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모든 걸 충분히 알아보게 만들기 전, 은밀한 임무를 완수하듯 외주 사무실에 일을 갖다 놓고, 나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아도 되는 혹은 된다고 생각하며 방심하고 있던 내게 달은.


 

 


그 광경을 사진으로 찍고 그림으로 변환할 생각을 했다. 문득, 왜 그래야 하지. 이것은 혹여 치장일까. 내겐 그보다 더 큰 매혹이 있다. 이 이미지를 통해 도약하고픈 욕망이다.

˝사진은, 두려움을 주거나 찡그리거나 비난할 때가 아니라 생각에 잠길 때, 파괴적이란 특성을 갖는다. ˝

˝사진가의 투시력은 ‘보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바로 촬영 장소인 ‘그곳에 있다‘는 사실에 있다. ˝
ㅡ 롤랑 바르트 《카메라 루시다》(초판 1986~1998, 열화당) or 《밝은 방》(2006, 동문선)

그렇다. 나는 저 사진 속 공간과 시간을 지금도 한참 음미하고 있다.
모든 표현은 우리가 강렬하게 빠져든 매혹에 대한 증거이다. 그것들은 우리를 이루는 원소들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빅뱅과 인간의 탄생은 매우 유사하다. 응축되고 팽창하는 전 과정이.

막연히 쓰고 싶다, 그리고 싶다, 하고 싶다 말하는 것은 거짓 열정이다. 진정 원할 때 그것은 이미 튀어나와 있다. 그 선정성이 누군가의 맘엔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지적, 반박, 비난, 매도 온갖 공격이 들어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차적인 문제다. 진짜 내 속에서 나온 거라면 외부의 반응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향할 수밖에 없다. 조르주 바타유도 그걸 잘 알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몇몇이 더.

어떤 침잠들. 어떤 심지들.
죽음만큼 그것들은 막을 수 없고 그 때문에 우린 파국을 기어이 마주한다.

롤랑 바르트의 《마지막 강의》도 이젠 사야 할 때가 되었다.
 



 


ALEPH(알레프) _ Fall in Love Again
https://youtu.be/l25XvvIEiE4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이소오 2017-09-15 18: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롤랑바르트, 발터벤야민, 밀란쿤데라, 파스칼 키냐르 중에 최고의 문장가는 누굴까요? 혹은 이 네 작가를 뛰어넘는 작가는 누굴까요? ㅎ

AgalmA 2017-09-15 19:16   좋아요 0 | URL
제 생각엔 그 중에서는 파스칼 키냐르가 최고입니다. 세상의 은밀함, 작동에 대해서 이 작가만큼 섬세하게 가까이 간 사람은 바슐라르? 여기서 제가 방점을 두는 것은 ‘섬세함‘입니다. 다른 기준이라면 달라질 수 있겠죠.

시이소오 2017-09-15 19:17   좋아요 0 | URL
아, 바슐라르. 왠지 납득이 되네요 ㅎ

cyrus 2017-09-15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galmA님도 소수에 가까운《카메라 루시다》 소장자 중 한 사람이군요. 정말 부럽습니다. ^^

AgalmA 2017-09-17 01:21   좋아요 0 | URL
cyrus님 능력이면 이 책도 가지고 계실 법한데 부럽다고요?
도서관에서 읽긴 했지만 소장하고 싶은 책이었죠. 롤랑 바르트 하면 이 책을 빠트릴 수 없으니까요.
헌책방에서도 구하기 어려워 저는 이 책을 파주에 있는 열화당 출판사에 가서 구했습니다. 책이 몇 권 더 있어 다 사 가지고 와서 지인들에게 나눠 줄까 하다가 저처럼 출판사까지 와 직접 구하려는 열혈 독자들을 위해 남겨뒀죠. 오래 전 일이라 지금은 그 책들이 열혈독자들에게 다 가 있겠지 싶네요^^
지금은 동문선에서 <밝은 방>으로 나와 있으니 <카메라 루시다>는 소장용 외에 큰 의미가 없죠ㅎ

뷰리풀말미잘 2017-09-19 08:09   좋아요 1 | URL
헐............. 밝은 방이 카메라 루시다였어요.........? 헐........................

AgalmA 2017-09-19 18:44   좋아요 0 | URL
뷰리풀말미잘님/ <카메라 루시다>나 <밝은 방>이나 번역에 대해 말이 많죠. 번역본 두 개 비교해 읽는 건 별 의미 없는 거 같고, 얇은 책이고 뷰리풀말미잘님은 능력되실 거 같으니 원서나 영역으로 읽어보셔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