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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사랑의 실험
신형철 지음 / 마음산책 / 2014년 10월
평점 :
§ ‘정확한’이 고유수식어가 된 듯한 신형철식 고집
『정확한 사랑의 실험』이란 제목에서 나는 문득 레나타 살레츨 『사랑과 증오의 도착들』을 떠올렸다. 그의 프러포즈가 담겨 있기까지 하니 ‘정확한 사랑의 도착’을 더 쓰고 싶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가 곧 철회했다. 저 사랑과 도착들 사이의 증오와 그 단짝 몰락까지 따라오기 십상이니 말이다. 무릇 서사(이야기)란 최종적으로는 실패의 결과이긴 하지만, 신형철씨는 '몰락의 에티카'를 여기까지 끌고오고 싶어하지 않는 게 확실했다. '느낌의 공동체'에서 힘들게 '사랑'까지 왔는데 그럴수야 없지! 사랑하더니 사람이...
이 책 제목은 이 외에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정확한’은 꼭 ‘사랑’을 수식하길 원하고 있다. ‘사랑의 정확한 실험’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실험 자체가 ‘부정확함, 불확실성’을 내포할 뿐만 아니라, 여기선 ‘실험’이 목적이 아니라 ‘정확한 사랑’을 목적으로 한 실험결과를 원하기 때문이다. 장승리 시로부터의 연원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을 제목으로 가져온 그의 실험의도가 중요하니까 말이다.
‘정확한 사랑’이라 말하면서 부정확한 결과를 내포하는 ‘실험’을 굳이 붙인 것은 왜 인가. 이 또한 정확함을 바라는 저자의 고집 때문이다. ‘정확한 사랑’조차도 의심하는 해석자의 자세.
수많은 씨줄 날줄의 삶을 말하면서 ‘해석들’이 아닌 ‘해석’이라는 단수형을 붙인 것도 눈여겨봐야 한다. 사랑을 사랑들이라고 쓰지 않듯 ‘정확한 사랑’이라면 ‘딱 한 번의 실험’만 가능하다. 보편이 아니라 ‘특수성’으로서의 단 한 번이길 바라는 저자의 고집이 또 적용된 셈이다. 이쯤 되면 이것은 정확함인가, 고집인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물론 둘 다다.
§§ 그 정확함은 우리를 필요로 한다
안타깝게도 저자가 고집하는 정확함도, 정확하려는 고집도 어찌해 볼 수 없는 문제가 있다. 그 정확함을 인정하는 권리와 지위는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2차 가공자인 비평가라 하더라도 그 또한 작가이므로 이를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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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야기는 그것을 들려주는 사람에 의해 가공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근거해 …(중략)… 이야기는 그것을 듣는 사람의 해석에 의해서 비로소 완성된다. ㅡ p1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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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자인 그가, 대상인 우리에게 정확한 해석을 받기 위해, 정확하게 해석해야 하는 이중 딜레마에 처한다. 이제 ‘정확한 사랑’을 판결받기 위해 ‘정확한 실험’을 해야 한다! 다행히 그는 정공법을 알고 있다. 그는 실험의 공식까지 증거로 제시하며 판결을 자신만만히 기대한다.
§§§ 신형철이 말하는 ‘이제 당신도 정확한 신형철이 될 수 있다’ 비법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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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세 단계를 차례로 밟아가는 일이다. 그 세 단계를 각각 ‘주석’ ‘해석’ ‘배치’라고 명명할 수 있다. 우리는 우선 텍스트가 다루고 있는 것들의 ‘사실’ 관계를 확인해야 하고(주석), 확인된 사실에 근거해서 텍스트의 ‘의미’를 추론해내어야 하며(해석), 이렇게 추론된 의미가 어떤 ‘의의’를 갖는지를 평가하면서 그 텍스트가 놓일 가장 적절한 자리를 찾아주어야 한다(배치). 특별할 것도 없는 이런 정리를 시도해본 것은 이 세 작업의 몫을 혼동하거나 작업의 단계를 무시하는 사례들이 더러 있어서다. 예컨대 밝혀지지 않은 사실 관계 앞에서 고된 실증 작업을 생략하고 상상력을 발휘해 공백을 메우거나(주석을 해석으로 대체하는 경우), 지난한 해석의 노동을 건너뛰고 신속히 텍스트를 분류한 다음 그것으로 해석이 완료됐다고 믿거나(해석을 배치로 대체하는 경우) 하는 일들 말이다. ㅡ p113~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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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이렇게 친절히(?) 말해줘도 문학비평론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어리둥절할 것이다. 설마 “뭔진 모르지만 맞는 거 같다” “정확하다고 정평이 난 신형철씨니까 믿는다”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간 건 아닌지? 공식을 알려줬으면 실험을 해봐야 우리도 ‘정확한 사랑’을 얻을 거 아닌가.
이 책의 첫 부분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 <러스트 앤 본>을 “‘주석’은 최대한의 정확성을, ‘해석’은 최대한의 단독성을, ‘배치’는 최대한의 보편성을 추구하는 작업이다 ㅡ p118”에 입각해 적용해보자.
(주석)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 서사 중심은 조제의 ‘다리 장애’와 쓰네오의 ‘행동들’이다. 조제는 도망갈 수 없는 ‘다리 장애’를 가졌고 무뚝뚝하며 사람과 어울릴 수 없는 환경이다,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면 제일 무서운 것을 보고 싶”어한다. 쓰네오는 자유롭고 성격도 원만해 대인관계도 좋다, 이런 그는 무엇에서 도망갈까? 결정적으로 조제를 정말 사랑하나? 무엇때문에?
(해석) 저자는 ‘장애’라는 요소를 사랑의 논리학에서 결정적인 요소인 ‘결여’의 은유”라고 해석한다.
