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거의 떠나온 상태에서 떠나오기』(바다출판사, 2020)

-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를 안 읽을 수는 있지만 한 번 읽기 시작하면 한 권만 읽고 끝날 수 없는 작가!

월리스의 글 특징을 "시대에 뒤떨어진 괴팍한 늙은이로 보일 만큼 깐깐하게 굴면서까지 무언가를 제대로 해내려고 하는 태도, 그러면서도 사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임을 인정하는 태도"로 독자에게 통렬한 즐거움을 안긴다고 말한 토머스 벨러의 평에 적극 동감합니다.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바다출판사, 2018)을 펼쳤을 때처럼 심드렁하면서 집요하고 재밌는 그의 시선과 문장이 격하게 좋습니다. 이 삼 박자가 어우러지기 쉽지 않죠. 심드렁한 문체는 어지간한 독자가 같이 흥미를 느끼기 어렵고, 집요하기만 하면 글이 지루하고 늘어지기 쉬워 재미를 느끼기 어려우니까요. 그래서 내게 그는 에세이의 왕!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국내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첫 단편)에서 취재차 오른 호화 크루즈 디너 모임에 어울리지 않는 티셔츠 차림이었던 것처럼 「거의 떠나온 상태에서 떠나오기」 (『거의 떠나온 상태에서 떠나오기』 첫 단편)에서는 일리노이주 축제장 취재를 가 정장과 골프 셔츠와 유럽 슈트 차림인 남자들 속에서 "이 안에서 티셔츠를 입은 사람은 나밖에 없다" 하고 있네요😅😁😅

 

 

 

 

 

 

 

 

 

 

 

 

📘 옌스 페테르 야콥센 『베르가모의 페스트』(열린책들, 2020)

- 알베르 카뮈 『페스트』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궁금할 제목이죠.

이 작가는 19세기 덴마크 자연주의와 상징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되는데, 릴케와 토마스 만, D. H. 로런스, 프로이트, 음악가 쇤베르크 등에 영향을 줬다니 더 기대되지 않겠어요^^

 

 

 

 

📘 그레고리 베이트슨 『마음의 생태학』(책세상, 2013 초판 3쇄)

- 베이트슨(1904~1980)은 유전학의 기초를 마련한 생물학자 윌리엄 베이트슨의 아들이고,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생물학 전공, 인류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인공두뇌학, 유전학, 정신의학, 병리학, 생태학 등 여러 분야를 연구한 사람이라 그의 책을 읽고 싶었습니다. 그의 논문을 모아 1972년 출간한 이 책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시해 환경 운동과 캘리포니아 뉴에이지 그룹에 영향을 줬다고 합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만 700페이지가 넘는 벽돌책ㅜㅜ

 

 

 

 

 

 

📘 페터 한트케 『시 없는 삶』(읻다출판사, 2019)

- 노벨문학상 영향인가요, 우연히 이리 된 것인가요. 한국에서 그리 인기 있는 작가가 아니라서 그의 시집이 나올 줄 상상도 못 했습니다. 출판사는 우연이었다고 하던데 오우, 대박~

그의 소설을 모두 합친 것 같은 분위기, 한마디로 한트케 풍이라고 할까요? 그의 소설이 시로 변환된 걸 보는 재미가 있어요. 그의 소설 중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과 가장 흡사합니다.

 

 

 

📘 하라 켄야 『디자인의 디자인』(안그라픽스)

- 2007년에 초판이 나왔는데 2017년에 14쇄. 지금이면 16쇄는 넘어갔을 듯. 이 정도면 스테디셀러라 할 수 있죠. 그런데 난 왜 아직까지 못 읽었나-,,-) 이제 읽을라고용.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열린책들, 2020 리커버)

- 책이 있는데도 굳이 산 것은 1차 사은품이었던 어린 왕자 구슬램프(4,200원)와 다른 포즈인 '서 있는 어린 왕자' 2차 사은품이 취향 저격을! 책에 수록된 원작 그림과 흡사해서 수집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T^T

리커버 디자인이 한 손에 쏙 들어오고 귀여운 맛이 있어요. 어린이가 들고 있으면 더 귀여울 듯ㅎ

새로 나온 어린 왕자 클립도 살까 말까 고민 중입니다ㅜㅜ

 

 

 

 

 

 

 

 

 

 

 

 

 

(※ 동영상은 웹에서만 볼 수 있나 보네요. 북플에서는 안 보여요.)

 

 

지금 알라딘에서 열린책들 브랜드전 하지요.

 

 

 

열린책들 사면서 받은 장 자크 상페 그림의 <승부> 유리컵 예쁩니다. 집에 없는 온 더 록 잔^^

 

 

 

🎁 그 외 알라딘 굿즈

 

 

🎀 본투리드 티셔츠 Vol.4 어린 왕자 화이트(S, 5,000원)

- 안 이쁘다고 투덜댔지만 안 사긴 또 아쉬운 시즌 굿즈. 어린 왕자 마크가 가장 예쁜 걸로 구입해봤습니다. 얇은 여름용인데 곧 변색될 거 같은 느낌ㅎ; 올 한철만 입을 게 아니라면 흰색 사는 건 추천드리고 싶지 않군요.

S 사이즈도 상당히 넉넉하니 여성분은 프리하게 입자고 M 사이즈 사면 망합니다ㅎ! 타이트하게 입고 싶거나 44~55 정도 되는 분은 XS 사이즈 사셔도 돼요.

 

 

 

 

 

 

 

 

🎀 우드 스틱 북마크 모비딕(2,500원)

- 1,500원 정도가 적당할 거 같은데 비싸다고 생각. 문득 아이스크림 바를 리폼이나 해볼까 생각도-,,-)a

 

 

 

 

 

 

 

 

 

🎀 피너츠 북엔드(스누피와 우드스탁, 1,000원)

- 집에 온통 알라딘 북엔드😄

 

 

 

 

 

 

 

 

 

 

 

🎀 본투리드 에어팟케이스+키링(아크릴. 마크 트웨인과 밤비노, 3,000원)

- 케이스보다 키링이 더 예뻐서 구매.

 

 

 

🎀 알라딘 원두 4월 신상이었던 에티오피아 시다모 난세보를 맛보지 않을 수 없어 사고, 콜드 브루 헤밍웨이도 두 병째 구매.

🎀 본투리드 스티키 북마크 죄다 품절인데요. 이리 된 지 꽤 됐는데 왜 빨리 수급이 안 되는 거지요? 결국 포스트잇 플래그로 구매.

 

 

 

 

 

 

 

 

 

 

 

몇 년 만에 만난, 책 안 보는 녀석에게 문장이 적은 책 선물로 뭐가 좋을까 하다가 비닐 안 뜯은 📘 허먼 멜빌(원작), 크리스토프 샤부테(각색, 그림) 『그래픽 노블 모비 딕』(문학동네)을 선물로 줬습니다. 최근에 획득한 모비딕 우드스틱 북마크도 같이 줘서 모비 딕 굿즈가 줄었어요. 흑흑. 이러려고 굿즈 모으면서도 아쉬운 건 아쉬워. 예상대로 녀석은 모비 딕을 완독하지 않았더군요. 다 보고 중고로 팔면 영화 한 편 볼 값은 나올 거라 했어요. 책은 이러저러 유용하다니까요ㅎ 금본위제가 아닌 책본위제 생활자;

보내고 아쉬워서 중고도서로 다시 샀는데 알라딘 중고도서 수급은 정말 놀랍습니다. 내가 사길 기다렸군😅 혹시나 해서 신청한 중고도서 알림으로 단 이틀 만에 만났습니다.

비닐이 없어서 접근하기 쉬워졌습니다. 읽을 책이 쌓여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비닐 래핑 책은 뜯기 아까워서 한참 놔두기 때문이죠.

반려동물 없는 독서가라 모비 딕 실리콘 북램프를 쓰담쓰담 하며 책 읽는데 이게 은근 기분 좋아요😚

🐳🐳🐳🐳🐳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확실성에 관하여』(책세상, 2019년 8월 초판 6쇄)  새 책으로 재영입. 한때 품절이더니 이제 정상 재개군요.

알라딘은 굿즈 맛집에 이어 ☕ 알라딘 커피로 원두 맛집도 되었다. 매달 신상이 나오니 다른 데서 살 일이 없어요. 집에서 먹는 커피가 더 좋아 나갈 일이 더 없고요.

우리 집이 도서관이고 카페ㅎㅎ

 

 

 

 

 

 

 

 

 

 

우연히 youtube에서 50대 미혼 생활을 담은 미쓰리 tv를 보고 비혼 문화에 대해 생각하다 에스터 페렐 『우리가 사랑할 때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을 읽기 시작했어요. 결론의 장벽 중 하나인 불륜을 본격 다룬 책이죠. 많은 것들이 그렇듯 결혼을 낭만주의로 접근할 때 깨어지기 쉽죠. 결혼의 이유만큼이나 경제적 자립, 관계의 피곤함 등등 비혼의 이유도 타당 혹은 당당해지고 있어요. 소비사회 문화로 더욱더. 이런 상황을 파악하지 않으면서 '진실한 사랑', '영원한 사랑' 운운한다면 그의 사랑은 반드시 실패할 겁니다.

 

 

1.

