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란 무엇인가 3 - 소설가들의 소설가를 인터뷰하다 파리 리뷰 인터뷰 3
파리 리뷰 지음, 김율희 옮김 / 다른 / 201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 어떻게 이럴 수가

작가란 무엇인가 1 소제목들은 작가의 특징을 잘 잡아낸 것 같았는데, 작가란 무엇인가 3 소제목들을 보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완벽한', '천재', '새로운',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너와 나의 길', '진실할 수 있는 자유' 등등등 문학작품 수식할 때 쓰는 클리셰들이 대거 출동; 대개가 작가 인터뷰 발언에서 뽑는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이건 좀 아니오! 다른 작가, 신간 출간시 남발되는 선전문구와 큰 변별력이 안 느껴지잖소. 어떻게 이럴 수가!

앨리스 먼로와 잭 케루악 인터뷰가 가장 많은 분량임에도 내겐 가장 소득없는 인터뷰였다. 어떻게 더 이럴 수가!

잭 케루악 길 위에서를 펼쳐본 독자라면 그의 즉흥적 문체와 에너지에 주인공만큼 호기심 넘쳤을 것이다. (어디선가 아니야~아니야~ 메아리가?) 이 책은 미국 대학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대출되는 책 중 하나이자 가장 반납이 안 되는 책이라고 한다. 반납이 잘 안 되는 건 그들이 책을 읽다가 휙 히치 하이킹을 떠나서 그런 걸까작가란 무엇인가 3 말미에 집사와 모범생 이미지가 묘하게 섞인 것 같은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는 잭 케루악 책 등을 언급하며 그의 젊은 시절 히피 생활을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인터뷰에서 장황하게 펼쳐지는 잭 케루악의 하이쿠(일본 특유의 短詩) 짓기는 한국 독자들에겐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을 거 같았다. 전 세계적으로 詩 소비가 왕성한 한국 아닌가! '폭풍우가 오기 전 참새 등에 내려앉는 잎사귀'란 시적 포착은 작가다운 시선이긴 했지만, 한국 독자들은 그러한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내 착각일까;) 시험 문제로도 풀고 있다고!

 

 

처서 지나고

 

 

 

 

처서 지나고

저녁에 가랑비가 내린다

태산목 커다란 나뭇잎이 젖는다

멀리 갔다가 혼자서 돌아오는

메아리처럼

한번 멎었다가 가랑비는

한밤에 또 내린다

태산목 커다란 나뭇잎이

새로 한번 젖는다

새벽녘에는 할 수 없이

귀뚜라미 무릎도 젖는다

   

 

 

- 김춘수

 

 

 

 

 

 

 

§§ 농담에 미친 문학화학부 선생님, 보네거트

커트 보네거트 소설들을 보면 자기 글쓰기에 여념 없을 거 같았는데, 농담 가득한 그의 인터뷰 답변들에서 깜짝 놀랐다. 창작 수업도 했었다니!  정식 문학 공부를 하지 않았음에도 뛰어난 소설가답게 작법 조언도 아주 훌륭했다.

 

보네거트 : 장담컨대 현대소설의 그 어떤 책략도, 플롯을 없애버린 특성마저도 독자에게 진정한 만족을 주지 못할 겁니다. 그 고리타분한 플롯 가운데 하나가 어딘가에 몰래 숨어 있지 않는 한 말이에요. 저는 독자들이 책을 계속 읽게 하는 방법으로서가 아닌, 삶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플롯을 칭찬하지 않아요. 소설 창작을 가르칠 때 학생들에게 등장인물이 뭔가를 당장 원하도록 만들라고 주문하곤 했지요. 그게 물 한 잔뿐이더라도 말이에요. 현대 생활의 무의미함에 마비된 등장인물이라도 물을 마셔야 하잖아요. 제 학생 가운데 하나는, 왼쪽 아래 어금니 사이에 치실이 끼었는데 종일 그걸 뺄 수 없는 수녀에 대한 이야기를 썼어요. 소설은 치실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독자로 하여금 책을 계속 읽게 만든 건 그 치실이 언제 빠질 것이냐에 대한 호기심이었지요. 그 소설을 읽는 사람들 중에 손가락을 자기 입속에 넣고 더듬지 않은 사람이 없었을 겁니다. 플롯을 배제하고, 뭔가를 원하는 누군가를 배제하면 독자를 배제하는 거예요. 그건 비열한 행동이지요. 독자를 배제하는 또 다른 방법은 당장 알려주지 않는 거예요. 이야기가 어디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인물은 누구인지, 그리고…….

