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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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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사회』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4. 3.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

나는 그것으로 살아간다.

-피터 한트케

 

무대 장치를 공부하는 제자에게 연락이 왔다. 블로그에 링크한 뮤직비디오가 저작권 침해로 벌금을 내야한다는 것이다. 로펌에서 저작권을 침해한 블로거들을 상대로 한꺼번에 소송을 한 모양이다. 상당한 금액의 예상치 않은 벌금을 내야하는 제자의 심난한 심정도 이해가 되고, 수익을 위해서 스스로 범법 행위를 찾아 나선 브로커 로펌의 상황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제자의 블로그를 천천히 들여다보다 보니, 그 아이와 24시간을 함께 보내는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기장처럼, 투명해도 너무 투명한 일상이었다. 블로그만 살펴보아도 그 아이의 의식주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지경이었다. 심지어 삶의 목적이 광고의 대상이 되는 것인 양,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드러난 것만이 존재한다.

 

90년대 후반부터 카페는 안이 들여다보이는 구조로 바뀌었고, 대형 빌딩도 건물 외벽을 거울로 바꾸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까지 투명해졌다. 가수 박진영의 속옷이 훤히 비치는 ‘비닐’ 의상도 투명 사회 흐름에 한몫했다. 성형수술과 과도한 다이어트도 더 이상 금기거나 감추어야 하는 수치가 아니다. 그 과정을 방송에서 낱낱이 공개하기까지 한다. 용기 있는 선택이라고 격려 받는다. 오히려 성형과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 사람을 자기 관리에 철저하지 않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도처에 설치된 CCTV는 어느 날 내가 사라진다 해도 사라지기 직전까지의 시간을 복구해낼 것이다. 고유성을 가진 나의 성소는 의미도 존재 가치도 없다. 전시가치의 관점에서 볼 때 존재하는 것 자체는 아무런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자기 안에 조용히 있는 것, 홀로 머물러 있는 것은 더 이상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29쪽). 최대한 눈에 띌 수 있게 전시(展示)할 때 사물과 사물은 가치를 획득한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 선생님의 신간 『투명사회』는 얇은 책의 물리적 두께와 반비례하는 깊이 있는 성찰을 제공한다. 현 시대를 설명할 수 있는 두 개의 키워드, ‘피로’와 ‘투명’으로 니체를 떠올리는 서법(書法)으로 고유한 사유를 펼쳐나간다. (자의식의 선택으로 여겨지지만) 실제는 피로와 투명함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조건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세 시간의 장거리 이동 시간에 고속버스에서 펼쳐 읽으며 ‘금방’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것이라도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심장의 요구로 밑줄을 긋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밑줄을 긋지 않아야 하는 부분이 더 적어서 그냥 읽기만 하였다. 두 편의 논문 분량에 지나지 않는 책이었으나, 가방 안에 가지고 다니면서 많은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된 책이다.

 

‘유리 인간’은 인터넷, 스마트폰과 함께 신자유주의의 결합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인터넷은 사적인 이야기로 넘쳐 난다. 현재를 즐기기보다는 과시와 기록을 위해 저장하는 일에 더 몰두한다. 이 또한 21세기 라이프스타일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듯도 하다. 인간이라는 종족이 원래 기록을 생명처럼 아는 축적성으로 진화했는지도 모를 일이므로. 자기계발의 의지나 혹독하게 자신을 단련할 것은 요구하는 신자유주의는 모두에게 ‘투명’할 것을 강요한다. 폭력적인 미시 권력은 개인의 삶을 표출할 것을 호출한다. 자발성에 기초한 디지털 통제사회에서 우리는 누가 더 많이, 더 빨리 노출하는가에서 성취욕, 쾌감, 권력을 맛본다.

