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좋긴 좋은가 봅니다. 날은 많이 추워도, 두터운 코트 한 겹을 벗었다고 마음이 조금 가벼운 걸 보니 말입니다. 1월에 세웠던 계획, 2월에 다짐했던 결심 변함없으신가요? 3월도 막바지입니다. 다음 달 '내맘책'은 꽃구경이 한창일 때 올라오겠네요. 따뜻한 봄나들이에 몸과 마음 다 녹았으면 좋겠습니다.

"절판본의 귀환"

<이와 손톱>을 처음 읽은 것은 중학교 때였다.(어언 십수년 전. -_-;) 해문의 애거서 크리스티 빨간 색 문고판 80권을 다 읽고 난 후 무얼 읽을까 찾다가 우연히 잡게 된 것이 자유추리문고였는데, 그중 한 권이 바로 <이와 손톱>이었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났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렇게 완벽한 완전범죄가 가능하다니!" 전혀 상관없어 보이던 두 줄기의 이야기가 전개되다 겹쳐지는 구성과 독자의 뒤통수를 치는 결말은 이제 너무 흔해졌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띵' 하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 생애 처음 만나는 반전이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정말 오랫동안 이 책의 재출간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보아도 예전만큼 재미있을까 기대 반, 두려움 반 뒤섞인 감정으로... 물론 예전만큼 놀랍거나 충격적인 감흥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고전'으로 남은 작품 특유의 아우라는 여전하여 반가웠다. 다시 생각해도 여전히 최고의 복수담인 것은 확실하다.(마지막 한 장만으로 충분하다.)

오랜 세월 묻혀있던 <이와 손톱>에 비해 <엔더의 게임>은 절판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는 사람만 아는(?) 재미있는 SF 소설이다.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동시에 수상한 올슨 스콧 카드의 대표작으로 생명에 대한 연민과 통찰, 소통의 문제, 인간성과 조직에 대한 성찰이 담긴 수작이다. 무엇보다 쉽고 재미있게 읽히기 때문에 SF에 입문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작품이기도. 이 책은 엔더 위긴 시리즈의 오프닝이기도 한데, 사실 가장 큰 감동은 <엔더의 게임> 다음 작품인 <사자의 대변인>에서 느낄 수 있으므로, 이 작품 역시 곧이어 출간되기를 바란다.




"올바른 문화 생활"

올바른 문화 생활이란 게 대체 뭘까. 찌든 일상을 날려버릴 한 순간? 온 몸을 움직이며 땀으로 생명을 체감하는 것? 말도 못하게 재미있어서 페이지 넘기는 것도 아까운 이야기들? 아무려나 일상 속에 기적처럼 솟아올랐던, 놓치고 싶지 않았으나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에 대한 이야기 몇 개.

1. <이와 손톱>은 반전이 기가 막힌 작품이라 알려졌지만 사실 그 반전이 일어나기 전의 이야기들이 더 재미있다. 서커스 유랑단, 유쾌한 마술사, 달콤한 러브 스토리, 아마도 중절모와 레인코트가 범람했을 뉴욕의 어떤 시절 등등이 그렇다. 더욱이 아름다운 것은 바로 그 대단하다는 '반전'이 끝난 이후.

2. 시간제 연인과 정규직 친구. 사려 깊은 행동과 애정에서 우러난 배려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판타지 [주노]. 소닉 유쓰가 부른 '슈퍼스타', 벨 앤 세바스찬의 '피아자, 뉴욕(메츠) 포수' 등 익숙한 트랙도 반갑다. 가장 인상적인 평은 "현실의 인간들도 그들처럼 위트있는 대사를 하며 살았으면 좋겠다"이다.

3. 일본 로컬 밴드의 자존심(물론 이런 단어와 어울리는 사람들은 아니다) 스핏츠의 '잔물결 투어' 내한 공연에도 다녀왔다. 마흔을 넘겼음에도 귀여운 외모의 보컬 쿠사노 마사무네는 요즘 한국 드라마에 푹 빠져 우리말 공부에 여념이 없단다. 실제로 그가 내뱉은 말들은 단어와 단어로 이루어진 미숙한 외국말이 아니라 진짜 마음을 담은 완성된 문장이었다.

"한국에 와서, 여기서, 공연하게 되어서, 진짜 좋아요." 대장금, 다모 등은 물론이요 김삼순, 위풍당당 그녀, 쩐의 전쟁까지 보셨다고. 그들의 앵콜 첫 곡은 김삼순이 드라마에서 부르던 서유석의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근래 제 관심사는 설득의 힘과 와인이지요.."

새 대통령 취임식 즈음하여 여기저기서 설득과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 연일 떠들어댔다. 다른 나라 어느 지도자가 어떠한 설득의 힘으로 어떤 업적들을 남겼는지를 소개하며, 새 대통령이 국민들의 여망에 부응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근래 읽은 책들은 대부분이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책들이었던 지라, 마침 요새 분위기도 있으니,,설득에 관한 책을 좀 읽어볼까하고 책장을 두리번거렸지만, 제목에 '설득'이란 문구가 들어간 책만 유심히 보아서일까. 눈에 띄는 건 '설득의 심리학' 뿐였다.

