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
레나타 살레츨 지음, 박광호 옮김 / 후마니타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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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 John Lennon - Beautiful boy]

 

§

당신은 이 글을 읽을 수도, 안 읽을 수도 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우린 거의 외로울 것이다.  

 

◆  북플과 리뷰를 '마니차'나 '안전망'으로 바라지만 사실은 '외로움'

    - 소비자로서가 아닌 좋은 이웃이 되고, 좋은 이웃이 필요한 이유

 

p84~85   2장   타인의 시선으로 하는 선택

유명인과 동일시하려는 욕망은 오스트리아 철학자 로버트 팔러Robert Pfaller가 명명한 상호 수동성’interpassivity 개념을 도입해 보면 좀 더 복합적인 측면을 이해할 수 있다. 상호 수동성은 개인과 그 개인을 대신해 무언가를 경험해 주는 대리인[대용물]proxy 사이에서 일어난다. 가령 세르비아에서는 상을 치르는 사람들이 대신 애도해 줄 여성들을 고용해 장례식장에서 곡을 하게 한다. 불교도에게는 자신을 대신해 기도해 주는 마니차praying mills가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결코 보지 않을 영화를 녹화하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녹화기가 그들을 대신해 영화를 봐주기 때문이다. ■

(* 마니차 : 라마 불교의 두루마리 경전을 넣어 둔 원통형 법구法具, 문맹이어서 경전을 읽을 수 없었던 티베트인들은 이것을 돌리면 경전을 읽는 것과 똑같은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p208   결론  사회는 왜 변하지 않을까?

우리가 선택을 할 때 흔히 조언을 구한다는 바로 그 사실은 개인이 공동체에서가상의 공동체든 현실의 공동체든안전망을 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시사한다. 선택은 아주 외로운 행동이 되었다. 과거에는 가족이나 다른 집단에 기댈 수 있었다. 이제는 스스로 해야 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는 조언을 구하고자 늘 새로운 방법을 강구한다. ■

 

 

◆ 선택의 독재성

 

p23   서론

 

선택은 압도적인 책임감을 느끼게 하고 이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선택을 잘못했을 때 발생할 죄책감과 불안, 후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모든 것이 선택의 독재적 측면에 기여한다.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은 이렇게 지적한다.

정치사상에서 독재tyranny라는 말의 가장 오래된 용례 가운데 하나는 주권의 동의어이다. 모든 문제가 공통의 주권적 원리나 이성에 회부될 때 그 원리 혹은 개인은 사회에서 독재자로 군림한다. …… 제도가 단일한 권위의 원천으로 군림할 수도 있고, 때로는 신념이 현실을 재단하는 단 하나의 기준이 될 수도 있다.”(Richard Sennett, The Fall of Public Man, 1986)

 

p26~27

이 책의 목적은 우리가 되고 싶은 것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생각, 그리고 자기만의 모습을 찾아라라는 명령이 어떻게 우리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동하기 시작했고, 우리를 더 자유롭게 하기보다는 더 불안하고 더 탐욕스럽게 만들고 있는지를 탐구하는 것이다. 후기 산업자본주의가 선택 이데올로기를 지지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해 이는 자본주의의 지배를 영속화한다.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에 따르면, 문제는 자기 삶이 구성되는 방식을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회는 자명한 것, 주어진 것, 거의 자연적인 것으로 기능한다. 철학자들이 이데올로기라고 부르는 숨겨진 명령들, 존재의 방식들, 비밀스러운 요구 조건들을 이해하려면 자명한 것obviousness과 주어진 것given-ness의 베일을 벗겨 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무심코 복종하는, 기이하지만 아주 정연한 논리를 의식할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이 사회 또는 현재의 상황에 반대한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특정한 이데올로기가 유지되기 위해 반드시 사람들이 그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거나 믿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결정적인 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불신을 표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주위의 다수가 믿는 것을 참이라고 믿는 것이다. 따라서 이데올로기들은 타자의 믿음에 대한 믿음에서 번성한다.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배 이데올로기를 전적으로 믿지는 않았던 전공산주의 국가들에서 가장 명백할 것이다.