 

관계의 최소 거리에서 불투명하기

 

끝없이 쏟아지는 자기계발서의 논리는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한다. 긍정하고 또 긍정할 것, 주어진 현실을 탓하지 않을 때 우리는 성공할 수 있다는 아편을 주입한다. 이 책의 미덕은 우리 모두 공감하는 ‘투명성’이 시대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임을 명확하게 논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벤덤의 판옵티콘은 18세기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았다. 전후좌우에서 감시와 통제가 이루어진다. 우리 도처에 일어나고 있는 일상다반사가 투명사회 이데올로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 상당수가 동의할 것이다. 2장 ‘디지털의 풍경들’을 읽다 보면 가족, 직장, 친구와의 관계에서 미시권력이 작동되는 여러 모습들이 환등처럼 생각을 밝힌다. 타자를 극복할 수 없는 ‘부정성’과 온전히 알 수 없는 ‘불투명성’을 주장하는 책에서 역설적인 위안을 받게 되는 것은 그만큼 긍정과 투명이 주는 피로감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부정과 불투명은 서로를 온전히 지킬 수 있는 관계의 최소 거리다.

 

투명함은 자아와 타자의 관계를 전제한다. 상대의 투명함에 대한 답례는 나의 투명함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조차도 완벽하게 알 수 없는 숙명을 타고난 존재다. “완벽하게 안다는 것, 심리를 끝까지 파헤쳤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취해 있지 않았었는데도 술에서 깬 듯 정신이 번쩍 들고, 인간관계의 활력도 사라진다(17쪽). 친밀한 관계에서조차 내면의 사유재산을 존중하고 질문의 권리를 비밀의 권리로 제한하는 섬세함과 자제력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18쪽). 계속해서 동어반복으로 변주되는 투명사회 이야기가 지루하다고 생각할 수 없는 공명을 이끌어낸다. 긍정사회 · 전시사회 · 명백사회 · 포로노사회 · 가속사회 · 친밀사회 · 정보사회 · 폭로사회 · 통제사회는 투명사회와 하나로 관통하는 이음동어(異音異音)들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전망 좋은 동남향이다. 하루 종일 거실과 모든 방에 빛이 가득하다. 처음 이사 오면서 북향에 있는 죽은 공간이 한 곳도 없다고 행복해했다. 계절이 바뀌면서 깨닫는 것은 사람은 어둠 속에서 먼지 아이로 성장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어렸을 때 살았던 집의 벽장과 다락이 나만의 성소였고, 하루 종일 볕이 들지 않는 북향의 가장 작은 방 하나가 자궁처럼 편안했던 유년의 시간이 있었다. 어딘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자신만의 심적, 물적 공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우리 인간은 알게 모르게 신경증에 걸리게 될 것이다. 명확하지 않고 비가시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자꾸 생각하게 되는 5월이다. 몸과 마음 모두 너무 조금 두터운 외투를 걸치고 - 자제력을 가지고 침잠(沈潛)하고 싶은 - ‘찬란한 슬픔’의 봄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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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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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성과 불투명성 - 자기와 타인 배려의 윤리

『투명사회』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4. 3.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

나는 그것으로 살아간다.

-피터 한트케

 

무대 장치를 공부하는 제자에게 연락이 왔다. 블로그에 링크한 뮤직비디오가 저작권 침해로 벌금을 내야한다는 것이다. 로펌에서 저작권을 침해한 블로거들을 상대로 한꺼번에 소송을 한 모양이다. 상당한 금액의 예상치 않은 벌금을 내야하는 제자의 심난한 심정도 이해가 되고, 수익을 위해서 스스로 범법 행위를 찾아 나선 브로커 로펌의 상황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제자의 블로그를 천천히 들여다보다 보니, 그 아이와 24시간을 함께 보내는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기장처럼, 투명해도 너무 투명한 일상이었다. 블로그만 살펴보아도 그 아이의 의식주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지경이었다. 심지어 삶의 목적이 광고의 대상이 되는 것인 양,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드러난 것만이 존재한다.

