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와의 랑데부
아서 C. 클라크 지음, 박상준 옮김 / 아작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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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는지 모르겠다. 촛불을 오래 들여다보다가 허공을 바라보면 촛불의 환영이 내 시선을 따라 유영한다. 그것은 여러 개로 퍼지기도 하고 크기도 각양각색으로 변한다. 일종의 무아지경에 빠지는데 환상이라고 자각하더라도 신비함에 이끌려 쉽게 벗어나기 어렵다. 오히려 그 상태가 더 강력히 지속되길 바라지만 금세 사라지고 만다. 라마와의 랑데부를 끝낸 노턴 선장의 심정도 아마 그렇지 않았을까
 
4초 만에 자전하는 무시무시한 소행성인 줄 알았던 라마가 외계 생명체의 우주선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인류는 익숙한 두 자세를 취한다. 그들은 침략자인가 메시아인가. 오래전부터 소설이든 영화든 대개 이랬다. 최근 영화화된 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서도 외계 생명체는 인류의 메시아 역할이었다. "라마인의 세계는 모든 것이 3의 철학이다"를 마지막 문장으로 마친 아서 C. 클라크 라마와의 랑데부는 그에 맞춘 듯 제3의 자세를 취했다. 외계 생명체는 인류와 어떤 접촉도 원하지 않을 수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에게 무관심하며 생각조차 안할 수 있다. 이는 최준식, 지영해 《외계지성체의 방문과 인류종말의 문제에 관하여에서도 논의되었다.
 
인간의 탐험과 모험에서 상징적 인물인 제임스 쿡 선장(1728~1779)을 빗댄 노턴 선장과 인데버 호 승무원들은 각자 그들의 열망과 사고방식에 따라 라마를 경험한다. 노턴 선장은 라마를 쿡 선장이 인류 역사에 남긴 전대미문 탐험 현장으로, 제5예수교 신자인 보리스 로드리고는 라마를 인류를 구하러 온 노아의 방주로, 피터 루소는 라마를 어릴 적 꿈꿔온 미지의 탐험 왕국으로, 로라 에른스트는 라마를 새로운 학문을 발견할 보고(寶庫). 행성연합의 라마 위원회 위원들도 각자의 연구 분야 가치로써 라마를 보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라마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왔듯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사라진다. 어떤 독자는 이 결말에 섭섭해할 것이고 어떤 독자는 나처럼 통쾌할 것이다. 박상준 역자도 밝히고 있다시피 인간의 정신적 한계, 인간중심주의 인식과 사고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는 아서 C. 클라크의 의도는 이 소설에서 거의 완벽하게 구축되고 있다. 외계 생명체가 우리보다 뛰어날 것이라는 가정은 다분히 우리의 기대 심리겠지만, 중력과 현재의 물리법칙에 지배받는 인류가 이해하기엔 어려운 라마 세계의 물리법칙과 기이함에 대한 서술과 묘사는 매력적이었다. 읽는 내내 1973년 작품이라는 게 놀라웠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시각적 연출에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하기도 했던 장면들도 보였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얼음 행성은 라마 바다 상황과 유사했다.
 
에드거 앨런 포우 아서 고든 핌의 모험을 읽었을 때처럼 밤새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끝내 라마인을 볼 수 없어서 더 매혹적으로 남는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의 배경인 서기 2130년경에 인류는 공식적으로 외계 생명체를 볼 수 있을까(현재도 이미 봤다는 증언은 많지만). 한국은 통일되어 있을까. 한 가지 확실한 바람이 있다면 인류가 지금보다 좀더 현명해져 있길 바란다. 외계 생명체는 못 보더라도 더 많은 걸 볼 수 있을 테니까. 살아서 그 모든 걸 확인할 수 없는 게 다행일까 슬픔일까 잘 모르겠다. 아서 C. 클라크가 스리랑카로 이주해 죽을 때까지 별을 관찰하고 바닷속을 탐험했듯이 나도 남은 생의 계단을 걷겠지. 나는 여기서 계단을 오른다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라마 우주선 내부 계단이 위를 향한 것인지 아래를 향한 것인지 모호하듯이. 원하는 방향에 따라 인지 방식에 따라 우리는 향한다고 나는 말할 뿐.


 

 


※ 표지는 원통 모양의 인공구조물 '라마'와 내부 이미지(어둠, 미로)를 잘 표현했다. 최초 발견자가 보일러통 같다고 우스개로 표현했지만 정확했다ㅎ '라마'는 자체 발전소였으니까.

 

Teen Daze - The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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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7-04-14 2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못 읽어 보아 내용에 부합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만, 외계인뿐 아니라 인간도 대부분 3의 철학입니다.
헤겔의 변증법도 그렇고 삼위일체도 그렇고 가위바위보도 3세판 입니다. 그외 무척 많습니다.^^

AgalmA 2017-04-16 00:48   좋아요 1 | URL
아서 C. 클라크가 그걸 계산에 넣고 쓴 거죠. 과학뿐 아니라 통찰력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요즘 지능에 대한 책을 읽고 있는데요. 인간의 지능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데 수학 능력은 획기적으로 상승하고 있지 않다는 건 재밌습니다. 추상적 사고가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겠죠.
<당신 인생의 이야기>, <라마와의 랑데부> 뿐 아니라 대체로 SF 소설들에서 외계인은 특히 수학과 기하학 능력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