 

 

 

선택의 불안

  p36   1장   선택은 왜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가?

  선택과 관련해 어떤 게 신경 쓰이는지 물으면 사람들은 대개 이렇게 대답한다.

 

• 이상적인 선택을 하고 싶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끊임없이 전화 회사를 바꾼다.)

• 남들이 내 선택을 어떻게 생각할지, 남들은 어떤 선택을 할지 생각한다.
• 사회를 책임지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느낀다. (예컨대, 사람들은 정말로 전기 회사를 직접 선택하길 원하는 것일까? 이것이 개인이 선택해야 할 문제인가? 하고 자문한다.)
• 실제로는 자유롭게 선택하지 못할 것이하는 점이 염려된다. (남들이 나를 대신해 이미 '선택'을 내리고 있고, 기업들도 마케팅 전략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는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 "가만 있으라"는 오래된 뿌리

 

 p41   1장   선택은 왜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가?

  칼뱅주의적 노선을 취했던 기독교 자기 계발서들은 독자가 삶의 많은 것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단념하게 하도록 애썼다. , 천국에도 자리가 제한되어 있듯이 모두가 세속의 성공을 누리기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승자와 패자가 있긴 하지만 사실 인간들끼리 서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기 내부의 더 낮은 자아와 끊임없이 씨름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p42

  그러나 20세기로의 전환기에 경제활동에 관해 조언하는 많은 자기 계발서의 논조가 서서히 바뀌었다. 경쟁자를 제거하고 전리품을 차지한다는 관념이 용인된 것이다. 한 사람이 삶에서 성공하고자 할 때는 자기 내부의 자아와 태생적 환경들에 맞서 싸워야 할 뿐만 아니라 성공을 추구하는 다른 이들을 앞지르는 일에도 주의를 집중해야 했다. 그래서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일은 다윈 이후의 사고방식, 즉 적자생존과 연관되었고, 삶은 가장 강한 자 내지 가장 교활한 자가 성공하는 일종의 전장으로 인식되었다. 20세기 들어 여성이 일터에 진입하게 되면서 자수성가형 인간[남성]에 관한 생각은 또다시 수정되었다.

(중략)…… 오늘날에는 자수성가한다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다. 선진국의 젊은 남성 혹은 여성들이 단순히 사회적 경제적 사다리의 고정된 경로를 따라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 심지어는 어느 정도 성공해 부를 획득하는 것조차 흔하고 당연한 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과제는 자기 창조. 포스트모던한 쩐문직들에게는 삶 그 자체가 일종의 예술 창작 활동 혹은 도전적인 기업 경영, 즉 계속해서 개량하고, 개정하고, 개선해야 할 것이며, 성공은 그것의 가장 완전한 표현이다. 이런 까닭으로 선택에 대한 관념은 근본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 사람의 모든 것은 사회가 조장하는 행복과 자기 충족감에 다다르기 위해 조심스레 내려야 하는 결정의 문제가 되었다. ■

 

§§

몸이라도 건강하면 좀 더 의연할 수 있을 텐데, 병원이라도 가게 되면 우리는 당장 위태해진다.

 

◆ 수술대 앞의 의료소비자, 우리의 현재 - 내 몸은 어디까지 내 책임인가

 

