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 문제와 인간의 착취에 관한 영화로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본 건 니콜라스 게이어홀터 《일용할 양식(Our Daily Bread, 2005)》이다. 절제된 시선으로 고요히 풍경을 담고 있어 그 너머 잔인한 실상을 더 잘 깨닫게 만든다. 동물들을 함부로 던지고 분류하며 사육하고 인공 수정하며 도축하는 장면까지 적나라하다. 이 영화가 중요한 메시지를 던졌다는 것은 화려한 수상 경력에서 알 수 있다. 2005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 페스티벌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 2006 에코 시네마 아테네 국제영화제 최우수상 수상, 2006 Visions du Réel 국제영화제 존 템플리톤 특별상 수상, 2006 Hot Docs 캐나다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가작/국제 영화부문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
해양 보존 소사이어티(OPS) 설립자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루이 시호요스 《더 코브(The Cove, 2009)》도 인상적이다. 일본의 한 어촌에서 외부인의 접근을 막고 돌고래를 학살하는 것을 어렵게 촬영했는데 2009년 아카데미에서 다큐멘터리 상을 받았다.
루이 시호요스 《더 코브(The Cove, 2009)》
《일용할 양식》이 일상의 먹거리에 대해 초점을 맞췄다면 《더 코브》는 취향의 먹거리에 대해 조명했다고 볼 수 있다. 봉준호 《옥자》(2017)는 상업 영화 한계라고 해야 할지 감독의 한계라고 해야 할지 인간과 동물의 친화를 아름답게 그리는데 너무 치중했다.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집중하게 만들었는지는 모호하다. 《설국열차》 속에 나온 바퀴벌레로 만든 양갱을 떠올리며 양갱을 기피한 사람과 영화를 떠올리며 먹고자 한 사람이 상존했듯이 《옥자》를 보고 돼지고기를 덜먹겠다는 사람과 삼겹살을 먹으며 영화를 음미하는 사람도 상존할 것이다.
대량 사육과 대량 살상의 문제는 사실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와 생산 논리에서 나온다.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개선에 노력하지 않는다는 게 더 진실이다. 동물 학대와 착취 영화들을 보고 인간의 비인간성을 욕하지만 오히려 우리의 인간성이 그러한 문제를 만들고 있다는 걸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지하 몇 백 미터를 내려가 캐내야 할 정도로 소금이 절실하지 않다. 많은 음식들이 그렇듯 지하의 소금은 식용보다 산업으로 확장되었다. 우리 이성에 진짜 소금이 필요한데 말이다.
《옥자》에서 절망적인 장면은 ALF(동물보호협회) 조직원이 임무 완수를 위해 미자를 속이고 옥자를 비밀 실험 장소에 투입하는 비정함이나 미란도라는 거대 기업이 힘없는 개인인 미자를 이용하고 협박해 기업 이미지 청소를 하려는 후안무치가 아니라 미자가 옥자를 구출하는 방식이었다. 결국 돈으로 살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감독의 선택은 아픈 부분이다. 영화 곳곳에서 이야기 구조의 헐거움이 자주 목격됐는데 도축당하기 직전에 미자가 건네는 금돼지로 옥자를 사는 장면은 동화에 가까웠다. 바꾸기 어려운 현실의 문제를 관객에게 쉽게 전달하려는 작품들이 대개 그렇듯 이 영화 전체가 그런 톤으로 채워져 있다. 노골적으로 말하는 다큐가 아니니까.
《괴물》처럼 《옥자》의 엔딩도 밥상에 둘러앉는 가족의 모습으로 처리되는데 이 풍경은 언제라도 뒤엎어질 수 있다. 오늘은 안전할지 모른다. 이 가족의 밥상은 안전할지 모른다. 그러나 동물을 가축으로 기르고 먹어온 인간의 역사가 엄존하듯 점점 도시화되는 사회 속에서 이 시스템을 쉽사리 바꿀 수 없다. 맛있어, 맛있어, 맛있어를 연발하며 입맛을 채우는 건 인간의 진화적 본능으로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소시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안다 해도 분업화되어 은폐된 산업 환경, 유기농 식품이나 자급자족으로 식단을 채울 수 없는 많은 사람들, 시간과 돈을 맞바꾸며 사는 바쁜 삶 속에서 자기 능력껏 배를 채우는 개인들은 GMO 음식과 제조 가공된 음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자본과 욕망의 성질을 바꿔 나가지 않는다면 동물도 인간도 이 지구 상에서 안전할 수 없다.
봉준호 감독 《옥자》가 넷플릭스에 풀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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