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거의 떠나온 상태에서 떠나오기』(바다출판사, 2020)
-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를 안 읽을 수는 있지만 한 번 읽기 시작하면 한 권만 읽고 끝날 수 없는 작가!
월리스의 글 특징을 "시대에 뒤떨어진 괴팍한 늙은이로 보일 만큼 깐깐하게 굴면서까지 무언가를 제대로 해내려고 하는 태도, 그러면서도 사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임을 인정하는 태도"로 독자에게 통렬한 즐거움을 안긴다고 말한 토머스 벨러의 평에 적극 동감합니다.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바다출판사, 2018)을 펼쳤을 때처럼 심드렁하면서 집요하고 재밌는 그의 시선과 문장이 격하게 좋습니다. 이 삼 박자가 어우러지기 쉽지 않죠. 심드렁한 문체는 어지간한 독자가 같이 흥미를 느끼기 어렵고, 집요하기만 하면 글이 지루하고 늘어지기 쉬워 재미를 느끼기 어려우니까요. 그래서 내게 그는 에세이의 왕!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국내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첫 단편)에서 취재차 오른 호화 크루즈 디너 모임에 어울리지 않는 티셔츠 차림이었던 것처럼 「거의 떠나온 상태에서 떠나오기」 (『거의 떠나온 상태에서 떠나오기』 첫 단편)에서는 일리노이주 축제장 취재를 가 정장과 골프 셔츠와 유럽 슈트 차림인 남자들 속에서 "이 안에서 티셔츠를 입은 사람은 나밖에 없다" 하고 있네요😅😁😅
🎁 그 외 알라딘 굿즈
🎀 본투리드 티셔츠 Vol.4 어린 왕자 화이트(S, 5,000원)
- 안 이쁘다고 투덜댔지만 안 사긴 또 아쉬운 시즌 굿즈. 어린 왕자 마크가 가장 예쁜 걸로 구입해봤습니다. 얇은 여름용인데 곧 변색될 거 같은 느낌ㅎ; 올 한철만 입을 게 아니라면 흰색 사는 건 추천드리고 싶지 않군요.
S 사이즈도 상당히 넉넉하니 여성분은 프리하게 입자고 M 사이즈 사면 망합니다ㅎ! 타이트하게 입고 싶거나 44~55 정도 되는 분은 XS 사이즈 사셔도 돼요.
🎀 우드 스틱 북마크 모비딕(2,500원)
- 1,500원 정도가 적당할 거 같은데 비싸다고 생각. 문득 아이스크림 바를 리폼이나 해볼까 생각도-,,-)a
🎀 본투리드 에어팟케이스+키링(아크릴. 마크 트웨인과 밤비노, 3,000원)
- 케이스보다 키링이 더 예뻐서 구매.
🎀 알라딘 원두 4월 신상이었던 에티오피아 시다모 난세보를 맛보지 않을 수 없어 사고, 콜드 브루 헤밍웨이도 두 병째 구매.
🎀 본투리드 스티키 북마크 죄다 품절인데요. 이리 된 지 꽤 됐는데 왜 빨리 수급이 안 되는 거지요? 결국 포스트잇 플래그로 구매.
몇 년 만에 만난, 책 안 보는 녀석에게 문장이 적은 책 선물로 뭐가 좋을까 하다가 비닐 안 뜯은 📘 허먼 멜빌(원작), 크리스토프 샤부테(각색, 그림) 『그래픽 노블 모비 딕』(문학동네)을 선물로 줬습니다. 최근에 획득한 모비딕 우드스틱 북마크도 같이 줘서 모비 딕 굿즈가 줄었어요. 흑흑. 이러려고 굿즈 모으면서도 아쉬운 건 아쉬워. 예상대로 녀석은 모비 딕을 완독하지 않았더군요. 다 보고 중고로 팔면 영화 한 편 볼 값은 나올 거라 했어요. 책은 이러저러 유용하다니까요ㅎ 금본위제가 아닌 책본위제 생활자;
보내고 아쉬워서 중고도서로 다시 샀는데 알라딘 중고도서 수급은 정말 놀랍습니다. 내가 사길 기다렸군😅 혹시나 해서 신청한 중고도서 알림으로 단 이틀 만에 만났습니다.
비닐이 없어서 접근하기 쉬워졌습니다. 읽을 책이 쌓여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비닐 래핑 책은 뜯기 아까워서 한참 놔두기 때문이죠.