“널 사랑해. 우리 결혼하자.” 역사상 이 두 말은 함께 쓰인 적이 거의 없다. 하지만 낭만주의가 대두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산업혁명으로 사회가 급변하면서 결혼의 의미가 재정립되었다. 결혼은 경제 단위에서 동반자 관계로 서서히 진화했다. 이제 결혼은 책임과 의무가 아니라 사랑과 애정을 토대로 한두 개인 간의 자유로운 계약이 되었다. 작은 마을에서 도시로 삶의 터전이 바뀌면서 우리는 더 자유로워졌지만 한편으로는 더욱 외로워지기도 했다. 개인주의가 서구 문명을 무자비하게 뒤덮었다. 현대의 삶에서 점점 커져 가는 외로움과 맞서 싸우기 위해 배우자 선택에 낭만적 염원이 스며들었다.

2.

불륜은 사라지지 않았다. 가망 없는 낭만주의자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매력과 사랑에 기반한 결혼은 물질적 동기에 기반한 결혼보다 훨씬 깨지기 쉽다. (그렇다고 오랫동안 변함없이 이어지는 결혼 생활이 더 행복하다는 것은 아니다.) 사랑에 기반한 결혼은 변덕스러운 인간 심리와 배신이 드리우는 그림자에 ‘더욱’ 취약하다.

나와 상담하는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사랑과 행복을 중요시한다. 하지만 잔인한 운명의 장난인지, 그 결과로 생겨난 의식이 원인이 되어 오늘날 외도와 이혼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과거에 사람들은 결혼이 사랑과 열정을 담보해 주지 않아서 바람을 피웠다. 오늘날 사람들은 결혼이 마땅히 주어야 할 사랑과 열정, 온전한 관심을 주지 못해서 바람을 피운다.

나는 매일 사무실에서 현대 결혼 관념의 소비자들을 만난다. 이들은 상품을 사서 집에 들고 온 다음 상품에 결함이 있음을 발견한다. 그래서 수리점에 찾아가 박스 겉면에 붙은 사진과 똑같이 만들어 달라고 요구한다. 이들은 관계에 대한 자신의 염원(관계에서 얻고 싶은 것과 마땅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리고 낭만적 이상이 전혀 낭만적이지 않은 현실과 충돌하면 화를 낸다. 이 유토피아적 환상에서 깨어난 뒤 환멸을 느끼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도 당연하다.

3. 낭만 소비주의 시대

“욕구 충족이 안 되고 있어요.” “이 결혼은 더 이상 저랑 안 맞아요.” “전 이런 것에 합의한 적 없어요.” 상담에서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불만들이다. 심리학자이자 작가 빌 도허티Bill Doherty가 말했듯 이 발언들은 “개인의 이득과 저비용, 권리, 손해 보지 않으려는 태도” 같은 소비주의적 가치를 관계에 적용하고 있다. 도허티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여전히 헌신적인 관계가 가능하다고 믿지만, 우리 내면과 바깥에서 들려오는 힘 있는 목소리는 결혼 생활에 필요하고 마땅히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적은 것에 만족하는 사람은 바보라고 말한다.”

소비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새로움이다. 애초부터 상품은 곧 한물간 구식이 되도록 제작되는데, 그래야 새 상품을 갖고 싶은 욕망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커플도 이런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더 좋고 더 새롭고 더 생기 넘치는 것을 약속하며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하는 문화에 살고 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더 이상 불행하기 때문에 이혼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더 행복할 수 있기에 이혼한다.

이제 사람들은 즉각적인 만족과 무한한 다양함을 자신의 특권으로 인식한다. 이전 세대는 삶에 희생이 따른다고 배웠다. “원하는 걸 다 가질 순 없어”라는 말은 반세기 전에는 타당했지만 지금 35세 이하 인구 중 이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사람들은 좌절의 경험을 악착같이 거부한다. 당연히 독점적 관계에 따르는 구속은 패닉을 불러온다. 선택지가 끝없이 펼쳐진 세상에서 사람들은 포모FOMO로 괴로워한다. 포모FOMO는 밀레니얼 세대인 내 친구들이 사용하는 용어로, 좋은 것을 놓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fear of missing out을 뜻한다. 이 두려움은 우리를 ‘쾌락의 쳇바퀴’, 즉 더 좋은 것을 향한 끝없는 추구로 몰아넣는다.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순간 다시 기대와 욕망이 차오르고, 행복하지 않게 된다. 스와이핑 문화(스마트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넘겨 가며 데이팅 앱에서 상대를 고르는 문화-옮긴이)는 끝없는 가능성으로 우리를 유혹하지만 한편으로는 미묘한 횡포를 가한다. 즉시 다른 대안을 선택할 수 있으면 대상을 부정적으로 비교하고 책임감이 낮아지며 현재를 즐기지 못하게 된다.

서구 사회의 변화에 따라 인간관계 또한 생산 경제에서 경험의 경제로 바뀌었다. 철학자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은 결혼이 “하나의 제도에서 감정을 바치는 행위로, 외부로부터 인정받는 통과의례에서 어떠한 감정 상태에 대한 내적 반응”으로 변화했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은 더 이상 동사가 아니다. 사랑은 끝없는 열정과 심취, 욕망을 나타내는 명사다. 이제 관계의 질은 곧 경험의 질이다. 함께 있을 때 따분하다면 안정적인 가정과 높은 연봉, 말 잘 듣는 아이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 사람들은 관계를 통해 영감을 얻고 변화할 수 있기를 바란다. 관계의 가치는, 즉 관계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느냐는 관계가 경험에 대한 갈증을 얼마나 잘 채워 주느냐에 달렸다.

현대의 외도 이야기는 바로 이 자격 의식에 따라 움직인다. 오늘날 달라진 것은 사람들의 욕망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 욕망을 추구하는 게 마땅하다고(추구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자기 자신을 위하는 것이다.

 

 

 

 

 

 

꼬박꼬박 챙겨 읽는 《Axt》. 2020. 5. 6 이번 호 키워드는 '백신'

 

때가 때인 만큼 코로나19로 인한 불안한 시대 분위기, 존재론적 물음, 페미니즘이 잡지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1.

"영화가 의학의 곁에서 바라보는 순간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생명을 가지는 동안 그 몸이 보여주는 이상(異常)한 운동입니다. (중략) 두 번째는 죽은 다음 시체를 자르거나 나누고 분리해낼 때 영화는 곁에서 근육과 뼈, 심장, 창자, 뇌수를 냉담하게 지켜봅니다. 하지만 세 번째, 방금 말한 생명이 몸을 떠나가는 순간, 그래서 시체로 옮겨가는 순간에 가장 관심이 있습니다. (중략) 이 과정에서 의학과 영화는 서로 반대의 방향에서 동일한 일을 했습니다. 의학이 생명을 관찰하기 위해서 몸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동안 영화는 몸을 관찰하기 위해서 생명을 의학이 마음대로 다루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저는 의학에 대해서 질문을 던질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대신 영화에 질문을 던져보고 싶습니다. 영화는 몸을 관찰하기 위한 대상과의 거리를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가. 그 거리에서 과학적 거리와 도덕적 거리는 얼마만큼 멀리 있고 또한 가까이 있는가. 만일 이 질문이 성립한다면 이렇게 질문을 바꿀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영화에게 그 거리는 동시에 과학적 거리이자 사회적 거리이기도 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영화는 그 거리에서 생명에 대해 지니는 거리만큼 죽음에 대해서 다루는 거리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같은 말을 한 번 더 한다면 과학과 도덕 사이의 거리에 대해서 영화는 어떤 원칙을 가져야 하는가.

그러므로 결국 마스크를 찍는다는 문제는 몸에 관해 가져야 하는 과학과 도덕 사이에서 그 영화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로 밀고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고다르는 멋진 말을 했습니다. “트래블링은 도덕의 문제이다.” 그 말에 용기를 얻고 이렇게 말해보고 싶어집니다. (코로나19라는 상황에서) 동시녹음은 도덕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화가 몸과 맺는 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처럼 문학의 대답이 궁금해집니다. 코로나19라는 상황에서 문학에서는 무엇이 도덕의 문제입니까."

ㅡ 정성일 <도덕의 문제>

 

2.

김성중 <우리는 서로에게 백신이 되어줄 수 있을까>를 읽고 인간이 인간에게 백신이 되는 것을 그린 옥타비아 버틀러 「저녁과 아침과 밤」( 『블러드 차일드』 수록 단편)을 읽고 싶어졌습니다.

 

 

 

3.

"만일 내가 파라노이아 같은 망상증이나 편집증에 시달리는 환자였다면, 지난 2월 18일 31번 확진자의 출현 이후, 두 달여 동안 나와 타자의 경계선은 더더욱 분리되었을 것이다. 약간일지언정 상상의 병을 앓지 않은 자 누구일까. 왠지 늘 미열이 있는 것 같고, 몸이 늘 아픈 것 같고, 이상하게 슬프다. 불행하지는 않은데 행복하지는 않고, 예전처럼 투명하게 빛나는 환희는 온데간데없다."

"프랑켄슈타인과 괴물은 서로 다른 자가 아니라 같은 자이다. 이들의 체세포 분열은 어디서 오는가?

