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의 고고학 - 로마 시대부터 소셜미디어 시대까지, 허위정보는 어떻게 여론을 흔들었나
최은창 지음 / 동아시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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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디지털 굴뚝에서 매연과 소음이 무럭무럭 뿜어져 나오는 디지털 시대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으리라 본다. 저자는 우리들이 부지불식간에 이상한 나라로 떨어지는 앨리스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의 상황은 모험을 겪고 안락한 집으로 돌아오는 픽션의 세계가 아니라 아비규환의 현실이라는 게 문제다.

 

 

 

이 책은 “수많은 형태의 ‘거짓’이 어떤 이유에서 생산되고, 누가 어떻게 전달했고, 어떤 혼란과 피해를 주고, 어떤 방식의 규제가 제안”되었는지를 살핀 가짜뉴스 현상의 고고학적 탐색이다. 국내 학계는 가짜뉴스 개념을 “형식과 내용을 모두 기만하는 가짜 정보”로 좁게 보지만, 저자는 ‘악의적 유언비어’, ‘거짓 소문’, ‘정치 프로파간다’, ‘왜곡된 뉴스 보도’, ‘뉴스 정보의 파편’까지 포함시켰다. 가짜뉴스와 허위정보는 그 목적에 따라서 크게 네 가지 유형이 있다. ①자극적 제목으로 노출시켜 클릭을 유도해서 광고 수익을 얻는 가짜뉴스, ②정치적 여론의 향방을 인위적으로 이끌기 위한 ‘온라인 프로파간다’ ③알고리듬, 봇넷botnet 등 허위정보를 생산하고 전파하는 자동화 기술의 활용, ④광우병 보도, 기후변화, 백신 접종 거부, GMO 식품 등 대중의 공포를 자극하는 ‘과학적 위험성’을 다룬 뉴스가 그렇다.

 

 

 

 

 

 

 

“거짓과 허위정보는 대중의 관심을 이끌고 분노 감정을 유도하기 위한 사실의 날조, 왜곡하는 전언傳言, 증오심 부풀리기, 적군과 아군을 나누는 선동의 요소였다. 그것은 갑작스러운 낯선 침입자가 아니라 정보 생태계의 오랜 주민이었고, 우리 자신이기도 했다. 인쇄술, 라디오, 무선 전신, 웹브라우저, 모바일 인터넷 등 기술 발전에 힘입어 미디어의 힘이 강력해지는 동안 허위정보도 그림자와 같이 진화를 거듭했다. 미디어의 역사는 허위정보 전파의 역사이기도 했다. 16세기 팸플릿의 시대부터 1930년대 라디오의 전성기, 1960년대 TV 뉴스 방송에서도 오보와 허위정보는 흘러나왔다. 완전한 사실만이 뉴스로 전달되던 시대는 한 번도 없었다. …(중략)… 소문이나 발언 가운데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가를 지배 권력이 자의적으로 판단할 때 생겨나는 해악은 중세 가톨릭 종교재판소, 18세기 청나라의 저혼 사건, 반대자를 가혹하게 탄압한 나치의 비밀경찰, 중국의 국가인터넷판공실이 실시하는 강력한 단속이 보여준다. 교황권은 이단 척결을 내세워 마녀사냥을 가톨릭의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나치의 프로파간다는 게르만 민족주의 자긍심을 고취시켰고, 미국의 적색 공포 프로파간다는 반공산주의가 곧 애국이라는 명분으로 대중을 설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선동가가 거짓으로 정치권력을 잡았을 때는 많은 희생양들이 뒤따랐다.