 p87~88   2장   타인의 시선으로 하는 선택

현재 의료 서비스에서는 선택과 자기 지배라는 관념을 예찬한다. 의사는 더는 권위자를 자처하며 환자에게 가장 좋은 치료법을 권하지 않는다. 요즘은 그저 환자에게 선택지들을 고지하고 환자가 결정하도록 하거나 동의(또는 거부)를 표하게 하는 경우가 흔하다. 의사의 처방에 대한 전문 지식도 없고 훈련도 받지 못한 환자가, 그것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이에 대해 동의를 한다는 것[고지에 입각한 동의]informed consent은 요식적인 행위일 수 있으며, 상황이 잘못됐을 때 책임과 소송을 회피하기 위한 일종의 속임수가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심각한 질병이 생겼을 때 어떤 치료를 받고 싶은지 직접 선택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선택의 자유가 추상적인 수준에서는 호소력 있어 보일지 모르지만 사태가 심각해지면 사람들은 누군가 전문 지식을 갖춘 권위자 가 대신 선택해 주길 바란다. 배리 슈워츠가 보고한 바에 따르면, 건강한 집단에게, 만약 암 진단을 받을 경우 치료 방법을 직접 고르겠는가 라고 묻자 65퍼센트가 그렇다고 답했다. 반면, 실제 암 환자 가운데 직접 선택하길 원한다고 답한 이들은 12퍼센트에 불과했다.

 

p89

자기 치유 이데올로기가 많은 나라에서 정치인들이 공공 의료 서비스를 민영화하기 시작한 시기에 급격히 번성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의료 기관에서 받는 치료에 점점 더 불만족을 느끼고 있었고, 동시에 이들 가운데 갈수록 더 비싸지는 민영 의료 서비스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앞으로 더 줄어들 것이라는 점도 분명해지고 있었다. 자기 치유 이데올로기는 건강에 대한 책임, 심지어는 병을 치료하는 힘까지 스스로에게 달렸다는 생각을 조장하는 동시에 새로운 유형의 각종 산업들도 발전시킨다. 내면의 치유력과 조우하는 신기한 방법들을 제시하는 소위 뉴에이지 의료 전문가health guru들이 넘쳐 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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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해 들어갈수록 우리의 선택은 전혀 합리적이지도, 주체적이지도 않다.

이론으로 살펴보지 않아도 우리도 늘 느끼고 있다.

"대충 네 알아서 줘" , "이거 어떤 거 같아?" , "그냥 이걸로 하자", "앗, 깜빡했네, 미안." , "어, 이거 집에 있었네", "나도 그거" 등등등...

◆ 대타자와 대주체

 

p104~106     2장   타인의 시선으로 하는 선택

대타자는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

프랑스 정신분석가 샤를 멜망Charles Melman은 대타자에 관한 오늘날의 인식 변화가 세계는 합리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가정과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합리적 세계에 대한 믿음은 대타자에 대한 사고뿐만 아니라 세계가 예측불가능하며 그것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거대한 틀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상의 가능성을 박탈한다.

십여 년 전 프랑스 정신분석가 자크-알랭 밀레Jacque-Alain Miller와 에릭 로랑Eric Laurent은 더는 대타자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추론하고 윤리 위원회들에 대한 우리의 강박을 그 증거로 제시했다. 과학의 진보는 많은 해답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많은 의문을 야기해 왔고, 우리는 이런 답을 제시하는 어떤 권위도 더는 신뢰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임시 특별 기구들예를 들면 대타자의 비일관성을 다루도록 고안된 윤리 위원회들을 만들어 낸다. 물론 이런 기구들도 늘 비일관성을 보인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질서의 구조 변화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까? 프랑스 철학자 다니-로베르 뒤푸르Danny-Robert Dufour는 이를 중요한 사안으로 보고 대타자에 대한 인식의 역사를 추적했다. 문화들은 저마다 언제나 특수한 자기 기원의 흔적들을 파악하고자 애쓰는 주체들을 형성한다는 프로이트의 가정에서 출발한 뒤푸르는 이것이 사람들이 대타자를 그리고, 노래하고, 형체와 목소리를 부여하고, 무대에 올리고, 표상하는(심지어는 표상할 수 없는 것에 eogoj도 초월적인 표상을 부여하는) 이유라고 주장한다. 대타자는 우리를 위해 우리 스스로 유지할 수 없는 것을 유지해 주며, 따라서 우리가 형성되는 토대가 되어 준다. 그래서 우리의 역사는 늘 대타자의 역사, 더 정확히 말해 대타자의 이미지들인 것이다. 뒤푸르는 더 나아가 주체는 늘 대타자에 종속된 주체이며, 대타자는 과거에 일종의 대주체big Subject의 형태로 신이나 왕에서부터 자연원리와 인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를 취해 왔다고 지적한다. 서구 역사가 전개되어 오면서 개별 주체와 이 대주체의 차이는 작아졌다. 뒤푸르는 계몽주의 시대 초반에 개인이 자신의 준거를 바로 자신에게서 찾게 되었다고 본다. 바로 이때부터 주체는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데 더는 외부의 존재Being , 나라, 혈통 를 참조하지 않았고 어떤 면에서는 자기 자신이 자기 고유의 기원이 되었다. 근대성과 더불어 다양한 대주체들이 출현했다. 이는 교회 권력의 쇠퇴와 엄청난 과학적 진보와 관련되어 있다. 이와 더불어 인간 주체는 점점 더 그 자신과 관련해 탈중심화되었다.

