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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입자 - 우주가 답이라면, 질문은 무엇인가
리언 레더먼 & 딕 테레시 지음, 박병철 옮김 / 휴머니스트 / 2017년 2월
평점 :
물리학 역사에서 탐사 영역이 확장될 수 있었던 대표적 도구로 ‘망원경과 현미경‘을 꼽는다. 그러나 고전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미시적 영역을 입자물리학이 다루면서부터 1970년대 이후에는 ‘초대형 입자가속기와 고성능 감지기, 거기서 나온 방대한 데이터(분류가 끝난 것은 ‘표준모형‘)‘들이 그 자리를 물려받은 거 같다. 1970년대 이전 ‘안개상자‘, ‘거품상자‘ 등등의 중간 단계도 기억해 둘만 하다. 저자는 갈릴레오가 낙하 실험을 했던 피사의 사탑이 최초의 ˝천연 입자가속기˝라고 경의를 표했다. 갈릴레오의 낙하 실험은 거의 2000년 동안 물리학의 발전을 막아온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 법칙에 대한 오류를 지적한 일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예는 수학적 계산이 부족한 철학의 문제점이라고만 볼 수 없다. 자유낙하 문제뿐 아니라 모든 물리학에서 대천재였던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걸 상기해보라. 결국 우리 각자의 시대적 인식적 한계라 봐야 할 텐데 인류 역사에서 이러한 점은 역사를 좌우하는 큰 걸림돌이다.
탈레스(기원전 6세기)는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고 보았다. 물이 기본 원소가 아니라 산소와 수소로 만들 수 있는 화합물이라는 사실은 화학자 라부아지에에 의해 18세기에서야 증명되었다.
인류 중에는 ‘씨앗 속의 씨앗‘을 궁금해하고 찾는 이들이 있다. 저자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찾아낸 최초의 입자물리학자는 데모크리토스였다. 저자는 ‘만물의 최소단위인 아토모스(원자)‘개념을 제안한 데모크리토스(BC 460~370)에서 출발해 긴 여정을 시작한다.
분자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원자 중심부에는 원자핵이 있다. 원자핵은 다시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져 있고, 양성자와 중성자는 쿼크로 이루어져 있다. 1980년대 이후로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 분류는 쿼크 6개, 렙톤 6개로 구분된다. 여기에 중력을 제외한 세 종류의 힘을 매개하는 매개입자들도 같이 따라다닌다. 매개입자는 유식한 말로 ‘게이지 보손‘이라고 하는데 QED(양자전기역학)의 광자, 약력의 W+, W−, Z0(중성 흐름), 쿼크와 쿼크 사이에 작용하는 힘인 강력의 글루온을 칭한다. ˝광자는 1905년에 아인슈타인이 예견한 후 1923년에 아서 콤프턴이 엑스선 산란 실험을 통해 발견되었다. 중성 흐름은 1970년대 중반에 발견되었지만, W 입자와 Z 입자는 1983~1984년에 CERN의 LHC(스위스에 위치한 세계 최대 입자가속기)에서 발견되었다. 그리고 글루온은 1979년에 ‘공식적으로‘ 발견되었다. ˝
게다가 쿼크는 세 가지 색도 있고 모든 입자는 각각에 대응하는 반입자 파트너도 갖고 있다. 우리가 꿈꿔온 우아하고 단순한 원리와는 다르게 엄청 복잡해 보인다-_-;
원자가 분해되면서 ‘반지름이 0이고 크기가 없는데 질량을 가지며 전하를 띠면서 자전하는 해괴한 성질의 입자인 전자‘가 나오는 것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재밌었지만.
˝루이스 캐럴의 대표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등장하는 ‘체셔캣(웃는 고양이)‘를 떠올려보자. 고양이는 웃는다. 그런데 몸이 점점 사라진다. 그러다 어느새 고양이는 온데간데없고 미소만 남는다. 이제 자전하는 전하 덩어리를 떠올려보자. 덩어리의 몸집이 서서히 줄어든다. 그러다 어느새 덩어리는 사라지고 스핀과 전하, 질량, 그리고 미소만 남는다......"
물질 입자에 매개입자를 추가한 표준모형이 현재 물리학자들이 알아낸 ‘우주의 격렬하고 꾸준한 운동을 말해주는 비밀‘이다. 이 입자들이 발견되고 증명되는 과정의 어려움과 장구함이 이 책 전체를 통해 펼쳐지니 자세한 건 책 속에서 확인해 보시길. 이 책이 어쩌다 700 페이지가 된 게 아니다ㅎ. 2주간 열심히 읽어 왔는데 마무리에 다다르니 저자는 무너지는 소리를 한다. ‘꼭대기쿼크‘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고, 매개변수가 너무 많으며, 중력이 누락되어 표준모형은 아직 미완성이라고 한다. 1993년 이 책 출간 후 1995년 ‘꼭대기 쿼크‘는 발견되었다. 중력에 양자이론을 적용한 양자중력 이론이 제대로 형성되었을 때, 원자보다 작았을 태초의 우주를 우리는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에 대한 이론으로는 수학 논리로 중무장된 이론물리학 ‘대통일이론‘, ‘구성모형‘, ‘테크니컬러‘, ‘초중력‘과 ‘초대칭‘, ‘초끈‘, ‘만물의 이론‘ 등이 있다. 많은 이론들이 실험물리학으로 검증되긴 요원해 보이는데, 이론물리학에 호의적이지 않은 실험물리학자 리언 레더먼이 저 이론대잔치를 질타하는 건 살짝 공감이 되긴 한다.