왕권제와 교황의 지배력이 사라지고 민주적 공화정이 들어섰지만 여전히 민주주의는 취약한 제도였다. 대중의 심리는 언변을 갖춘 선동가가 제공하는 표면적 명분을 갖춘 반복적 메시지에 쉽게 흔들릴 수 있었다. 허위정보의 생산자들이나 프로파간다의 선동원들은 이 점을 알고 있었다. 어떤 계기로 인해서 여론의 흐름이 쏠리면 소떼몰이가 가능했다. 선거의 승리가 모든 것을 잠재우고 권력을 부여하는 시스템에서는 유권자를 분노하게 만들든지, 속이든지, 선동하든지, 위협하든 승리하면 된다는 생각은 여전히 지배적이다.”

 

 

인쇄기가 발명되기 전까지 대부분의 뉴스 정보는 입을 통해 전달되었다. 웅변술과 연설은 정보의 전달이나 공적인 토론이 아니라 대중의 ‘설득’에 사용되었다. 긍정성의 이웃으로 부정성도 따라다니듯 인쇄술은 라틴어 성경, 지식의 전파, 팸플릿을 통한 사회 비판뿐 아니라 마녀사냥의 방법과 지침을 담은 정보를 퍼트리는 데도 기여했다. 혹스(Hoax, ‘괴담 또는 속임수’)와 도시전설, 만우절 뉴스는 사회적 해악을 초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유언비어나 근거 없는 소문은 권력자나 집단 광기와 만나 1768년 저혼 사건, 1923년 간토 대지진 당시 일어난 조선인 학살 같은 폭력 행위를 낳기도 했다. 1800년대 중반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는 미국 옐로 저널리즘의 전성기였다. 페니 프레스 penny press 시대 신문사들은 괴담, 모험담, 엉터리 의료 지식, 괴물 이야기, 가짜 인터뷰 등 독자들이 원하는 흥밋거리를 신문에 실었지만 독자를 노골적으로 우롱하거나 정치 뉴스를 조작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광고 수익을 얻기 위해 미확인 뉴스 정보를 뿌리거나 허위정보를 사실처럼 퍼뜨리는데 일조하는 소셜미디어나 유튜브는 옐로 저널리즘을 수익성 좋은 비즈니스로 만들었다. 애국주의를 부추기는 추측성 뉴스의 역사도 반복되고 있다. 1898년 2월 쿠바 하바나항에 정박하고 있던 미국 전함 메인호가 스페인 군대의 공격 때문에 침몰했다는 보도 행태는 한국의 천안함 사건을 다룬 뉴스들과 비슷했다. 미국 해군은 메인호 침몰 원인을 1974년 재조사해 메인호가 탄약고에서 시작된 화재로 폭발했다고 결론 내렸지만, 한국 천안함 사건은 어찌 될까.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상이 40년이 지난 지금도 해결은커녕 가짜뉴스로 곡해되고 있는 상황인데. 1912년 4월 타이타닉 호 사건에는 2014년 4월 세월호 사건과도 유사한 이야기가 있다. 사고 당시 누군가 무선전신으로 송신한 가짜뉴스로 인해 영국과 미국의 언론은 일제히 타이타닉 호 승객이 전원 무사하다는 헤드라인을 앞다투어 올렸다. 이 가짜 무선은 신문 역사상 가장 많은 헤드라인에 실린 가짜뉴스로 기록되었다. 코로나19 음모설이 한창인 요즘, 1980년대에 “에이즈AIDS는 미국이 만들어낸 질병”이라는 가짜뉴스를 전 세계 언론에 뿌린 KGB의 공작은 냉전시대 허위정보전으로 눈길을 끈다. 2014년 에볼라 감염 때는 러시아계 방송 《RT America》가 에볼라와 에이즈가 서구 제약회사와 미국 국방부가 합작한 무기라는 의혹이 라이베리아에 퍼지고 있다는 뉴스를 내보냈다. 2017년 프랑스와 독일 선거, 2016년 브렉시트 투표, 2016년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도 러시아가 끊임없이 개입한 정황이 포착되었다. CIA가 공산주의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미디어 홍보 캠페인(앵무새 작전)을 전개했듯 여론을 움직이려는 허위정보전은 ‘정치적 도덕성을 결여한 자’와 ‘진실을 지키려는 선한 자’의 대결로 보기 어렵다. 