 

90년대 후반부터 카페는 안이 들여다보이는 구조로 바뀌었고, 대형 빌딩도 건물 외벽을 거울로 바꾸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까지 투명해졌다. 가수 박진영의 속옷이 훤히 비치는 ‘비닐’ 의상도 투명 사회 흐름에 한몫했다. 성형수술과 과도한 다이어트도 더 이상 금기거나 감추어야 하는 수치가 아니다. 그 과정을 방송에서 낱낱이 공개하기까지 한다. 용기 있는 선택이라고 격려 받는다. 오히려 성형과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 사람을 자기 관리에 철저하지 않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도처에 설치된 CCTV는 어느 날 내가 사라진다 해도 사라지기 직전까지의 시간을 복구해낼 것이다. 고유성을 가진 나의 성소는 의미도 존재 가치도 없다. 전시가치의 관점에서 볼 때 존재하는 것 자체는 아무런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자기 안에 조용히 있는 것, 홀로 머물러 있는 것은 더 이상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29쪽). 최대한 눈에 띌 수 있게 전시(展示)할 때 사물과 사물은 가치를 획득한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 선생님의 신간 『투명사회』는 얇은 책의 물리적 두께와 반비례하는 깊이 있는 성찰을 제공한다. 현 시대를 설명할 수 있는 두 개의 키워드, ‘피로’와 ‘투명’으로 니체를 떠올리는 서법(書法)으로 고유한 사유를 펼쳐나간다. (자의식의 선택으로 여겨지지만) 실제는 피로와 투명함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조건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세 시간의 장거리 이동 시간에 고속버스에서 펼쳐 읽으며 ‘금방’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것이라도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심장의 요구로 밑줄을 긋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밑줄을 긋지 않아야 하는 부분이 더 적어서 그냥 읽기만 하였다. 두 편의 논문 분량에 지나지 않는 책이었으나, 가방 안에 가지고 다니면서 많은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된 책이다.

 

‘유리 인간’은 인터넷, 스마트폰과 함께 신자유주의의 결합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인터넷은 사적인 이야기로 넘쳐 난다. 현재를 즐기기보다는 과시와 기록을 위해 저장하는 일에 더 몰두한다. 이 또한 21세기 라이프스타일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듯도 하다. 인간이라는 종족이 원래 기록을 생명처럼 아는 축적성으로 진화했는지도 모를 일이므로. 자기계발의 의지나 혹독하게 자신을 단련할 것은 요구하는 신자유주의는 모두에게 ‘투명’할 것을 강요한다. 폭력적인 미시 권력은 개인의 삶을 표출할 것을 호출한다. 자발성에 기초한 디지털 통제사회에서 우리는 누가 더 많이, 더 빨리 노출하는가에서 성취욕, 쾌감, 권력을 맛본다.

 

관계의 최소 거리에서 불투명하기

 

끝없이 쏟아지는 자기계발서의 논리는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한다. 긍정하고 또 긍정할 것, 주어진 현실을 탓하지 않을 때 우리는 성공할 수 있다는 아편을 주입한다. 이 책의 미덕은 우리 모두 공감하는 ‘투명성’이 시대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임을 명확하게 논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벤덤의 판옵티콘은 18세기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았다. 전후좌우에서 감시와 통제가 이루어진다. 우리 도처에 일어나고 있는 일상다반사가 투명사회 이데올로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 상당수가 동의할 것이다. 2장 ‘디지털의 풍경들’을 읽다 보면 가족, 직장, 친구와의 관계에서 미시권력이 작동되는 여러 모습들이 환등처럼 생각을 밝힌다. 타자를 극복할 수 없는 ‘부정성’과 온전히 알 수 없는 ‘불투명성’을 주장하는 책에서 역설적인 위안을 받게 되는 것은 그만큼 긍정과 투명이 주는 피로감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부정과 불투명은 서로를 온전히 지킬 수 있는 관계의 최소 거리다.

