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두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 … 눈을 너무 오래 감지 마 … 음악들이 다 날아갈 때까지만 …

 ■ 섹슈얼리티라는 낱말은 1800년대에 생물학과 동물학에서 기술적인(technical) 용어로 존재했지만,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성적인 혹은 성을 갖는 것의 성질의 의미로 널리 사용된 것은 19세기 말경이다.(p57)

 킨제이 보고서 같은 각종 성문화 조사가 과학적 담보로 특정한 성적 관행의 자질에 대한 도덕적 반감은 중화(p65)시켰을지언정, 196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터져 나온 남녀평등’, ‘성 해방이니 하는 말들이 나는 불평등만큼이나 문제적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그것이 제대로 담론화되지도 못하는 상태에서,여성의 이권다툼이나 남성 공격만 일삼는 페미니즘으로 치부되기 일쑤고, 남녀노소불문하고 사회적 인식 저반도 그리 나아 보이지 않는다. 아래는 앤소니 기든스가 미국의 러빈 조사와 관련해 말한 부분인데, 미국만의 상황으로 보이지 않았다.

■ 남성들은 대부분 여성들을 성적으로 손에 넣기가 보다 쉬워졌다는 사실을 환영하며, 장기적인 성적 결합관계에 있어서는 지적·경제적으로 동등한 파트너를 원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러빈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남성들은 그러한 선택에 내포되어 있는 여러 의미에 대해 분명하고도 뿌리깊은 불안감을 보여준다. 남성들은 이제 여성들이 친절하게 해 줄 능력을 상실했다거나 더 이상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지 못한다, 여성들은 아내가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내를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남성들은 평등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평등이 그들에게 초래하는 결과에 대해서는 거부하거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p40)  

  나는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한다한국남성들이 동남아로 신부를 구하러 떠나듯이 한국여성이 그러한 태도를 보인다면, 이 사회에서 어떤 소리가 나올까. 여성 비하 사이트의 인구가 2배는 증가하리라. 왜 누군가의 결혼(연애) 못함이 누군가의 콧대 높음 등으로 치부되는가. 같은 식으로 반대로 생각해볼까. 여성들 경우는 자신의 못생김/ 뚱뚱함을 고민한다. 상식이 없거나 넘어서는 사람(남/녀)은 과연 일부일까. 신부를 구하러 떠나는 사람들의 권리 만큼이나 거부하는 사람들의 권리도 있는 것이다. 결혼은 한 개인의 행복추구권이자 선택 문제이다. 왜 사회적 눈초리로 억압하는가. 이 억압들은 온갖 모습으로 도처에서 도깨비들처럼 출몰한다. 피해자이면서 왜 울면서 사과해야만 했는가.

 [그것은 알기싫다 - 122b. 광범위한 책임전가:성폭력을 소비하다]

  http://www.podbbang.com/ch/7585?e=21643417

 우리는 이런 소식들을 너무도 들어와서 일반화하고 슬슬 회피한다.

 모두는 정말 사랑과 공존을 원하고 있는 걸까. 서로를 인간으로, 남성/여성으로 존중하고 있는 걸까. 관계의 목적성(연애, 경제적·사회적 안정, 결혼, 자식 등)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가 사랑을 원하는 만큼 상대에게 얼마나 이해와 배려를 하고 있을까.

  ■ 현대 이전의 유럽에서 대개의 결혼계약에 기초가 된 것은 서로 간의 성적 매력이 아니라 경제적 상황이었다. 가난한 사람들끼리의 결혼은 농업노동을 조직하는 수단이었다.(p77)

 낭만적 사랑 복합체가 가진 내재적으로 전복적인 특징은, 사랑과 결혼과 모성의 결합에 의해, 그리고 진실한 사랑이란 일단 발견되기만 하면 영원하다는 관념으로 인해 오랫동안 억눌러져 있었다. 결혼이 많은 사람들에게 실제로 영원했던 때에는, 낭만적 사랑과 성적 파트너쉽이 확실히 구조적으로 적합한 것처럼 보였다. 그 결과 종종 오랜 불행의 나날이 초래되기도 하였다. 결혼하기 위한 맹세로서의 사랑과 일단 결혼한 이후 계속해서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요구 사이의 연관이 워낙 빈약한 것이기 때문이다. 결혼이 실질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임노동을 남편의 영역으로 배당하고 아내에게는 가정을 배당한 성별 분업 덕분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점잖은여자라는 표시로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결혼에 감금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했던가를 알 수 있다. 남성들로 하여금 싹트는 친밀성의 영역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할 수 있게 해 준 동시에 또한 여성들로 하여금 결혼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일차적 목표로 삼도록 한 것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p87~88)