뒤푸르는 탈근대 사회에서는 더는 상징적 대타자, 즉 주체가 요구를 표명하고 문제나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권위가 되는 불완전한 실체는 없다고 결론짓는다. 그런 사회에서는 시장이 대타자가 된다. 오늘날 어떤 이들은 자본주의는 새로운 형태의 종교가 되리라는 발터 벤야민의 예견을 이어받아, 시장이 신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근래의 경제 위기가 발생하기 전에는 자유 시장경제라는 신조에 반대하는 이들에게는 죄다 이단이라는 딱지가 붙었기 때문이다.

현재 인간 주체는 영구히 탈중심화되어 있다. 주체를 둘러싼 상징적 공간은 항상 아노미 상태이고 분산되어 있다. 그래서 탈근대성 논의들은 거대 담론들과 신뢰할 만한 권위들이 사라졌다는 데 초점을 맞춰 왔다. 개인주의는 주체가 점차 자신을 자기 창조자로 인식하는 새로운 단계에 도달했다.

 

 

 

◆ 바라지 않았던 선택의 모습

 

p183~184    5장   강제된 선택

누군가가 선택권을 제공받는 동시에 빼앗긴다면, 당연히 그들에게는 선택권이 전혀 주어지지 않은 것과 같다. 그럼에도 여전히 강제된 선택은 사회를 결속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에게 강제된 선택의 사례가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을 통해 모든 사람이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합의가 사회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회는 이 자유를 간단히 거부할 수 없다. 가장 엄하고 잔혹한 전체주의 정권조차도 흔히 강제된 선택이란 행위에 의지했다. 이는 강압적 정치가 흔히, 개인이 정권의 질서에 자발적으로 복종한다는 환상에 근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런 정치적 일상적 사례들에서 나타난 강제된 선택은, 개인에게 방어기제(, 신경증)를 형성하는 강제된 선택이 있다는 정신분석 개념과는 상이하다, 정치적 사례들의 경우, (군대에 가거나 감옥에 가거나, ‘고문없었음에 표시하거나 죽어나, ‘예의에 맞게 행동하거나 품위 없는 사람이 되거나 등과 같은) 행동을 선택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이런 사례들에서는 방어기제를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수감자나 징집병이 목숨을 구할 수 있지만, 자신의 진실을 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라캉이 말하는 주체는 사회화 과정에서 훨씬 심각한 딜레마에 직면한다. 주체가 개인적 방어기제를 형성하는 강제된 선택을 하지 않으면, 정신병에 걸릴 수 있다. 하지만 정신병 또한 선택의 문제다. 또다시 강제된 선택이긴 하지만 말이다. 라캉에 따르면, 정신병에 걸리는 문제에서조차 책임은 개인에게 있다. 정신병적 구조는 단순히 개인에게 부과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인이 스스로 형성하는 것이다. 비록 의식적으로 형성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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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박광호씨의 의식 있는 후기도 옮겨본다.