가짜뉴스가 가장 급증하는 때는 선거 시즌이다. 대선 경우 한국의 후보자는 안보관, 이념적 정체성, 5·18 정신 등을 검증받고, 미국에서는 출생, 이민자와 무슬림을 대하는 관점, 낙태 합법화, 총기 규제 등에 대해 정치 공세를 받는다. 이와 관련해 허위 정보, 가짜 뉴스,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는 뉴스들이 대거 유포된다. 한국은 뉴스 기사를 포털 사이트를 통해 접하는 게 압도적이지만 미국은 페이스북, 유튜브를 통해 전달받는 비중이 높다. 미국과 한국은 뉴스 소비 상황이 다르지만 네트워크 프로파간다에 흔들리는 건 동일하다. 독립 미디어 복스Vox의 분석에 따르면, 온라인을 통한 허위정보와 가짜뉴스는 여론을 조작하고 선거 캠페인의 결과를 뒤바꿀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가짜뉴스 웹사이트의 날조와 가짜 이야기는 극단적 정치적 관점을 가진 집단의 확증편향을 강화시키는 역할이다. 진정한 문제는 주류 미디어의 뉴스 편집 비중이다. 데이터 과학과 결합한 허위정보에 집중적으로 노출된다면 대중은 뉴스의 인물에 대해 부정적 인상을 가지거나 그를 불신하게 될 수도 있다.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를 거둔 원인은 무엇보다도 보수적인 미디어의 강력한 지지 덕분이었다. 1983년 미국 미디어 시장은 50개 미디어 기업이 지배했으나 2010년대 후반부터 21세기 폭스, 컴캐스트, 타임 워너, 월트 디즈니, CBS 코퍼레이션, 바이어콤 등 여섯 개 기업들이 90퍼센트를 통제하고 있다. 4개 지상파 방송사 CBS, Fox, ABC, NBC도 모두 대기업이 소유하고 있다. 미국 내 언론의 전체적 판세는 보수 언론이 진보 언론에 비해 세력 면에서 우세하다. “언론이 보도한 내용이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달받은 뉴스의 ‘내용’이 정확한가는 관건이 아니고 ‘누가’ 그 메시지를 전하느냐가 뉴스의 신뢰도를 결정하게 된다.” 한국은 2009년부터 신문·방송 교차 소유를 허용하면서 종편 방송 시대가 열렸다. 일부 언론사들은 공정성이 결여되었다는 비판에도 아랑곳 않고 당파성을 드러내놓고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자극적인 표현과 추측성 논평과 보도를 계속해 가짜뉴스의 악순환 고리를 만든다. “미디어 학자 제임스 케리는 ‘저널리즘’과 ‘민주주의’가 실제로는 ‘같은 이름’이라고 보았다.” 외신을 통해 팩트체킹까지 하는 지금 한국의 언론은 ‘공적인 삶’을 추구하는 저널리즘의 기능을 못하고 있다. 외신이라고 다 믿을 수 없다. 페루의 퀴노아 가격 통계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빈곤 국가들의 식량 부족 악화를 연결한 잘못된 해외 뉴스도 있었고, 뉴스 전재 계약을 타고 부정확한 정보가 국문 뉴스로 보도되는 구조에서 블루투스 이어폰이 암을 일으킨다는 뉴스가 그대로 전해지는 오보 해프닝도 자주 있다. 가짜뉴스가 주요한 대상으로 삼는 데이터는 “경제 성장률, 피해 규모, 사상자 수, 실업률, 범죄율, 물가 인상률”인데 한국의 언론들이 부정확을 넘어 데이터를 악의적으로 제시하는 걸 자주 본다. 데이터를 전문적으로 분석하고 전달할 기자도 부재하고, 책임 있는 기사가 아니라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기사 제목이나 어뷰징 기사로 대중을 끌어들이기 바쁜 한국의 언론이 공신력을 다시 얻을 수 있을까.