반려동물 없는 독서가라 모비 딕 실리콘 북램프를 쓰담쓰담 하며 책 읽는데 이게 은근 기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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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확실성에 관하여』(책세상, 2019년 8월 초판 6쇄) 새 책으로 재영입. 한때 품절이더니 이제 정상 재개군요.
알라딘은 굿즈 맛집에 이어 ☕ 알라딘 커피로 원두 맛집도 되었다. 매달 신상이 나오니 다른 데서 살 일이 없어요. 집에서 먹는 커피가 더 좋아 나갈 일이 더 없고요.
우리 집이 도서관이고 카페ㅎㅎ
우연히 youtube에서 50대 미혼 생활을 담은 미쓰리 tv를 보고 비혼 문화에 대해 생각하다 에스터 페렐 『우리가 사랑할 때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을 읽기 시작했어요. 결론의 장벽 중 하나인 불륜을 본격 다룬 책이죠. 많은 것들이 그렇듯 결혼을 낭만주의로 접근할 때 깨어지기 쉽죠. 결혼의 이유만큼이나 경제적 자립, 관계의 피곤함 등등 비혼의 이유도 타당 혹은 당당해지고 있어요. 소비사회 문화로 더욱더. 이런 상황을 파악하지 않으면서 '진실한 사랑', '영원한 사랑' 운운한다면 그의 사랑은 반드시 실패할 겁니다.
1.
“널 사랑해. 우리 결혼하자.” 역사상 이 두 말은 함께 쓰인 적이 거의 없다. 하지만 낭만주의가 대두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산업혁명으로 사회가 급변하면서 결혼의 의미가 재정립되었다. 결혼은 경제 단위에서 동반자 관계로 서서히 진화했다. 이제 결혼은 책임과 의무가 아니라 사랑과 애정을 토대로 한두 개인 간의 자유로운 계약이 되었다. 작은 마을에서 도시로 삶의 터전이 바뀌면서 우리는 더 자유로워졌지만 한편으로는 더욱 외로워지기도 했다. 개인주의가 서구 문명을 무자비하게 뒤덮었다. 현대의 삶에서 점점 커져 가는 외로움과 맞서 싸우기 위해 배우자 선택에 낭만적 염원이 스며들었다.
2.
불륜은 사라지지 않았다. 가망 없는 낭만주의자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매력과 사랑에 기반한 결혼은 물질적 동기에 기반한 결혼보다 훨씬 깨지기 쉽다. (그렇다고 오랫동안 변함없이 이어지는 결혼 생활이 더 행복하다는 것은 아니다.) 사랑에 기반한 결혼은 변덕스러운 인간 심리와 배신이 드리우는 그림자에 ‘더욱’ 취약하다.
나와 상담하는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사랑과 행복을 중요시한다. 하지만 잔인한 운명의 장난인지, 그 결과로 생겨난 의식이 원인이 되어 오늘날 외도와 이혼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과거에 사람들은 결혼이 사랑과 열정을 담보해 주지 않아서 바람을 피웠다. 오늘날 사람들은 결혼이 마땅히 주어야 할 사랑과 열정, 온전한 관심을 주지 못해서 바람을 피운다.
나는 매일 사무실에서 현대 결혼 관념의 소비자들을 만난다. 이들은 상품을 사서 집에 들고 온 다음 상품에 결함이 있음을 발견한다. 그래서 수리점에 찾아가 박스 겉면에 붙은 사진과 똑같이 만들어 달라고 요구한다. 이들은 관계에 대한 자신의 염원(관계에서 얻고 싶은 것과 마땅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리고 낭만적 이상이 전혀 낭만적이지 않은 현실과 충돌하면 화를 낸다. 이 유토피아적 환상에서 깨어난 뒤 환멸을 느끼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도 당연하다.
3. 낭만 소비주의 시대
“욕구 충족이 안 되고 있어요.” “이 결혼은 더 이상 저랑 안 맞아요.” “전 이런 것에 합의한 적 없어요.” 상담에서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불만들이다. 심리학자이자 작가 빌 도허티Bill Doherty가 말했듯 이 발언들은 “개인의 이득과 저비용, 권리, 손해 보지 않으려는 태도” 같은 소비주의적 가치를 관계에 적용하고 있다. 도허티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여전히 헌신적인 관계가 가능하다고 믿지만, 우리 내면과 바깥에서 들려오는 힘 있는 목소리는 결혼 생활에 필요하고 마땅히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적은 것에 만족하는 사람은 바보라고 말한다.”