 

투명함은 자아와 타자의 관계를 전제한다. 상대의 투명함에 대한 답례는 나의 투명함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조차도 완벽하게 알 수 없는 숙명을 타고난 존재다. “완벽하게 안다는 것, 심리를 끝까지 파헤쳤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취해 있지 않았었는데도 술에서 깬 듯 정신이 번쩍 들고, 인간관계의 활력도 사라진다(17쪽). 친밀한 관계에서조차 내면의 사유재산을 존중하고 질문의 권리를 비밀의 권리로 제한하는 섬세함과 자제력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18쪽). 계속해서 동어반복으로 변주되는 투명사회 이야기가 지루하다고 생각할 수 없는 공명을 이끌어낸다. 긍정사회 · 전시사회 · 명백사회 · 포로노사회 · 가속사회 · 친밀사회 · 정보사회 · 폭로사회 · 통제사회는 투명사회와 하나로 관통하는 이음동어(異音異音)들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전망 좋은 동남향이다. 하루 종일 거실과 모든 방에 빛이 가득하다. 처음 이사 오면서 북향에 있는 죽은 공간이 한 곳도 없다고 행복해했다. 계절이 바뀌면서 깨닫는 것은 사람은 어둠 속에서 먼지 아이로 성장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어렸을 때 살았던 집의 벽장과 다락이 나만의 성소였고, 하루 종일 볕이 들지 않는 북향의 가장 작은 방 하나가 자궁처럼 편안했던 유년의 시간이 있었다. 어딘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자신만의 심적, 물적 공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우리 인간은 알게 모르게 신경증에 걸리게 될 것이다. 명확하지 않고 비가시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자꾸 생각하게 되는 5월이다. 몸과 마음 모두 너무 조금 두터운 외투를 걸치고 - 자제력을 가지고 침잠(沈潛)하고 싶은 - ‘찬란한 슬픔’의 봄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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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의 도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반란의 도시 -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점령운동까지
데이비드 하비 지음, 한상연 옮김 / 에이도스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사회 구조와 실천의 결합으로 이념을 구현하는 사회적 공간으로서의 도시

 

반란의 도시 -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점령운동까지, 데이비드 하비 지음, 한상연 옮김, 에이도스, 2014. 3.

 

정기용 건축 작품집 - 1986년부터 2010년까지, 정기용 지음, 현실문화, 2011. 7.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640229

 

 

 

정기용 선생님의 건축 작품집을 다시 읽는다. 그것은 건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삶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섬세한 안내서다. 곳곳에 선생님의 삶의 미학에 심취한다. 다큐 ,말하는 건축>에서 선생님의 건축적 사유에 공감하면서, 그의 철학이 담긴 풍부한 도면과 사진을 다시 본다. 주변과의 조화 속에서 튀지 않고, 사연을 만들어가는 건축물을 구현해 나가는 그의 모습이 여전히 눈에 선하다.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 흔적과 상상, 건축가 오기사의 서울 이야기, 오영욱 지음, 페이퍼스토리, 2012. 5.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583480

 

 

 

 

다시 오기사의 서울 이야기를 읽고 본다. 그것은 건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과거의 흔적에서 상상을 길어 올리고, 추억을 사랑하는 한 청춘의 이야기다. 발터 벤야민식의 관찰하는 시선은 이전의 건축과 다른 메시지를 전달한다. 공간은 시간의 흔적에 관한 모자이크다. 엔틱이라는 미명 아래 새것도 낡은 것으로 탈바꿈하여 상품화는 것에 대한 그의 이야기라든가, 서태지가 소유한 건물에서 건축주의 미학이 살아나지 않는 점에 대한 생각에 공감하며 잔잔하게 펼쳐볼 수 있다.

 

반란의 도시를 펼치며...

 

나이를 먹나 보다. 사람과 사람의 경계, 공간 지리학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싹튼다. 물리적 공간은 사람의 의식을 지배한다. 앞만 보고 달리는 청춘의 시절에는 시간이 삶의 지표였다. 시간의 효율성으로 삶은 의미를 갖는 것처럼 보였다. 풍요와 비옥함의 생성이 시간으로 이루어진다면, 공간은 고정되어 있는 정지된 영역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제 시간이 중첩되고, 추억이 켜켜이 쌓여서 한 개인의 삶을 지배하는 공간에 오랫동안 천착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리적 공간이 사회적 공간으로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물리적 공간을 가득 채운 시간의 궤적이 보이기 시작한다.