가짜뉴스와 허위정보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악의적 소문, 허위정보를 동원한 선동, 날조된 뉴스가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공통점은 그 사회에 존재하는 갈등적 요소 또는 불만을 강조하여 공포와 분노를 합리화하는 데 있다.

 

2. 경제적·정치적 인센티브가 존재하는 한 허위정보와 가짜뉴스의 생산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3. 인쇄 시대 이전과 이후를 막론하고 떠도는 비공식적인 뉴스 정보 가운데 무엇이 ‘진실’인가를 판정하여 공식화하는 것은 언제나 권력자의 권한이었다. 지금은 이 권한의 범위와 책임이 광범위해 상대에게 책임을 돌리는 사례로 반복되고 있다.

 

4. 언론과 비언론, 진실한 정보와 허위정보의 이분법으로 복잡한 가짜뉴스 현상을 분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5. 정보 과잉으로 인한 혼돈과 피로, 무질서 속에서 허위정보를 꿰뚫는 가시성 확보가 어렵다.

 

6. 올드 플랫폼(지상파 방송, 케이블 TV, 라디오, 신문)과 뉴 플랫폼(검색 엔진, 포털 사이트, 소셜 미디어) 모두 허위정보와 가짜뉴스의 증폭에 사용된다. 2019년 기준으로 미국 성인 가운데 69퍼센트는 페이스북으로, 한국은 10명 중 8명이 포털 사이트에서 디지털 뉴스를 본다. “진실한 뉴스 정보이든, 거짓 소문이든 가장 효과적인 증폭기는 디지털 플랫폼”이다.

 

7. 허위정보는 생산적 토의를 위한 전제를 망가뜨리므로 소모적 논쟁만이 겉돌게 되고 불신만 더 악화된다.

 

8. 미국 연방대법원과 우리 헌법재판소는 그 규제 대상이 분명하고, 해악성이 구체적이어야만 표현의 자유 규제가 헌법심사를 통과할 수 있다고 기준을 유지하고 있다. ‘규제 대상’의 명확한 설정, ‘해악성·위험성’의 유형, 중립적 판단의 주체를 정하는 일이 요구된다.

 

9. 허위정보를 유포하는 활동이 외주화·자동화되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의 힘이 갈수록 막강해지고 있다. 2019년 영국 하원이 펴낸 ‘허위정보·가짜뉴스 보고서’는 페이스북을 법을 초월하며 행동하는 ‘디지털 갱스터’로 표현하며, ‘민주주의’, ‘데이터 프라이버시’, ‘시장 지배력’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 등에서 극단적 콘텐츠를 찾아내 차단하는 것은 머신러닝으로는 한계가 있다. 플랫폼마다 운영하는 ‘정책’ 또는 ‘가이드’를 통해 자율규제가 이뤄지고 있지만, ‘가짜뉴스 또는 허위조작정보’ 는 위반 사항에 해당하지 않는다. ‘표현의 자유’와 ‘유해·위험한 콘텐츠, 폭력적·노골적 콘텐츠, 폭력·범죄 조직, 증오 표현, 권리 침해, 사이버 폭력’ 사이에서 많은 허위정보들이 전파되고 있다. 유튜브 동영상 차단을 요청한 신고는 전 세계에서 2019년 4월에서 6월 사이에 1,000만 건이 넘었다. 예일대학교 로스쿨에서 헌법을 가르쳤던 토머스 에머슨은 “진실을 억누르지 않으면서 거짓을 억누르는 방법은 없다”라고 했지만, 그는 ‘의견의 허위’만 예상했지 악의적 ‘사실 조작’까지는 고려하지 못했다. “사상의 자유시장이란 과소한 정보의 교환으로는 진실을 발견하지 못하므로 과도할 정도로 자유롭게 다양한 의견들이 오가면서 경쟁을 펼치고 서로를 무너뜨리도록 그 과정을 지켜보자는 것”으로 경제학에서 온 아이디어이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사상의 자유시장도 아무런 규제가 없다면 다양한 문제가 나오기 마련이다. 소셜미디어나 온라인상 익명의 행위자들이 행하는 집단적 프로파간다가 민주주의를 취약하게 만들고, 미디어 산업의 소유권이 과도하게 집중된 구조 또는 뉴스 정보를 전달하는 디지털 플랫폼이 거짓 발언의 가시성을 증폭시키는 상황에서 여러 국가의 자정 역할이 필요하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 요구는 갈수록 많아지지만 그만큼 우리가 허위와 진실을 가려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드는 뉴스들이 매일 터져 나오고 있다.

