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을린 예술 - 예술은 죽었다, 예술은 삶의 불길 속에서 되살아날 것이다
심보선 지음 / 민음사 / 201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동물과 속물, 그 속에서 가까스로 인간-되기

그을린 예술, 심보선, 민음사, 2013.

 

텅 빈 우정에 대하여

 

심보선의 텅 빈 우정에 대한 분석을 보면서, 얼마 전 내가 목격했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퇴근길이었다. 교외의 한적한 길, 빨간 신호등에 멈춰 섰다. 강아지 한 마리가 다리를 다쳐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른 한쪽에 두 마리의 강아지가 상처로 웅크린 강아지를 바라보고 있다가 빨간 불이 켜져서 차가 정지하면, 쪼르르 달려와 다친 강아지 옆에서 깽깽 거린다. 다시 파란불로 바뀌고 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다시 길가로 나가 애처로운 눈길로 바라본다. (뒤차가 빵빵거려서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을 챙겨서) 나는 뻔뻔스럽게 제 갈 길을 향했다. 그 순간 나는 동물이 되었고, 그 강아지들은 텅 빈 우정으로 끝까지 함께하는 가까스로 인간되기를 실천했다.

 

예술가의 ()파업에 대하여

 

남보다 조금 일찍 명예(스러운) 퇴직을 하신 선생님이 부러웠다. 그의 보스(인 아내)의 동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어찌 지내시는지 궁금한 나의 안부 전화에 선생님은 담백하지만,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두 가지를 말씀하셨다.

 

웬만한 직장인 월급 벌려면 우리 아내가 하루에 커피 500잔을 팔아야 한다. 직장 생활이 힘들겠지만, 커피 오백 잔 판다는 맘으로 일해라.”

 

조금 야속하지만, 말씀하신 뜻은 충분히 이해했다. 그리고 이어 하시는 말씀.

 

직장에 다닐 때는 근무 시간에 시간을 훔칠 수 있었는데, 퇴직하니 이제 훔칠 시간이 없다.”

 

나는 이 말씀을 심보선이 말하는 예술가의 파업이라고 생각한다. 직장의 곳곳에서, 야근과 휴일근무와, 점심시간을 활용해서 글을 쓰고, 사색에 잠기는 것. 적들이 모르는 은밀한 개인적 파업은 시시 때때로 일어난다. 첫 번째 말씀이 체념이라면, 두 번째 말씀은 게릴라적 전술이다. <쇼생크 탈출>의 맥주 한잔이 자유라면, 우리 직장인의 글쓰기는 사적 파업일 수 있다. 언제가 사색과 성찰에 불이 붙는다면 사회적 파업으로 이어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자신의 불행을 거부하는 자유롭고 행복한 신체의 자격으로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 신체의 이름은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동일한 예속 상태에 처한 99퍼센트, 그 예속 상태로부터의 해방을 소망하는 99퍼센트, 바로 프레카리아트(precarious proletariat)이다(132).

 

(‘천사-되기)에서 지게꾼-되기

 

심보선의 책을 읽던 중, 한 시인의 특강을 들었다. 맛깔스럽게 시를 쓰는 중견 시인의 강의를 듣는 내내 머릿속이 산란했다. 책을 팔러 온 건지, 자신의 인맥을 자랑하러 온 건지 맥을 잡지 못하는 강의 탓에 영혼이 육체를 이탈하여 떠도는 기분이 들었다. “신간 책을 많이 사주시면, 자신도 이제 그만 분필(선생) 놓고, 시만 쓰겠다.”고 하신다. 시인은 바람직한 교육을 의도하지 않아도, 이미 존재 자체로 좋은 선생이었으리라 믿는다. 우리 선생이 명망 있는 시인이라는 것만으로도, 선생이 책을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아이들은 긍정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가 개인의 삶을 위무하고, 좋은 벗들과 원고지 값으로 나누는 삼겹살의 긍정 효과에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시의 무거움에 비하여 시인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이율배반적으로 느껴졌다. 내 삶도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독자로서 저자인 신보선의 빛을 나누는 친구가 된 느낌이다. 감당하기 벅차지만, 나의 위선적인 삶을 다시 성찰하며, 불투명과 딜레마의 안정된 상태’(!!!)로 나아간다.

 

조르주 아감벤은 우정이란 출생, , 장소, 취향이 아니라, “존재한다는 사실, 삶 자체의 나눔, 존재한다는 순수한 사실을 함께-지각함이라고 말했다. 독자가 창작자의 작품을 다시 알아본다는 것은 독자와 창작자가 함께 작품을 알아본다는 뜻이며 궁극적으로 작품을 통해 표현되고 구현된 삶을 함께 나누어 갖는다는 뜻이다. 그렇게 행복의 빛은 작가와 독자를 동등하게 비추며 서로의 비빌을 알아챈 친구 사이처럼 서로를 연결시켜 준다.(19619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