‘휴브리스(Hubris)’. 자만심? 아니, 경계를 넘는 과도함이다. 절대 넘어가서는 안 될 영역을 넘어간 자들의 죄명에 붙여지는 이 값진 그리스어는 가령, 루비콘을 ‘넘은’ 카이사르보다 인도의 나체 수행자들을 보고 말의 머리를 돌린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서 더 큰 위대함을 보는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알렉산드로스를 이상적 모델로 가슴에 품었던 한니발이 알프스 산맥은 넘었으나 로마라는 절대 영역은 끝내 입성하지 못한, 아니 안 한 이유를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그의 ‘휴브리스’ 원죄로 ‘괴물’을 탄생시켰다. 내적 분열은 과도함이 빚어낸 파생적 결과이다. 분열로 반영을 갖게 된 이 두 존재태는 가학자와 피가학자로, 창조주와 창조물로 끊임없이 서로를 증오하고 공격한다."

ㅡ 류재화 <전이 공포와 휴브리스 경고: 프랑켄슈타인과 프로메테우스 -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4. 작가들은 의뢰가 들어올 때만 소설을 쓴다 & 왜 여성 작가에게만 육아의 어려움을 물어보는가, 이 두 이야기가 오롯이 남은 김미월+손보미의 인터뷰

 

5. 이번 호에서는 인상깊은 칼럼은 없었고 백가흠 『아콰마린Aquamarine』(2회) 소설이 제일 재밌었습니다. 한국 사회 분위기, 미제 사건을 잘 반영하고 있다. 어떤 결말을 만들지 기대됩니다.

 

 

햇빛🌞 좋아 데리고 나온 올리버 색스 『모든 것은 그 자리에』(알마출판사)

그가 탐구쟁이가 된 일화들이 펼쳐집니다.

📖 도서관 예찬

"나는 선천적으로 수동적인 게 싫었고, 매사에 능동적이라야 직성이 풀렸다. 내 스스로, 내가 원하는 것을, 내게 가장 알맞은 방법으로 배워야만 했다. 나는 좋은 학생이라기보다는 좋은 학습자였다.

.

.

.

옥스퍼드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도서관은 뭐니 뭐니 해도 내가 다녔던 퀸스칼리지 도서관이었다. 빼어나게 아름다운 도서관 건물 자체는 크리스토퍼 렌이 설계한 것으로, 난방용 파이프와 선반이 뒤엉켜 있는 지하의 미로에는 방대한 지하 장서가 보관되어 있었다. 인큐내뷸러incunabula라고 불리는 고서들을 내 손으로 직접 만져보다니! 그것은 전혀 새로운 경험이었다. 나는 특히 뒤러의 코뿔소 그림을 포함해 경이로운 판화 삽화들이 잔뜩 들어 있는 게스너의 《동물의 역사Historiae Animalium》(1551)와, 아가시의 네 권짜리 화석어fossil fish 전집에 경탄을 금하지 못했다. 다윈의 저서 원본을 구경한 곳도, 토머스 브라운 경의 저서들(《의사의 종교Religio Medici》 《호장론Hydriotaphia》 《영혼의 정원The Quincunciall Lozenge》)을 모두 발견하고 곧 사랑에 빠진 곳도 그곳이었다. 브라운 경의 저서 일부는 황당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그 화려한 언어란! 간혹 브라운의 ‘고전古典 실력 뽐내기’가 지나치다 싶으면, 스위프트의 신랄한 풍자소설로 갈아탈 수도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말한 책들은 물론 모두 초판본이었다. 나는 부모님이 선호하는 19세기 서적들에 둘러싸여 성장했지만, 대학생이 된 뒤에는 퀸스칼리지 도서관의 카타콤베에서 17~18세기의 존슨, 흄, 포프, 드라이든 문학에 입문했다. 그 책들은 (특별히 자물쇠가 채워진) 희귀본 코너가 아니라 평범한 서가에 진열되어 있어서, 자유로운 열람이 가능했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 책들은 처음 출간된 이후로 줄곧 그 자리에 놓여 있었던 것 같았다.) 내가 역사와 모국어인 영어에 정말로 관심을 갖게 된 것도 퀸스칼리지 도서관에서였다.

나는 1965년에 뉴욕으로 처음 이사했는데, 끔찍하리만큼 비좁은 아파트를 얻는 바람에 글을 읽거나 쓸 공간이 거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냉장고 위에 원고지를 올려놓고 팔꿈치를 엉거주춤 치켜든 채 첫 책 《편두통》을 쓰는 것이 고작이었다. 나는 널따란 공간을 간절히 원했는데, 때마침 내가 근무하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의대의 도서관에 그런 공간들이 많았다. 나는 커다란 테이블에 앉아 한참 동안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가, 간간이 자리에서 일어나 서가와 선반 사이를 이리저리 누볐다. 나는 아무 곳에나 내키는 대로 시선을 던졌는데, 그러다가 뜻밖의 보물을 발견하고는 ‘이게 웬 횡재냐’ 하고 쾌재를 부르며 내 자리로 가져오곤 했다."

 

 

 

 

이 부분을 읽자마자 스위프트 『걸리버 여행기』도 읽기 시작했습니다. tvN 책 읽어드립니다 패턴도 이런 식인 듯.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

두 시간도 안 지나 천둥번개 동반한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

날씨 이거 뭐여💦

 

 

 

 

 

 

 

 

 

 

 

 

 

비 그치고 시를 읽읍시다.

최승자 『기억의 집』(문학과 지성 시인선 78, 1989년 초판 발행)

이 시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는 「희망의 감옥」

"저 혼자 자유로워서는 새가 되지 못한다"

이상한 역설이지만 이상하게 수긍되고.

사진 찍다 시집이 휙 날아갈 수도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다시 만날 거라는 확신. 비 그치고 세상을 다시 바라보듯 시를 읽는 마음. 시를 쓰고 읽는 것은 희망이 아니라 나의 비관을 곱씹는 일.

시 읽다 커피가 식는 줄도 모르고

담장을 감는 5월의 장미를 기쁘게 바라보다

좋은 순간이 가는 것도 모른다.

이 순간은 내 인생의 어디쯤인가.

우리의 후회와 슬픔은 길게 따르고.

 

 

 

 

 

 

 

 

 

 

 

 

 

앗, 신분증!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약국이 곧 문 닫을 시간이고 집에 갔다 오기엔 너무 멀었습니다. 지난주에도 마스크를 사지 못해 이번 주에는 꼭 사야 했습니다. 주말에 살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남은 마스크는 간당간당했습니다. 면 마스크는 요즘 더워서 쓰기 싫은데.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다가 신이시여! "제게는 10개의 카드가!" 아니고 카드 지갑에는 도서관 회원증이 있었습니다. 요즘 도서관도 못 가는데 이건 또 기특하게 들고 다녔네;; 그래, 이거야! 관대한 약사님이라면 봐줄지도 몰라 하고 약국에 들어갔습니다. (주섬주섬) 제가 도서 회원증 밖에 없는데 주민번호 불러 드리고 도서 회원증과 제 이름을 대조하시면 안 될까요? 약사님은 강경하게 안 된다고 하시다가 아무래도 도서관 회원증이라 신뢰하신 건지도 모릅니다. 정보 입력 후 이름 대조하고 정신 차리고 다니라며(😅😅😅할 말 없음) 마스크를 하사하셨습니다😭

살 때마다 매번 마스크가 바뀌는데 어떤 마스크가 제일 좋은 건지ㅎ;

나갈 때 악착같이 책은 들고 다니면서 신분증은 안 들고 다니는 이 사람의 오늘의 해프닝. 마스크를 대량으로 구입해야 하나. 아, 귀찮은데.

딴 나라 생각하면 배부른 소리.

 

「향연」 "아름다움은 징그럽고 징그러움은 아름다워라"

「세바스토폴 거리의 추억」 "우리는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는 법은 알지만 그 끝이 무언지 결코 모르지 않던가? (중략) 시를 읽으면, 살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

「개」 "줄의 길이가 개의 시민권이며"

「난초」 "젊음이 젊음을 못 보듯 지옥에서 시 쓰는 자는 없어"

「산책」 "성스런 계시란 늘 모호하기 짝이 없는 것 아닌가?"

「모자이크」"성숙을 멈추고 분열하기 시작한 나의 영혼처럼"

「면사포」"냄새와 비명은 빠져나오지만 형상은 갇혀 있구나 (중략) 시간은 길고 아름다운 두 다리를 갖고 있지"

「피아노」"무인도를 찾아 가출할 궁리를 한다 (중략) 단단한 벽에 부딪혀 이빨이 다 부러진 햇빛이 젖은 바닥에 아픈 주둥이를 비벼대고 있는데"

「寄生現實」"꿈은 결코 실현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꿈이란 예언인 동시에, 그 예언의 실현이기 때문이다"

「절벽에서」"매달린 자가 손을 놓아도 떨어지지 않는 절벽은 자기도 언젠가 매달려본 절벽"

「악수 혹은 친화력」"할머니처럼 늙은 사물들은 왜 손을 잡고 우는가? (중략) 오른손이 그리웠던 왼손이 내 머리 속에 슬픔을 만들어 넣고는 마침내 나 몰래, 저희들끼리 악수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현기증」"벌레는 어둠 아니면 빛 , 둘 중의 하나에 갇힌 게 분명하다."

