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을 최고의 시집이 도착했습니다. 싼 티 나는 소개 죄송... 《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문학과 지성사, 1998) 개정판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 (다산책방, 2017) 정말 반갑습니다. 이전 시집에 실리지 않았던 시들이 꽤 됩니다. 이번 번역 작업도 고혜선 교수님이 맡으셔서 신뢰갑니다. 절판되어서 고가에 팔리는 시집이었죠.
아무 말 말고 그냥 사세요.
어쩌면 내가 당신에게 마지막으로 잘한 일은 이 시집 추천일지도 모르죠.
타이핑 치다가 또 눈물 날 뻔했네.
아픈 거 다 안다는 듯이 말을 거는 시.
바예호 시는 항상 그래.
(César
Vallejo, 페루,
1892~1938)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적은 없다…”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적은 없다.
항상 산다는 것이 좋았었는데, 늘 그렇게 말해왔는데.
내 전신을 이리저리 만지면서, 내 말 뒤에 숨어 있는
혀에 한 방을 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오늘은 턱이 내려와 있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잠시 머물게 된 이 바지 속에서 내게 말한다.
“그리도 많이 살았건만 결코 살지 않았다니!”
“그리도 많은 세월이었건만 또 세월이 기다린다니!”
우리 부모님들은 돌 밑에 묻히셨다.
부모님들의 서글픈 기지개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형제들, 나의 형제들은 온전한데,
조끼 입고 서 있는 나라는 존재.
나는 산다는 것을 너무도 좋아한다.
물론,
삶에는 나의 사랑하는 죽음이 있어야 하고,
커피를 마시며 파리의 무성한 밤나무를 바라보면서
이런 말을 해야 한다.
“이거와 저거는 눈이고, 저것과 이것은 이마이고……” 그리고 이렇게 되뇌지.
“그렇게 많은 날을 살아왔건만, 곡조는 똑같다.
그렇게 많은 해를 지내왔건만, 늘, 항상, 언제나……”
아까 조끼라고 말했지 아마.
부분, 전신, 열망이라고 했지. 울지 않으려고 그렇게 말한 거지.
옆의 저 병원에서 정말 많이 아파서 고생깨나 했지.
내 온몸을 아래에서 위까지 다 훑어본 것은
기분 나쁜 일이지만, 뭐 괜찮아.
엎어져서라도 어쨌든 산다는 것은 늘 기분 좋은 일일 거야.
“그리도 많이 살았건만 결코 살지 않았다니! 그리도 많은
세월이었건만 늘, 언제나, 항상, 항시 세월이 기다린다니!”
이렇게 나는 늘 말해왔고 지금도 말하니 말이다.
“이 집에는 아무도 살지 않아요…”
“이 집에는 아무도 살지 않아요…”라고 너는 내게 말한다. “다 가버렸어요. 응접실, 침실, 정원에는 인적이 없습니다. 모두가 떠나버려서 아무도 없지요.”
나는 네게 이렇게 말한다. 누가 떠나버리면, 누군가가 남게 마련이라고. 한 사람이 지나간 자리는 이제 아무도 없는 곳이 아니라고. 그저 없는 것처럼 있을 뿐이며,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곳에는 인간의 고독이 있는 것이라고. 새로 지은 집들은 옛날에 지은 집보다 더 죽어 있는 법. 담은 돌이나 강철로 된 것이지 인간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집을 짓는다고 그 집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 집에 사람이 살 때에야 비로소 세상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집이란, 무덤처럼, 사람들이 머무르는 곳이기 때문이지. 이것이 바로 집과 무덤이 너무너무 똑같은 점이지. 단, 집은 인간의 삶으로 영양을 취한다는 게 다른 거다. 그래서, 집이 서 있고, 무덤은 누워 있는 법.
모두들 집에서 떠났다는 것은 실은 모두들 그 집에 있다는 것. 그렇다고 그들의 추억이 그 집에 남은 게 아니라, 그들 자신이 그 집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실제로 그 집에서 산다는 말은 아니지. 집으로 인해 사람들이 영속할 수 있다는 것일 뿐. 집에서 각자 맡았던 일, 일어났던 일 같은 것은 기차나 비행기, 말 같은 것을 타고 떠나거나, 걸어가버리거나, 기어서라도 떠나버리면 없어지지만, 매일매일 반복해서 일어나던 행동의 주인이었던 몸의 기관은 그 집에 계속 남는 법. 발자취도 가버렸고, 입맞춤도, 용서도, 잘못도 없어졌다. 집에 남아 있는 건, 발 · 입술 · 눈 · 심장 같은 것. 부정과 긍정, 선과 악은 흩어져버렸다. 단, 그 행동의 주인만이 집에 남았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