소비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새로움이다. 애초부터 상품은 곧 한물간 구식이 되도록 제작되는데, 그래야 새 상품을 갖고 싶은 욕망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커플도 이런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더 좋고 더 새롭고 더 생기 넘치는 것을 약속하며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하는 문화에 살고 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더 이상 불행하기 때문에 이혼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더 행복할 수 있기에 이혼한다.
이제 사람들은 즉각적인 만족과 무한한 다양함을 자신의 특권으로 인식한다. 이전 세대는 삶에 희생이 따른다고 배웠다. “원하는 걸 다 가질 순 없어”라는 말은 반세기 전에는 타당했지만 지금 35세 이하 인구 중 이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사람들은 좌절의 경험을 악착같이 거부한다. 당연히 독점적 관계에 따르는 구속은 패닉을 불러온다. 선택지가 끝없이 펼쳐진 세상에서 사람들은 포모FOMO로 괴로워한다. 포모FOMO는 밀레니얼 세대인 내 친구들이 사용하는 용어로, 좋은 것을 놓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fear of missing out을 뜻한다. 이 두려움은 우리를 ‘쾌락의 쳇바퀴’, 즉 더 좋은 것을 향한 끝없는 추구로 몰아넣는다.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순간 다시 기대와 욕망이 차오르고, 행복하지 않게 된다. 스와이핑 문화(스마트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넘겨 가며 데이팅 앱에서 상대를 고르는 문화-옮긴이)는 끝없는 가능성으로 우리를 유혹하지만 한편으로는 미묘한 횡포를 가한다. 즉시 다른 대안을 선택할 수 있으면 대상을 부정적으로 비교하고 책임감이 낮아지며 현재를 즐기지 못하게 된다.
서구 사회의 변화에 따라 인간관계 또한 생산 경제에서 경험의 경제로 바뀌었다. 철학자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은 결혼이 “하나의 제도에서 감정을 바치는 행위로, 외부로부터 인정받는 통과의례에서 어떠한 감정 상태에 대한 내적 반응”으로 변화했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은 더 이상 동사가 아니다. 사랑은 끝없는 열정과 심취, 욕망을 나타내는 명사다. 이제 관계의 질은 곧 경험의 질이다. 함께 있을 때 따분하다면 안정적인 가정과 높은 연봉, 말 잘 듣는 아이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 사람들은 관계를 통해 영감을 얻고 변화할 수 있기를 바란다. 관계의 가치는, 즉 관계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느냐는 관계가 경험에 대한 갈증을 얼마나 잘 채워 주느냐에 달렸다.
현대의 외도 이야기는 바로 이 자격 의식에 따라 움직인다. 오늘날 달라진 것은 사람들의 욕망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 욕망을 추구하는 게 마땅하다고(추구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자기 자신을 위하는 것이다.
꼬박꼬박 챙겨 읽는 《Axt》. 2020. 5. 6 이번 호 키워드는 '백신'
때가 때인 만큼 코로나19로 인한 불안한 시대 분위기, 존재론적 물음, 페미니즘이 잡지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1.
"영화가 의학의 곁에서 바라보는 순간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생명을 가지는 동안 그 몸이 보여주는 이상(異常)한 운동입니다. (중략) 두 번째는 죽은 다음 시체를 자르거나 나누고 분리해낼 때 영화는 곁에서 근육과 뼈, 심장, 창자, 뇌수를 냉담하게 지켜봅니다. 하지만 세 번째, 방금 말한 생명이 몸을 떠나가는 순간, 그래서 시체로 옮겨가는 순간에 가장 관심이 있습니다. (중략) 이 과정에서 의학과 영화는 서로 반대의 방향에서 동일한 일을 했습니다. 의학이 생명을 관찰하기 위해서 몸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동안 영화는 몸을 관찰하기 위해서 생명을 의학이 마음대로 다루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저는 의학에 대해서 질문을 던질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대신 영화에 질문을 던져보고 싶습니다. 영화는 몸을 관찰하기 위한 대상과의 거리를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가. 그 거리에서 과학적 거리와 도덕적 거리는 얼마만큼 멀리 있고 또한 가까이 있는가. 만일 이 질문이 성립한다면 이렇게 질문을 바꿀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영화에게 그 거리는 동시에 과학적 거리이자 사회적 거리이기도 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영화는 그 거리에서 생명에 대해 지니는 거리만큼 죽음에 대해서 다루는 거리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같은 말을 한 번 더 한다면 과학과 도덕 사이의 거리에 대해서 영화는 어떤 원칙을 가져야 하는가.