  

§§ 엘프리데 옐리네크 피아노 치는 여자 - 그녀는 언제까지 거기 있을까

 

 

 

 

 

 

 

 페미니즘 작가로 널리 알려진 오스트리아 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 피아노 치는 여자에서 내게 가장 부각된 점은 인물들(에리카의 어머니-에리카/발터 크레머-에리카)관계의 삐뚤어진 에고이즘이었다.

 

 

 같은 오스트리아 작가인 토마스 베른하르트가  치를 떨었던 조국의 그 속물주의를 대변하는 듯한 에리카의 어머니는, 에리카를 부와 명예를 거머쥔 예술가로, 부재하는 남편으로, 자신의 주택부금으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억압하고 착취한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앤소니 기든스 현대 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3장 낭만적 사랑, 그리고 다른 애착들에서 '가부장적 권력의 완화에 따른 모성의 발명' 언급이 적확하다)

 

 

 에리카의 제자인 발터 크레머는, 고고해 보이는 에리카가 늙은 어머니에 붙잡혀 사는 노처녀 신세라 자신을 거부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제 열정에 취해 집요하게 접근한다. 그는 자신의 상상을 충족시켜주기는커녕 훼손시킨 에리카에게 혐오와 폭력으로 되갚아준다. 발터 크레머는 다재다능함, 출중한 외모와 젊음, 활력적인 스포츠를 영위하는 자신의 외면적 삶에 취해 스스로가 에고로 가득 찬 마초라는 걸 모른다.

 

 

 에리카는, 어머니와 불분명한 꿈에 얽매여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한 채 자라나, 발터가 나타나자 이제 그로 인해 인생이 바뀌길 바란다. 그녀는 평범한 사랑으로는 발터를 붙잡지 못한다는 걸 알고 영구적인 애착관계를 만들어내려고 그에게 S/M을 권했지만 결국 파멸한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앤소니 기든스 현대 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3장 낭만적 사랑, 그리고 다른 애착들에서 여자에게 요구되는 정숙한(Chaste)’의 신화가 얼마나 견고한 지 잘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굳이 이 책을 보지 않더라도 드라마와 영화, 소설, 유행가를 통해 익히 안다. 하지만 앤소니 기든스가 '낭만적 내러티브와 열광적 소비자'로 여성만을 지칭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바로 위 발터 크레머도 만만치 않은 예이므로.) 그녀는 자신의 고통스러운 성적 가학성 아래 자기 본래가 있음을 누군가 알아봐주길 바랐지만 그녀 또한 상대를 지겨운 어머니’, ‘얕잡아보는 제자’, ‘질투 나는 여자애’, ‘더러운 터키인등으로 바라보는 왜곡을 보지 못한다.

 이 소설의 모든 인물은, 자기 결여 충족만 추구하고 상대에겐 철저히 이기적이다. 그들에겐 모정으로 치장된 폭력’, ‘예술 뒤에 숨어 가하는 폭력’, ‘사랑이라 말하며 복종을 원하는 폭력의 감정계산만 있고, 성찰이 없다.

 이 소설이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자전적 소설인 걸 생각하면 더욱 가슴아픈 사실이다.  

 

 앤소니 기든스 현대 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으로 돌아와,

 그는 푸코가 성()을 담론화한 기여도는 인정하지만, 성을 종교-(생명)권력 구도하의 피지배적 혹은 행정 권력 관계성으로만 파악하고 개인의 제도적 성찰성, 선택성을 간과했다고 지적한다. 프로이트 경우는 '도착' 등의 과도한 병리적 해석이 있긴 했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개인이 자기 정체성과 신체에 대해 더욱 성찰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 프로이트의 중요성은 그가 성에 대한 현대적 몰두를 설득력있게 정식화했다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프로이트는 섹슈얼리티와 자기 정체성의 연관관계가 전혀 분명하지 않았을 때 그러한 연관을 밝혀냈고 또한 동시에 이 관계가 문제가 있는 것(problematic)임을 보여주었다.(p66)

 

 앞서 엘프리데 옐리네크 피아노 치는 여자에서 간략하게 살펴본 대로, 의 외부적 굴절들과 사회적 문제점들은 내부적 억압에 대한 성찰 없이는 해결 모색은 어려울 것이다. 힐링에 이어 심리학 저서들이 이토록 많이 출판되고 있는 상황은 우리 스스로도 이미 이 문제에 심층적으로 고심하고 있다는 방증이겠지만, 모두 자신을 들여다보기도 바쁘다. 나부터도 너무나.