 

건축 관련 서적 사이에서 읽기 시작한 신간 도서 데이비드 하비의 반란의 도시는 자본이 지배하면서 도시 주변부로 밀려난 99%도시에 대한 권리를 이야기한다. 앞서 언급한 두 책이 연성(軟性)이라면, 반란의 도시는 경성(硬性)으로 도시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반란을 다루고 있다. 하비가 차용하여 사용하는도시에 대한 권리는 생태주의자 르페브르가 구상한 개념이다. 그는 도시가 자본주의 발전에 따른 계급적 예속과 대립을 심화시키는 착취와 지배의 중심이자, 동시에 구성원에게 진정한 공통 이익을 고취시키고 변혁을 창출하는 장소로서 양면성을 지닌다고 하였다. 도시는 단순히 행위자들이 거주하는 물리적 공간이면서, 동시에 사회 구조와 실천 행위의 결합이 역사적으로 축적되어 특정한 사회 질서와 이념을 구현하는 사회적 공간이다(이성민, 2013, 한국교원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 장세룡(2006)의 글 재인용).

 

 

도시가 누구의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자본으로 흡수된 도시에 대한 권리를 되찾기 위한 투쟁으로 이어진다. (이질성의 차이의 공간인) ‘헤테로토피아(자본이 만들어내는 합리화의 공간인) ‘이소토피사이에서 만들어지는 변증법적 공간 창출이 도시의 권리를 되찾는 최선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성장 우선의 신자유주의는 도시를 하나의 상품으로 소비한다. 엘리트가 추구하는 입장이 보편성을 획득하여 도시 정책을 정당화한다. 쇼핑몰, 멀티플렉스, 대형매장, 패스트푸드점, 수제품 시장, 부티크 문화(43)가 도시를 가득 채운다. 지대 수익을 최대화하기 위해서 저소득층과 증간소득 세대는 도시 중심부에서 내몰렸고, 이로 이해 계급 격차는 더욱 벌어졌으며, 아무 특권도 누리지 못하는 주민의 복리에 악영향을 미쳤다(66). 급속한 도시화를 이끈 추동력은 자본이었다.

 

재력이 풍부하고 신용이 높은 사람이 부동산을 매수하고 나면 그 다음으로는 그보다 소득이 낮고 위험이 높은 계층이 부동산을 매수하고, 맨 마지막으로 수입과 자산이 없는 계층도 부동산 매수에 뛰어든다. 이들은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는 한 부동산 전매를 통해 이득을 올릴 수 있다. 이런 일은 버블이 터질 때까지 계속된다. 금융기관은 수수료 수입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버블을 최대한 오래 유지해야 하는 강력한 유인이 되는 셈이다(94).

 

저자 데이비드 하비는 자본이 다양한 방식으로 도시화과정을 재생산하는 과정을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논증 자료로 활용한다. 미국 뿐 아니라, 유럽, 중국 등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에게 삼성 공화국이 낯설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본가 계급은 국가기구는 뿐 아니라 일반 주민을 지배한다. 이런 지배 수준에 도달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도시 그 자체를 만들어내는 도시 형성 과정은 정치투쟁, 사회투쟁, 계급투쟁이 일어나는 주요한 장소다(122).

 

도시에 대한 권리를 되찾기 위한 산발적인 대항 운동이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도시 공간은 정치 활동과 저항의 중요한 장소로 기능한다(205). 투쟁의 방식으로 머레이 북친이 주장하는 연합주의와 엘리너 오스트롬이 내세우는 다극적 거버넌스는 수용할 만하다. 국가를 대신하는 지자체 회의의 연합 네트워크는 지자체가 공개적 회의의 장에서 시민기구가 되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방식이다. 단 하비가 진단한 것처럼 이 또한 - 하트와 네그리가 주장한 공동체처럼 국가 시스템으로 기능하는 한계를 갖는다. “공동체에 가입하지 않은 개인에게 가해질 억압(256)”을 경시하기 때문이다.