그러므로 결국 마스크를 찍는다는 문제는 몸에 관해 가져야 하는 과학과 도덕 사이에서 그 영화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로 밀고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고다르는 멋진 말을 했습니다. “트래블링은 도덕의 문제이다.” 그 말에 용기를 얻고 이렇게 말해보고 싶어집니다. (코로나19라는 상황에서) 동시녹음은 도덕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화가 몸과 맺는 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처럼 문학의 대답이 궁금해집니다. 코로나19라는 상황에서 문학에서는 무엇이 도덕의 문제입니까."
ㅡ 정성일 <도덕의 문제>
2.
김성중 <우리는 서로에게 백신이 되어줄 수 있을까>를 읽고 인간이 인간에게 백신이 되는 것을 그린 옥타비아 버틀러 「저녁과 아침과 밤」( 『블러드 차일드』 수록 단편)을 읽고 싶어졌습니다.
3.
"만일 내가 파라노이아 같은 망상증이나 편집증에 시달리는 환자였다면, 지난 2월 18일 31번 확진자의 출현 이후, 두 달여 동안 나와 타자의 경계선은 더더욱 분리되었을 것이다. 약간일지언정 상상의 병을 앓지 않은 자 누구일까. 왠지 늘 미열이 있는 것 같고, 몸이 늘 아픈 것 같고, 이상하게 슬프다. 불행하지는 않은데 행복하지는 않고, 예전처럼 투명하게 빛나는 환희는 온데간데없다."
"프랑켄슈타인과 괴물은 서로 다른 자가 아니라 같은 자이다. 이들의 체세포 분열은 어디서 오는가?
‘휴브리스(Hubris)’. 자만심? 아니, 경계를 넘는 과도함이다. 절대 넘어가서는 안 될 영역을 넘어간 자들의 죄명에 붙여지는 이 값진 그리스어는 가령, 루비콘을 ‘넘은’ 카이사르보다 인도의 나체 수행자들을 보고 말의 머리를 돌린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서 더 큰 위대함을 보는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알렉산드로스를 이상적 모델로 가슴에 품었던 한니발이 알프스 산맥은 넘었으나 로마라는 절대 영역은 끝내 입성하지 못한, 아니 안 한 이유를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그의 ‘휴브리스’ 원죄로 ‘괴물’을 탄생시켰다. 내적 분열은 과도함이 빚어낸 파생적 결과이다. 분열로 반영을 갖게 된 이 두 존재태는 가학자와 피가학자로, 창조주와 창조물로 끊임없이 서로를 증오하고 공격한다."
ㅡ 류재화 <전이 공포와 휴브리스 경고: 프랑켄슈타인과 프로메테우스 -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4. 작가들은 의뢰가 들어올 때만 소설을 쓴다 & 왜 여성 작가에게만 육아의 어려움을 물어보는가, 이 두 이야기가 오롯이 남은 김미월+손보미의 인터뷰
5. 이번 호에서는 인상깊은 칼럼은 없었고 백가흠 『아콰마린Aquamarine』(2회) 소설이 제일 재밌었습니다. 한국 사회 분위기, 미제 사건을 잘 반영하고 있다. 어떤 결말을 만들지 기대됩니다.
햇빛🌞 좋아 데리고 나온 올리버 색스 『모든 것은 그 자리에』(알마출판사)
그가 탐구쟁이가 된 일화들이 펼쳐집니다.