…… 또 인물들이 서로 맞서지 않게 해서 독자를 졸리게 할 수도 있지요. 학생들은 현대 생활에서 사람들이 충돌을 피하기 때문에 자신들도 대립하는 장면을 만들고 싶지 않다고들 말하면서 현대 생활은 정말 외로워요.”라고 하지요. 그건 나태함일 뿐이에요. 대립하는 장면을 무대에 올리는 게 작가가 할 일이에요. 그러니까 인물들이 놀랍고 폭로적인 내용을 이야기해 독자들을 가르치고 즐겁게 해줘야 해요. 작가가 그 일을 할 수 없거나 하지 않는다면, 이 장사에서 손을 떼야 해요.(p122~123)

 

 

기 드보르 "인간은 자기 조상을 닮은 것보다 자신의 시대를 더욱 닮는다."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트루먼 커포티(1924년생)와 커트 보네거트(1922년생)가 각각의 인터뷰에서 토마스 울프(1938, 38세로 사망) 소설을 언급한 것은 동시대 작가들의 교감을 보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문단의 주목을 받은 토마스 울프의 첫 소설 천사여, 고향을 보라(1929)가 국내에 번역되어 있다.

 

 

 

 

 

§§§ 우주로 간 여성 소설가

보네거트는 미래의 작가들이 있을 곳은 영문학과가 아니라 화학과, 동물학과, 인류학과, 천문학과, 물리학과, 의학부, 법학부라고 말했는데, 이어지는 어슐러 K. 르 귄과 줄리언 반스, 프리모 레비 인터뷰를 보며 역시 보네거트는 천재! 했다. 물론 이 책 편집자의 의도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찡긋~)

어슐러 K. 르 귄의 아버지는 미국 최초로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은 앨프리드 L. 크로버로, 르 귄의 작품에 드러나는 사회인류학적 관심은 그 영향이 크다. 르 귄의 문학 견해는 그러한 인식에 기반한 통찰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명쾌하게 말했다.

 

르 귄 : 20세기와 21세기의 수많은 미국 독자들은 논픽션을 자신들이 원하는 전부라고 생각해요. 그들은 소설은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에 읽지 않아.”라고 말할 거예요. 놀랍도록 순진한 생각이죠. 소설은 오직 인간만이, 특정한 상황에서만 쓰는 것이죠. 어떤 목적 때문에 써왔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목적 중 하나는, 우리가 전에 알지 못했던 것을 인식하도록 이끌어준다는 거죠. 이건 수많은 신비주의 영성 훈련의 목적이에요. 단순하게 보고, 제대로 보고,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 다시 말해 주변을 좀 더 깊이 있게 인식하게 되면 동시에 새롭게 보인다는 뜻이죠. 그러니 새롭게 보는 것과 인식하는 것은 사실 똑같아요.(p166)

 

르 귄 : 역사소설과 과학소설은 매우 비슷해요. 어떤 것을 재창조하거나 모방해서 만들죠. 거의 똑같은 과정이에요. 그리고 저는 소설을 쓰지 않는 사람들이 곧잘 쓰는 말처럼 연구 조사를 했어요. 청동기 시대 이탈리아나 초기 로마에 대해 꼭 알아야 할 점들이 있었거든요. 포틀랜드 주립 도서관의 서고 바닥에 앉아 어마어마한 상상력을 불러일으켜주는 초기 로마 종교에 대한 책을 발굴해내며 정말 재미있었어요.(p167~168)

 

 

 

 

§§§§ 줄리언 반스에 대한 플로베르식 재판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도 옥스퍼드 영어사전편집부원을 택한 줄리언 반스의 이력도 특이했다. 작가란 무엇인가 3에서는 플로베르 예찬자들이 많았는데, 줄리언 반스가 그 중 Top일 것이다. 부모님이 모두 프랑스어 교사였다는 영향도 있겠지만, 플로베르 친필 편지(그의 책이 100만 부 돌파했을 때 출판사가 선물)까지 가지고 있는 데다, 플로베르의 앵무새(1984)란 제목의 작품을 쓰기까지 했으니까.

법과 언어에 조예가 있기 때문인지 그의 문학론에서 그런 접점이 보인다.

 

질문 : 사르트르는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썼어요. 당신에게 문학은 무엇인가요?

