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셰프 분투기 - 음식에 가려진 레스토랑에서의 성차별
데버러 A. 해리스 & 패티 주프리 지음, 김하현 옮김 / 현실문화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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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노동통계국 2013년 자료에 따르면, 미국 요리 산업 내에서 셰프와 헤드 쿡head cook 중 여성은 20%다. 여성의 과소대표 문제가 많다고 지적받는 기업 세계에서도 여성 CEO가 24%를 차지하는 것과 비교하면 여성이 전문 레스토랑 부엌보다 회의실에서 더 잘나가고 있다. 요리를 여성적인 행위이자 업무로 간주하면서 이런 젠더 불평등은 왜 있는 것인가. 저자들은 남성의 공적 영역(레스토랑)과 여성의 사적 영역(요리책, 요리강좌)으로 나누는 젠더 불평등을 지적한다. 남성 셰프가 미식의 장을 지배하면서 여성의 진출을 막는 것에 대해서도 자세히 살펴본다. 업계는 여성 비율이 높을수록 일의 가치가 평가 절하되거나 소득이 줄 것을 우려한다. "초등학교 교사처럼 처음에는 남성이 주를 이루었다가 점점 여성이 많아진 직업은 실제로 소득이 줄었다." 또한 누가 훌륭한 셰프인지 결정하는 영향력 있는 요리 전문 기자나 평론가들의 편향도 얽혀 있다. 여성 셰프의 요리는 요리의 생산적 측면이나 물리적 특징을 부각하는 반면 남성 셰프의 요리는 지적 작업이나 창조적 예술로 평가하는 예들이 이 책에 무수히 제시되고 있다.  리더 묘사에서도 남성 셰프는 카리스마 넘치는 군대식 지휘자로 묘사한다면 여성 셰프는 식사 경험 전체를 통제하는 것보다 고객을 보살피는 전형적인 여성성으로 강조한다.  '어머니' 같은 요리를 만들어냈을 때도 남성 셰프 경우는 그것을 뛰어넘는 선구자나 혁신가, 천재로 묘사된다면 여성 셰프 경우는 전통의 세습자 이상의 묘사는 잘 나오지 않는다. 음식 전문 기자와 요리 평론가만이 아니라 우리도 남성의 요리는 전문적·독창적, 여성의 요리는 아마추어적·가정적이라고 받아들이도록 사회화되어 있다는 걸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셰프직은 오랫동안 남성 셰프의 역사였다. 남성 중심의 구조적 틀 속에서는 남성이 전문가가 되기 쉬운 건 당연하다. 교육 환경에서도 남성을 우대하는 게 노골적이며, 레스토랑에 진출해서도 여성 셰프는 패스트리와 샐러드 담당에 배치되어 능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구조적 상황이다.
아래 인용은 단지 셰프의 세계만이 아니다.

 

로즈는 요리학교에서 여성 선생님 한 분이 이야기했던 것을 기억했다. "잊지마, 너는 남자들의 세계로 들어가는 거야. 그러니까 '난 여자니까 이거 못 해', '난 여자니까 저건 못해'라는 식으로 말하면 안 돼. 나도 언제나 조심하고 있어.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결국 이런 생각이 들지. '그래, 이 직업을 갖기로 선택한 건 나니까.'" 우리가 인터뷰한 여성 셰프 대다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성차별이나 여성 혐오의 원인을 남성 셰프에게 돌리지 않았다. 대신 부엌에 오로지 남성만 있었던 오랜 역사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해석했다. 제인은 "그 사람들하고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은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죠"라고 말했다.