 

 

§§§ ……

회복하려 안간힘을 쓰는 이 시간도 좋다.

말이 좀 없으면 더 좋으련만.​

나다운 건 말이 있는 거였던가, 없는 거였던가.

 

아무려면 어때. 곧 날아갈텐데 ……​

ㅡ Agal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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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 2015-03-25 0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엘리네크는 그렇다쳐도 미카엘 하네케의 s/m은 오버하는 편이 있죠~

AgalmA 2015-03-25 11:05   좋아요 0 | URL
미카엘 하네케가 그런 부분이 좀 있잖습니까^^; 오히려 전 라스 폰 트리에가 이 영화를 찍었다면 님포매니악은 이미 오래 전에 나왔을 거라는 생각이... 라스 폰 트리에가 찍었으면 더 하드했겠죠;

네오 2015-03-25 11:14   좋아요 0 | URL
네,,라스 폰 트리에,,음,,저는 굉장히 그의 세계관을 좋아합니다,,님포매니악은별로지만,,안티 크라이스트는 대단했거든요,,뭔가 여자한테 모든 죄를 덮어씌우는 그의 주장이 합리적이지는 않지만,,남성들이 느끼는 괴로움을 잘 말해주는 것같아요~

AgalmA 2015-03-25 11:31   좋아요 0 | URL
저도 라스 폰 트리에 작품 불편하긴 하지만 그 작가정신에는 팬입니다. <브레이킹 더 웨이브>부터 본격적으로 주목해온 감독이었습니다.
저도 말씀하신 부분에 공감합니다.
저는 라스 폰 트리에와 김기덕을 자주 연관시켜 생각해보게 돼요. 김기덕 감독이 라스 폰 트리에만큼 자연스러움을 획득한다면 싶은 게 늘 제 아쉬움입니다. (라스 폰 트리에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할 분도 많지만ㅎ;)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감독에게 저혼자 그런 생각을 합니다;

네오 2015-03-25 11:43   좋아요 1 | URL
네,,저도 브레이킹 더 웨이브부터 그를 굉장히 좋아했어요,,다른 영화들은 두 세번 보지만,,그 영화를 본지 꽤 됐지만 단 한번도 다시 쳐다보지는 않았거든요,,원경험의 기억이 부서질까봐요,,정말 베스 그 주인공이 뭔가 계속해서 숭고해보였다고나 할까요,,말이 안돼잖아요,,남편이 그렇게 하라고 했다해서,,정말 그렇게 하기는요,,예수같은 이미지가 있다고들 하죠,,그녀에게서요,,마지막에 참 하늘에서 그럴줄이야!!,,전 잘모르겠더군요,,김기덕과 트리에의 연관성을 그들의 작품을 다 봤지만 그런 느낌을 든 적이 단 한번도 없었죠,,다만 트리에는 예술적이면서도 종교적이면서도 남성우월주의자같기도 한데 김기덕은 아직도 여전히 잘모르겠어요~

AgalmA 2015-03-25 13:11   좋아요 0 | URL
브레이킹 더 웨이브에 대한 생각이 저랑 똑같으시군요! 저도 비디오테입까지 애지중지 모아놓기까지 하고선 절대 다시 안봐요. 비디오테입도 빌려줬다가 못 받는 불운까지 겪어 제겐 더 비운의 작품...아끼는 건 역시 빌려주는 게 아니다는 교훈마저 배운 작품입니다ㅎ
트리에와 김기덕은 몇몇 작품의 편차는 있겠으나 성과 폭력과 종교를 끊임없이 연결시키는 감독들이죠.

네오 2015-03-25 12:29   좋아요 0 | URL
좋아하는 감독이 누구세요?