 

ㅡ 김중 『거미는 이제 영영 돼지를 만나지 못한다』(문학과 지성 시인선 260(2002))

 

 

 

 

 

 

 

 

 

책장이 아니라 바깥에 있는 책이 나는 더 좋습니다. 같이 삶을 사는 느낌이 생생히 전해지니까요.

모든 벤치엔 책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분명 사람이 머무르는 걸 보겠지요.

이언 해킹 책으로 유일하게 번역된 거 같은데『표상하기와 개입하기 -자연과학철학의 입문적 주제들』(한울아카데미)

'논리 실증주의의 등장 이래로 과학철학에는 두 차례 큰 변혁이 있었다. 하나는 1962년 출간된 토머스 쿤 『과학 혁명의 구조』가 일으킨 변혁이었고, 다른 하나는 1983년에 나온 해킹 『표상하기와 개입하기』가 수행했다'고 평가받습니다. 토머스 쿤 『과학 혁명의 구조』를 읽었다면 이 책도 안 읽을 수 없지요.

 

 

 

 

 

 

 

 

 

 이번 달 책 구매는 이렇게 모였습니다.

 

 

이걸로 이번 달엔 고만 사자하고 마지막으로 산 매기 넬슨 『블루엣 - 파란색과 사랑에 빠진 이야기, 그 240편의 연작 에세이』(사이행성)

도서정가제 6개월이 지나길 기다려 최상 상태의 중고도서로 풀리자마자 바로 구매했습니다😇 본문 글자도 파란색.

시와 산문, 에세이와 역사, 예술과 철학의 범주를 오가 '독자 발밑의 카펫을 잡아 빼는 비트겐슈타인의 글쓰기'라는 평과 함께 자서전의 한계를 문학 비평으로 확장했다는 평가를 들으니 안 읽어볼 수 없죠!

딱 시집 크기와 분량인데 웬만한 시집보다 낫네요💙

미셸 파스투로 『파랑의 역사』와 같이 읽으면 좋을 듯.

blue 💙 블루 💙 파랑을 사랑하는 자들이여, 모여라.

 

 

 

 

알라딘 콜드브루 1병 더! 맥주에도 타 먹어야징😉

※ 향이 강한 에일 맥주류와는 궁합이 안 맞아요.

 

 

 

 

 

 

 

위험한 과학책 이제야 샀는데 예쁜 리커버가 나오다니 ㅜ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콜드브루 에티오피아 시다모 디카페인 (원액) - 500ml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2년 11월
평점 :
품절


두 번째 구매인데 우유랑 섞어 먹을 때 가장 만족스럽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N.P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으로 요시모토 바나나를 처음 만나게 됐는데, 이 작가를 왜 좋아하는지 왜 비판하는지 알겠다. 비판에 대해서는 하루키에게 그러하듯 비슷한 지점이 있다. 짧고 가볍게 밀고 나가는 필치. 그건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일본 어투와 결합된 일본 문화 특유의 휘발적인 단상조라 해야 하지 않을까. 이들이 자주 담는 기담과 공포까지 포함해서.

스포일러가 될 거 같아 이 소설에 대해 자세히 말하진 않겠다. 이 소설이 무엇을 전달하고 싶었는지는 [작가의 말]이 다 전하고 있다. 재능이나 결손에 얽매여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려고 한 것과 작가가 선호하는 테마들을 최대한 실험해보고 싶었다는 것.

 

시원치 않은 작가 생활과 삶을 산 다카세 사라오라는 작가가 마흔여덟 살에 자살하고 그가 미국에서 낸 단 한 권의 단편집을 둘러싸고 이 소설의 인물들이 엮인다. 작가의 자녀들인 쌍둥이 남매 사키와 오토히코, 스이, 다카세 사라오의 책을 일본어로 번역하다가 자살한 쇼지, 쇼지의 어린 연인이었던 가노. 이들의 삶도 비슷비슷하다. 부모의 이혼으로 혼란스러운 사춘기를 겪었고 여전히 그 영향 속에서 살고 있는 사키, 오토히코, 스이, 가노. 재능은 있었지만 삶 속에서 무너진 다카세와 쇼지. 이들은 "미행당하고 있다는 망상에 젖어 있는 분열증 환자처럼은 아니라 해도 무언가에 홀려 있지 않은 때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해는 할 수 있어도 시간의 무게는 나눌 수 없는" 사람 삶이 대체로 그렇지 않나.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삶은 흘러가지만 그 자체로도 사실 버겁다. 작가였던 다카세, 번역가였던 쇼지의 처지와 심정도 비슷했던 것 같다.

 

*

「엄마가 웃었다.

"쇼지 씨의 기분을 조금은 이해하겠어. 수십 년을 하다 보면, 지칠 때도 있는걸. 번역이란 거, 지치는 양상도 좀 독특하거든."

디저트와 에스프레소가 나와 얘기가 중단되었다. 엄마의 생각을 요즘은 별로 들어본 적이 없어, 신기했다. 엄마가 하는 일도.

"다른 사람의 문장을, 마치 자신의 생각인 것처럼 더듬어 가야 하잖아. 하루에 몇 시간이나, 마치 자신의 글을 쓰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사고회로에 동조한다는 거, 그거 참 묘한 일이야. 거부감이 없는 선까지 들어갈 때도 있잖아. 그러면 어디까지가 자신의 생각인지 헷갈리기도 하고, 타인의 사고가 일상생활에까지 파고들기도 하고. 영향력이 강한 사람의 글을 번역하다 보면, 그냥 읽는 것보다 몇 배는 더 끌려 들어가게 돼."

"……엄마 정도의 베테랑도?"

"최근에는 엄마도 터득하게 되었지만, 번역 일을 시작했을 처음에는, 그게 아마 이혼한 그쯤일 거야. 잘 안됐어. 일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고 할까. 아이를 키우면서 혼자 헤쳐나갈 수 있을까. 생각하기 시작하면 밤에도 잠을 잘 수가 없었어……. 그런데 종일 타인의 문장과 씨름을 하고 있으니…… 아, 그래, 고독이라고 해야 하나? 고독에 거의 짓뭉개질 것 같았어. 그리고 기분 전환 거리는 뭐든 상관없었어. 사고를 완전히 중단할 수만 있으면."

"자식을 키우는, 그런 거?"

"자식을 키우는 건 시행착오의 연속이야."

엄마가 웃었다.

"엄마는 겐타마였어."

"응?"

나는 되물었다.

"겐타마(십자 모양의 손잡이에 끈으로 매달린 나무 공을 탁탁 치며 노는 놀이 기구). 아하하,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당시에는 심각했어. 엄마가 자주 했잖아, 왜."

아, 그러고 보니 생각난다. 한밤중에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나면, 엄마의 방 닫힌 문 너머에서 '탁, 탁' 하는 이상한 소리가 나곤 했다.」

 

**

「하지만 나를 만나기 전부터, 인생의 많은 것들이 얽히고설켜 그의 내면에 지속적으로 쌓여 간 피로감을 덜어주는 역할은 조금도 하지 못했다. 그 사람 인격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것, 내게는 매력으로 비쳤던 어두운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다. 나는, 만났을 때 이미 전구가 거의 꺼져 가던 그의 마음속 방에 날아든 나비였다. 위로는 되겠지만, 어둠 속에 낮의 반짝거리는 잔상을 끌어들여 그를 더욱 혼란에 빠뜨렸을 뿐이다.

그래서 꿈에 그가 등장할 때면 언제나, 지금의 내가 옛날의 그를 만나는 설정인 것이리라. 지금의 나라면 조금은 반짝임 이외의 것을 줄 수도, 즐겁고 고요한 시간을 함께 보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어쩌면 그것도 힘든 일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후회하고 있다. 지금의 나로 만나고 싶었다. 마음속 어딘가에는, 그런 생각이 남아 있다. 자신에게 과도한 가치를 두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가노의 어머니가 탈출구를 원했듯이 쇼지에게 여고생 가노, 다카세에게 스이가 그런 역할이었겠지만 그들은 이미 자신의 삶의 무게만으로도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다음 세대의 극복에 집중한다. "무언가를 은닉한 사람만의 강함으로 자신을 지키고 있는 듯 보이는" 사키는 심리학을 공부하며 자살 같은 저주에 빠지지 않고 이성적으로 접근하려 한다. "뭇사람들과는 어긋나는, 자립해 있는 재능의 자기 충족적인 무언가. 다른 사람과는 절대 공유할 수 없는, 그녀 자신만의 내면의 고뇌 같은 것. 몇몇 사람에게만 통하는 강력한 신호"를 가지고 있는 스이는 관계의 고리를 끊고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난다. 아버지처럼 창작 재능이 있는 오토히코는 스이와의 관계가 끝나며 아버지의 그림자와 광기 어린 삶에서 빠져나와 독립적인 작가로 전환할 시기를 맞이한다. 가노는 이들을 통해 쇼지와의 아픈 기억을 극복한다.

***

「"요즘 사람과 얘기를 안 한 탓도 있으려나."

"불 때문일까."

"이 바람 때문인지도 모르지."

"바다 앞에 서면 사람은 마음을 연다고 하잖아."

"아무리 하찮은 일도 좋은 일인 것 같고 말이지."

"그리고 무슨 말을 해도 파도에 실려서 멀리 떠밀려 가고."

"이게 해방감이란 거야."

.

.

.

