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늪
도착했을 때 겨울은 이미 와 있었다
우리는 자판기에서 실수로 얼음커피를 뽑았다 일종의 징표처럼
차라락 쏟아진 겨울의 체온 겨울의 언어로 뒤덮인
늪은 충실한 노트로 펼쳐져 있었다
결정을 덧입은 낙엽과 마침표로 남아있는 돌들과
깨지기 직전의 온도계로 서 있는 나무 사이로
우리는 오래된 늪의 가장자리만 맴돌았다
겨울의 수천만 개의 손들이 늪에 일제히 기록하는 것을 보며
우리는 호호 입김을 불며 감탄했지만
새들이 휘갈기는 메모조차 읽을 수 없었다
왜 이곳에 하늘과 물과 돌과 나무와 새들이 완벽하게 모여 있는지
왜 우리는 제 손안의 얼음조차 감당할 수 없는 이방인인지
살얼음만큼의 마음도 말도 감당 못하는 우리는
얼음에 젖은 손을 내밀 수도 붙잡을 수도 없이
하얗게 튼 입술로 멋쩍게 웃었다
웃음보다 가벼운 눈이 눈 위로 쌓이며
하늘과 땅이 나누는 입김 속에
겨울도 늪도 우리도 점점 흐릿해졌다
그리고 다음 방문객이 도착하는 소리를 들었다
ㅡ 어느 해 시작(詩作) 노트에서
*
궂은 날씨다.
궂은 혹은 굳은 얼굴이 아니도록 우리는 계속 노력했다. 삶의 카드를 그리 쉽게 뽑는 게 아니라고 거리에 버려진 카드들을 보며 나는 그리 읽었다.
식어가는 커피를 마시며 추웠던 어느 해 겨울 적막했던 공간을 생각했다.
첫눈이 내가 처음 본 순간에 대한 지정(指定)이듯이 나는 정의(正義)가 다분히 자의적이고 인간적인 기준이며 과한 신념일지도 모른다고 자주 생각했다.
누군가는 빨리 오라고 누군가는 천천히 가야 한다고 서로에게 전달했다. 그렇게 계속 도착해 왔고, 오늘도 듣고 외칠 것이다. 듣는 존재이자 말하는 존재 모두에 충실할 것이다. 또한 그런 존재들을 목격할 것이다.
정의는 그런 목격들의 結晶일 때 가장 충실하지 아닐까. 기록과 기록 사이에서 나와 네가 발견되듯이.
초과적인 존재.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속에서 언제나 그렇게 말하는 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