AgalmA 2015-03-25 13:39   좋아요 0 | URL
언제나 끌리고 강한 물음을 주는 건 타르코프스키, 알랭 레네, (빔 벤더스, 짐 자무시, 레오 까락스- 이들은 제게 늘 묶여서 생각됩니다)입니다.
영화에서 아이디어, 작법, 영상의 훌륭함도 중요하겠지만, 세상과 인간의 내면을 보는 그들의 태도와 시선을 좋아합니다

네오 2015-03-25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좋아하는 영화감독들이 영화관의 의자를 침대로 만드는 재주가 있는 감독들이긴 하죠^^ 타르코프스키를 좋아하신다길래 결국 그는 영화를 통해서 뭘 말하고 간걸까요? 그냥 저는 과격하게 절망을 남기고 갔다고 생각하는 데요,,뭔가 화면안에서만 이뤄지는 `희망`이 그 가상의 세계를 뚫고 나와 뭔가 현실세계에서는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레네나 밴더스, 자무쉬, 까락스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고요,,보편적인 통념이 아니고 개별적인 사유이니깐요,,기왕 영화감독 나왔으니,,래네는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습니다,,그가 가지고 있는 계몽적의식이고나 할까요,,그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영화관이 아니면 뛰쳐나오고 싶더군요,,벤더스는 그런대로 참을만은 하죠,,그야말로 그는 아메리칸 락정신을 계승한 유럽감독이니깐요,,그렇게 미국을 좋아하는 감독은 뿌리칠수는 없죠,,,자무시는 계속해서 좋아지고 있고,,2000년 들어와서 그의 모든 영화가 재미있었습니다,,카락스는 이번 홀리 모터스를 보고 지지를 보내고 싶지는 않더군요,,나쁜피같은 영화를 또 만들었으면 좋게는데 말이죠,,이유는 영화의 본질을 캐고 싶겠지만 너무 산만하더군요,,그리고 지금 제가 지금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는 캐서린 비글로우의 허트 로커입니다,,21세기 미국역사룰 이렇게 잘 이야기해주는 영화에 대한 매혹이라 할까요,,

AgalmA 2015-03-25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말씀하신 부분들에 공감이 쏙쏙 되네요. 타르코프스키에 대한 평은 저도 정말 그렇습니다. 현실세계로 절대 넘지 못하는 것을 감독은 계속 가져오려고 한 것 같은 느낌. 아마도 나 자신이 누구인지 결코 알지 못한 채 인생이 끝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합니다.
네, 벤더스-자무시-까락스 모두 지극히 개인적이라 좋아합니다. 그 지극히 개인적인 탐구 끝에 어떤 보편적 깨달음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까요. 종교가 대표적인 예를 보여주었죠. 아, 그러고보니 이 꾸러미에서 구스 반 산트를 빼먹었네요!
ㅎ 알랭 레네의 계몽성 공감합니다.
저도 홀리 모터스에는 절대 좋은점수 줄 수 없겠더라고요ㅎ 예전의 밀도를 잃고 아이디어에만 골몰해있었다고나 할까. 정말 뛰쳐나가고 깊었던; 왕년 인기로 제 영화목록 왕좌를 지키시기에는 위태해지고 있죠.
허트로커 스타일 보다 저는 코엔형제가 다루는 미국 관점에 더 흥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 제가 흥미있어 하는 감독은 정성일 평론가가 적극 밀고 있기도 한 위라세타쿤, 왕빙 감독과 자비에 돌란, 스티브 맥퀸입니다.
혹시 미국 거주 중이신가요? 세계정세를 파악하는 시각이나 미국에 대한 관심도로 봐서 한국에 거주하는 느낌이 아니신 듯 느껴져서요.

네오 2015-03-25 14: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저는 서울에 있고요, 구스, 코엔,왕빙,돌란,위라세타쿤 좋아합니다만 맥퀸의 세임 정말 좋아합니다, 본질을 터치한것 같아보였거든요, 고독, 외로움, 인간의 그 우울한 심정들요~

AgalmA 2015-03-25 14:36   좋아요 0 | URL
오, 서울이시군요. 네오님의 방대한 관심이 즐겁습니다. 셰임 정말 좋죠. 헝거도 만만치않게 좋았고요. 말씀하신대로 정말 본질을 아는 감독. 이런 시각으로 여성과 세계를 읽는 한국의 여성감독도 있었으면 하는데, 기다림이 참 길어집니다.
노예12년은 못봤는데, 믿을만한 감독인 건 분명해 보입니다.