몇 년새 자기계발서와 관련되는 심리학 서적들이 엄청나게 쏟아졌건만, 여전히 스테디셀러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또 그럴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는 책이다. 아주 예전에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종종 어떠한 상황에 처했을 때, 그 책에 열거되었던 논제를 떠올리게 되니 말이다.

암튼, 설득에 대한 책은 그다지 추천하고픈 것이 더 이상은 나오질 않았고, 대신 눈에 들어온 건 '와인강의'였다. 그냥 얻어진 것인지, 책장에 꽂혀있는 지조차 몰랐던 책였건만, 뒷부분이 저자의 학문적인 배경이 드러나 약간 지루해지는 감이 있었다는 점을 빼곤 나름 유익한 독서였다. (과학자의 시선에서 쓰여진 와인책이 없어 못내 아쉬웠다는 저자의 말씀이 있었지만서도..)

집에서건 밖에서건 요샌 와인을 먹을 일이 꽤 많았는데도 관심을 갖고 공부해 본 적은 없어서 와인을 즐기기는 하되 문외한였다. 와인에 대해 좀 아는 지인과 같이 가서 골라주는 대로 먹든지, 대충 가격대 보고 정하든지 하는 단순함으로 선택해왔었는데, 그래도 와인 책 한권을 보고 나니, 얻은 게 많다.

와인 라벨 이해하기부터, 시음에 관한 Tip, 양조 과정, 세계의 와인 정보 등 읽는 재미가 솔솔 했고, 또한 감동을 준 것은 책 말미에 '와인발음가이드' !  와인을 많이도 들이켰던 프랑스 여행을 떠올리니, 이 발음 가이드를 미리 섭렵하고 갔었더라면 파란 눈의 프렌치 앞에서 메뉴판을 손가락 끝으로 가리키는 대신 멋드러진 발음으로 와인 1병을 주문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2008년 목표 중의 하나가 취미생활을 좀 더 심도있게 하는 것이니, 와인공부에도 열을 올려봐야겠다. 다음엔 휴 존슨의 도서들로 그 열의를 쭉 이어볼 생각이다.








"write forever!"

책을 받아보고 두 번 놀랐다. 처음은 제목 때문이었다. '행복한'에 '글쓰기'라니. 마치 "<행복한 글쓰기>(라고 쓰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읽는다)" 같은 느낌이랄까. 종교색이 거슬린다면 이렇게 쓸 수도 있겠다. "나는 행복도, 글쓰기도 모릅니다. 정말로요." 물론 좋은 글쓰기는 아니다. 정직은 최우선이 아니고, 뜻만 통한다고 글은 아닐 테니까.
 
두 번째로 놀란 것은 저자와 역자 때문이었다. 명색이 어린이 책 MD로 밥을 먹는 마당에, 뉴베리상 수상 작가라는 저자의 이름은 그야말로 금시초문. 헌데 역자는 언제나 사랑하는 김연수 작가가 아니던가. (인터뷰를 추진했으나, 번역서로 인터뷰하기는 쑥스럽다고 하셨… 안녕히, 그리고 <대성당>은 고마웠어요…)
 
하지만 진짜 놀라운 것은 바로 책의 내용이다. 놀람은 두 번 뿐이었다고 첫 문장에 이미 썼으니 다른 말로 표현해보자면(다양한 표현!), 음… 'Magic'정도? (원제가 바로 <Writing Magic>이다) 다시 말해, 귀찮은 일을 사서하지 않는 성격의 나이지만 누군가 "마술이라니 에이, 과장도"라고 말하면 친절하게 다가가 "미안하지만 과장 아니거든요"라고 말해주고 싶은 정도라는 것.
 
흔한 생각으로,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춘 글쓰기 책이라면 유치할 것 같기도 하고, 너무 쉬울 것 같기도 하고, 논술 공부에만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건 정말 흔한 생각이지만 백보 양보하여 적어도, 이 책은 그런 책이 아니다. 저자는 책의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한다.
 
"<행복한 글쓰기>는 이야기를 지어내 쓰는 법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하지만 꼭 이야기가 아니어도 상관없어요. 이메일, 글짓기, 축하 카드, 블로그, 소형 비행기의 연기로 하늘에다 글을 쓰는 스카이라이팅에 이르기까지 글로 쓰는 일이라면 뭐든지 도와줄 수 있는 책이에요."
 
