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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심리학 - 페이스북은 우리 삶과 우정, 사랑을 어떻게 지배하고 있는가
수재나 E. 플로레스 지음, 안진희 옮김 / 책세상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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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행위는 자유, 공개는 책임

페이스북 심리학, 수재나 E. 책세상, 2015. 9.

    

페이스북 심리학SNS(social network service) 중독성에 관한 문화기술 연구이다. 10년 이상의 임상 경험을 갖춘 소셜 미디어 전문가이자 비평가인 수재나 E. 플로레스(Dr. Suzana E. Flores)에 의해 쓰인 이 책은 - 손에서 핸드폰을 떼어 놓고 살 수 없는 - 현대인 모두에게 낯설지 않은 경험으로 꽉 채워져 있다. SNS의 모든 사례를 다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위험 요소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SNS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SNS는 실제의 사회적 교류가 가져오는 사회적 의미가 없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인정과 칭찬만으로도 사회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싸이월드가 중국까지 영향을 미치던 2000년대 초기, 왜 이런 현상이 한국 사회에서 파급 효과가 가장 컸는지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있다. ‘마실 문화가 발달했던 한국인은 옆집을 기웃거리듯, 싸이월드 산책에 나섰다는 분석도 있다. 개인적으로도 작은 반도 국가에서는 사생활 보다는 공동체의 문화가 발달하기 적합했으리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이러한 현상이 한국만의 특수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세계적인 추세로 자리 잡았다. 그에 따라 긍정적인 효과 만큼이나, ‘죽음에 이르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이 책은 저자의 재기가 빛난다. 프롤로그의 재기발랄함을 끝까지 가져간다.

 

내가 정말로 자기들 이야기를

책으로 쓸 건지 궁금해하던

모든 페친들에게

(미안, 정말로 써버렸어)

 

사람들이 페친을 끊는 열 가지 이유(104)’에서는 저절로 웃을 수밖에.

누구나 이 열 가지 이유 때문에 페친을 끊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1. 지나치게 많은 개인정보를 공개하는 부적절한 포스팅

2. 정치적 혹은 종교적 동맹 강요

3. 페이스북 막장 드라마

4. 지나친 자기 비하

5. 나 혼자 착한 척

6. 밥 먹듯 셀카 올리기

7. 수다 대마왕

8. 날마다 인용구 날리기 (좋은 이야기를 매일 읽는 건, 정말 지루하다.)

9. 무의미한 업데이트

10. 비열함

 

인터넷에 올리는 것과 일기에 기록되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든다. 지금 내가 쓰는 도 블로그에 올라가서, 사람들의 평가를 기다릴 운명을 갖고 있다. 예전에는 일기장과 편지로 기록되던 모든 것들을 인터넷에 올린다. 쓰기 쉽고, 읽기 쉬운 접근성이 보여주기 위한 삶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접근성만큼 잘못 올린 글 몇 줄에 인생 종치는 것’. 인터넷에서 글을 올리는 것은 한 순간일 수 있지만, 뒷감당은 평생 갈수도 있다. 나 또한 술을 마시고, 올렸던 사진 한 장으로 아찔해졌던 경험이 있다. 정신 차리고 아무도 보기 전에 - 재빨리 지우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진땀나는 경험이다. 직장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관리자를 욕하려고 친구에서 메시지를 보냈다는 게 미운 사람을 계속 생각하다 보니 그 관리자에게 보내버린 적도 있다. 한동안 서로 얼굴 보기 힘들었던 악몽같은 사건이라 잊혀 지지 않는다. (참고로, 나는 실수 또한 나의 무의식이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튀어 나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일을 털어낼 수 있었다. 사람 미운 맘을 어떻게 감출 수 있었겠는가? 튕겨 나오는게 오히려 더 자연스럽다.) 이렇게 적다 보니, 내가 저질렀던 SNS상의 문제들이 줄줄이 떠오른다. 하지만, 나의 실수담은 여기서 그만. (이 또한 나중에 후회하게 될 것이므로.)

 

일상의 소소한 경험이 페이스북에 실시간으로 기록된다. 음식의 맛이 느끼는 것보다 어떻게 SNS에 사진으로 남는지가 더욱 중요하다. 어디를 다녀왔는지 보다는 어떤 사진으로 남는지가 더 신경 쓰인다. 문학 또한 이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러한 경향이 문학 일부에도 반영되었다고 생각한다. “사는 만큼 쓴다.”는 말이 있듯이 문학 작품의 일부는 개인의 사적 취향을 나열하는 것으로 점철된다. 맥주를 마신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에일인지, 라거인지, 버드인지, 호가튼인지, 4X인지, 그 맥주 맛은 어떤 것인지 묘사하는 것으로 족히 몇 페이지를 쓴다. 음악으로 멋을 부리고, 음식이 라이프 스타일이 자리 잡는다. 이는 칙릿 소설만의 경향은 아니다. 문학계의 보편적 현상으로 느낀다.

