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Winter Sleep (윈터 슬립)(지역코드1)(한글무자막)(DVD)
Adopt Films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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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개그에 대한 우리 불쾌감은, 인간이 공감과 재미에 더 치중한 심리 메커니즘을 갖고 있어서겠죠. 유행어를 따라하는 심리는 뭐 겠습니까. 진화와도 연관되어 있겠죠. 끊임없이 배제하고 좋은 걸 찾아내려는 욕망. 공감 되면 환호하지만 안 되면 야유하거나 무시합니다. 서로 잘 지내보자는 것 같지만 이리저리 눈치 보고 재고 따지고, 생활 전반과 여기 서재에서도 매일 일어나는 일이죠. 그 행동을 단순히 좋다/나쁘다로 이야기할 수 없으며, 바람직한 행동을 강요할 수도 없습니다. 그것을 따지는 우리 또한 별다르지 않으니까요.

 

 

(여기까지는 에스카님 서재글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2>에서 '무명 개그맨'과 연관해서 생각해봤고, 아래는 영화<원터슬립>에서 배우와 인간, 심리에 대해서...)

 

 

 


Schubert's Piano Sonata No 20 in A Major


 

윈터슬립》에는 이국적인 터키 카파도키아의 겨울 풍경 속에 호텔 오셀로’가 있습니다. 하필 오셀로라니. 셰익스피어 《오셀로》를 이 영화는 어떻게 비켜갈까요. 호텔 오셀로의 주인이자 전직 배우이며 지방신문 기고가 아이딘’, 젊고 아름다운 아내 니할’, 이혼하고 그들과 살고 있는 아이딘의 여동생 네즐라’, 그들에게 집세를 못 내고 있는 세입자 함디형제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펼쳐집니다.

주요화두가 있습니다. “인 줄 알아도 받아들이면 더 좋지 않을까.” 또 오셀로를 떠올리게 됩니다. 악인 이아고에게 철저히 속아 넘어가 아내 데스데모나를 죽인 오셀로의 비극을. 우리는 善과 惡을 정확히 구분할 수 있습니까. 속는 줄도 모르고 받아들이면 과연 좋아지게 만들까요. 비폭력 평화주의처럼 말하지만 정작 좋을 때까지만 받아들이는 건 아닙니까.

영화 속 인물들은 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지만, 상황이 닥치면 자신이 밝힌 생각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억지스럽고, 부조리하며, 이기적인. , 제겐 그게 다 이기적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죠. 겉으로는 도덕과 양심, , 인간애, 종교성 등을 이야기하지만 자신이 처한 개별 사건 속에서 우리 행동은 장담할 수 없습니다.

 

a: 악을 받아들여 상대가 양심 속에서 깨우치게 만들자고 말한 당사자면서 네즐라는 자신이 아끼는 컵을 자꾸 깨뜨리는 가정부에게 벌로 월급을 깎을지 말지 고민합니다.

 

a2: 네즐라는 자신을 학대한 남편에게 ˝용서해 달라˝ 말해서 남편이 반성하게 만드는 건 어떨까 고심합니다. 얼마나 기만적이고 합리화한 어리석음입니까. 니할에게 그렇게 지적받자마자 네즐라는 아이딘과 니할을 싸잡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인간의 무수한 불만의 씨앗은 미세한 자극에도 쉽게 터집니다. 감정의 부비트랩.

 

b: 니할은 자신의 자선은 올바르다고 생각하면서 아이딘의 자선은 허울뿐인 치기라고 생각하는가 하면, 아이딘의 기부금을 자기의 자선인 양 포장하며 건네다가 모욕을 당합니다. 그녀의 자선은 善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좌절된 삶을 이끌어줄 목표였기에 그토록 중요했던 거죠. 

 

c: 투숙객1이 지나가는 말로 그랬으면 좋겠다고 하는 말에 아이딘은 대가를 치르며 실행에 옮깁니다. 아름다운 흰 야생마를 사옵니다. 젊고 아름다운 아내를 맞아들이듯이. 나중에 말을 풀어주지만 그의 위안 때문이지 말을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 뒤 사냥에서 토끼를 쏴 죽였으니까요. 우리의 본능적인 사냥심리는 제거할 수 없이 막강합니다.