 

보수든 진보든 다양한 이유로 자신들만의 공유재화를 실천하고 있지만,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 우리만의 리그라는 점에서 별반 다르지 않다. 문화인들의 마을, 정치적 공동 행동을 추구하는 코뮌에 가서 느끼는 점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외부 세계와 이질적인 사람들에 대한 배척일 때가 더러 있었다. 지난 30년간 신자유주의의 긴축정책으로 줄어든 공공재를 확대하기 위한 투쟁이 요구된다.

 

도시의 공기는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현재의 상황에 대한 계급 전쟁이 존재한다. 내가 속한 계급, 부자계급은 이 전쟁을 먼저 시작했고, 지금 한창 이기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유일한 문제는 언제 민중이 반격을 가할 것인가이다라고 말한 (102) 워런 버핏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도시의 공기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 소외되어 있는 99%의 연합 이외의 방법은 없다. 이 지점에서 화두로 떠오르는 것은 어떻게 99%가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있는가에 대한 방법론이다. 불평등을 허용하고 재생산하는 정치권력의 불평등에 대한 점령 운동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정확한 답은 (하비가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정확한 질문에서 시작될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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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의 도시 -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점령운동까지
데이비드 하비 지음, 한상연 옮김 / 에이도스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사회 구조와 실천의 결합으로 이념을 구현하는 사회적 공간으로서의 도시

 

반란의 도시 -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점령운동까지, 데이비드 하비 지음, 한상연 옮김, 에이도스, 2014. 3.

 

정기용 건축 작품집 - 1986년부터 2010년까지, 정기용 지음, 현실문화, 2011. 7.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640229    

 

 

 

정기용 선생님의 건축 작품집을 다시 읽는다. 그것은 건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삶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섬세한 안내서다. 곳곳에 선생님의 삶의 미학에 심취한다. 다큐 ,말하는 건축>에서 선생님의 건축적 사유에 공감하면서, 그의 철학이 담긴 풍부한 도면과 사진을 다시 본다. 주변과의 조화 속에서 튀지 않고, 사연을 만들어가는 건축물을 구현해 나가는 그의 모습이 여전히 눈에 선하다.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 흔적과 상상, 건축가 오기사의 서울 이야기, 오영욱 지음, 페이퍼스토리, 2012. 5.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583480

 

 

 

 

다시 오기사의 서울 이야기를 읽고 본다. 그것은 건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과거의 흔적에서 상상을 길어 올리고, 추억을 사랑하는 한 청춘의 이야기다. 발터 벤야민식의 관찰하는 시선은 이전의 건축과 다른 메시지를 전달한다. 공간은 시간의 흔적에 관한 모자이크다. 엔틱이라는 미명 아래 새것도 낡은 것으로 탈바꿈하여 상품화는 것에 대한 그의 이야기라든가, 서태지가 소유한 건물에서 건축주의 미학이 살아나지 않는 점에 대한 생각에 공감하며 잔잔하게 펼쳐볼 수 있다.

 

반란의 도시를 펼치며...

 

나이를 먹나 보다. 사람과 사람의 경계, 공간 지리학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싹튼다. 물리적 공간은 사람의 의식을 지배한다. 앞만 보고 달리는 청춘의 시절에는 시간이 삶의 지표였다. 시간의 효율성으로 삶은 의미를 갖는 것처럼 보였다. 풍요와 비옥함의 생성이 시간으로 이루어진다면, 공간은 고정되어 있는 정지된 영역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제 시간이 중첩되고, 추억이 켜켜이 쌓여서 한 개인의 삶을 지배하는 공간에 오랫동안 천착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리적 공간이 사회적 공간으로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물리적 공간을 가득 채운 시간의 궤적이 보이기 시작한다.

 

건축 관련 서적 사이에서 읽기 시작한 신간 도서 데이비드 하비의 반란의 도시는 자본이 지배하면서 도시 주변부로 밀려난 99%도시에 대한 권리를 이야기한다. 앞서 언급한 두 책이 연성(軟性)이라면, 반란의 도시는 경성(硬性)으로 도시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반란을 다루고 있다. 하비가 차용하여 사용하는도시에 대한 권리는 생태주의자 르페브르가 구상한 개념이다. 그는 도시가 자본주의 발전에 따른 계급적 예속과 대립을 심화시키는 착취와 지배의 중심이자, 동시에 구성원에게 진정한 공통 이익을 고취시키고 변혁을 창출하는 장소로서 양면성을 지닌다고 하였다. 도시는 단순히 행위자들이 거주하는 물리적 공간이면서, 동시에 사회 구조와 실천 행위의 결합이 역사적으로 축적되어 특정한 사회 질서와 이념을 구현하는 사회적 공간이다(이성민, 2013, 한국교원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 장세룡(2006)의 글 재인용).