  결국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고 선택해야 할 것은 우리 공동의 것, 게임의 룰, 선택의 룰 자체이다. 그 고민과 씨앗은 협동조합, 지역 화폐, 마을 공동체, 사회적 기업의 형태로 이미 시작되고 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온전한 정당 명부 비례대표제 및 결선 투표제, 국가 관료에 대한 민주적 통제, 주민자치를 강화하는 풀뿌리민주주의 등으로 대의제 민주주의를 실질적으로 민주화하고, 기본 소득, 토지 공유화, 노동자 경영권 등으로 경제 민주화를 실현하는 선택 역시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선택을 제한하는 구조 ㅡ 정치적 · 경제적 구조와 인간의 심리적 구조 ㅡ 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 것이, 우리의 선택이 조삼모사 원숭이의 선택이 아니라 온전한 선택이 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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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페이지가 약간 넘는 적은 분량임에도 생각할 거리를 많이 제시하는 책이다.

대타자와 이데올로기라는 과도한 상정으로 개진해 나간 것은 아닌가 싶었지만, 지금의 사회가 광범위하게 그 테두리에 매몰되어 있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전혀 무리수가 아니란 생각.

우리와 연관된 정치 · 경제 · 생활(소비,육아) · 정신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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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지 않기로 한 선택 하나.

생각해 보니 그 카테고리에서 사고 싶은 책은 『공산당 선언』뿐인데,

컵을 갖기 위해 굳이 그 이상의 책을 사고 싶지 않다! 로 탕탕탕! 결론.

읽었던 책이 많아 살 수 없는 것이니 구매자분들은 오해마시길^^;

 

 

사겠다는 자유와 사지 않겠다는 자유.... 선택의 자유인가, 자유의 선택인가....그것을 끝으로.  

 

 

 

ㅡAgalma

 

 

 

 

 

 

p136
무제한적 만족과 자기 충족감을 조장하면서도 불만족이라는 토대에서 번창하는 사회에서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그토록 소비에 미쳐 있을 리 없다!) 좌절감은 새로운 문제들을 제기한다. 개인에게 좌절은 흔히 불만족보다 더 고통스럽다. 불만족은 욕망과 얽혀 있는데 좌절은 주이상스와 관련된 문제들ㅡ우리가 향락하는 바로 그 방법ㅡ과 연관되어 있다. 장-피에르 르브룅은 이렇게 쓴다. ‘주이상스를 향한 의지가 사회를 지배할 때 프롤레타리아의 끈끈한 연대는 경쟁과 대립으로 바뀌고 사회의 증오는 심화된다.’(Lebrun, Un monde sans limite, p.250)

p200
우리는 스스로 내린 선택에 수치심을 느낄 때 전체 사회를 응시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초점을 맞춘다. 또한 사회의 부정의 앞에서는 시선을 떨구고, 적절한 선택을 내리지 못한 것에 수치심을 느낀다. 우리는 사회질서의 결함을 보는 대신 자신의 결함을 보고, 우리가 누리거나 성취하는 것이 적을 때 자신이 열심히 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이는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힘든 일이다. 이들은 삶에서 성취감이나 행복을 느끼기가 힘들고 자신들의 실패에 대한 비난을 개인적으로 견텨 내야 하기 때문이다. 리얼리티 쇼, 놀이동산, 새로운 무수한 오락물이 넘쳐 나는 시대에 가난은 외부의 시선에서 보기엔, 선택할 수 있는 생활, 자유의사로 참여하고 그만둘 수 있는 개인으로 오인될 수 있다