반스 :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많습니다. 가장 짧은 대답은, 진실을 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에요. 단순히 사실을 합쳤을 때보다 더 많은 진실을 말해주는,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정돈된 거짓말을 만드는 과정인 셈이지요. 문학에는 여러 가지 모습이 있습니다. 문학 작품을 통해 기쁨을 느끼는 동시에 언어를 가지고 놀 수 있지요. 또 결코 만나지 않을 사람들과 기묘할 만큼 친밀하게 소통하는 방식이기도 해요. 그리고 작가가 되면 역사적 공동체 의식이 생기는데, 21세기 초의 영국에 사는 평범한 사회적 존재로서의 저는 공동체 의식이 다소 약해요. 예를 들어 빅토리아 여왕 때나 남북전쟁이나 장미전쟁에 참전한 이들에게 특별한 유대감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대나 사건이 일어난 때에 살았던 작가들이나 화가들에게는 특별한 연대감을 느낍니다.

 

질문 : “진실을 말한다.” 라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요?

반스 : 위대한 책은, 이전에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세상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사 능력이나 성격 묘사, 문체 같은 특징을 제외하고 하는 말입니다. 그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사회에 대해서나 정서적인 면에서, 아니면 둘 다에 대해 새로운 진실을 말해준다고 인식되는 책이지요. 전에는 손에 넣을 수 없었던 진실, 즉 공식적인 기록이나 정부 문서, 신문이나 텔레비전에는 절대 나오지 않은 진실 말입니다. 예를 들어 보바리 부인을 비난하며 그 책을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 이전에는 문학에서 만나본 적 없는 종류의 사회와, 그런 종류의 여성의 초상에 깃든 진실을 알아보았어요. 그게 소설이 위험한 이유입니다. 문학에는 이런 중추적이고 획기적인 정직함이 있고, 그게 문학이 가진 위대함이라고 생각해요. 그건 분명 사회에 따라 다양해요. 억압적인 사회에서는 진실을 말하는 문학의 본질이 다른 체계를 갖추게 되고, 때로는 예술작품의 다른 요소들보다 훨씬 높이 평가됩니다. (p178~179)

 

 

참고로 근대 사실주의 소설의 시초이자 현대소설의 기원이라 불리는 보바리 부인은 사회 윤리와 종교 모독의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는 등 논란이 많았는데, 결국 무죄 선고를 받았다. 마지막으로 줄리언 반스의 변론도 들어보자.

 

반스 : 하지만 플로베르식 소설을 쓰지는 않아요. 외국인이고 이미 죽었으되 되도록 오래전에 죽은 사람을 자신의 선구자로 삼아야 가장 안전한 법이죠. 플로베르의 작품을 절대적으로 흠모하며 그가 쓴 편지들을 마치 제게 개인적으로 써서 바로 어제 부쳐준 듯이 읽었어요. 소설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어떻게 소설을 쓸 수 있느냐에 대한 그의 관심, 예술과 사회의 상호관계에 대한 그의 관심은 시대를 초월해요. 그가 찾은 많은 답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21세기 영국 소설가로서 IBM 196c 타자기 앞에 앉아 있을 때는, 깃펜으로 글을 쓴 위대한 19세기 프랑스인을 직접적이든 의식적인 방식으로든 내비치지 않습니다. 소설은 과학기술과 마찬가지로 진전해왔습니다. 플로베르는 플로베르처럼 글을 썼어요.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p197) (중략)위대한 소설의 진정한 영향력은 뒤이은 소설가에게 가서 다른 방법으로 하시오.”라고 말해주는 것이죠.(p198)

 

 

 

§§§§§ 화학으로 목숨을 구하고 글을 쓴 프리모 레비

언젠가 이탈리아는 왜 유명한 현대작가가 별로 없을까 궁금해 했다. 움베르토 에코와 이탈로 칼비노 정도 밖에 없지 않나 하고. 프리모 레비를 깜빡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작가의 사생활은 그렇다 쳐도 출생년도와 나라 정도엔 관심을 기울여야겠다고 반성했다. 무슨 소리야. 작품 속에서 자신은 이탈리아계 유대인이라고 누누이 밝히고 있는데! 도망갈 곳이 없다;;; 잘못했습니다ㅜㅜ

하여간 이탈리아 같이 예술 문화가 가득한 곳에서 뛰어난 현대작가가 왜 많지 않은지, 프리모 레비 말 속에서 약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문장 구조 따위를 강조하는 이탈리아 문학수업, 파시스트 검열관에 의해 통제되던 책들, 불법이었던 프로이트 서적, 전쟁이 끝난 뒤에야 읽게 된 헤밍웨이 등등.