 

 

 

최은창 『가짜뉴스의 고고학』 체크 포인트 잡느라 포스트잇 플래그 한 통이 장렬히 전사했다. 유발 하라리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이 밑줄이 많아 포스트잇 플래그를 적게 쓰긴 했지만 『가짜뉴스의 고고학』 에 예상치 못하게 정말 많이 썼다. 주석 빼면 본문은 유발 하라리 책이 더 긴데! 예상대로 리뷰 정리하는데 300분 넘게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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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해석 - 당신이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말콤 글래드웰 지음, 유강은 옮김, 김경일 감수 / 김영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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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현재의 느낌에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그토록 긴 과거에 대한 평가와 미래에 대한 예측을 놀라울 정도로 간단하게 끝내려 한다.”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인지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의 말)

 

 

 

 

인간에 대해서 생각하면 웃음과 씁쓸함에 휩싸인다. 가끔은 놀랍고 끔찍하다. 우리는 이런 공통점도 가진다. 첫인상을 매우 신뢰한다는 것. 이성적이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자신의 인상과 직감에 더 기운다. “감정은 만들어지는 것이지 촉발되는 게 아니”고(심리학자 리사 펠드먼 배럿), “얼굴은 우리 인간이 얼마나 비슷한지가 아니라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는 상징”이지만 “만약 사회가 얼굴 읽기에 근거해서 낯선 이를 이해하기 위한 규칙을 만들었다면 큰 문제가 된다.” 제대로 소통까지 못한다면 상황은 더 악화된다. 말콤 글래드웰의 이 책 『타인의 해석』은 그런 문제점과 사례들을 전방위로 다뤘다.

 

 

 

글래드웰이 권하는 타인을 대하는 자세는 이렇다. 우리는 낯선 이에게 말을 거는 방법을 알지 못하고 그의 대답을 해석하는 것에 지독하게 서툴다는 것을 인정할 것. 낯선 사람의 말과 행동에만 집중해 곧바로 결론 내리지 말 것. 낯선 이와의 대화에서는 대화 내용보다 맥락을 고려할 것. 상식적인 내용이지만 역사적으로도 현재까지도 이것이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다.

 

 