밤이 깊어 가면서 침묵을 에워싼 파도 소리가 또렷하고 선명하게 들려오는 것 같았다. 눈앞에 펼쳐진, 드넓은 풍경이 마음속에 쌓인 울적한 것들을 말끔하게 쓸어가고 그 자리에 맑은 대기가 차올랐다. 그런데도 언제까지나 사라지지 않는, 빛나는 것은 남아 있었다. 고요했다. 영원히, 이제 세계가 끝나는 듯한, 순결한 밤이었다.

.

.

.

오토히코를 보았다. 눈물에 번진 하늘과 바다와 모래와 흔들리는 불길을 보았다. 아찔한 속도로 한꺼번에 머리에 들어와, 눈앞이 빙빙 도는 것 같았다. 아름답다, 모든 것이. 이 여름에 일어난 모든 일이, 미치도록 격렬하고 아름답다.」

 

우리는 매년 여름을 겪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같은 인생의 순간들도 맞는다. 욕망과 꿈 실현 때문에 서로 갈등하고 상처도 주지만 우리는 자신의 인생과 타인의 인생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모두 마음속에 여름 같은 열정과 바다 같은 품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작가와 함께 나도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 book 포함 4월에도 책을 여럿 들였다. 이 중에서 종이책 완독은 『2020 제 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뿐이라 부끄럽다😔😔😔 언젠가 다 읽겠죠. 와하하하)))

 

 

 

📘 자크 랑시에르 『자크 랑시에르와의 대화 - 피곤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지!』(인간사랑, 2020)

- 인간사랑 출판사로 지젝을 만났던 감사 답례로 랑시에르 벽돌책 영입. 나는 은혜 갚는 책쟁이😉

📘 조지프 J. 탄케 『푸코의 예술 철학 - 모더니티의 계보학』(그린비, 2020)

- 모으자고 들면 끝이 보이지 않는 푸코 관련 책^^;

 

📘함석헌 『바가바드 기타』(한길사, 2003)

- 채사장의 설명은 그야말로 지대넓얕이라 더 깊게 보려고.

 

📘그레이엄 하먼 『비유물론』(갈무리, 2020)

- 테리 이글턴 『유물론』과 비교해보려고 구매.

 

📘 알랭 바디우 『검은 색』(민음사, 2020)

 

 

 

 

 

 

 

 

 

 

 

📕 루이스 캐럴 (지은이), 존 테니얼 (그림) 『가장 완전하게 다시 만든 앨리스』(사파리, 2015)

- 흑백 인쇄였던 구판 팔고 올 컬러 삽화😻인 이 책으로 재구입. 고가라 상태 좋은 중고 계속 기다렸는데 괜찮은 걸로 받아서 흡족. 책장의 붉은색 무척 고급스러워 좋고, 앨리스 그림은 존 테니얼이 제일인 듯.

 

📘 강유원 『책 읽기의 끝과 시작』(라티오, 2020)

- 호평받는 저자인데 나는 이 책으로 처음 접하게 됐다. 저자만의 읽기와 쓰기 내공을 배울 수 있길.

 

기형도 마니아로서 기형도 배지가 너무너무 갖고 싶어서 문학과 지성사 책 구매

📘 조용미 『당신의 아름다움』

- 매달 무슨 영양제처럼 사고 있는 시집😅 신영복 선생님도 시 많이 읽으라셨잖아요ㅎㅎ

📘 오정희 『저녁의 게임』

- 오정희 선생님 소설은 도서관에서 거의 읽어서 이번 기회에 책으로 구비. 잔잔하면서도 굵직한 울림을 전해주는 작가. 더 많이 알려져야 할 한국의 여성 작가!

📘 사샤 스타니시치 『출신』(은행나무, 2020)

- 나올 때부터 궁금했는데 이제야 샀다.

📘 W G. 제발트 『자연을 따라 기초시』(문학동네, 2017)

- 이것으로 제발트 선집 모두 구매했다😭

 

 

 

 

 

 

 

 

 

 

 

 

 

 

 

 

 

 

 

 

날이 더워지자 마스크 쓰고 돌아다니니 곧 땀이 차 난감하다💦 언제까지 이래야 되는지....

작년 3월 알라딘 굿즈였던 책모양 에코백 첫 개시했다. 디자인은 딱 내 취향이 아니지만 짐이 많이 들어가 무척 좋다. 알라딘 에코백 중 가장 크다. 알라딘 텀블러 챙겨 나왔는데 용량이 작아서 소용이 없었다. 요즘 커피를 왜이리 많이 주는 거😂💦

 

 

 

 📘 크리스티안 크라흐트 『망자들』(을유문화사, 2020)

- 2017년 맨부커상을 받았던 조지 손더스 『바르도의 링컨』(2018, 문학동네), 욘 포세 『아침 그리고 저녁』(2019, 문학동네)이 망자들의 세계를 환상적으로 다뤘던 것과 비교해보고 싶어서 구매했다.  예상대로 좋다.

 

 

 

 

 

 

 

 

 

 

🎁 4월 알라딘 굿즈 파티

없는 크기의 북커버 고르느라 고심했고 본투리드 북커버 데미안(46판, 140x200x35mm, 3,000원)을 먼저 샀다. 북커버는 반양장 작은 책용이다. 메이저 출판사 문고형 시리즈, 양장본은 대부분 안 맞다. 예쁘다고 막 사면 맞는 책이 없어 그림의 떡이 될 수...×ㅋ×)

책이 많다면 맞는 책이 있겠지만😂

※ 아쉬움 : 저번부터 가름끈이 계속 이건데 좀 촌스러워서 바꿔줬으면 싶다. 이 북커버엔 붉은 민무늬인 게 더 나았을 거 같은데 내 취향 문제^^;? 밴드가 몸체 분리형이라 분실 걱정도 되는데 언제나 그렇듯 100% 만족스러운 경우는 없으니.


 본투리드 북커버 데미안에 맞는 책

 

 

 

 

 

 

데미안 1차로 사고 두번 째로 산 본투리드 픽스 북커버 삐삐 롱스타킹 (신국판500, 170x240x37mm, 3,000원)이 클까 봐 염려했는데 생각보다 안 크다. 문학 살 때 주는 밤과 꿈의 뉘앙스 패브릭 북커버(3,000원)는 시집 전용이다! 문지, 문동, 민음사 시집 모두 커버할 수 있는 북커버라 매우 흡족하다.

 

 

 

 

4월에는 알라딘굿즈로 받은 북 커버, 배지로 집이 터질 지경이지만 다 맘에 든다. 으흑.

본투리드 배지_BOOKS ARE MAGIC(2,800원)

문학과지성 시인선 배지 - 입 속의 검은 잎(1,500원)

본투리드 배지+와펜 세트 - 셜록 221B(2,000원)

<책에 바침> 컵 받침(400원)은 가벼워서 휴대용으로도 괜찮고, 금속 참 북마크(데미안, 3,000원)는 고급스러워서 선물용으로 빼놔야겠다.

 

 

 

말괄량이 삐삐 굿즈가 갈수록 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삐삐 머그가 하나도 없는 건 좀🤔

본투리드 긴목 양말 Vol.2_삐삐 롱스타킹(1,000원), 본투리드 발목 양말 Vol.2_푸른꽃(1,000원) 등 맘에 드는 양말을 다 샀다ㅋ

4월 마지막 날에도 샀는데 다음 주 도착할 예정이라 5월 알라딘굿즈 풍년도 이미 예정^ㅇ^;

 

 

 

 

책만 사냐고요. 아니요, 무엇보다 읽는 게 우선이죠.

 

 

 

 

 

2020년 봄은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을 읽어야 할 거 같은 분위기. 책 자체도 4월에 더 의미가 있다. 카슨은 환경 문제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일으켰고 시민 운동까지 촉발시켰다. 이런 분위기 속에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은 환경문제를 다룰 자문위원회를 구성했고, 의회에서는 1969년 국가환경정책법안까지 통과되었으며, 미국에서 암 유발물질인 DDT가 사용금지 되었다. 1969년 캘리포니아 기름유출 사고도 있었으니 생태계 파괴에 대한 경각심이 더욱 컸다.침묵의 봄』을 읽은 한 상원의원이 케네디 대통령에게 자연보호 전국 순례를 건의했고, 이런 분위기로 1970년 4월 22일 '지구의 날'이 제정되었다.

 

📘 김병민 『주기율표를 읽는 시간』(동아시아, 2020)

-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셨는지 책 이곳저곳을 보면 여실히 알 수 있다. 책 커버까지 안팎으로 빈틈이 없어ㅎ0ㅎ)! 이번에 주기율표 완전정복 하겠다능!(의지 불끈) 동아시아 출판사 책은 확실히 공부 시켜준다ㅎㅎ

 

📘 사이먼 윈체스터 『교수와 광인』 읽고 싶던 책이었는데 마침 그의 신간 『완벽주의자들- 허용오차 제로를 향한 집요하고 위대한 도전』(북라이프, 2020)이 나와서 나도 도전~~~ 이 저자 책 제목 짓는 감각이 좋다. 정확성이란 무엇인가. 그 추구가 현재의 문명을 이끌어낸 여정을 좇는다. 이런 주제로 파고드는 책이라면 아무리 바빠도 안 볼 수 없다.