p209~211
그러나 선택은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인간에게 필수적인 능력이다. 개인이 선택을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은 곧 변화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오늘날 문제는, 우리가 선택을 오로지 전적으로 합리적인 행위로 간주하고, 그래서 경제 이론과 소비자의 관점에서 선택을 사고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견해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사실 우리에게는 선택을 인간의 정신 및 심리에 초점을 맞추고 파악하는 더 폭넓은 이해 방식이 필요하다. 정신분석에서는 사람들은 자신의 증상에 책임이 있다고 보는데, 그렇다고 이것이 우리가 저마다 자신의 고통을 이성적으로 선택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는 개인은 주체ㅡ늘 자신의 증상(즉, 신경증)을 만들어 내는 사람ㅡ라는 의미이다. 변화는 가능하고 또 우리에게는 자신의 고통을 만들어 낼 뿐만 아니라 그것을 극복할 능력도 있다.
선택이란 관념을 강요하는 오늘날의 자본주의사회는 계급차이와 인종적‧성적 불평등을 은폐한다, 1987년 마거릿 대처는 유명한 선언을 남겼다, ‘사회 같은 것은 없다. 개인으로서의 남녀, 그리고 가족이 있을 따름이다.’ 이런 관점은 이후 사회의 전 층위에 스며들었다.

p213
존 레넌의 유명한 노래[아들을 위해 쓴 <뷰티플 보이>Beautiful boy] 중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살다 보면 뜻밖의 일들이 일어나기 마련이지. 그동안에 너는 다른 계획을 세우느라 정신이 없겠지만 말야.’ 선택도 마찬가지다. 선택지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선택을 내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하지만 우리는 선택의 독재를 받아들일지 아니면 거부할지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실제로 가능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일이 될 것이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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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라딘 이벤트와 사투 - 펭귄클래식의 역습
    from 공음미문 2015-02-24 21:19 
    §신학기라 슬슬 알라딘도 이벤트에 박차를 가하는군요.지난주 펭귄클래식 컵을 안사고 버텼건만펭귄클래식이 어찌 또 내 속을 알고 1만 원만 사도 사은품을 준다는 솔깃한 제안을!그린핑거 베이비로션이 1000명 인분으로 창고에 가득할 것 같지만.... 그래서 오늘 주문하는 김에 펭귄클래식에서도 1권 사고야 말았습니다;랜덤이라지만 무조건 당첨은 확실하니 상품으로 뭐가 올지 살짝 기대합니다 ☞☜;내일 지킬 하이드 영화도 보러 가는데 제발 지킬 하이드 양장 노트가
  2. 불안의 기후 변화 속에서
    from 공 음 미 문 2015-06-22 05:02 
    § 불안, (반갑진 않지만) 안녕? 책을 읽을 때는 기분이 많이 울적했는데, 정리 하다보니 내용을 객관적으로 살펴보게 돼서 생각에 살이 좀 붙은 거 같다. 이 맛에 리뷰를? 하지만 아직도 너무 길어.... 1장 [서론] 그동안 인류에게 치명적인 손실을 주었고 지속적인 불안 요인인 것은 폭력(전쟁, 테러, 각종 범죄), 질병(바이러스), 환경(지진, 쓰나미 등), 경제 불황이라고 생각된다. 서론에서 레나타 살레츨은 실질적으로 사람들이 불안해
 
 
수이 2015-02-17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들어 생각하는 것들과 맞닿는 지점이 많은데요. 음음 노래 좋고 읽어야지_ 하는 생각과 더불어 근데 언제 사서 언제 읽지_ 그리고 더불어 이렇게 쓸데없는 댓글을 달아도 괜찮을까 그냥 삭제를 해야 하나 역시 선택의 갈등 앞에서 한참 왔다 갔다 하네요. 그리고 마지막_ 쿨럭;; 컵을 갖고 싶어서 책을 산 이 사람;;;;;; 푹 찔리고 말았습니다;;;;;;

