설가의 에세이는 한 편의 잘 다듬어진 자전 소설이다. 저자의 경험과 성찰이 모인 한편의 단편 소설은 서로 어깨를 맞대고 연작 소설을 이룬다. 소설가는 사소한 경험조차 망각하지 않는다. 그는 물리적 시간을 몇 겹의 층위로 바꿔 확장하는 인터스텔라다. (분명 독자가 할 수 있는 진심어린, 최고의 찬사다.)

 

김연수의 글은 나의 성장기를 반추하게 한다. 내게도 글밭을 일구고, 글 밥을 먹고 살고 싶은 청춘의 한 시절이 있었다.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싶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나를 스친 인연들을 가장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나를 위로하기 위함이다. 펜과 종이만 있으면 허락되는 글쓰기를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

 

내 의지와 무관하게 삶은 시작되었다. 삶을 마감하는 것도 내 의지와 무관한 가능성이 매우 높다. 참 사는 일은 내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 이번 생이 이 세계와 마지막 안녕이기를 늘 바랬다. 나이를 먹으면서 결정적인 사건 없이 나는 변하고 있다. 마흔 중반에 도착하자 나는 윤회에 대한 공포에서 자유로워졌다. 나의 다음 생은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 사는 것이 그렇게 비관적이기만 하지 않다는 생각이 스며들었다. 겪을 일은 겪게 되어 있다. 내가 그것을 극복할 능력이 있든 없든. 김연수의 글을 읽으면서 고정된 내 생각이 파열음을 내기 시작했다. 그의 글을 읽을 수 있어 좋은 가을이다.

 

작가 스스로 잘 알겠지만, 그가 앞에 있다면 단정하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지만 소설이 별로이거나, 또는 성실하지만 소설이 형편없는 작가가 아니다. 사람도 좋고, 성실하고, 훌륭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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