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하는 분신들의 고백들
분신 열린책들 세계문학 116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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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예프스키 《분신》의 주인공인 9등 문관 야꼬프 뻬뜨로비치 골랴드낀은 우리가 자신에 대해 생각하듯 자신을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시장을 돌아다니며 거짓 흥정을 하며 쇼핑을 즐기고 교양과 품위에 대해 신경을 쓰는 속물이기도 하다. 그는 주변인들이 자신을 파멸시키려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생각하는 피해망상 환자이기도 한데, 초대받지도 않은 상급 관리자의 만찬에 나타나 망신을 당한 뒤 피해망상은 더욱 커진다. 무도회에서 쫓겨나 거리를 배회하던 골랴드낀이 자신의 분신이 자기보다 먼저 자기 집 침대로 달려가는 모습을 쫓는 환상 장면은 카프카 《변신》에서 불현듯 벌레로 변한 자신을 살피는 그레고르 잠자와 겹치기도 했다. 다음날 직장에서 지난밤 스쳐갔던 분신이 자신의 이름과 똑같은 신입사원으로 들어온 것을 알게 되자 그의 분열 증세는 더욱 심해진다. 이름과 생김까지 같은 사람이 같은 곳에 있는 데도 이상하고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오직 주인공 골랴드낀 뿐이다. 이는 매우 소설적이면서 또한 현실을 반영하는 은유이다. 같은 공간에 자신과 이름이 같거나 닮은 사람이 있는 경험을 해본 사람은 잘 알 것이다.

주인공 골랴드낀은 다른 골랴드낀을 아군으로 만들려고 하지만, 스스로를 곤경에 빠뜨리는 말실수를 하고 만다. 다른 골랴드낀은 주인공 골랴드낀보다 한 수 위다. 그가 제대로 못하는 대인관계에 능할 뿐만 아니라 주인공 골랴드낀을 직장과 주변인들에게 소외되게 술수를 꾸민다. 다른 골랴드낀의 진짜 음모 때문에 또다시 만찬에서 망신을 당한 주인공 골랴드낀은 철저히 무너진다. 주치의 끄레스찌얀 이바노비치에게 인도되어 그는 정신병원으로 향하는 마차에 타게 된다. 골랴드낀의 비명과 절규는 또다시 그레고르 잠자의 몰락을 떠올리게 했다. 카프카 《변신》이 레퀴엠이었다면, 도스토예프스키 《분신》는 수난곡이었다고 할까.

 

 

“이 사람은 끄레스찌얀 이바노비치가 아니야! 도대체 이게 누구야? 그가 맞나? 그 사람인데! 이 사람은 끄레스찌얀 이바노비치가 맞아! 다만, 옛날의 그가 아니라 다른 끄레스찌얀 이바노비치다! 이 사람은 무서운 끄레스찌얀 이바노비치다……!

「끄레스찌얀 이바노비치, 저는 …… 괜찮은 것 같아요. 끄레스찌얀 이바노비치.」 얌전하고 온순한 언행으로 무서운 끄레스찌얀 이바노비치의 동정심을 다소 얼마간이라도 얻기를 바라며 우리의 주인공은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면서 입을 열었다.

「넌 장작, 등불, 하인까지 딸린 관사를 받게 되는데, 네겐 그것도 과분햇!」 사형 선고처럼 엄하고 무서운 끄레스찌얀 이바노비치의 대답이 그렇게 울리고 있었다.

우리의 주인공은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움켜쥐었다. 아아!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일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 《분신》

 

 

끄레스찌얀 이바노비치가 맞다 아니다 수차례 논하는 골드랴낀의 저 대사는, 타인을 수차례 가늠하고 자신을 맞추며 사는 모든 시대 우리들의 모습과 닮았다. 타인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불협화음 같은 골드랴낀 같은 이들은 사회에서 분리된다. 우리는 타인이 만든 우리의 분신을 감당하느라 이토록 힘든 건지도 모른다.

 

 

 

 

※ 도스토예프스키 다른 출판사 책을 읽다가 열린 책으로 다시 읽었다. 도스토예프스키 화자의 분열적인 수다스러움을 가장 잘 구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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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모마일 2016-12-22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신>은 저에게 생소한 작품인데, 서평에 푹 빠졌다 나왔네요. 분신. 서평을 보지 않았다면 평생 안 읽었을 작품인데, 덕분에 알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AgalmA 2016-12-23 20:44   좋아요 0 | URL
도스토예프스키 졸작으로 평가되기도 하던데요; 이 소설 앞에 쓴 <가난한 사람들> 이 히트쳐서 엄청난 격찬을 받아 <분신> 내놓고 글이 방만해졌다는 둥 악평에 시달렸죠^^;;
중편이기도 하고 환상성 때문인지 도스토예프스키답지 않은 느슨함을 이 작품에서 느낄 수 있었어요. 언제나 그렇듯 한 번 보고 끝날 수 없는 좋은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제가 광고 안해도 될 뛰어난 작가지만 즐겁게 서평 보셨다니 저도 흐뭇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