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ly Gonzales & Jarvis Cocker - Tearjerker
* 바슐라르 「공간의 시학」
세계 속에서 높은 쪽, 낮은 쪽, 왼쪽, 오른쪽을 찾는다는 것, 그것은 생각하는 것이지, 사는 것은 전혀 아니다.
* 허만하「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
떨어지기 위하여 높이를 가진다
비어 있는 하늘에는 지형이 있다. 하늘을 휘며 팽팽하게 고여 있던 물소리가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땅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지상의 계절은 언제나 가을이다. 높이를 가진 모든 것이 떨어지는 계절이다. 작심한 듯 또 망설이듯 저마다 다른, 저마다의 몸짓으로 수직으로 떨어지고 있다.
그날 내가 보았던 것은 멀리서 또 가까이에서 떨어지고 있는 수천의 가을 잎새가 아니라 다시 파란 하늘의 높이를 찾아 올라가고 있는 맑은 물의 한정 없는 가벼움이었다.
* 김경주 「Passport」
p 34 블랙박스 1 中
삶은 여러 개의 블랙박스를 우리에게 남기고 간다. 사랑, 경멸, 증오, 연민, 고통, 행복, 그리고 어둠. 분명 우리가 겪었지만 스스로 해독할 수 없는 삶이 우리에겐 너무나 많이 남겨져 있다. 완전한 비행에 실패한 우리들의 추락이 생에 끝도 없이 남기고 간 무수한 허공들인 것이다. 그것을 우리가 어디까지 다 해독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그냥 다른 시간으로 떨어져 버린 것이다.
p 303~ 허공을 이야기하는 런던의 비계공
˝... 그런데 제가 매일 일하면서 하는 생각이 뭔지 아세요? 내가 매일같이 바라보는 이 하늘 말고 다른 하늘을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그건 이상하게도 여행에 대한 욕구를 강하게 불러일으켜요. 그래서 전 몇 달을 고향에선 허공에서 보내고 몇 달은 드디어 진짜? 땅을 밟죠. 물론 낯선 타지에서요.
‘돌아가면 난 허공뿐이야…….‘ 언젠가 전 나이트라이프(NIGHT LIFE)에서 만난 스위스 여자와 자고 난 뒤 침대에서 담배를 물고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어요. 여자는 비웃듯이 내 왼쪽 젖꼭지를 살짝 꼬집으면서, ‘당신은 보기보다 詩的이군요‘라고 하더군요. 그때 전 제가 속으로 비웃고 있는 것은 여자가 아니라 제가 먹고살기 위해 매달려 있는 허공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안에 들어와서 점차 공간을 넓히고 있는 그 허공을 저는 땅에서도 겪고 있는 것이 견딜 수가 없었으니까요. 여자는 침울한 내 표정을 바꾸어보려는 듯 자꾸 이것저것 묻더군요. 여전히 제 왼쪽 젖꼭지를 손끝으로 돌려가면서요. 아마도 그 여자는 남자들이 섹스를 하기 전에 여자의 말을 가장 잘 들어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오래 캐물을 생각이 없는 것처럼 금방 포기했으니까요. 그러더니 한참을 묻다가 갑자기 뭔가 알아내었다는 듯이 이렇게 말하면서 옷을 챙겨 입기 시작하더군요. ‘난 이혼은 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몰라요.‘
여자가 나가고 난 뒤 전 웃음이 나와 미칠 것 같았어요. 그리고 갑자기 머릿속이 멍해지더니 일순간 생각이 났어요. 언젠가 런던의 백 층이 넘는 건물의 창문을 닦고 있을 때 제 옆으로 흘러가고 있던 하늘의 구름들을요. 그건 얼마 전 그전에 제가 인도에서 보았던 하늘과 구름이 분명했죠. 제 곁을 스치고 있는 바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런 설명할 수 없는 착각 속에서 죽는 것이 인생이겠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현기증이 몰려오던 그때 내 눈은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요? ˝
# AgalmA
그림은 내 맘과 상관없이 행복할 수 있어서 좋아.... 글은... 글은 (타고난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면) 감추기 어려워.
높이는 왜 행복감을 주는가. 고소공포증이 있어도 지위의 높이는 즐기겠지. 만병통치약같이 쓰이는 ‘진화적으로 블라블라....‘는 이제 따분하다. 바슐라르 「공기와 꿈」 다시 읽든지 관련 과학서를... 내 모든 생각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정말 힘 빠진다. 르네 데카르트는 '인간이 인생을 살아가며 적어도 한 번쯤 자신이 믿는 모든 것을 의심하는 게 철학의 근본 태도'라고 말했지만 문제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거다. 그럴 의향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