타인을 잘못 해석하는 첫 번째 요인은 지나친 확신이다. 우리는 코르테스가 이끈 에스파냐(스페인) 군의 멕시코 침략에서 아즈테카인이 백인을 예언된 신으로 받아들여 아즈텍 문명이 몰락했다고 알고 있지만 역사학자 매슈 레스탈은 전혀 다른 맥락을 제시한다. 언어가 통하지 않았던 코르테스와 아즈텍 제국의 몬테수마 왕은 여러 통역자를 거치면서 제대로 소통하지 못했다. 그들이 사용한 '신'이라는 단어는 파악하기 어려운 낯선 존재에게 쓰는 것이기도 했고, 몬테수마가 한 말은 항복한다는 게 아니라 에스파냐의 항복을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였다. 이런 상황은 2차 세계대전에서도 있었다. 영국 총리 네빌 체임벌린을 비롯한 수많은 정치인들은 히틀러를 직접 만나고도 그의 야심을 눈치채지 못했다. 글래드웰은 체임벌린이 히틀러를 만나려고 애쓰기보다 차라리 히틀러의 책 『나의 투쟁』을 읽었더라면 더 나은 판단을 내렸을 거라고 말한다. AI가 데이터를 분석하듯이 말이다. 네빌 체임벌린은 전쟁을 피하려는 자신의 계획과 행동을 확신했다. 미국 중앙정보국 쿠바 부서의 간부들은 스파이를 간파할 수 있다고 확신했지만 플로렌티노 아스피야가, 애나 몬테스에게 감쪽같이 속았다. 우리는 거짓말을 제대로 맞히는 데 우연보다 훨씬 무능하다. 심판들이 거짓말쟁이를 정확히 짚어내는 확률은 54퍼센트인데 운에 맡기는 것보다 약간 높은 수치다.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는 ‘초탐지자’들이 있다고 해도 매번 성공할 수 있을까. 사람은 모순의 함정에 빠진 사실을 낌새조차 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심리학자 프로닌은 이런 현상을 ‘비대칭적 통찰의 착각illusion of asymmetric insight’이라고 규정한다. “남이 나를 아는 것보다 내가 남을 더 잘 안다. 그리고 내가 그에게 없는 그에 관한 통찰을 갖고 있을 수 있다(하지만 그 반대는 아니다)는 확신이 있으면, 귀를 기울여야 할 때 이야기를 하고, 또 남들이 자신이 오해를 받거나 부당한 평가를 받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표명할 때 마땅히 가져야 하는 것보다 인내심을 갖지 못하기 쉽다.”

 

 