 

맥락 없는 한 컷의 사진은 많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맥락 없이 편집된 사진으로 구축된 정체성이 과연 나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사회적으로 알려진 사람들만 느꼈을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일반인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또는 포장된 모습으로 비춰지는 연예인도 일상에서 일반인과 얼마나 다른 삶을 살 수 있겠는가? 그들의 특별함의 토대 역시 인간 삶의 보편성이 자리하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두 개의 전혀 다른 삶이 개인의 정서에 미칠 영향을 가늠해보게 된다.

 

성형 효과와 같은 SNS 전시 효과

 

의사 선생과 얘기 나누던 중에 내가 성형효과에 대한 나의 의견을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외모 때문에 상처와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 적당한 스트레스로 자신감을 갖는 것이 정신 건강에는 훨씬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보톡스 같은 간단한 시술로 젊어진다면, 이 또한 긍정적이지 않을까? 의사 선생은 당장은 성형수술이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그것도 한시적이다. 시간이 지나면 본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되면, 그때 느끼는 공허함과 우울증이 더 심각할 것이라고 했다. 성형처럼 SNS 또한 내적 상실감으로 나타날 것이다. 보이는 삶과 실제의 삶의 괴리가 커질수록 정신적으로 힘들질 것은 당연하다.

 

일상에 집중하는 삶

 

일반인은 연예인과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연예인은 원치 않아도 대중에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있다. 하지만 일반인은 노출을 최소화하여 자신의 사적 삶을 지키는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때 비로소 현실에 집중하는 삶을 살 수 있다. 삶이란 원하는 모습만 편집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불어 SNS을 긍정적으로 활용하는 다양한 사례도 고찰해야 한다. ‘엄지손가락의 위대한 힘을 발휘하여 독재 정권을 물러나게 했던 사례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또한 읽고 쓰는 강제력이 있다는 면에서 블로그는 상당히 유용하다. 익명의 누군가에게 나를 검토하고 평가하는 것은 싫지만, 읽고 쓰는 강제력을 획득하는데 이만한 매체도 없다. 다만 쓰는 행위가 편견선입견속에서 평가되길 바라지 않는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은 아는 사람에게 블로그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페이스북 심리학은 쉽게 읽히는 책이다. 다루고 있는 주제의 무게가 가볍다는 의미는 아니다. 익숙해진 정보화 사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볼 수 있다. 이 책을 읽다보니, 쓰는 일은 자유, 공개하는 읽은 책임이라는 단순한 교훈 하나를 얻게 된다. 지워도 언제든 복구될 수 있는 인터넷 월드의 자료들. 좀 더 심사숙고하고, 메타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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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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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일, 김연수, 문학동네, 2014. 10.

 

최근 김연수의 에세이와 소설론을 읽으면서, 내가 그의 소설을 모두 읽었다는 것, 좋아하는 소설가 베스트 10’에 든다는 생각이 거짓임을 알았다.

그의 글을 읽던 시절, 나의 내적, 외적 조건이 소설에 집중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지나치게 바빴다.

문장과 문장의 빈틈을 사색으로 채울 여유가 없었다.

사회과학 서적을 읽듯, 플롯 중심으로 소설을 읽었다.

힘든 직장 생활, 대학원 수업 준비, 학위 논문이 한꺼번에 쏟아져서 나의 여유와 감성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이제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인지 충분히 알게 되었다.

아마도 이번 늦가을과 겨울은 온전히 김연수의 소설을 다시 읽는 일로 채워질 것이다.

적확하게 제대로 읽는 일, 작가와 독자가 벗으로 만나는 시간을 기대하며, 창작론과 소설론 또한 열심히 탐독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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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살아계실 때 함께 할 것들
신현림 지음 / 흐름출판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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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살아계실 때 함께 할 것들, 신현림, 흐름출판, 2011.

 

이십 년 전, 임시직 첫 직장에서 낯도 익히지 못했던 사수가 내게 물었다.