 

도심 거리에서 까치가 참새 파먹는... 영상을 보고 충격 먹고(길고양이가 죽은 길고양이 먹는 걸 본 트라우마도 있다😔) 귀여운 새 그림으로 마음의 정화.... 너도 인간처럼 먹을 게 없어서 그런 게 아닐 거잖아.

📘 (글)이우신/ 구태회 / 박진영 / (그림) 타니구찌 다카시 『한국의 새』(LG상록재단, 2014 개정증보판)

- 야외에 들고 다니기 쉽게 포켓북 스타일. 여름깃, 겨울깃으로 새도 철마다 옷을 바꿔 입는다.

그림 그릴 때 참고 자료로 쓰려고 산 거. 캐릭터 책보다 이런 사실적인 일러스트가 난 더 좋다. 응용할 게 많으니까. 새 그림이 페이지마다 10~20마리가량 되는데 일러스트 작가는 이 책으로 새를 천 마리 넘게 그린 듯. 대단🦜 이 경지까지 오면 지나가는 새가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공부가 중요하다.

 

 

 

 

 

 

 

 

 

 

📘 필립 k.딕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꿈꾸는가』(폴라북스, 2013)

- 황금가지 출판사 버전, 알라딘 리커버 버전도 샀는데 종이책이 눈에 잘 안 들어와 e book으로 드디어 완독했다. 《블레이드 러너》 영화랑 상당히 다른 내용이었다. 캐릭터 몇몇만 가져오고 스토리 전개와 맥락은 판이하다. 스타니스와프 렘의 동명 소설 『솔라리스』를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공동 각본까지 하며 만든 《솔라리스》 영화와 비슷한 상황?

 

 

 

 

 

 

 

 

 

 

이 일화는 여기저기서 참 많이 들었지만 엘든 테일러 『무엇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가』(알에치코리아, 2012,  절판)를 읽으며 좀 더 곰곰이 생각했다.

1985년 주다스 프리스트의 앨범 <얼룩진 수업 Stained Class>을 듣고 자살한 십 대 청소년이 있었다. 보통의 의식 상태에서는 듣는 사람의 귀에 들리지 않는 말들이 깔려 있는 음악이었다. 그 가사들은 '잠재 지각'을 건드렸고 그들은 자살을 결심했다. 운동장으로 가 각자 총을 쏘기로 했고, 레이가 먼저 자살한 뒤 그걸 본 제임스는 충격이 컸던 거 같다. 덜덜 떨다 총을 제대로 쏘지 못해 얼굴에 치명상을 입고 살아남았다. 그런 상처와 기억으로 계속 살기는 힘들었던지 약물 중독으로 3년 후 사망했다.

서태지 가사를 거꾸로 들으면 어쩌고 하던 일도 떠올랐다. 세기말의 정서, 질풍노도 시기, 인간관계, 사회적 압박. 우리는 무엇으로든 흔들린다.

얼마 전 무면허 운전으로 한 청년을 숨지게 만든 십 대 청소년들은 자신에게 어떤 잘못과 문제가 있었는지 알까. 앞으로는 알게 될까.

이 책은 말한다. 욕구 충족이나 믿음이 아니라 "마음이 하는 가장 큰 역할은 억제다!"

흔들리는 사람들, 흔들리는 나

현실에서든 책에서든 사실 온통 그 얘기다.

 

 

*

우리가 상실한 이유는 스스로 상실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 레프 니콜라예베치 톨스토이

 

 

 

 

 

『2020 제11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을 다 읽고 작년만 못하다 싶었다. 가부장제 문제(강화길 「음복)」, 용산 참사와 여성의 사회 위치 문제(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 동성애의 현실 생활 문제(김봉곤 「그런 생활」), 낙태에 대한 여러 관점과 레즈비언 정체성 고민(이현석 「다른 세계에서도」), 사고틀이 현실을 제한하는 딜레마(김초엽 「인지 공간)」, 도로 위 남성성 세계에서 두 여인의 짧은 연대(장류진 「연수」), 세대 갈등(장희원 「우리의 환대」) 등 소재는 다양할지 모르나 스케일이 작고 대부분 풀어가는 방식이 아쉽고 답답했다. 작법에서 강화길 작가가 가장 개성적이라 대상 수상이 수긍 갔다. 내게 가장 눈에 띈 건 이현석 작가였다. 가장 첨예하게 문제를 파고 들어서 앞으로 쓸 소설이 기대된다.

 

 

코로나19로 집콕 생활의 장기화, 도서관 폐쇄 등의 이유 때문인지 중고도서 주문이 하루에 3~4건이 될 정도라 나도 꽤 피곤하다. 올해 들어 벌써 60권의 책을 떠나보냈다. 책장의 빈 공간을 볼 때마다 시원섭섭하다.

조정권 『얼음들의 거주지』(미래사, 1991 초판)를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이 시집은 이전 시집들의 대표 시들을 엮은 편집 시집이다. 30년이 된 시집이라 요즘 시의 감성 생각하면 참 격세지감이었다.

 

 

 

 

 

 

 

 

불면이 여전해 잠이 오면 탐욕스럽게 자는 터라 '시간이란 오래오래 녹여 먹어야 하는 잠 오는 눈깔사탕'이라는 표현이 퍽 공감됐다. 전엔 눈여겨보지 않은 시였는데.

시가 예전 같지 않을 때 슬프다. 시의 역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동네 도서관이 내부 수리 중이라 안 그래도 대출하기 불편했는데 코로나19로 상황이 더 나빠져 집에 있는 책 위주로 읽고 있었다. 현재 우리 동네 도서관은 예약 도서와 희망도서만 대출해 주고 있다. 그나마도 내가 신청한 희망도서 대부분 거절당해 울적했다. 겨우 1권만 받아왔다.

 

다미 샤르프 『당신의 어린 시절이 울고 있다』(동양북스, 2020)

빌헬름 라이히 계보의 심리치료사이자 트라우마 치료 전문가의 책이다. 저자는 '인식' 위주보다 '몸'과 '관계' 위주의 치료가 더 효과적이라 보고 '신체 감정 통합 치료법'을 만들었다고 한다. 요즘 나는 이론보다는 현장 치료가 더 관심이 가 이 책을 신청한 거였는데 어떻게 풀어나갈지 나도 읽어봐야 알 거 같다.

 

 

 

 

 

📘 정민영 『미술책을 읽다』(아트북스, 2018)를 읽으며 고흐에 대한 정보를 또 몇 가지 얻었다. 책벌레였던 그의 책 목록을ㅎㅎ

 

 

 

 

 

📘 권박 『이해할 차례이다』(민음사, 2019)를 묵혀두다 이제야 읽었는데, 최근 접한 여성 시인 중 단연 돋보인다. 흡사 황병승, 김경주 시인의 출현 때처럼 설레게 한다. 긴 주석 달린 시 쓰기는 김경주 시인이 한때 잘 쓰던 기법이었는데 권박 시인은 또 새롭다. 페미니즘 성격이 강하지만 그것에 갇혀 있지 않다. 이 시집은 꼭 소장해 두 번, 세 번 읽어도 좋을 것이다. 취향 차이는 더러 있겠지만 특히 여성이라면 행간마다 공감할 글의 파워!

 

 

 

 

 

 

주말엔 사람 많을까 봐 공원에 잘 안 가서 몰랐는데 사람이 많았다. 원래 이런 건지 코로나 19로 집안에서 답답해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 이런 건지 잘 모르겠지만 난 후자에 속하는 사람. 독서 취미로 혼자 있는 걸 선호해 더 외톨이가 돼가는 거 같다. 각자 책과 돗자리를 가져와 빙 둘러앉아 책 읽는 모임 있어도 재밌겠다. 해지기 전 독서 감상 한 마디씩 하고 bye bye~ㅎㅎ

어쨌거나 책쟁이이자 굿즈쟁이는 책과 굿즈를 벗 삼아 혼자서도 잘 놀아요 시전.

숲속 도서관 근처에서 읽으려고 했는데 주변 조경이 좋은 걸 캐치한 어르신들의 술판이 벌어져 있길래 도망;;; 공원에서 술 냄새, 특히 막걸리 냄새 피우지 마시라고요🤢

내키지 않으면 뭉그적거리는 성격 탓에 읽기로 예정한 독서 계획이 틀어져 스트레스다. 사실 늘 이렇지만. 이 좋은 정취에 여유 있게 시집 같은 걸 못 읽고 딱딱한 책만 읽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요즘 꼭 필요한 지식을 담은 책을 읽는 건 필수.

이 책들은 최근에 본 BBC 근미래 SF 드라마 《years & years》(2019)와 연결되는 게 많다. 이 드라마의 큰 줄기인 가족애, 인류애가 더 붕괴되면 문제가 더 심각할 테지만. 이 시점에서 코로나19는 정말 큰 분수령.

 

 

 

https://youtu.be/9jLbW0CIt88

                            

 

천장이 높은 곳에서 학습 효과가 높다고 한다. 머리 위가 뻥 뚫린 하늘 아래서 책을 보면 마음도 신난다.

오늘은 새소리 들으며 책 좀 읽어 보실까. 새소리는 잠깐이고 심심한 벌🐝이 계속 추근대서 책을 휘두르며💦

이렇게 앉아 책을 읽으면 넓은 길 놔두고 내 근처까지 와서 지나가는 사람이 꼭 있다. 책 제목이라도 궁금한 건지. 이럴 때를 대비해 책 제목이 아주 잘 보이게 북 커버도 하지 않고 다 꺼내 놓고 본다. 혹 궁금하면 사서 보라고ㅋ 나는야 야외책전파단ㅋㅋ 좀 추웠다. 담엔 무릎담요도 챙겨야겠다. 캠핑의자도🤔💡

연못의 자라 가족도 해바라기 중. 너희들도 봄 좋지.