네오 2015-03-25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노예12년 저는 딱 한 장면이 마음에 들었는데, 내가 영화를 보는것을 확 날려버리게 했어요~ 음 예전에 질투는 나의 힘을 만들었던 박찬옥 감독이 제일 비슷하지 않나 생각이 드네요, 지금 막 떠올라지 않아서 그러데 아 미스 홍당무의 이미경도 이런 카테고리가 아닐까요,

AgalmA 2015-03-25 14:57   좋아요 0 | URL
맥퀸이라면 분명 그러고도 남죠ㅎ
박찬옥 감독은 홍상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할 겁니다. 이미 그런 정서이더라도 예술세계를 직시한다면 비슷한 둘은 살아남지 못한다는 걸 본인이 더 잘 알테니 괴로울 겁니다.
미스 홍당무도 좋은 작품이죠. 허나 제게는 소품 정도로밖엔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임순례 기타 주류 여성감독도 제겐 여전히 한계를 넘어 보이지 않습니다
한국여성 감독들은 여전히 남성세계사에서 비판하는 소극성, 장식성, 관계 애착, 가족사, 한국적 봉건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장점도 되지 못하고 있고요.
영화현장의 어려움 이해는 하지만, 여성이란 걸 떠나 예술가로서 세계를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각이 절실해 보입니다

네오 2015-03-25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러면 남성세계사가 아닌게 뭐죠? 음,,저에게는 어려운 질문이기도 하네요 그러데 저는 장식성은 조금은 너무했고 소극적이고 관계애착 가족과 여성이 같이 붙어있는 콤보를 더 선호해요~

AgalmA 2015-03-25 15:24   좋아요 0 | URL
제가 너무 비판일색이었나요;
많이 깨졌다고는 하지만, 유대와 관계성에서 안주하는 여성특성(장점이자 핸디캡)과 자라온 이 환경에서 결코 자유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무척 어려운 일이기도 하죠. 영화판의 무수한 타협들을 넘어 성장하기도 힘든 상황들도 있고요.
자신만의 예술을 구축한다면 남성세계사니 뭐니 하는 건 신경쓸 필요도 없을 겁니다.
필름영화 시대보다 좀 나아진 상황이니 개인의 역량을 좀더 펼치길 기대 걸어보기도 합니다. 여하간 힘든 일이죠...

네오 2015-03-25 15: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그러면 어떤 영화가 나오기를 꼭 집어서 희망하나요? 저는 남성의 특징성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기는 하지만 캐서린 비글로우를 지금 현재 어떠한 감독들보다도 좋아하거든요,,유대성과 관계같은 것들이 뭐 남성을 통해서 비춰지지만요,, 예전에는 영화의 진리가 브레송, 오즈, 브뉘엘, 로메르처럼 만들지 않으면 되게 시시하게 봤죠,,거의 브레송에게는 홀릴정도로 몇년동안 온 정신을 팔릴정도로 그의 세계관이 저의 신념을 지배했을 정도니깐요,,아마도 이건 제가 토스트예프스키의 열렬한 사생팬이라서 가능한 이야기일것 같아요,,제말의 요지는 그냥 단순무식하게 여성이 뭔가 열정적으로 할수 있는 계기가 있으면 잘하는 데 그 레퍼런스들이 아직은 남성이 건축한 프레임들로 넘치기 때문에 한계성도 지니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죠,,이거는 제 잘못된 생각일수도 있지만 그들이 결코 여성을 이해한것 같아보이지는 않아요,,남성감독들이나 소설가들요,,매우 불행한 일이긴 하죠,,시대가 낳은 천재라고 불리는 버지니아 울프도 자기의 정체성이라는 고민을 가지고 우울증까지 걸릴정도니깐요,, 그녀가 속한 블롬즈 남성멤버들은 잘 나갔죠,,희대의 불세출 경제학자이신 케인즈 같은 인물은 이제는 나올수 없는 거물이니깐요,