 

좋아해? <서른 잔치는 끝났다> 최영미, 좋아할 것 같은데

 

이십대 중반이었던 나는 김광석의 음악을 듣고, 최영미의 시를 읽는 사람이 이 땅에 얼마나 많은지 가늠하지 못했다. 김광석은 이미 천 번째 공연을 향해 가고 있었고, 최영미의 시는 몇 십 만부가 팔렸을 터. 그들의 음악과 시를 나만의 고유한 취향이라고 믿었다. 나의 내면을 들킨 것처럼 깜짝 놀라며, 사수에게 경외감을 느꼈다. 이 정도로 나를 아는 직관이라면, 믿고 따르겠다는 충성심이 저절로 생겼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직장에서 이런 선배를 만나게 된 건 천운이라고 생각했다. 그 시절의 나는 -  순수했다고 말하기에도 부끄러울 만큼 - 어처구니없는 청춘이었다.

 

최영미의 시만큼, 신현림의 <세기말 블루스>가 좋았다. 경계 없이 거침없이 넘나드는 세기말의 증후가 느껴지는 그녀의 시를 - 이성이 아닌 감성으로 - 읽고 또 읽고, 일기장에 필사했다. 이후 출판된 빵은 유쾌하다, 시간 창고로 가는 길도 좋았다. 하지만 <신현림의 싱글맘 스토리>부터 우리는 이제 저자와 열혈 독자에서 결별해야 할 시간이 왔음을 직감했다.

 

이번에 엄마 살아계실 때 함께 할 것들을 읽으며, 그 생각은 더욱 분명해졌다. 사진작가, 시인, 에세이스트. 세상의 규범에 포섭되지 않을 것 같았던 신현림은 착한 딸, 좋은 엄마,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행복을 찾는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 그 자체로 느껴졌다. 그녀의 생각에 딴지 걸 생각은 없다. 다만 젊은 미혼의 여성에게 다음과 같은 충고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시대가 아무리 변했어도 엄마들은 자식들 시집장가 보내는 일에 최고의 의미를 둔다. 이것은 부모의 본능이다. 자식이 제아무리 괜찮다 해도, 제아무리 잘 나가도 짝을 찾지 못하면 소용없는 일이 된다. 좋은 짝을 만나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 그것만 잘해도 당신은 이미 효녀다.(173)”

 

보건복지부의 건강사회 캠페인 문구 같다. 마치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이기적이라는 논리가 느껴진다. 저자는 결혼이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원하면, 노력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인생의 과업이 결혼이었던가? 자녀의 결혼이 부모 행복의 필요조건임은 인정한다. 자녀의 선택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부모의 사랑이다. 둘은 상보적 관계에 있다. 부모든, 자녀든 서로가 어떤 상태로 살게 되더라도 존중하고 지지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우리는 자기 윤리를 실천하며 주체적으로 살아가야 한다.

 

시절 인연이 다하면, 헤어져야 하는 모든 연인처럼, 독자도 떠나야 할 때가 오게 마련이니. “지루한 세상에 구두를던졌던 세기말 블루스의 저돌적인 신현림이 그립다. 나의 추억은 이만 접고, 하루하루 가족을 더 많이 사랑하고자 노력하며 결 고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신현림의 행복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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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
이오덕.권정생 지음 / 양철북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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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 이오덕·권정생 씀, 양철북, 2015.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는 이오덕 · 권정생 선생님께서 1973년부터 2002년까지 30년 동안 주고받으신 편지 모음입니다.

두 분께서 문우(文友)로 지내셨던 반평생의 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축복이었습니다.

병든 육신, 지독한 가난이 어린이와 세상을 품어 내는 동력이 되었던 권정생 선생님.

스물 이후 평생 교사로 사시면서, ‘우리 글 바로쓰기를 위해 애쓰셨던 이오덕 선생님.

권정생 선생님의 글을 귀히 여겨주었던 이오덕 선생님.

2003년 이오덕 선생님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권정생 선생님은 세상에서 사이좋다가 토라지기도 하면서살아가겠다고 하시더니, 몇 년 후 2007, ‘세상으로 가셨습니다.

평생 몸 편할 날이 없으셨던 두 분은 저 세상에서도 바쁘실 듯합니다.

두 분의 글을 읽고 재잘거릴 아이들의 소리가 끊이지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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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을린 예술 - 예술은 죽었다, 예술은 삶의 불길 속에서 되살아날 것이다
심보선 지음 / 민음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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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속물, 그 속에서 가까스로 인간-되기

그을린 예술, 심보선, 민음사, 2013.

