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진 《종의 기원》 책 띠지에는 세계를 바꾼 3대 혁명서로 다윈 《종의 기원》(1859), 마르크스 《자본론》(1867), 프로이트 《꿈의 해석》(1900)이 적혀 있다. 아인슈타인이 빠지다니! 동의할 수 없다가, 문구를 만든 이가 19세기 말 인류학적 의식 혁명에 방점을 둔 것일지도 모른다고 이해했다. 세계 3대 기타리스트 실랑이처럼 제발 ‘세계 3대’ 어쩌고 하는 작의적인 분류 좀 안 했으면 싶지만 인간의 분류병은 (생존을 위한?) 고질병이라 세계 최고의 의사가 와도 고칠 수 없다. 의사는 더더욱 분류 박사!
다윈과 프로이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더 집중했다면, 마르크스는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더 집중했다고 생각한다. ㅡ보라, 이 분류병; 모른 체하고ㅡ 내가 흥미로운 건 다윈과 프로이트가 유독 천착한 性 문제다. 다윈은 『종의 기원』 발간 후 12년 뒤 그 보완으로 1871년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을 발간했다. 그의 대표 이론인 ‘자연선택론’(변이-생존경쟁-유전)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을 ‘성선택’ 이론으로 설명했다. 생존 경쟁에서 불리한 화려한 꼬리를 가진 공작새가 대표적 예다. 짝 고르기 즉 성선택이 생존 경쟁보다 번식에 더 유리한 진화 조건으로 작용했다는 주장이다.
여기서 내 단상, 번식에 종속된 ‘짝 고르기’ 가 아니라 짝 고르기 행동 자체에 주목할 때 동성애자들은 매우 타당한 합리성을 획득하게 된다. 인간에게 암-수 교배 번식만이 절대 본능이 아니며ㅡ다윈의 성선택 이론이 간과한 점으로 거론되는ㅡ사회 환경적 변화도 중요 조건으로 볼 때 동성애는 하등 이상할 일이 아니다. 문헌만 봐도 동성애는 오래전부터 인간 습성 중 하나였으며, 동물계에서도 빈번하다. 또 근대 이후부터 강화된 자의식, 행복 추구 심리, 인간의 마음 - 자유의지의 다양성 면을 두루 살펴 생각해 볼 부분이다.
남성 우월론을 펼치고 있는 다윈이 유전학을 잘 알았다면 그의 이론은 좀 더 체계적이었을 거다. 멘델의 유전 법칙이 당시 논문으로 이미 나와 있었지만 다윈은 몰랐을 가능성이 높고, 그 논문이 수학 수식에 가까워 수학에 약했던 그가 해석하기엔 어려웠을 거란 추측이 많다. 때문에 다윈이 주장하는 부모 유전자 융합 논리는 바로 허점을 드러낸다.
지금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볼 때 인간은 Y 염색체가 없다면 여성으로 만들어지는 기본 틀로 짜여 있다. 수백 개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X 염색체에 비해 Y 염색체는 수십 개의 유전자 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데 남성을 만드는 일을 전담하는 걸로 보인다. 또한 X 염색체에 비해 많은 질병에 취약하며 두 배 정도 높은 돌연변이를 발생시킨다. 이것은 자녀에게 대물림된다. 탈모 문제는 애교에 가깝다.
물론 성선택 이론에서 여성 우월 논리도 있는데, 수컷을 선택하는 주체가 암컷이라는 거다. 그래서 수컷은 더욱 자기 발전과 경쟁력을 강화하는 진화 과정을 꾀하게 된다. 이런 점 때문에 결론적으로 수컷 우월로 귀결되지만.
여기서 요즘의 문제를 상기해보다. 전 세계적으로 성 평등과 성 대결 문제가 가속되고 있다. 다윈은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성선택이 생존 경쟁보다 더 강력하다고 보았다. 그런데 현대의 성 대결 문제는 생존 경쟁이 더 강력히 작동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걸로 볼 때 진화의 단계설이라든지 우월 순위에 대해 물음표를 갖게 된다. 이런 순환성을 다윈은 잘 시뮬레이션하지 못 한 거 같다. 또 다윈은 공감과 도덕성을 인간 존재 조건의 높은 가치로 여겼으나 그의 미개인 비하 발언은 이중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다윈도 시대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인간의 존재론적 가치(공감과 도덕성)가 실상 공감 결여와 부도덕성으로 인간 사회에서 늘 골치 아픈 문제인 건 아이러니하다. 이런 제반을 살필 때 다윈주의자인 리처드 도킨스가 인간의 도덕성과 이타성을 진화상의 돌연변이로 보는 것은 과연 타당한가. 이 돌연변이가 없다면 문제가 더 심각해 보이는데 그렇다면 돌연변이라 할 수 있는지.
인간이 침팬지와 유사한 영장류 조상으로부터 진화했다는 그의 이론은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훌륭한 방식이었다. 다만 인간을 동물 관찰과 비교 대조해 단순화해서 본 것이 단점 같다. 인간의 이 끝없는 비이성적인 폭력들을 ‘인구 증가 억제 작용’이라는 진화 과정으로 간편히 설명할 수 없잖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