그러니까 누구든, '행복한'이니 '글쓰기'니 너무 잘해 지겹다 하지 않는 이상은(이 분 저한테 연락 좀 주세요), 누구에게나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말이, 배짱 좋은 작가의 허언은 결코 아니다. 읽어보면 알 수 있다. 내용은 물론이거니와 각 챕터의 제목마저 얼마나 아름다운지! ('Liftoff'로 시작해서 'Writing Forever'로 끝나는 원서의 목차를 볼 때면 나도 몰래 손으로 차양을 만들게 된다. 마치 행복의 나라를 향해 날아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비행기를 멀리서 바라보듯… )
 
마지막으로, "이 책을 번역하면서 나는 '내가 어렸을 때 이런 책이 있었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라고 여러 번 생각했습니다. 책을 번역하면서 '맞아, 그렇지!'라고 맞장구를 친 일이 정말 많았거든요"라는 옮긴이의 말을 다시 한 번 옮겨 본다. 나 역시 이 책을 팔면서 '내가 어렸을 때 이런 책이 있었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라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빅뱅 같은 친구들을 보며 가끔 느끼는 거지만, 늦게 태어나는 것도 복이지 싶다. 간만에 오아시스의 'live forever'나 들어야겠다. 아 90년대. 가끔은 정말이지… (푸념)





 

"김광석을 기억하는 시간 !"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입니다. 그의 노래를 들을때면 꼭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것 같은 착각에 빠져 들곤 했지요. 그처럼 노래 하고 싶은 마음에 통기타도 배워본 시절의 기억을 돌아 보며 10여년전 기억들 속으로 빠져 오후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를 기억하는 한사람이 간직하고 있던 사진을 꺼내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 쉽게 잊혀지지 않는 사람.. 김광석을 기억하는 시간을 꽤 오랜만에 가져 봅니다.

'연암 박지원' 하면 떠오르는 단어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북학파' '실학자' '양반전' '백탑' ...  요즘엔 한 단어가 더 떠오릅니다. 몇해 전 '리라이팅'시리즈로 나온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의 저자(고미숙) 입니다. 어려운 고전을 접할 수 있게 해준 저자가 2008년엔 비주얼판 '열하일기'를 통해 고전읽기의 재미를 얼마나 더해 주었을지 기대가 됩니다. 





"롤러코스터를 탄 듯 정신이 멍멍한 느낌"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접했을 때가 그랬다. '부자가 되고 싶어요, 돈을 많이 벌고 싶어요'라고 말을 하는 게 조금은 꺼려지고 천박하다는 생각이 들던 시절, 이 책은 용감하게도 "가난한 아빠는 죄다"라는 말을 던져 충격을 줬었다. 월급만으로 돈을 차곡차곡 벌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접근이 얼마나 안일한지 알려줘 허탈감을 줬다.
 
이 책이 꼭 그렇다. 롤러코스터를 탄 듯 정신이 멍멍한 느낌. 책을 덮고 나면 꼭 그렇다. 일주일에 4시간만 일해도 충분하다는 이 책의 카피는 하루 8시간은 기본 야근까지 밥 먹듯이 하고도 일에 치어 사는 직장인들을 홀리기에 충분해 보인다. 어떻게 하면 4시간만 일해도 되는가. 그러고도 지금의 월급 아니 두 배 다섯 배를 벌어들일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이 정말 가능한 것인가.
 
평범한 생각의 틀을 깨뜨리게 되는 책. <세계는 평평하다>보다 훨씬 개인적이고 내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책. 그래서 읽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는 책이다. 여러분도 분명 이 책을 읽고나면 주변의 모든 일들이 새삼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아마존을 보니 극찬이 우세한 가운데 혹평도 여럿 보인다. 혹평은 대안의 비현실성에 대한 불만이다. 극찬은 새로운 시각을 던져준 것에 대한 감사다. 나는? 오랜만에 충격을 주는 책을 만났다는 데에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괜찮아, 난 술주정뱅이니까."


사실 '3월 내맘대로 좋은 책'은 이미 다른 책으로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원고를 기다리는 동안 '나 좀 잡아봐라'는 것처럼 재미난 책이 꾸역꾸역 쏟아졌다.

마커스 주삭의 <책도둑>도,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도, 다시 읽은 이언 매큐언의 <속죄>도 선방했다. 그러나 만화 담당 MD가 이 책을 빠뜨려서 쓰겄는가. <노다메 칸타빌레>의 주인공, 노다 메구미의 실제 모델은 일본 변두리 마을에서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는 모모씨라고 한다. <음주가무연구소> 소장은 이 작품의 모델이 본인이라고 떳떳이 밝힌 바 있다. 책 한 권으로 묶어낼 만큼의 주벽이 어련하겠느냐만, 그것을 읽고 술에 대한 무언의 환상과 동경을 품게 하기란 쉽지 않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만행을 보고 있자니, 지난 날 나의 만행 따위 아무 것도 아니라는 위로가 된다. 깨어보니 방 구석에 세워져 있던 교차로 가판대도, 현관 밖에 일렬로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던 화분도, 냉장고에 들어있던 봉제 인형도, 이제는 잊을 수 있다. 작가의 말마따나 '괜찮아, 난 술주정뱅이니까'.

꽃이 핀다. 봄바람이 분다. 마셔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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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반쪽 2008-03-25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와손톱,책도둑...읽고싶어요^^

하루(春) 2008-03-25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art-time lover, full-time freind를 '시간제 연인과 정규직 친구'라고 직역해 놓으니까 왜 이리 웃기죠? 하하

whguswjd99 2008-03-26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도둑, 행복한 글쓰기.....읽어보고 싶네요^^

순오기 2008-04-05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한 글쓰기 구입...한 시간만 기다리면 올 것 같아요. 기대만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