 

 

 

 집에서 선글라스 쓰고 소풍처럼 책 읽기. 이 땐 태양의 협조가 필요하다. 늘 도움이 필요한 존재, 사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0-05-04 2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20-05-11 21:06   좋아요 0 | URL
사진에서 제대로 반영이 안 된 거 같은데^^; 검은 색이 아니라 청록색이에요ㅎ;; 아니, 이 굿즈를 모르시다니 보슬비님 너무 건전하게 사시는 거 아닙니까...하려다 책 팔아 술 산다는 말씀이 이어져 푸풉....))))
굿즈 정보 나누면 좋지 않겠나 싶어서 페이퍼 정리하는 것도 일이네요ㅜㅜ
 
교육의 미래, 컬처 엔지니어링 - 질문하는 문화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폴 김 외 지음 / 동아시아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각자 일상을 살아가지만 전환의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는 것도 체감한다. 인류가 지금 겪고 있는 코로나19도 전후가 다를 큰 사건이다. 실시간으로 각국 정부의 대처와 사람들 행동의 현명함과 어리석음을 목도하면서 우리는 여러 가치 판단과 개념의 허상도 깨닫고 있다. 20세기 초에 사라진 줄 알았던 파시즘적 성격의 정부가 속속 재등장하고 인종차별, 민족주의, 젠더 문제가 들끓는 현재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갈까.

 

인류사의 도약은 빅 퀘스천(big question)의 등장으로 가능했다. 신화적 세계관을 자연과학적 세계관으로 전환했던 탈레스, 중세 신학적 사회를 인간 중심적 근대 사회로 전환하는데 기여한 데카르트나 다윈, 인간 노동의 창조성과 고유성을 발견한 마르크스 등 많은 역사적 위인들은 전환적 질문과 비판적 사고를 제시했다.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관점 전환적 질문이 중요한데 질문하는 능력은 ‘교육’의 역할이 가장 크다.

 

한국 사회가 질문 없는 교육과 사회였다는 게 크게 드러난 일화가 있었다. 미국의 전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내한했을 때 초대에 감사하며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을 요청했다. 아무도 질문하지 않아 중국 기자가 아시아 대표로 자신이 질문을 하겠다고 나서 오바마가 제지하고 한국 기자에게 재차 질문을 요구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우리에게 기레기 소리 듣는 것과 차원이 다를 한국 기자들의 세계적 굴욕이었다. 박근혜와 오바마의 한미 공동 기자회견에서 박근혜가 취재진의 질문을 잊고 엉뚱한 답변을 한 망신까지 덧붙여 한국인 모두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일체의 질문을 차단하고 수첩만 보고 측근만을 포용했던 박근혜 정권은 국정 농단의 파국까지 내보여 우리 사회를 아프게 돌아보게 한 거울이었다.

 

정치철학자 라인홀드 니부어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인간들이 도덕적이라도 그들이 구성하는 사회는 다른 집단적 정체성을 이룬다고 말했다. 집단이 추구하는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해 작동하는 시스템의 역학이 비합리적이며 정의롭지도 않은 정치적 파워 게임을 만들어내고, 도덕적 개인들마저 그 정치적 특수성에 가둔다. 그렇기에 사회 진화를 위해서는 개인의 선의지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현실적 메커니즘을 개선하는 실천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현시대에는 혁명과 같은 분노를 통한 사회체제의 감정적 전환은 불가능하며, 합리적 장치들을 디자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책의 제목이자 전달하려는 주제인 ‘컬처 엔지니어링’이 그 과정이다. 기술혁명과 글로벌 경제 시스템의 구조적 변화로 인해 맞닥뜨리게 되는 여러 사회문제 속에서, 상황에 대처하는 사회 구성원 전반의 사고방식, 대응 방식, 의식의 고착화 현상은 정부가 교체되어도 잘 바뀌지 않는다. 네 명의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의 컬처(‘개인과 조직의 사고·대화·행위 양식을 강제하는 의식적·무의식적 토대·구조·맥락’) 변화를 촉구한다. 인문학자 함돈균, 교육공학자이자 교육행정가 폴 김, 국제개발협력가 김길홍, 국제경제기구 아시아개발은행(Asian Development Bank) 교육 분야 대표이자 남아시아 인간 사회개발 디렉터 나성섭은 사회 인프라를 설치해도 이 하드웨어를 제대로 사용하고 유지·관리하는 것, 거기에 따르는 관습·제도·정책·규정·법을 바꾸는 것이 굉장히 힘들기 때문에 그 사회의 컬처, 사람들의 문화·인식·태도 같은 소프트웨어의 변화가 절실하다고 강변했다. “‘사회적 합의를 할 수 있는가’, ‘어떻게 변화를 받아들일 것인가’하는 합의 능력에 따라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회를 잡는가, 못 잡는가가 나눠질 것‘(김길홍)이다.

 

한국에서 광우병, 4대강 사건이 불신과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켰던 것처럼 네팔의 멜람치 물 공급 사업은 정부군과 마오이스트 무장 반군 세력이 내전 중인 상황, 많은 NGO(민간단체가 중심인 비정부(非政府) 국제 조직)까지 고려해야 해서 사업 추진 20년이 걸릴 만큼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어려웠다.

 

 

「이렇게 되면 가장 고통받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생활하기 위해 물이 필수 불가결한데, 가난한 사람들은 물 저장 시설이 없어서 더 크게 영향을 받아요. 물탱크로 가져와야 되니까 물값이 더 비싸져서 힘들어지고요. 물은 생존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사회가 겪는 고통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렇게 프로젝트가 사실상 ‘실패’하게 되면 두 번째 고통이 발생하는데, 정부 입장에서는 프로젝트 비용이 굉장히 올라간다는 거죠. 시간과 인력과 자원이 더 들어가게 되니 비용이 몇 배로 뜁니다. 또한 더 나쁜 점은 사람들이 ‘이 사회에 믿을 게 없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서 사회적 불신이 더 커지는 거죠. 아이러니한 사실은 이 과정에서 사회 지도층이나 와페드 등 누구도 사업 지연에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사업 지연의 고통은 온전히 시민의 몫으로 남았다는 것이죠. 한 번 크게 추락한 사회적 신뢰는 복구가 굉장히 어렵고, 계속해서 불신을 증폭하면서 사회적 갈등을 심화하게 됩니다.」(나성섭)

 

「갈등의 해소라는 게 그 자체로 중요한 것이거나 합의하면 그만인 것이 아니라, 사회의 수준을 어떻게 해서든지 더 높은 차원으로 나아가게 하는 방향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면, 그건 사회적 담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극단적으로는 지금까지의 얘기와는 반대로 구성원들의 의식 수준이 낮을 때에 사회적 무갈등의 상태에서 기술적 개발이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환경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적당한 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 경기장 시설인 동대문운동장이 흔적조차 남지 않고 사라지고 거기에 다른 구조물이 들어설 때 한국의 일반 시민들은 이 사안을 큰 저항 없이 받아들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 그 자리에 지어진 건물이 설령 멋있다고 하더라도, 그와는 별개로 이렇게 큰일들이 사회 구성원들에게 별 거슬림 없이 수용된다는 것도 기이한 일이지 않겠습니까? 어쨌거나 폴 김 선생님 말씀은 사회개발 프로젝트에는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 수준을 높이는 교육적 프로세스가 동시에 진행되어야 하고, 사회의 질을 생태계 수준에서 총체적으로 진화시킨다는 관점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겠죠.」(함돈균) 

 

 

4대강 사업이나 용산 참사 등 한국 정부는 강제적으로 갈등을 해결(?)하려는 후진적 사회의 모습을 자주 보여 왔다. 사회적 갈등이 만연하면 실행 기능이 떨어진다. 앞에서는 혁신을 말하면서도 노소, 계층, 개인·기업·공기관 할 것 없이 한국은 리스크 회피 사회다. 정부 보호 아래 기업은 단기 지대 추구를 최대화하려는 기회를 벌고자 해 스마트폰과 자동차 산업에서 새로운 기술 도입이 늦어진 게 대표적이다.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가 선호하는 공무원 직업도 리스크 회피 컬처라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건 실패를 감싸 안는 사회시스템이 안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벤치마킹하고 싶어 하는 실리콘밸리는 인재들을 끌어모으는 스탠퍼드대학교가 있고 그런 적극적 환경에서 만들어질 수 있었다. 한국의 새로운 산업은 획기적인 산업 재편성이 이루어진 미국이나 중국과 큰 차이가 있다. 게임 산업(넥슨, 넷마블 등), 인터넷 비즈니스 산업(카카오, 네이버 등), 엔터테인먼트 산업(BTS 등)으로 부상한 시장은 재벌 기업들이 자의 반 타의 반 진출하지 않은 분야였다. 새로운 산업으로 빠르게 움직이려면 노동시장의 유연성도 필요한데, 고용 안정이나 보수-진영의 이념 문제로 싸울 것이 아니라 생산적 전환이 가능한 재교육 시스템 디자인을 구축해야 한다.