📖 도서관 예찬
"나는 선천적으로 수동적인 게 싫었고, 매사에 능동적이라야 직성이 풀렸다. 내 스스로, 내가 원하는 것을, 내게 가장 알맞은 방법으로 배워야만 했다. 나는 좋은 학생이라기보다는 좋은 학습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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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도서관은 뭐니 뭐니 해도 내가 다녔던 퀸스칼리지 도서관이었다. 빼어나게 아름다운 도서관 건물 자체는 크리스토퍼 렌이 설계한 것으로, 난방용 파이프와 선반이 뒤엉켜 있는 지하의 미로에는 방대한 지하 장서가 보관되어 있었다. 인큐내뷸러incunabula라고 불리는 고서들을 내 손으로 직접 만져보다니! 그것은 전혀 새로운 경험이었다. 나는 특히 뒤러의 코뿔소 그림을 포함해 경이로운 판화 삽화들이 잔뜩 들어 있는 게스너의 《동물의 역사Historiae Animalium》(1551)와, 아가시의 네 권짜리 화석어fossil fish 전집에 경탄을 금하지 못했다. 다윈의 저서 원본을 구경한 곳도, 토머스 브라운 경의 저서들(《의사의 종교Religio Medici》 《호장론Hydriotaphia》 《영혼의 정원The Quincunciall Lozenge》)을 모두 발견하고 곧 사랑에 빠진 곳도 그곳이었다. 브라운 경의 저서 일부는 황당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그 화려한 언어란! 간혹 브라운의 ‘고전古典 실력 뽐내기’가 지나치다 싶으면, 스위프트의 신랄한 풍자소설로 갈아탈 수도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말한 책들은 물론 모두 초판본이었다. 나는 부모님이 선호하는 19세기 서적들에 둘러싸여 성장했지만, 대학생이 된 뒤에는 퀸스칼리지 도서관의 카타콤베에서 17~18세기의 존슨, 흄, 포프, 드라이든 문학에 입문했다. 그 책들은 (특별히 자물쇠가 채워진) 희귀본 코너가 아니라 평범한 서가에 진열되어 있어서, 자유로운 열람이 가능했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 책들은 처음 출간된 이후로 줄곧 그 자리에 놓여 있었던 것 같았다.) 내가 역사와 모국어인 영어에 정말로 관심을 갖게 된 것도 퀸스칼리지 도서관에서였다.
나는 1965년에 뉴욕으로 처음 이사했는데, 끔찍하리만큼 비좁은 아파트를 얻는 바람에 글을 읽거나 쓸 공간이 거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냉장고 위에 원고지를 올려놓고 팔꿈치를 엉거주춤 치켜든 채 첫 책 《편두통》을 쓰는 것이 고작이었다. 나는 널따란 공간을 간절히 원했는데, 때마침 내가 근무하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의대의 도서관에 그런 공간들이 많았다. 나는 커다란 테이블에 앉아 한참 동안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가, 간간이 자리에서 일어나 서가와 선반 사이를 이리저리 누볐다. 나는 아무 곳에나 내키는 대로 시선을 던졌는데, 그러다가 뜻밖의 보물을 발견하고는 ‘이게 웬 횡재냐’ 하고 쾌재를 부르며 내 자리로 가져오곤 했다."
이 부분을 읽자마자 스위프트 『걸리버 여행기』도 읽기 시작했습니다. tvN 책 읽어드립니다 패턴도 이런 식인 듯.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
두 시간도 안 지나 천둥번개 동반한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
날씨 이거 뭐여💦
비 그치고 시를 읽읍시다.
최승자 『기억의 집』(문학과 지성 시인선 78, 1989년 초판 발행)
이 시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는 「희망의 감옥」
"저 혼자 자유로워서는 새가 되지 못한다"
이상한 역설이지만 이상하게 수긍되고.
사진 찍다 시집이 휙 날아갈 수도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다시 만날 거라는 확신. 비 그치고 세상을 다시 바라보듯 시를 읽는 마음. 시를 쓰고 읽는 것은 희망이 아니라 나의 비관을 곱씹는 일.
시 읽다 커피가 식는 줄도 모르고
담장을 감는 5월의 장미를 기쁘게 바라보다
좋은 순간이 가는 것도 모른다.
이 순간은 내 인생의 어디쯤인가.
우리의 후회와 슬픔은 길게 따르고.
앗, 신분증!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약국이 곧 문 닫을 시간이고 집에 갔다 오기엔 너무 멀었습니다. 지난주에도 마스크를 사지 못해 이번 주에는 꼭 사야 했습니다. 주말에 살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남은 마스크는 간당간당했습니다. 면 마스크는 요즘 더워서 쓰기 싫은데.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다가 신이시여! "제게는 10개의 카드가!" 아니고 카드 지갑에는 도서관 회원증이 있었습니다. 요즘 도서관도 못 가는데 이건 또 기특하게 들고 다녔네;; 그래, 이거야! 관대한 약사님이라면 봐줄지도 몰라 하고 약국에 들어갔습니다. (주섬주섬) 제가 도서 회원증 밖에 없는데 주민번호 불러 드리고 도서 회원증과 제 이름을 대조하시면 안 될까요? 약사님은 강경하게 안 된다고 하시다가 아무래도 도서관 회원증이라 신뢰하신 건지도 모릅니다. 정보 입력 후 이름 대조하고 정신 차리고 다니라며(😅😅😅할 말 없음) 마스크를 하사하셨습니다😭
살 때마다 매번 마스크가 바뀌는데 어떤 마스크가 제일 좋은 건지ㅎ;
나갈 때 악착같이 책은 들고 다니면서 신분증은 안 들고 다니는 이 사람의 오늘의 해프닝. 마스크를 대량으로 구입해야 하나. 아, 귀찮은데.