AgalmA 2015-02-17 14:46   좋아요 0 | URL
댓글 쓰는데 웬 고민을 그리; 저또한 이 책 요즘 제가 생각하는 지점 많이 짚어줘서 좋았어요. 결국 펭귄컵을 포기하게 만든 주범이기도ㅎ...정말 갖고 싶었지만ㅜ
200페이지라 금방 읽으실 거예요. 저는 도서관에서 빌려서 봤는데 메모를 하도 옮겨야해서 차라리 살 걸 그랬나 했어요ㅎ 여기 글에 안 올린 재미난 글이 얼마나 더 많은지 모르시죠? ㅎㅎ

수이 2015-02-17 14:54   좋아요 0 | URL
으악_ `여기 글에 안 올린 재미난 글` 으악으악_ 저를 이렇게 안달나게 만드시다니! Agalma님 나빠욧! 하고 냉큼 장바구니에 집어넣고~ 다른 분들 글도 있나 한번 찾아봐야겠어요.

AgalmA 2015-02-17 14:58   좋아요 0 | URL
후회 안하실 거예요. 최대한 살펴보시라고 굳이 제가 방대한 양을 올린 거니까요. 라캉 이해에도 도움이 많이 되실 거예요.
3월에 살레츨 새 책 또 나올 예정이던데 그것도 꼭 볼 생각입니다^^

수이 2015-02-17 15:22   좋아요 1 | URL
레나타 살레츨 Ted 강연 막 듣고 왔어요. 이번 주는 무리일 거 같고_ 다음주에 월급 들어오는대로 지르려구요. 언젠가 읽어야지_ 하다가 보니 테드 강연 있어서 다 듣고_ 그래, 읽어줘야지, 읽어야겠어, 이 책은 나를 위한 거잖아! 막 흥분하고_ 3월에 나온다는 살레츨 새 책_ 그것도 리뷰 꼭 해주셔야 해요, 아님 미리 알려주셔도 좋구요. 기다리기 전에 막 조를래요. 다른 `재미난 글`에 대한 이야기도 좀 해주세요!!

AgalmA 2015-02-17 15:31   좋아요 0 | URL
알라딘은 램프로 돈도 가져가고 책읽고 리뷰 내놓으라는 사채 시스템 비슷한ㅋㅋ

수이 2015-02-17 15:34   좋아요 1 | URL
알라딘은 각성하라! 각성하라! ㅋㅋㅋㅋㅋㅋ

[그장소] 2015-06-26 0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쨌든, 참 안타까웠는데...계속 그 글쓰기 시스템은 나한테 제 개인적으론 너무 최적화였는대, 폰이 안되고 제 가 취할수 있는 모든 방법이 거부하니, 애석하게도 , 서재로 우회하는 수단..글을 복사해 붙이는 방법을 쓰고있는데.. 여기 서재는 글저장
시간및 로그아웃이 멋대로인 지라..어느 순간 훅 날아가거든요.그렇게해서, 북플사용자에서 탈락자가 되고 말았죠. 그런데 계속 있었데도 누가 보는가 안보는가에 천착해 내글이 이제 인기글이 아닌가에 까지..두루 신경을 써야한다, 생각하니..자연도태가 저는 필요한 수순이었다는 생각마저 들어요. 치열하지 못하니..꼭 필요한 글만 남아야하는 거죠. ^^ 영화에서 말하듯 쓸모없는 글, 쓸모없는 사람,..자연제거 되는 식..^^ 그래서. 결국 마음에 대한 것을 보는데 책은 전문적인가 흥미위주에 머물러 볼
것인가...인가..까지도..선택하라 ?! 관심가져달라...?!어렵다..이건.

AgalmA 2015-06-27 20:06   좋아요 1 | URL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자세, 행위가 중요한 동력이며, 그것을 또한 객관적으로 상대에게 전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거죠.
다른 사람에게 맞추려들면 내 글은 금방 무너지죠. 그러나 내 감상, 주관 속에서 안주하려 들면 타인에게 받아들여지기도 어렵죠. 이런 과정을 거친 후 작품이든 책이든 나오는 거라고 봅니다. 과정은 결국 동일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