AgalmA 2015-03-25 15:53   좋아요 0 | URL
저도 브레송은 단번에 홀렸습니다. 시네마토그래프 책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기도ㅎ 하지만 결국엔 그 지나친 억제성은 어떤 심각한 결여로 진단되었습니다.
프레임에 갖혀있는 여성들에 대한 파악은 저도 매우 공감합니다. 비글로우의 허트로커는 제게도 그렇게 비쳤는데요. 영화가 남성전쟁터를 배경으로 해서 더 그렇게 느끼는 건지는 모르지만 감독이 남성의 전투복을 입고 싸움을 하러 들어간 듯한 영화적 모습 역시 프레임에 갇혀보였어요. 그래도 일말엔 기대했는데, 허트로커 이후 제로 다크 서티도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했어요. 제시카 차스테인의 역할 딱 그대로죠.
실비아 플라스, 까미유 끌로델, 프리다 칼로...비운의 예술가들 또한 작품은 탈출시켰지만 본인들은 시대를 넘어서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죠.
어떤 영화를 나오길 기다린다기 보다, 좋은 작품은 제게 오는 순간 그것이 제가 기다렸던 작품이라는 걸 알려주더군요^^

네오 2015-03-25 16: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브레송은 정말 뿌리칠수 없는 제안을 호주머니에 지니고 있는 수도사이긴하죠^^ 당나귀 발타자르를 어마어마하게 좋아하는데요,,음,,그냥 여성이 가련해 보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네요,, 단지 영화보는내내 당나귀의 눈과 그녀의 손과 슈베르트의 음악이 자꾸 왔다갔다하면서 그러한 쇼트들이 사이렌의 손길로 느껴졌어요,, 그의 배우의 모델론도 격하게 찬성하는 편입니다,무표정과 책을 읽는 듯한 발성 모든게 진실된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야기는 다르지만 맥락만 놓고 볼때 잔다르크영화의 계보중에 드레이어, 브레송의 연결고리는 아마도 고다르의 그녀생을 살다의 드레이어의 잔다르크를 보면서 흘린 나나의 눈물로 여기서 정점을 찍었다고 생각해요..그 순수에 대한 갈망같은거요,,최근에 두편의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가 저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는데,,내일을 위한 시간과 클라우드 오브 실스마리아였습니다,,뭔가,,영화가 후져가고 있는 와중에도 그래고 괜찮은 영화같덨군요,,그리고 알라딘서재에서 영화에 관한것이라면 맥거핀님이 독보적인 존재일것입니다,,저도 영화선택 할때는 꼭 비평문 읽어보고 참고하거든요,,정성일, 이동진, 김혜리, 허문영, 유운성 이제는 진부해 보이더라고요,,영화평도 동어반복적이고,,그리고 요새와서 든 생각인데,,그냥 영화는 아무렇게나 봐도 상관없다는 게 제 최신 애티튜드입니다^^

AgalmA 2015-03-25 16:02   좋아요 0 | URL
저도 브레송의 쇼트 처리가 언제나 현대적으로 보여요^^ 드레이어-잔다르크 보고 싶었는데 놓쳤어요ㅎ 클라우드 오브 실스마리아도 예매까지 했다가 밖을 못나가는 바람에;
그렇군요. 저도 당장 맥거핀님께 달려가야겠군요 ㅎ
요즘은 비평들 제가 본 이후 참고합니다.
제 사유 속에서 영화를 해석한 이후 저와 다른 방식의 해석을 보는 식으로.

네오 2015-03-25 16: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제 사유 속에서 영화를 해석한 이후 저와 다른 방식의 해석을 보는 식으로.˝라는 말에 좋아요 꾸욱 누르고 갑니다^^

AgalmA 2015-03-25 16:04   좋아요 0 | URL
댓글 수정했는데;;;
네오님과 대화 유쾌했습니다^^

AgalmA 2015-03-25 16:53   좋아요 0 | URL
좋아요가 두 번은 안되는군요;; 네오님의 섬세함 잊지 않을께요 :)

양철나무꾼 2015-03-25 16: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영화로도 일가를 이루시는군요.
전 이 페이퍼를 보는데 이상하게 찰스댄스의 `라벤더의 연인들`이 생각났어요, ㅋ~.

AgalmA 2015-03-25 16:52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 관심이 많아 이러저러 얘기가 나온 거죠. 네오님도 참 다방면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라 대화가 정말 재미있었어요.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계기도 되었고요^^
라벤더의 연인들 못 봤는데, 피아노와 바이얼린~ 오, 저는 음악 영화는 무조건 좋더라고요. 기억해둘께요^^*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