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훌륭한 순간에 등반은 시련이고, 대부분의 시련이 그렇듯 사람을 거기에 바싹 결속시키는 힘이 있다. 사람들은 모두 끝난 뒤의 승리를 기억하지만 그건 행복처럼 막연한 것이다. 절망의 순간이 훨씬 더 생생하고 잊히지 않는다. 최소 두세 지점 앞서, 아무것도 없이 휑한 공기만 아래 펼쳐진 노출된 장소에 있다고 해보자. 아래에는 아마 작은 차와 트럭이 지나가는 길이 있을 것이다. 당신은 아주 작은 점 위에 서 있고 그보다 더 작은 걸 잡고 있으며, 발을 뻗어 손마디 크기 지점에 올려놓아야 하지만 움직일 수 없다. 당신은 서너 번 시도하다가 떨어질 뻔하거나 아니면 이미 떨어져 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적이 있다. 자신감을 깡그리 잃은 상태다. 힘은 빠지고, 뭔가 더 중요한 것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믿음. 그 자리에 공포가 치고 올라온다. 지탱하는 다리가 덜덜거리기 시작한다ㅡ재봉틀 다리가 된다. 왼쪽엔 아무것도 없고, 오른쪽에는 손가락을 넣기에 너무 얕은 틈뿐이다. 당신은 찾고 또 찾아보았다. 이를테면 붙잡을 곳, 어떤 결합을. 뭔가를 보고 지나친 게 분명하지만 무엇이었는지 찾을 수 없고, 내려갈 수도 없다. 다운 클라이밍은 훨씬 어려운 일이다. 내 숨소리가 들리고 내 떨림은 자각하게 된다. 절대적으로 혼자다. 도와줄 사람도 없다. 여기 아닌 다른 곳에 있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감수하려 들 것이다.
육상 선수는 탈락하고 비칠거릴 수 있다. 야구 타자는 헛스윙을 할 수 있고, 테니스 선수는 전력 쏟기를 포기할 수 있다. 가장 높은 수준의 권투 선수조차 포기를 할 수 있다. 등반의 핵심은 때로 탈출구가 없다는 점이다. 포기가 불가능하다. 로베르토 두란(1951~, 파나마 권투 선수)이 등반가였다면 추락사했을 것이다. 과장된 위험보다 이 점이 등반에 더 힘을 실어준다. 등반은 원시적이어서, 멍청하고 마초에 이기적일 수 있는 등반가들도 한 가지 공통점을 지니는데, 자신의 영혼, 말하자면 자신의 품성에 관해서 알게 된다는 것. 물론 대가를 치러야 얻을 수 있으니 스스로를 밀어붙여야 한다. 가장 즐거운 경우라도 등반은 도전이다. 도전이 없다면 의미도 없다.( 「승리 아니면 죽음」p186~1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