알렉산드라는 셰프가 질문을 던졌을 때 대답하지 못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 시간을 들여 책을 읽고 공부를 했다. 어물쩍 넘어갈 수 있는 남성 셰프와 달리 알렉산드리아가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하면 곧 그녀의 지식, 더 나아가 그녀의 존재 자체가 부정될 수 있었다. 나타샤 또한 잘 모르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누구도 자신을 "깔아뭉개지 못하도록" 하려고 언제나 "숙제를 했다"


여성이 체력도 약하고 쉽게 감정적이며 기술이 떨어진다고 규정하는 것은 노동 환경뿐 아니라 세계 구석구석 퍼져 있다. '여성인데 대단하다'란 표현이 칭찬일까. '남성인데 대단하다'란 표현을 그보다 많지 않다. 오히려 이렇게 말하는 광경을 자주 본다. 남자도 당연시 요구되는 게 있다고. 상당수 논리가 아니라 남성들의 반격 문화 일 때가 많고 결국 문제를 계속 상대적으로 만드는 논리 순환이 되어 어떤 해결도 낳지 못하고 만다.
남성 중심 셰프의 세계로 들어가는 순간 여성은 외모나 행동에서도 '명예 남성 social men'이 되어야 한다. 건설, 탄광, 소방업에 종사하는 여성은 자신이 "반격"할 수 있을 만큼 강하다는 걸 남성 동료에게 입증해야 하며, 남성들의 무리에 속할 수 있는 자격을 끝없이 심사 받는다. 남자들끼리의 성희롱과 성적 농담도 능수능란하게 받아칠 줄 알아야 한다!  남성 셰프가 "제대로 하지 않으면 내 불알을 꺼내서 네 머리를 후려친다"라고 위협하면 "글쎄, 네 불알로 나를 때리려면 진짜 가까이 와야겠네"라는 말로 여유롭게 되받아치는 법을 익혀야 한다. 고발? 업무 스트레스가 많고 남성이 대다수인 환경은 성적이고 경쟁적인 문화가 조성되는데(일터의 성화 sexualization)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인터뷰이였던 남성 세프들이 그랬듯 많은 사람들이 무시하거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유머가 선을 넘어 사건으로 발생하기 전까지는. 그래서 언제나 늦다. 부적절한 행동을 한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 직장을 떠나는 불이익이 비일비재하다. 더러운 적자생존이다.
레스토랑, 더 나아가 미식의 장 전체에서 여성이 토큰(token, 차별의 혐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회적 약자 집단에서 한 사람을 뽑아 구색을 맞추는 것을 토크니즘 tokenism이라고 하며, 이때 뽑힌 한 사람을 토큰이라고 한다)인 건 명백한 사실이다. 부엌에서 남성의 실수나 감정은 개인의 실수가 되는 반면 여성의 그것은 '역시 여자들이란...' 평가로 여성 전체에 대한 일반화 되기 쉽다. 젠더 불평등을 무시하는 성 중립성 태도도 문제를 호도한다.
 

샤론 버드와 로라 로튼은 성 중립성 연구를 검토한 후 이 개념에 세 가지 차원이 있다고 설명했다. 첫째, 자기 자신이나 자신의 행동을 성 중립적인 것으로 묘사한다("저는 '셰프'이지, '여성 셰프'가 아니에요"). 둘째, 다른 사람의 행동을 젠더화라는 틀에 넣는 걸 거부한다(하지만 전 그게 성별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셋째, 조직의 구조나 문화, 관행이 성 중립적이라는 견해를 지지한다("하지만 그건 모두 [남성과 여성]에게 똑같아요").


능력주의와 노력을 강조하며 여성 개인의 성격과 선택의 문제로 만들 때 일터에서 발생하는 젠더 불평등을 축소하거나 일시적인 현상으로 치부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여성성을 폄하하는 직장 문화가 재생산되어 현 상태를 유지하고 변화를 억제하는 결과를 낳는다." 성 중립성은 자신이 차별받지 않아도 되는 위치나 상황에 있는 이들이 주로 가지는 태도다.