 

질문 : 주기율표에서 정신과 물질의 차이를 이야기하셨지요. 물질을 통해서만 우리가 우주와 그 구성요소를 이해할 수 있다고 암시하셨어요.

레비 : 파시스트 철학자들은 정신을 무척이나 강조했습니다. ‘물질을 중요하게 만드는 것은 정신이다가 구호였지요. 예를 들어 이탈리아군은 장비가 형편없었지만 그들의 정신이 물질을 지배한다면 장비가 없어도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식이었어요. 정신만 있다면 승리할 수 있다는 발상이죠. 어리석은 생각이었지만 그런 분위기가 학교마저 지배했습니다. 철학 시간에 우리에게 가르친 정신이라는 단어의 뜻이 매우 모호했어요. 동급생 대부분은 그것을 받아들였지만 전 그렇게 정신을 강조하는 분위기에 짜증이 났어요. 정신이 뭡니까? 정신은 영혼이 아니에요. 저는 종교인이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정신은 만질 수 없는 어떤 것이에요. 그 시절 눈과 귀, 손가락으로 경험할 수 없는 것을 강조하는 주장은 제게는 공식적인 거짓말로 보였습니다.

 

질문 : 정신은 위험한 부분이 있지요. 이성을 통제할 수 있으니까요.

레비 : 뭐랄까, 정신은 이성이 아니라 본능입니다. 이성은 비판의 도구였기 때문에 금지되었어요. 그들의 언어에서 정신은 매우 막연한 것이었지만 선량한 시민이라면 적응해야 했죠. 조지 오웰이 1984부록에서 다룬 신어Newspeak에 대해 기억하십니까? 그것은 전체주의를 모방한 것이었어요. 파시스트 치하의 이탈리아에서는 많은 것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어요. 하지만 교육은 순조로웠지요. 그들은 용의주도하게 반파시즘 교사들을 처벌하거나 내치고, 열성당원인 교사들을 데려왔습니다. 그래서 파시스트의 신념이 쉽게 침투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물질이 아닌 정신의 탁월함을 주장한 것이었어요. 물질이야말로 제가 화학자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지요. 진실인지 거짓인지 증명할 수 있는 것을 제 손 안에 두고 싶었거든요.(p280~281)

 

 

주기율표와 詩의 유사성을 말하다가 프리모 레비는 '작가란 무엇인가' 이렇게 말했다.

 

어떤 작가가 정직한 사람이고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있다면, 나쁜 작가가 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명확한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옮길 수가 있으니까요. 반대로 할 말이 없는 작가라면, 글이라는 도구가 있다 해도 그는 이류랍니다.(p294)

 

프리모 레비와 이탈로 칼비노, 그리고 그 당시 이탈리아 문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체사레 파베세를 꼭 봐야겠다. 이탈로 칼비노에게 소설쓰기를 권유한 인물!!!

 

 

 

 

 

 

 

 

 

 

 

 

§§§§§§ 수많은 임무 중 작가로서의 소명을 택한 수전 손택

손택이 롤랑 바르트에 대해 한 말은 자신에게도 적용된다. “지식이 문제가 아니라 각성이 문제다. 일단 집중력이라는 물줄기 속으로 들어간 다음에는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을 깐깐하게 글로 옮기는 것이 문제다.”

인터뷰어  에드워드 허시 (p302)

 

 

파리 인터뷰들을 죽 보니 독자가 궁금해 할 것을 뽑은 듯 일종의 양식화가 자주 보이는데, 다음은 줄리안 반스와 수전 손택이 예이츠의 시 구절 완벽한 삶과 완벽한 일에 관련해 답변한 것이다.