타인을 잘못 해석하는 두 번째 요인은 우리가 진실을 기본값으로 생각하도록 설계되어 있고(미심쩍은 부분을 좋은 쪽으로 해석하려는 경향), 우리가 상대하는 사람들이 정직하다는 가정하는 데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밀그램의 실험이다. 권위자의 지시에 따라 일반인이 실험 대상자에게 살인에 가까운 전기 충격을 주는 것에 동조했던 실험이다. 지원자의 40퍼센트 이상이 실험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심리학자 팀 러바인의 ‘진실 기본값 이론Thuth-Default Theory(TDT)’에 따르면, 우리가 “누군가를 믿는 것은 그에 관해 아무런 의심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믿음은 의심의 부재가 아니다. 당신이 누군가를 믿는 것은 그에 관한 의심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기에 버니 메이도프의 사상 최대 규모의 폰지 사기,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풋불팀 코치 제리 샌더스키의 아동 성학대 피해가 더 컸다. 이들은 태도와 내면이 일치하지 않은 거짓말쟁이였기에 많은 이들을 우롱할 수 있었다. 이 불일치로 불의의 피해자도 생긴다. 아만다 녹스는 자기 룸메이트가 살해된 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았다는 평가와 언론·여론 몰이로 죄를 뒤집어쓰고 이탈리아 교도소에서 4년을 보낸 끝에 석방되었다. 한국도 심심치 않게 목격되는 일이다. “우리 모두는 제도적 심판의 결함과 부정확성을 받아들이면서 그런 실수는 무작위적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팀 러바인의 연구는 그것이 무작위적인 게 아님을 시사한다. 우리는 본인은 아무 잘못도 없는데 투명성에 관한 우리의 우스꽝스러운 관념에 위배되는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차별하는 세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타인을 잘못 해석하는 세 번째 요인은 상황의 결합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 점이다. 전도 유망했지만 요절한 시인으로 회자되는 실비아 플라스의 자살 요인으로 우울증이나 불우했던 가정사를 주로 언급하지만 사회적 환경도 따져볼 수 있다. 가스 오븐으로 자살한 정황이 꽤 충격적으로 거론되는데 “플라스가 자살한 1960년대 초, 영국에서 같은 연령대 여성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10명이라는 경이적인 수치에 도달했다. 비극적으로 많은 가스 중독 사망자 때문이었다. 영국 여성 자살률로 역대 최고치다. 천연가스로 전환이 완료된 1977년에 이르면 같은 연령대 여성의 자살률은 절반 정도로 떨어졌다. 플라스는 정말 운이 나빴다. 10년 뒤에 태어났더라면 그가 "달콤하게, 달콤하게 들이마실" 일산화탄소 같은 구름이 없었을 것이다.” 실비아 플라스의 친구이자 시인이었던 앤 섹스턴은 이듬해 자동차 배기가스로 자살했다. 요즘 자동차는 일산화탄소가 거의 배출되지 않아 시동을 걸고 문을 닫아 자살하기 어렵다. 한국도 연탄 사용이 줄면서 일산화탄소 사망은 많이 줄었지만 번개탄 자살은 종종 일어난다. 글래드웰이 이 사례를 가져온 것은 초점에서 좀 벗어난 것 같았다. 그들이 자살을 마음먹은 이상 그것은 방법상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금문교 예는 적합했다. 자살 명소로 유명한 금문교에 자살 방지 구조물을 설치하기로 결정한 것은 다리가 개통하고 80년도 더 지난 2018년이었다. “존 베이트슨이 저서 『마지막 도약』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그 사이에 교량 관리 당국은 수백만 달러를 들여 다리를 건너는 자전거를 보호하기 위한 구조물을 만들었다. 금문교에서 운전자가 자전거 이용자 사망 사고를 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말이다. 또한 ‘공공 안전’을 이유로 양방향 차로를 가르는 중앙분리대를 만드는 데 수백만 달러를 투입했다. 다리 남쪽 끝에는 다리 밑에 있는 예전 군 시설인 포트베이커에 쓰레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막는 약 2.4미터 높이의 사이클론 펜스를 세웠다. 처음에 다리를 건설하는 동안에는 노동자들의 추락사를 방지하려고 막대한 비용을 들여 보호 그물을 설치하기도 했다. 그물 덕분에 19명이 목숨을 건졌다. 공사가 끝나자 그물은 철거되었다. 그런데 자살에 대해서는 어땠을까? 80여 년 동안 아무 조치도 없었다. 자, 왜 이렇게 된 걸까? 다리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비정하고 냉혹하기 때문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가 어떤 행동이 어떤 장소와 그렇게 밀접하게 결합될 수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는 게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여러 해에 걸쳐 교량 관리 당국은 자살 방지 구조물 설치를 지지하는지 정기적으로 일반 대중에게 물었다. 답변지는 대체로 두 범주로 나뉘었다. 찬성하는 쪽은 사랑하는 사람이 자살한 경험이 있어서 자살의 심리학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이들이었다. 나머지(사실상 다수)는 결합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거리에서는 다른 결합의 문제가 있었다. 미국 경찰이 민간인에게 다가가 건초더미에서 바늘 찾듯 샅샅이 뒤지는 전술을 바꾼 뒤 노스캐롤라이나주 고속도로 순찰대의 차량 검문 건수는 7년 만에 40만 건에서 80만 건으로 증가했다. 진실을 기본값으로 놓는 타고난 성향을 무시하고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미국에서 백인 경찰이 무고한 흑인을 총격해 살해하는 사건이 자주 일어나는데 시스템이 인종차별을 더 부추겼을 것이다. 래리 셔먼은 심각한 우려를 밝혔다. “우리가 담낭이 좋지 않은지를 알아보려고 의사들한테 거리에 나가서 사람들을 절개해보라고 말하지 않잖아요. (중략) 우리는 경찰이 하는 모든 일이 어떤 면에서는 누군가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사실을 헤아려야 합니다. 그러니까 그냥 경찰을 범죄 빈발 지점에 투입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범죄 안심 지점에서는 자유 침해를 딱 필요한 만큼만 하고 그 이상은 절대 해서는 안 됩니다.”

