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글러스 호프스태터가 십대 때 어니스트 네이글과 제임스 뉴먼 《괴델의 증명》을 읽고 ˝이상한 고리성˝에 대해 강렬히 매혹되었듯이ㅡ결국 이 책까지 쓰게 됨ㅡ 나도 그의 《괴델, 에셔, 바흐》를 읽으며 그랬죠. 그러나 내 경우는 호프스태터의 경험과 달리 술술 읽어 나갈 수 없어서 몇 해마다 한 번씩 결투 신청하듯 그의 책을 펼쳐야 했습니다.
개역판이 나온 김에 구판을 다시 펼쳤는데 예전보다 훨씬 잘 읽혀서 그동안 공부 꾸준히 한 보람을 느꼈습니다. 수리논리학 부분은 여전히 딸리지만ㅡㅜ;
가장 충격적인 건 1000페이지 넘는 책에 페이지 끈이 없다는 것-ㅁ-; 거 얼마 한다고 그걸 빼나.
개역판은 비닐 포장되어 있어요. 서점에서 살펴보기용으로 비닐을 뜯어서 진열해 놓지 않으면 내용 확인이 어렵습니다. 워낙 두꺼운 책이다 보니 책의 틀어짐 방지 차원이지 싶은데 어쩐지 살 사람만 봐라! 표시 같기도 하고ㅎㅎ;
합본인 것에 저는 찬성하는데 구판 상권 읽다 보면 하권에 수록된 그림이나 내용 참조하라는 게 더러 나오기 때문에 따로 일 때보다 합본인 게 더 낫긴 합니다.
34페이지에 달하는 GEB(괴델, 에셔, 바흐 축약) 20주년 기념 서문만 읽는데도 감동이 밀려옴ㅜㅜ 구판보다 확실히 번역 질이 나아진 걸 느끼겠더군요! 저자 스스로 자기 책에 성차별이 있었다(모든 등장인물, 거북이마저 남자) 자아비판도 하고ㅎ 역자가 후기에서 예전 번역에 대해 통렬히 반성을 하기도ㅎㅎ

개역판에서는 사라진 사진
개역판엔 구판에 있던 참고 그림과 역자 주석이 많이 삭제되었는데 조금 아쉽기도 합니다. 인공지능의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당시 해석은 당연히 삭제될 만 하지만(바둑에서는 컴퓨터가 인간을 따라잡기 어렵다는 내용- 알파고로 뛰어넘은 게 증명됨) 과한 친절(?)의 역자 주석이 재밌기도 했거든요. 예를 들어,
˝칵테일을 만드는 진(Gin)과 토닉(Tonic)으로 말장난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저자가 진이라는 말로 나타내려는 것은 Djinn, 즉 알라딘의 마법의 램프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정령(요정)의 이름이기도 하다. 진이라는 술을 마시면서 다른 황홀경으로 접어들듯이, 여기서 지니라는 요정은 높은 또는 낮은 층위로의 여행을 도와주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개역판에서는 사라진 구판 상권 역자 주석 p138)
이 장에서는 역자가 ‘높은(pop) 혹은 낮은(push) 층위‘ 해석에 기반을 둔 주석을 일관되게 제시했는데, 개역판 전반에 걸쳐 역자가 지나치게 개입한 해석들을 많이 삭제하셨더군요.
참고로 이 책은 의식과 의미의 ˝이상한 고리˝를 찾는(fuga, ricercar) 장대한 여정~
˝하나의 해석은 그 해석이 현실 세계와의 일정한 동형관계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한에서만 의미를 가질 것이다.˝(구판, 상권 p71)
˝하나의 해석은 그것이 현실 세계에 어떤 동형성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정도에 부응해서 의미를 가질 것이다.˝(개역판, p72)
시시콜콜은 다음에 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