불완전한 표준모형에 새로운 타당성을 부여하는 스타로 ˝힉스장(또는 힉스 입자)˝이 등장했다. ˝질량이란 입자의 근본적인 속성이 아니라, 입자가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을 교환하면서 획득한 후천적 성질˝이라는 힉스의 주장에 따르면, 힉스장은 모든 입자가 질량을 갖는 것과 우주의 ‘숨은 대칭‘, ‘자발적 대칭 붕괴‘를 설명할 수 있다. 이론으로만 존재하던 이 ‘신의 입자‘는 2013년 발견되었다. ˝맥스웰 시대의 물리학자들은 빛(전자기파)을 매개하는 매질이 우주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 매질을 ˝에테르˝라고 불렀지만, 21세기 우리는 그것을 이제 ˝힉스 입자˝라고 부른다.
드디어 힉스 입자도 발견되었고, 뭔가 더 추가되고 발견되어 1000 페이지 짜리 물리학 역사 책이 또 나와도 이번 공부로 조금 수월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의 저자들도 뭔가 쓰고 있겠지.
이 책에서 저자는 에이허브 선장의 집념이 수백 페이지에 걸쳐 장황하게 묘사된 허만 멜빌《모비딕》의 내용과 결론이 실망스럽다고 했지만, ‘신의 입자‘를 쫓아 수백 페이지 달려오며 사람들에게 설명할 땐 적절한 비유와 데모크리토스가 등장하는 희곡 형식을 쓴 이 스토리텔링(과학 작가인 공동저자 딕 테레시의 역량으로 짐작)도 내겐 《모비딕》과 크게 다르지 않다. 허만 멜빌이 전달하려 했던 것도 ‘신의 입자‘만큼 인간에겐 중요했던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입자물리학과 천체물리학의 관계를 ‘내부 공간과 외부공간의 연결‘이라 말했듯이 나도 문학과 과학의 관계가 인간에게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판지로 만든 가면일 뿐이라네. 하지만 합리적이면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불합리한 가면 뒤에 숨어 있는 실체를 드러내곤 하지. 그러니 무언가를 부수고 싶다면 가면을 부숴 버려야 하네!"
ㅡ에이허브 선장
저자가 《모비딕》에서 인용한 저 문장을 보면, 눈에 보이는 것들 뒤에 ˝숨어 있는 실체˝는 우주의 지금 상태를 유지하게 만드는 ˝암흑물질˝이나 엄청난 에너지를 보유한 ˝힉스입자˝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지?
ps)
1. 힉스입자 발견에 대한 옮긴이의 후기는 있지만 저자의 직접 보론이 없는 관계로 이 책에 별 4개를 주려다가 《모비딕》에 별 5개를 주었기 때문에 공평하게 이 책에도 별 5개를 준다. 노벨상까지 받았음에도 ˝송로버섯을 찾자마자 주인(이론물리학자)에게 빼앗기는 돼지˝ 처지라 말하는 실험물리학자의 노고와, 세계를 움직이게 하는 숨어 있는 힘을 찾아 치열했던 노력에 내가 할 수 있는 감사의 인사로.
2. 대척점에서 서로 말하는 듯이 보이던 마르쿠스 가브리엘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http://blog.aladin.co.kr/durepos/9203111 와 결론이 같아서 미소지었다.
˝이봐요, 내가 당신을 창조했어요. 당신은 내 생각의 산물입니다. 당신의 존재에 이유와 목적을 부여하고, 아름다움을 선사한 장본인은 바로 나였습니다! 나의 생각과 설명이 없었다면 당신은 지금도 여전히 무용지물로 남았을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ㅡ리언 레더먼, 딕 테레시 《신의 입자》, p709
*‘먼지‘에 대한 페르미의 영감은 시적 직관에 가까워서 아름다웠다. 시가 아니라 수식으로 채워가는 장면도.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이 그렇듯이 페르미도 수학게임을 좋아했다. 한번은 그가 다른 물리학자들과 함께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던 중 유리창에 쌓인 먼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문제 하나를 떠올렸다. "저 먼지가 제 무게를 못 이겨 떨어질 때까지 얼마나 많이 쌓일 수 있을까?" 동료들은 "밥 먹다 웬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며 의아해했지만, 페르미는 아주 심각했다. 그는 자연의 기본상수에서 시작하여 전자기적 상호작용과 절연물질을 서로 들러붙게 만드는 유전체의 인력 등을 고려하여 냅킨 위에 수식을 써 내려갔다.(답이 얼마로 나왔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맨하튼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되던 무렵, 어느 날 로스알라모스(Los Alamos)에서 한 물리학자가 차를 몰다가 코요테를 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이 소식을 접한 페르미는 "자동차-코요테의 상호작용(접촉사고)은 일종의 충돌 사건이므로, 빈도수와 발생장소를 추적하면 사막에 거주하는 코요테의 개체수를 계산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사실 몇 개의 사례로부터 전체 사건발생횟수를 추적하는 것은 입자물리학자들의 일상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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