 

질문 : (생략) 문학과 삶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반스 : 아니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완벽한 삶이냐, 완벽한 일이냐.” 이게 예이츠의 자세라는 느낌이 들어요. 물론 예술가들은 일상을 희생해요. 정치가도, 치즈 제조업자도, 부모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예술은 삶에서 나옵니다. 일상적인 삶에 끊임없이 몸을 담그지 않고서 어떻게 예술가가 존속할 수 있을까요? 문제는 얼마나 깊이 담그느냐는 거죠. 플로베르는 예술가는 바다로 뛰어들 듯이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러나 배꼽이 잠길 만큼만 들어가야 한다고 했죠. 어떤 작가들은 너무 멀리 헤엄쳐가서 예술가가 되려던 본래의 의도를 잊어버립니다. 뻔한 이야기지만 작가가 되려면 자기만의 시간을 많이 보내야 해요. 소설가가 되려면 시인이나 극작가보다 더 긴 기간의 고립이 필요하죠. 합작 예술을 할 때 발생하는 창의적인 논쟁이 당연히 소설가의 내면에서도 일어나야 하고요.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진실한 삶의 모습을 발견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그리고 고마운 마음으로 찾게 되는 것이 바로 소설 아닌가요?(p206)

 

질문 : 예이츠는, 사람은 삶과 일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유명한 말을 했죠. 그게 사실이라고 생각하세요?

손택 : 아시겠지만 그가 실제로 한 말은 완벽한 삶과 완벽한 일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는 거죠. 글쎄요. 글쓰기가 바로 삶인걸요. 무척 특별한 삶이죠. 물론 삶이라는 말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을 뜻한다면, 예이츠의 말은 사실이에요. 글쓰기는 지독한 고독이 필요해요. 제가 그 선택의 가혹함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해온 행동은 늘 글만 쓰지 않는 거예요. 전 외출하기를 좋아해요. 여행도 자주 하죠. 말하기를 좋아하고, 듣기를 좋아하고, 구경하고 관찰하기를 좋아해요. 어쩌면 주의력과잉장애가 있는지도 몰아요. 제게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집중하는 거랍니다.(p316)

 

 

홀로이면서 삶에 집중하기. 두 사람 다 동일하게 말하고 있다.

 

 

 

§§§§§§§ 생활적으로는 그렇지 않은데 소설로는 미국 소설계 편집증파의 최고 주술사로 불리는 사나이, 돈 드릴로

(, 소개가 내 애정만큼 길군;)

 

돈 드릴로는 국내에서 그리 인기있는 작가는 아니지만, 미국에서는 토마스 핀천과 함께 포스트모던 소설의 양대 축으로 평가받고 있다.

생각하는 법을 배우고 싶어 작가가 되었다는 돈 드릴로거기서 생각의 농축을 끌어올리려는 작가.

 

그는 창밖을 보는 시간 대신, 시간 낭비를 하지 않았던 작가의 모습을 보여주는 보르헤스 사진을 보며 글쓰기 작업을 한다고 했다. (편집증 인정;)

나는 돈 드릴로가, 이 시대의 시급한 고민을 가장 철저히 하고 있는 작가라고 생각한다.가 작품 속에서 운용하는 소재들권력자들, 과학기술, 약물, 폭력, 미디어의 조작, 인간의 불안, 연대의 무너짐, 유령 같은 군중들이 지독하게 사실적이면서도 수수께끼같이 다가오는 것은, 그의 다음 말 때문에 더욱 불길한 확신을 준다.

 

글이 생각의 농축된 형태라면, 가장 농축된 글은 죽음에 대한 고찰로 끝나겠지요. 이건 우리가 충분히 오래, 그리고 깊이 생각한다면 결국 대면하는 문제입니다.”(p371)

 

돈 드릴로의 인터뷰를 나는 국내 출간된 작가란 무엇인가시리즈 중 최고로 꼽고 싶다. 당신이 직접 읽어보길 바라기에 구구절절 옮기지 않겠다. 꼭 보시라, 그리고 그의 소설로 향하길.

 

 

 

§§§§§§§§ 칼비노에 대한 내 집착

존 치버, 가즈오 이사구로, 프랑수아즈 사강까지 작가란 무엇인가 3화두는 아무래도 진실과 문학이었던 것 같다.

인덱스 스티커를 정말 많이 붙였고,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마음과 생각이 요동쳤다. 모두에게 강력추천한다.