딴 나라 생각하면 배부른 소리.
「향연」 "아름다움은 징그럽고 징그러움은 아름다워라"
「세바스토폴 거리의 추억」 "우리는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는 법은 알지만 그 끝이 무언지 결코 모르지 않던가? (중략) 시를 읽으면, 살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
「개」 "줄의 길이가 개의 시민권이며"
「난초」 "젊음이 젊음을 못 보듯 지옥에서 시 쓰는 자는 없어"
「산책」 "성스런 계시란 늘 모호하기 짝이 없는 것 아닌가?"
「모자이크」"성숙을 멈추고 분열하기 시작한 나의 영혼처럼"
「면사포」"냄새와 비명은 빠져나오지만 형상은 갇혀 있구나 (중략) 시간은 길고 아름다운 두 다리를 갖고 있지"
「피아노」"무인도를 찾아 가출할 궁리를 한다 (중략) 단단한 벽에 부딪혀 이빨이 다 부러진 햇빛이 젖은 바닥에 아픈 주둥이를 비벼대고 있는데"
「寄生現實」"꿈은 결코 실현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꿈이란 예언인 동시에, 그 예언의 실현이기 때문이다"
「절벽에서」"매달린 자가 손을 놓아도 떨어지지 않는 절벽은 자기도 언젠가 매달려본 절벽"
「악수 혹은 친화력」"할머니처럼 늙은 사물들은 왜 손을 잡고 우는가? (중략) 오른손이 그리웠던 왼손이 내 머리 속에 슬픔을 만들어 넣고는 마침내 나 몰래, 저희들끼리 악수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현기증」"벌레는 어둠 아니면 빛 , 둘 중의 하나에 갇힌 게 분명하다."
ㅡ 김중 『거미는 이제 영영 돼지를 만나지 못한다』(문학과 지성 시인선 260(2002))
책장이 아니라 바깥에 있는 책이 나는 더 좋습니다. 같이 삶을 사는 느낌이 생생히 전해지니까요.
모든 벤치엔 책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분명 사람이 머무르는 걸 보겠지요.
이언 해킹 책으로 유일하게 번역된 거 같은데『표상하기와 개입하기 -자연과학철학의 입문적 주제들』(한울아카데미)
'논리 실증주의의 등장 이래로 과학철학에는 두 차례 큰 변혁이 있었다. 하나는 1962년 출간된 토머스 쿤 『과학 혁명의 구조』가 일으킨 변혁이었고, 다른 하나는 1983년에 나온 해킹 『표상하기와 개입하기』가 수행했다'고 평가받습니다. 토머스 쿤 『과학 혁명의 구조』를 읽었다면 이 책도 안 읽을 수 없지요.
이번 달 책 구매는 이렇게 모였습니다.
이걸로 이번 달엔 고만 사자하고 마지막으로 산 매기 넬슨 『블루엣 - 파란색과 사랑에 빠진 이야기, 그 240편의 연작 에세이』(사이행성)
도서정가제 6개월이 지나길 기다려 최상 상태의 중고도서로 풀리자마자 바로 구매했습니다😇 본문 글자도 파란색.
시와 산문, 에세이와 역사, 예술과 철학의 범주를 오가 '독자 발밑의 카펫을 잡아 빼는 비트겐슈타인의 글쓰기'라는 평과 함께 자서전의 한계를 문학 비평으로 확장했다는 평가를 들으니 안 읽어볼 수 없죠!
딱 시집 크기와 분량인데 웬만한 시집보다 낫네요💙
미셸 파스투로 『파랑의 역사』와 같이 읽으면 좋을 듯.
blue 💙 블루 💙 파랑을 사랑하는 자들이여, 모여라.
알라딘 콜드브루 1병 더! 맥주에도 타 먹어야징😉
※ 향이 강한 에일 맥주류와는 궁합이 안 맞아요.
위험한 과학책 이제야 샀는데 예쁜 리커버가 나오다니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