 

 

도시가 누구의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자본으로 흡수된 도시에 대한 권리를 되찾기 위한 투쟁으로 이어진다. (이질성의 차이의 공간인) ‘헤테로토피아(자본이 만들어내는 합리화의 공간인) ‘이소토피사이에서 만들어지는 변증법적 공간 창출이 도시의 권리를 되찾는 최선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성장 우선의 신자유주의는 도시를 하나의 상품으로 소비한다. 엘리트가 추구하는 입장이 보편성을 획득하여 도시 정책을 정당화한다. 쇼핑몰, 멀티플렉스, 대형매장, 패스트푸드점, 수제품 시장, 부티크 문화(43)가 도시를 가득 채운다. 지대 수익을 최대화하기 위해서 저소득층과 증간소득 세대는 도시 중심부에서 내몰렸고, 이로 이해 계급 격차는 더욱 벌어졌으며, 아무 특권도 누리지 못하는 주민의 복리에 악영향을 미쳤다(66). 급속한 도시화를 이끈 추동력은 자본이었다.

 

재력이 풍부하고 신용이 높은 사람이 부동산을 매수하고 나면 그 다음으로는 그보다 소득이 낮고 위험이 높은 계층이 부동산을 매수하고, 맨 마지막으로 수입과 자산이 없는 계층도 부동산 매수에 뛰어든다. 이들은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는 한 부동산 전매를 통해 이득을 올릴 수 있다. 이런 일은 버블이 터질 때까지 계속된다. 금융기관은 수수료 수입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버블을 최대한 오래 유지해야 하는 강력한 유인이 되는 셈이다(94).

 

저자 데이비드 하비는 자본이 다양한 방식으로 도시화과정을 재생산하는 과정을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논증 자료로 활용한다. 미국 뿐 아니라, 유럽, 중국 등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에게 삼성 공화국이 낯설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본가 계급은 국가기구는 뿐 아니라 일반 주민을 지배한다. 이런 지배 수준에 도달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도시 그 자체를 만들어내는 도시 형성 과정은 정치투쟁, 사회투쟁, 계급투쟁이 일어나는 주요한 장소다(122).

 

도시에 대한 권리를 되찾기 위한 산발적인 대항 운동이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도시 공간은 정치 활동과 저항의 중요한 장소로 기능한다(205). 투쟁의 방식으로 머레이 북친이 주장하는 연합주의와 엘리너 오스트롬이 내세우는 다극적 거버넌스는 수용할 만하다. 국가를 대신하는 지자체 회의의 연합 네트워크는 지자체가 공개적 회의의 장에서 시민기구가 되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방식이다. 단 하비가 진단한 것처럼 이 또한 - 하트와 네그리가 주장한 공동체처럼 국가 시스템으로 기능하는 한계를 갖는다. “공동체에 가입하지 않은 개인에게 가해질 억압(256)”을 경시하기 때문이다.

 

보수든 진보든 다양한 이유로 자신들만의 공유재화를 실천하고 있지만,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 우리만의 리그라는 점에서 별반 다르지 않다. 문화인들의 마을, 정치적 공동 행동을 추구하는 코뮌에 가서 느끼는 점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외부 세계와 이질적인 사람들에 대한 배척일 때가 더러 있었다. 지난 30년간 신자유주의의 긴축정책으로 줄어든 공공재를 확대하기 위한 투쟁이 요구된다.