 

‘글로벌global’이라는 단어는 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이들의 희망을 반영하는 시대적 키워드였고 경제 중심주의적 시각이 깔려 있다. 두 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시장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강화하는 불신의 키워드가 되었다. 앞으로의 키워드는 도시city다. 도시는 이제 하드웨어 인프라의 집적이 아니라 인재 가 집적하고 사회혁신과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플랫폼이다. 뉴욕, 워싱턴 시애틀(아마존), 캘리포니아 마운틴뷰(구글), 중국의 선전深?, 싱가포르가 대표적이다. 한국의 지역 사회 육성 사업은 보여주기식 행정이나 관광객 유치를 위한 단순한 이벤트가 많은데 이런 식으로는 지속 가능한 생태계가 될 수 없다. 기업과 공장을 도시에 유치함으로써 인재가 모이는 게 아니라, 인재를 도시에 모이게 함으로써 기업과 공장과 문화가 만들어진다. 미래의 도시 전략은 인재들이 모이는 복합적 도시 생태계를 디자인하는 방향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도시 개발을 한다고 할 때는 ‘도시 진화의 초점을 어디에 맞출 것인지’하는 핵심 진화에 대한 생각을 해야 되는데 이런 생각을 잘 하지 않는 것 같아요. 대부분의 도시들은 첨단 기술 직종들을 유치해 투자를 유도하는 문제에만 관심이 많은데, 젠트리피케이션이라든지 중간 직종의 몰락이라든지 젠더 이슈라든지 이 상황이 파생할 수 있는 문제적 이슈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어떻게 함께 진화할 수 있는가에 대해 연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도시화정책에서는 가치 지향이나 행정제도 실행 권한을 지닌 단체장 또는 정단이 누가, 어디가 되는가도 상당히 중요한 것 같아요. 경제적 이익만 바라볼 게 아니라 이처럼 핵심 진화를 생각할 수 있는 도시계획 모델이어야 한다는 거죠」(폴 김)

 

인간은 생산 도구인 ‘노동자’가 아니라 인적자본(노동자 개인이 보유한 능력, 숙련도, 지식을 아우르는 개념이자 기술 혁신을 위한 질적 노동)의 존재다. 경제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지식을 생성하고 축적하는 것과 기술 진보가 필요한데 이 두 개를 모두 이끄는 힘은 인적자본에서 나온다.

 

「저는 싱가포르도 인재 전쟁에 대해 수준 높은 문제의식을 지닌 나라라고 생각해요. 싱가포르는 2014년 국가 어젠다로 스킬스 퓨처Skill’s Future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는데 한국말로 하면 미래 인재 로드맵이에요. 스킬스 퓨처의 목적은 모든 국민을 어느 시기 어느 곳에 있든 간에 평생 교육의 주체로 만들겠다는 겁니다. 25세 이상의 모든 싱가포르 국민에게 500싱가포르달러에 해당되는 ‘스킬스 퓨처 크레디트’를 지원하여 정부가 승인한 직업훈련 기관에서 온·오프라인 훈련을 받는 데 쓸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바우처 제도입니다. 모든 국민이 자기 주도로 학습을 하여 자기의 역량을 최대로 고양할 수 있도록 유인하는 거예요. 이를 통해 새로운 지식과 직능을 배우고, 직업 전환도 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내가 엔지니어였는데 스킬스 퓨처를 통해서 건축가가 될 수 있어요. 그것을 정부가 도와줘요. 게다가 어떤 시기에든 할 수 있다는 거죠.

주목할 점은 이 스킬스 퓨처는 국가 최상위 정책이라는 말이죠. 보통 인력개발 정책이나 교육 정책은 국가 산업개발 정책을 지원하는 지원 정책입니다.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서 인재를 키운다는 발상에서죠. 그런데 싱가포르는 그게 아니에요. 앞서 제가 모토로라 사례와 싱가포르의 MRO 사례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인재 주도형 산업개발 정책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인재 우선, 즉 인재가 있으면 그다음은 뭐든지 가능하다는 거죠. 다시 말해 인재를 키우면 그 인재가 새로운 혁신을 통해 새로운 산업을 개척합니다.」(나성섭)

 

 

새로운 기술혁명 사회로 진입하며 많은 직업이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일자리 창출이 능사가 아니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나갈 수 있는 시스템이 한국에 시급하다. 일사불란함과 효율성으로 경제 발전을 도모하던 시절은 분명 지났다. 함돈균은 ‘계층, 지역, 세대 등 사회 갈등이 극심한 한국에서 사회적 다양성을 보장하면서도 사회 통합을 추구할 수 있는 문화 형성’을 위해 시민성(시티즌십)의 교육과 문화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대학교에 방글라데시인이 총장이 될 가능성이 희박하고 고위층 인사나 대기업 임원진 대부분이 남성인 한국 사회가 다양성과 수평적 관계, 위계와 나이와 서열이 아닌 능력 중심의 사회로 변화할 의지가 엿보이는가.

 

민주주의가 경제 번영을 보장하지 않는다. 필리핀, 방글라데시, 네팔은 민주주의여도 경제적으로 어렵다. 스탠퍼드대학교 프랜시스 후쿠시마 교수는 사회적 신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신뢰 사회는 구성원들 간의 가치와 원칙의 공유가 작동하고, 저신뢰 사회는 개인적 연고, 혈연적 연고에 의한 사적 신뢰에 기반한다. 한국은 OECD 기준으로 신뢰 정도가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다. 천안함 사건과 세월호 사건, 삼성 백혈병 문제, 가습기 살균제 사건, 감옥까지 간 전직 대통령들 등 일련의 사건과 그 처리를 보며 국민들은 행정부, 사법부, 모든 공권력, 국가 운영시스템에 사회적 신뢰가 많이 깨졌다. 방송과 언론까지 망가져 개인 팟캐스트 같은 미디어를 통해 공적 정보를 얻고 신뢰하는 문화도 생겼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정부든 실행에 어려움을 겪는다. 신뢰를 위해 구축해놓은 객관적 시스템이나 제도적 프로세스가 작동을 제대로 못하니 청와대 국민청원은 늘 문전성시다. 새로운 기술 매체의 등장과 대중문화의 압도적 양상과 전문가의 몰락 현상도 사회적 신뢰를 저해하는 요인이다. 가짜 뉴스는 여러 형태로 진화하며 점점 더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가 발달해갈수록 기계를 통해 인격적 관계를 맺은 아이들은 감각 프로세스도 그런 식으로 코딩될 것이고 인간 자체에 대한 신뢰도 떨어질 텐데 사회적 신뢰까지 추락된 상황이라면?

 

우리는 누구도 가보지 못한 매뉴얼 없는 사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모든 걸 자동화로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 해도 인간이 생각하지 않는 삶을 살 수는 없다. 매뉴얼을 넘어서거나 매뉴얼이 무용지물인 상황이 오히려 늘어나는 구조적 ‘위험사회’(울리히 벡)로 향하는 만큼 종합적이고 전체를 보는 눈을 키우며 제대로 된 질문을 하고 답을 찾는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이 필요하다. 후쿠시마의 쓰나미에서 매뉴얼대로 따르지 않고 상황 판단을 해 산으로 간 아이들이 어른보다 더 많이 살아남은 사례는 자율적 판단 능력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이 책이 제안하는 컬처들은 가장 기본이었어야 할 것들이라 새삼 놀랍다. 모나지 않게 처신하며 안정적인 사회적 틀에 맞춰 사는 패턴이 한국인이 바라는 삶이고 행복인가. 진실을 말하자면 사회안전망이 불충분하니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는 두려움으로 평균적 삶을 살기 위해 인생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바치는 악전고투의 모습은 아니었는지. 한국은 미래학교를 가지고 있는지. 아무리 실패하더라도 성숙한 미래 사회로 향한다면 나는 비판적인 시선, 질문과 함께 그 실패에 동참할 의지가 있다. 무수한 실패와 가까스로 얻는 성공은 끝없이 계속되겠지.

 

 

「미래학교라는 건 아이들이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학교입니다. 현재 한국에서 수능에 전부 쏟아붓는 게 아이의 대입을 결정할지는 모르지만, 이제부터는 학벌로 결정되는 사회가 끝나가고 있어요. 취직했던 회사가 없어지고 직업군 자체가 없어지는데, 일시적 취직이 평생을 보장할 수가 없죠. 자기 주도성은 대입이 아니라 평생을 결정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포인트가 뭐냐면 자기 스스로 결정을 할 기회가 많다는 것은 그런 결정을 통해서 실패할 기회를 많이 갖는다는 뜻이라는 겁니다. 실패할 기회를 효과적으로 자꾸 만들어주는 학교가 미래학교인 거예요.

이건 동시에 컬처이기도 해요, 잘못된 결정도 해봐야 하고, 거기에서 배우고, 실패할 기회를 주고, 실패를 통해서 다시 배우고, 더 발전된 나를 찾는 그런 기회와 환경을 제공해주는 학교가 미래학교의 모습이라는 겁니다. 보다 나은 미래는 실패의 계기, 실패를 학습하는 일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런 교육 프로세스와 그런 학교를 디자인하는 것이 사회가 한 단계 진화하고 성숙해지기 위한 컬처 엔지니어링이기도 한 것입니다.」(폴 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