 

 

이 책의 첫머리와 끝머리에 제시된 샌드라 블랜드의 자살 사건은 낯선 이와 이야기하는 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대화가 틀어졌을 때 발생하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블랜드는 위에서 말한 아만다 녹스처럼 상황이 좋지 못했다.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위축되어 있는 상태였는데 교통 범칙금으로 이미 경제적인 곤란을 겪고 있었고 낯선 지역에 면접을 보러 온 상황에서 오자마자 환대 받지 못하는 상황을 만난 것이었다. 백인 경찰 브라이언 엔시니아와 흑인이자 여성이었던 샌드라 블랜드의 만남은 인종 문제나 성차별, 위계의 문제를 넘어서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서로 배려하지 못했고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도 못했으며 상대에게 적개심만 표출하고 말았다. 사소한 정차 지시에서 비극적인 죽음으로 치닫게 된 이 사건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문제이다.

 

 

글래드웰은 이 책을 3년에 걸쳐 썼다고 했다. 타인에게 조심스럽고 겸손함을 갖추는 것은 어느 나라 어느 시대든 변함없는 예의다. 나도 때론 실수하는 것 같지만 이런 상식을 베스트셀러 저자가 강조해야 하는 세태가 서글프다. 타인을 불신하고 소통하기 어려운 시대에 함께 고민하고 타인에 대한 자세를 재점검해 볼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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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정복하지 않은 사람들 (Sur) - 세계 여성 작가 페미니즘 SF 걸작선 세계 여성 작가 페미니즘 SF 걸작선 오디오북
어슐러 K. 르 귄 (Ursula Kroeber Le Guin) / 아작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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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귄이라 기대하고 봤는데 심심했습니다.

1911년 아문센이 인류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하기 이전에 전문적인 지식이나 경험도 없는 여성 탐험대가 이미 도착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짧은 분량이라 스펙터클한 전개를 기대하기 무리였지만 다큐 같은 지루한 전개, 여성 대원의 출산 등 진부한 소재, 콩트 같은 결말로 이어져 반전의 미를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페미니즘적 접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이런 소재라면 에베레스트 일반인 등반대 조난 사건을 쓴 존 크라카우어 『희박한 공기 속으로』, 난파 당해 식인 행위 등 혼란스러운 여정 끝에 설경의 미지의 세계에서 괴물을 만나던 애드거 앨런 포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를 읽는 게 훨씬 낫죠. 여름으로 넘어가는 지금 읽기에 딱이고요.

 

오디오북은 글로 볼 수 없어 낭독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요. 이 오디오북 낭독자는 많이 아쉽더군요. 문성근 같은 배우들이 낭독한 오디오북에 비하면 성량, 완급 조절, 분위기 조성 등등 아마추어 같았습니다. 최근 읽었던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오디오북에 비해서도 낭독자의 역량이 비교되더군요. 세계 여성 작가 페미니즘 SF 걸작선 오디오북 여럿 있던데 또 실망할까 봐 다른 거 살 생각을 접었어요. 한국 오디오북 시장 갈 길이 멀다 싶습니다. 글로 볼 수 없는 답답함과 더불어 리뷰 쓰려면 내용 요약하기도 쉽지 않은데 품질도 만족스럽지 않아 오디오북은 까다롭게 골라야겠어요. 종이책으로 읽었다면 더 나았으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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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20-05-14 2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오디오북은 또 다른 영역같아요. 책이 재미없더라도, 나레이터에 따라 책이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하거든요.

AgalmA 2020-05-28 06:17   좋아요 0 | URL
ebook에 비해 오디오북 적응하기 너무 어렵네요^^;;
 
에티오피아 시다모 난세보_2020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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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취향은 과테말라 엘 소코로보다 이쪽이네요. 예가체프 같은 꽃 향과 단맛이 개성적이에요. 설명에 나오는 체리의 맛이 틀린 소리는 아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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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테말라 (2020)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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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지 않은 향과 신맛, 단맛. 부드러움은 최강. 차가울 때도 뜨거울 때도 변함없이. 외유내강 커피입니까. 신기한 맛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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