 

도시의 공기는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현재의 상황에 대한 계급 전쟁이 존재한다. 내가 속한 계급, 부자계급은 이 전쟁을 먼저 시작했고, 지금 한창 이기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유일한 문제는 언제 민중이 반격을 가할 것인가이다라고 말한 (102) 워런 버핏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도시의 공기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 소외되어 있는 99%의 연합 이외의 방법은 없다. 이 지점에서 화두로 떠오르는 것은 어떻게 99%가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있는가에 대한 방법론이다. 불평등을 허용하고 재생산하는 정치권력의 불평등에 대한 점령 운동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정확한 답은 (하비가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정확한 질문에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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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한다는 것에 대하여- 상실한 사람들을 위한 애도심리학』 채정호 지음, 생각속의집, 2014. 4.

이 생(生)에서 다시 만날 수 없는 ‘이별’이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넘어서 이전의 삶으로 복구될 수 없는 깊은 상처로 남는다. 살아남았다는 자책감, 주변에 대한 원망, 사건 이전의 사태를 가정법으로 복구하면서 현존할 수 없게 된다. 화인(火印)의 상처는 지워지지 않고, 살아남은 자의 삶을 파괴한다. 살아도 살아있는 것이 아닌 삶을 극복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함께 성찰해야 할 시간이다.

 

 

 

 

 

 

 

 

 

 

 

 

 

 

『참을 수 없는 거짓말의 유혹』, 리아 헤이거 코헨 지음, 서정민 옮김, 생각과사람들, 2014. 4.

『The Reader』가 떠오른다. 문맹을 밝히는 것이 범죄자라는 오명을 얻는 것보다 더 두려운 여자. 거짓말의 유혹은 지극히 사적인 것인지, 집단적인 것인지에 대한 사회학적 고민을 함께 해볼 책이 출간되었다. 무지에 대한 공포가 자연스럽게 거짓말로 이어지고, 인종, 성별, 연령, 권력 등에 따라서 그 유혹의 강도와 방식이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지 궁금하다.

 

 

 

 

 

 

 

 

 

 

 

 

 

 

 

『옹호자들』, 손아람 외 지음, 궁리, 2014 4.

2014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이란 영화 <진실은 불타지 않는다>를 보았다. 진실을 검열하고 통제하고 생산하는 모든 과정에 ‘국가 권력’이 있다. 국가요원들은 잔혹한 여론(언론) 탄압을 아주 ‘성실하게’ 수행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경계에서 싸울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평온한 일상의 이면에서 목숨을 걸고 투쟁했던 사람들의 지난 오년. 미네르바에서 용산참사까지 말 못 하는 이들의 목소리로 살고자 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되어 준 변호사들의 투쟁기가 여기 있다.

 

 

 

 

 

 

 

 

 

 

 

 

 

 

 

『진보의 착각 - 당신이 진보라 부르는 것들에 대한 오해와 논쟁의 역사』, 크리스토퍼 래시 지음, 이희재 옮김, 휴머니스트, 2014. 4.

“소비도 이념으로 하냐?”는 정용진 이마트 사장, 국민의 미개한 정서를 꼬집는 정몽준의 아들의 SNS에 올린 글들을 보면서, 그들에게 서민(국민)은 합리적 이성이 없는 불가촉 천민쯤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한다는 사족을 달면서, 나 또한 그들과 다른 입장에서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가질 수 없다. 나는 여전히 소비를 이념으로 하지 않으면 부끄럽고, 내 존재 기반에 바탕을 둔 감정으로 사는 ‘미개한 국민 정서’를 가진 한 사람으로서 ‘진보’에 기댈 수밖에 없다. 진보가 장밋빛 미래는 아닐지라도 끊임없이 함께 고민하고 더 나은 방향을 고민하는 ‘서민의 철학’이기 때문이다.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 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김동광 옮김, 현암사, 2014. 4

원작은 1991년이다. 나의 아킬레스건인 자연과학 이야기만은 아니라는데 위안을 받으며 지평을 좀 넓혀볼까 한다. 과학(사)를 배경 삼아서 철학, 신학, 영화가지 넘나든다고 하니, 유머에서 쉬어가며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될 것이다. 이질적인 주제들을 통합하는 소통의 힘을 발휘하는 책일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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