여성이 어렵게 셰프라는 리더가 됐을 때도 여전히 같은 이유(감정적, 비이성적, 예민, 권위 부족)로 남성보다 못하다고 여겨진다. "역사적으로 권위 있는 자리는 대부분 남성이 차지했기 때문에 남성적인 리더십"이 기본값이 된 걸 우리는 간과한다. 요리계에서는 여성 상사가 드물어 그 밑에서 일하거나 지시받는 데 거부감을 느끼는 남자들과의 갈등을 조절하는 것도ㅡ남성 상사라면 느낄 필요 없는 감정노동까지 포함해ㅡ여성의 능력을 시험한다. 여성 셰프가 <헬스 키친>의 고든 램지처럼 해서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칸터의 토크니즘 연구에 따르면 여성은 너무 여성적(유혹자 유형)이거나 너무 남성적( '철의 여인' 같은 나쁜 년 유형)이 되지 않기 위해  엄마/큰누나 역할의 리더십 유형을 가장 많이 취한다. 

여성 셰프가 많지 않은 이유는 업무상의 성차별보다 역시 아내/엄마 역할 때문이었다. 일과 가정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파트타임 스케줄로 바꾸는 사람은 주로 남편이 아니라 아내다. 남성이 여성보다 진급이나 소득 혜택을 많이 받는 점, 육아를 모성에게 맡기는 전통적인 관습,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 어려운 스케줄, 육아로 인한 업무 차질을 바라지 않는 직장 시스템, 직장보험이나 퇴직연금을 바랄 수 없는 불안정성 등 세프계에 여성들이 많이 없는 이유도 다른 업종과 비슷했다.

이 책은 미국의 사례 조사이기에 한국과 좀 다를 수도 있다. 한국은 '어머니의 손맛'을 특히 강조하는 문화니까. 그러나 미식의 장에서 한국 여성이 천재 셰프 소릴 듣기 쉬울까. 잘해봐야 어머니의 손맛 아닐까. 한국 요리 프로그램이 서양의 그것을 답습하는 이상 젠더 불평등의 사회화는 굳건할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입안에 쓴맛이 가득하다.

이런 책도 가족들 식사에 신경쓰며 고투하는 여성들이 대부분 읽겠지... 가정에서 아버지의 요리도 일상이 되는 사회, 오고 있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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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0 2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21 0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7-06-20 21: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요리솜씨가 없기에 주로 마무리 설겆이로... 그나마 기름때 제거를 제대로 못해 구박받는 주방 소방수입니다.ㅋㅋ 저도 요리 잘 하는 아빠가 되고 싶네요 ㅜㅜ

AgalmA 2017-06-21 04:25   좋아요 1 | URL
요리도 자꾸 해야 늘어요. 여성들도 배우려고 해서 느는 거지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 없죠.
요리, 육아는 여성이 더 잘 하지 않나... 하는 효율이나 재능으로 여성에게 가사일을 자꾸 전가하다보니 그게 사회화되고 인식화되면서 여성을 더욱 어렵게 하고요.
김영하도 요리 배워서 아내를 부엌에서 퇴직시켰다고 하던데ㅎ 겨울호랑이님도 노력해 보시길요. 아내 분이 도저히 못 먹겠다 퇴장시키면 어쩔 수 없겠지만요ㅎ; 지능처럼 재능 차이가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겠죠ㅎ;

희선 2017-06-21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이 셰프면 함께 일하는 사람이 시샘하기도 하더군요 이런 건 이야기로 본 거지만... 자신이 셰프가 되리라 생각한 남자였습니다 얼굴이 예뻐서 된 거야 하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성 셰프 이야기가 중심은 아니지만, 그게 보이기도 했어요 그런 생각하는 사람 정말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희선

AgalmA 2017-06-21 01:11   좋아요 1 | URL
여성 셰프가 예쁘면 업장의 긍정적인 이미지 부각을 위해 셰프 자리에 여성 셰프를 두는 오너도 있다고 하더군요. 요즘은 글로벌한 마케팅시대니까요. 위 본문에도 썼지만 여성형 리더십을 취하는 사람은 그걸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하고요. 사람 사는 데가 늘 그렇듯 경우의 수는 무궁무진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