격찬하면서도 별점 4개밖에 주지 않는 건 이탈로 칼비노 리뷰가 없기 때문! 아무래도 같은 이탈리아권 프리모 레비 때문에 빠진 것 같은데, 너무너무 아쉬워서 내가 파리 리뷰로 직접 찾아갔다.

http://www.theparisreview.org/interviews/2027/the-art-of-fiction-no-130-italo-calvino

융은 프로이트보다 좋은 작가는 아니었던 것 같다고 말하는ㅡ나도 프로이트는 뛰어난 작가였다고 늘 생각했었기에 거듭 동조ㅡ 칼비노의 독특한 발언들을 구경해 보자 

 

 

ㅡAgalma

 

 

Sou Voce(내가 그대이기에) - [Orfeu] Caetano Veloso OST

 

 

 A Felicidade(행복) - [Orfeu] Caetano Veloso OST

 

 

 

ps) 이 책의 작가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

아는 사람을 토대로 한 인물은 거의 없어요. 제발 자기 얘길 썼다고 나를 노려보지 말아 주세요.” 라고-_-)

자전적 글을 많이 쓴 프리모 레비는 열외~

 

어떤 진실 앞이든, 부디 행복하길.

 

 

 

 

 

 

파리리뷰『작가란 무엇인가 3』

대가의 경지에 이른 완벽한 소박함 – 앨리스 먼로
질주하는 천재의 냉철한 두뇌 – 트루먼 커포티
세상을 향한 진한 농담 – 커트 보네거트
이분법을 넘어선 새로운 목소리 – 어슐러 K. 르 귄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정돈된 거짓말 – 줄리언 반스
너와 나와 길에 대하여 – 잭 케루악
시가 된 주기율표 – 프리모 레비
자신에게 진실할 수 있는 자유 – 수전 손택
표면적 진실 너머의 진짜 진실 – 돈 드릴로
절망에서 잉태되는 삶의 희망 – 존 치버
창백한 언덕 너머 빛나는 삶 – 가즈오 이시구로
슬픔이라는 아름답고 묵직한 이름 – 프랑수아즈 사강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이바 2015-04-24 1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 드보르 이름을 여기서 보네요. 상황주의 인터내셔널 맞죠? 지금은 다 까먹었지만(?) 제가 공부할 때는 책도 절판이고 해서 구글링에 사활을 걸었던 기억이 나요. 아갈마님 글들은 참 좋아요. 페이퍼, 리뷰를 읽을수록 고수의 멋과 향기가 느껴져요. 오늘도 많이 배워갑니다.

AgalmA 2015-04-24 13:25   좋아요 1 | URL
저도 절판일 때 도서관에서 보고, 개정판 나와서 다시 샀는데 다시 안 읽고 있네요ㅎ
과찬이십니다. 에이바님 글에서 자신의 물음과 공부, 타인과의 지식공유가 느껴져서 동류의식을 느꼈답니다. 저도 님께 감사하는 입장입니다

2015-04-24 1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4-24 1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4-24 1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4-24 1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쌩 2015-04-26 01: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카프카도 플로베르의 글과 문체에 영향을 많이 받은걸로 아는데,
줄리언 반스도 플로베르 빠 였군요..
둘다 법을 공부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네요ㅎ
글 잘 읽었습니다.^^

AgalmA 2015-04-26 02:28   좋아요 2 | URL
줄리언 반스가 세상엔 발자크파와 플로베르파로 나눌 수도 있지 않을까 하던데요ㅎ
왠지 법을 공부하면 발자크파여야 할 거 같은데, 심리적인 혼란을 더 주시하는 플로베르로 간 거 같으니 재미나죠?

네오 2015-04-29 14: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단해요, 책을 않읽었도 이 페이퍼로 대체할수 있겠군요, 굉장히 책을 집중해서 읽은티가 팍팍나요,. 그리고 저 포스트 잇 하며,

AgalmA 2015-04-29 18:35   좋아요 0 | URL
인덱스 스티커 떼면서(가로만 주로 보여서 그렇지 세로에도 있어요ㅎ) 정리하다 문득 생각나서 찍은 거라 저것보다 더 많았어요ㅎㅎ; 노트로 따로 정리도 하기 때문에 읽기, 정리 노역에 좋은 책을 만나면 이러저러 눈물이...
헌데 말씀듣다 보니 제 리뷰의 심각한 문제점을 확인하는 듯합니다. 읽는 이가 원하는 건 책에 대한 자세한 정보이겠으나, 제 리뷰의 목적은 이 책은 얼마나 읽을만한 가치인가! 그렇게 만들고픈 마음에서 리뷰를 쓰는 것인데;_;)
서재 초반에 좋은 문장들 모조리 타자쳐서 올리다가 본인이 직접 읽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자제하는데도 여전히 제가 책 속 내용을 많이 발췌해 가지고 온다고 생각되어서...
어쨌거나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