 

c2: 투숙객1이 세계를 떠돌며 에세이를 쓴다고 하자, 자기도 작가라며 제대로 써본 적도 없는 책을 구상하고 있다고 아이딘은 거짓말 합니다. 하지만 결말에서 그는 언급했던 책을 쓰기 시작합니다.

황신혜밴드였나, 언니네이발관였나. 방송에서 밴드 한다고 말했는데 거짓말을 할 순 없어서 밴드하게 됐다고 하던 에피소드 생각나네요.

 

d: 독실한 무슬림인 함디는 악을 참을 수 없어 악으로 되돌려줬고 감옥에 갔죠. 출소 후 상황이 잘 풀리지 않자 자신의 가난과 잘못과 불운을 세상에 대한 분노로 모두 치환합니다. 그의 마지막 자존감이기도 하겠죠. 우리는 그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e: 영화 속 모든 인물은, 타인의 위선을 비난하면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지적받으면 참지 못합니다. 아이는 맞거나 조용히 지켜볼 뿐입니다.

 

이렇게 많은 경우의 수들. 인간의 수만큼 죽음만큼 많을 겁니다.

셰익스피어의 대사를 각자 자기의 논점에 따라 이리저리 인용하듯이(영화 속 이 장면도 아주 멋지죠) 우리는 비극과 희극을 동시에 연기하는 배우입니다. 오래전 오마 샤리프가 이곳에 촬영차 왔을 때 아이딘에게 전했다는 말 ˝배우의 연기는 정직함에 있다˝를 아이딘은 명예롭게 얘기하지만 그 말은 100%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는 정직함을 연기하면서도 누군가 정직하다고 말해주길, 인정해주길 바랍니다. ˝당신은 정말 작가입니다 시인입니다 배우입니다˝라고 말이죠. 그 어떤 인정도 거부하는 용기 속에서조차 우리는 진짜 정직한지 살펴야 할 겁니다. 우리의 선의와 겸손은 자기기만일지도 모르니까요.

 

엔딩에서 아이딘은 지금껏 부정하고 있었던 사실인 자신이 부(富)보다 '니할'을 의지하며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깨닫게 되지만, 니할에게는 솔직히 털어놓지 못합니다. 아마 인간인 우리는 - 연기 뒤에 숨어서, 글 뒤에서 말하는 - 그게 최선 아닐까, 감독은 그런 말을 하고 있는 지도요. 오셀로는 아내에게도 자신에게도 정직할 수도 제대로 연기할 수도 없었으므로 몰락한 거겠죠. 惡 때문이 아니라.   

 

 

ㅡAgal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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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애니비평 2015-06-03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아이러니~~
아 수요일 오전인데 잠이 너무 오는군요!

AgalmA 2015-06-03 13:10   좋아요 0 | URL
이리저리 얽혀있으니 복잡의 대 파노라마라고나 할까요...
잠...동물들 보면 제일 좋아보이는 부분이기도 해요. 자고 싶으면 아무데서나 자고. 물론 인간과 적을 경계해야 하는 건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지만ㅎ;

풀무 2015-09-19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름휴가 때 케이블 VOD로 보았습니다. 아갈마님의 생생한 글을 읽고나니 이 영화에 대해서 무슨 컬럼 기고하듯이 딱딱하게 죽은 기록을 리뷰랍시고 쓴 제 글이 문득 부끄러워집니다.

AgalmA 2015-09-19 14:15   좋아요 0 | URL
맞다! 서쪽섬님 <윈터슬립> 리뷰 깜빡하고 잊고 있었네요. 가서 읽어봐야겠어요.
부끄러우시다뇨! 서쪽섬님 리뷰 보며 저는 너무 주관적인 해석에 치우쳐 쓰는 게 아닐까 싶은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