 

텅 빈 우정에 대하여

 

심보선의 텅 빈 우정에 대한 분석을 보면서, 얼마 전 내가 목격했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퇴근길이었다. 교외의 한적한 길, 빨간 신호등에 멈춰 섰다. 강아지 한 마리가 다리를 다쳐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른 한쪽에 두 마리의 강아지가 상처로 웅크린 강아지를 바라보고 있다가 빨간 불이 켜져서 차가 정지하면, 쪼르르 달려와 다친 강아지 옆에서 깽깽 거린다. 다시 파란불로 바뀌고 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다시 길가로 나가 애처로운 눈길로 바라본다. (뒤차가 빵빵거려서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을 챙겨서) 나는 뻔뻔스럽게 제 갈 길을 향했다. 그 순간 나는 동물이 되었고, 그 강아지들은 텅 빈 우정으로 끝까지 함께하는 가까스로 인간되기를 실천했다.

 

예술가의 ()파업에 대하여

 

남보다 조금 일찍 명예(스러운) 퇴직을 하신 선생님이 부러웠다. 그의 보스(인 아내)의 동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어찌 지내시는지 궁금한 나의 안부 전화에 선생님은 담백하지만,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두 가지를 말씀하셨다.

 

웬만한 직장인 월급 벌려면 우리 아내가 하루에 커피 500잔을 팔아야 한다. 직장 생활이 힘들겠지만, 커피 오백 잔 판다는 맘으로 일해라.”

 

조금 야속하지만, 말씀하신 뜻은 충분히 이해했다. 그리고 이어 하시는 말씀.

 

직장에 다닐 때는 근무 시간에 시간을 훔칠 수 있었는데, 퇴직하니 이제 훔칠 시간이 없다.”

 

나는 이 말씀을 심보선이 말하는 예술가의 파업이라고 생각한다. 직장의 곳곳에서, 야근과 휴일근무와, 점심시간을 활용해서 글을 쓰고, 사색에 잠기는 것. 적들이 모르는 은밀한 개인적 파업은 시시 때때로 일어난다. 첫 번째 말씀이 체념이라면, 두 번째 말씀은 게릴라적 전술이다. <쇼생크 탈출>의 맥주 한잔이 자유라면, 우리 직장인의 글쓰기는 사적 파업일 수 있다. 언제가 사색과 성찰에 불이 붙는다면 사회적 파업으로 이어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자신의 불행을 거부하는 자유롭고 행복한 신체의 자격으로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 신체의 이름은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동일한 예속 상태에 처한 99퍼센트, 그 예속 상태로부터의 해방을 소망하는 99퍼센트, 바로 프레카리아트(precarious proletariat)이다(132).

 

(‘천사-되기)에서 지게꾼-되기

 

심보선의 책을 읽던 중, 한 시인의 특강을 들었다. 맛깔스럽게 시를 쓰는 중견 시인의 강의를 듣는 내내 머릿속이 산란했다. 책을 팔러 온 건지, 자신의 인맥을 자랑하러 온 건지 맥을 잡지 못하는 강의 탓에 영혼이 육체를 이탈하여 떠도는 기분이 들었다. “신간 책을 많이 사주시면, 자신도 이제 그만 분필(선생) 놓고, 시만 쓰겠다.”고 하신다. 시인은 바람직한 교육을 의도하지 않아도, 이미 존재 자체로 좋은 선생이었으리라 믿는다. 우리 선생이 명망 있는 시인이라는 것만으로도, 선생이 책을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아이들은 긍정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가 개인의 삶을 위무하고, 좋은 벗들과 원고지 값으로 나누는 삼겹살의 긍정 효과에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시의 무거움에 비하여 시인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이율배반적으로 느껴졌다. 내 삶도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독자로서 저자인 신보선의 빛을 나누는 친구가 된 느낌이다. 감당하기 벅차지만, 나의 위선적인 삶을 다시 성찰하며, 불투명과 딜레마의 안정된 상태’(!!!)로 나아간다.

 

조르주 아감벤은 우정이란 출생, , 장소, 취향이 아니라, “존재한다는 사실, 삶 자체의 나눔, 존재한다는 순수한 사실을 함께-지각함이라고 말했다. 독자가 창작자의 작품을 다시 알아본다는 것은 독자와 창작자가 함께 작품을 알아본다는 뜻이며 궁극적으로 작품을 통해 표현되고 구현된 삶을 함께 나누어 갖는다는 뜻이다. 그렇게 행복의 빛은 작가와 독자를 동등하게 비추며 서로의 비빌을 알아챈 친구 사이처럼 서로를 연결시켜 준다.(196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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