(배치) ‘다리 장애’의 또 다른 서사 <러스트 앤 본>의 인물 '알리와 스테파니'를 (주석)에서부터 비교할 수도 있다. 원래 저자의 출발은 <맨 오브 스틸>-><러스트 앤 본> '영화와 육체'라는 주제(문제의식)에서 출발-><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로 넘어간 거지만 다시 쓰기 번거로워서; 네, 죄송합니다; 논리상의 발전만 보시길. <조제~>로 시작하나 <러스트~>로 시작하나, 저자는 이러한 주제의식을 가졌을 것이므로.
‘그들의 없음’과 ‘사랑의 논리’들을 비교하고 해석자가 원하는 각각의 자리에 배치한다.
영화를 자세히 여러 번 보면 (주석)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감독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말하지 않더라도- 대개는 읽히기 때문이다. 창의력이 풍부한 해석자라면 좀 더 특이한 (주석)을 찾을 수 있다. 문제는 (해석)부분에서 해석자의 상당한 자의가 가미되면서 (배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 부분은 공부가 필요하다. 공부 부분에서 대부분 돌아서지만 공부가 뒷받침이 돼준다면 이 방식은 실패가 힘든 꼼꼼한 정공법이다. 헌데 좀 답답한 감이 있다. 신형철씨 그 특유의 첫째, 둘째, 셋째를 생각해보라-_-... 끝이 안날 거 같은 그 째,째,째. 대답을 해주기 전엔 여기서 아무도 못 나가! 분위기; 씨네 21 기고글이라 제한된 분량인 점이 우릴 살렸어~
이 외에도 제시하는 방법이 여럿 보이는데, ‘글은 어떻게 쓰는 것인가?’ 이상한 책 보는 거 보다 이 책만 꼼꼼히 봐도 글쓰기 공부의 다양한 방법을 익힐 것이다.
오, 할 말 많았는데, 이쯤되니 급피곤해져서 여기까지 써야겠다. 비평집을 비평하려니 이거 무슨 리뷰가 강의가 돼버리지;
강신주, 유시민, 신형철 글쓰기 콤보 비교해도 재밌겠다 싶었는데, 유시민씨 글쓰기 책 낸다 그러시니 패스~ ㅎㅎ
마지막으로 곰곰이 생각해 볼 것은 그의 해석, 우리의 동조와 공감이 모든 정확함은 아니라는 것.
역사가, 다른 말로 바로 우리가, 우리의 공동해석들을 철회하는 것을 보며 우리는 매우 협소하게 정확하다는 것을 배워왔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정확함들은 정확의 기준에서는 결코 정확하지 않았다고 매번 결론이 났다. 우리는 정확이 아니라 선택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ㅡAgalma
※ 책을 안읽은 분들은 먼저 영화를 보시라고 참고사항으로 올립니다.
챕터마다 논의되는 영화 중 한 가지라도 봐야 집중이 잘 되실 듯.
[목차]
1부 나의 없음을 당신에게 줄게요_사랑의 논리
나의 없음을 당신에게 줄게요 - 자크 오디아르 <러스트 앤 본> & 이누도 잇신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
정확한 사랑의 실험 - 자비에 돌란 <로렌스 애니웨이> & 압둘라티프 케시시 <가장 따뜻한 색, 블루>
보통을 읽고 나는 쓰네 - <시라노 : 연애 조작단> <러브 픽션> <건축학개론> <내 아내의 모든 것>
어떤 사랑의 실패에 대하여 - 린 램지 <케빈에 대하여>
죽일 만큼 사랑해 - 미하엘 하네케 <아무르>
2부 발기하는 인간, 발화하는 인간_욕망의 병리
그녀는 복수를 했는데 그는 구원을 얻었네 - 김기덕<피에타>
안느, 이것은 당신을 위한 노래입니다 - 홍상수<다른 나라에서>
발기하는 인간과 발화하는 인간 - 김기덕 & 홍상수
우울하므로, 우울함으로 - 라스 폰 트리에<멜랑콜리아>
세상의 종말보다 더 끔찍한 것 - 제프 니컬스 <테이크 셸터>
3부 필사적으로 무죄추정의 원칙 고수하기_윤리와 사회
필사적으로 무죄추정의 원칙 고수하기 - 토마스 빈터베르 <더 헌트>
양미자 씨가 시가 아니라 소설을 썼더라면 - 이창동 <시> & 공지영 『도가니』,이언 매큐언 『속죄』
진실과 대면해야 한다는 고요한 단언 - 김희정 <청포도 사탕 : 17년 전의 약속>
타자, 낭만적 사랑, 그리고 악 - 조성희 <늑대소년>
마르크스, 프로이트, 그리고 봉준호 - <설국열차>
4부 나는 다시 나를 낳아야 한다_성장과 의미
황홀한 리비도의 시詩 - 박찬욱 <스토커>
이상한 에덴의 엘리스 - 제프 니컬스 <머드>, 찰스 디킨스 『위대한 유산』
“어떤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십니까?” - 리안 <라이프 오브 파이>
태어나라, 의미 없이? - 알폰소 쿠아론 <그래비티>
자신이 주인이라고 착각하는 노예들에게 - 스티브 매퀸 <노예 12년>
5부 부록
Passion of Judas, 혹은 스네이프를 위하여 - 해리 포터 시리즈
시간을 다루는 영화적 마술의 한 사례 - 정지우 <사랑니>
덧)
신형철[정확한 사랑의 실험]표지의 작가, 베르나르 포콩 사진집을 다시 펼쳐보다.
인화된 전시를 봤을 때보다 느낌도 떨어지고 번역도 좀...
사랑의 실체를 갑자기 보고 싶을 때 간편함 외엔..
[사랑의 방]에 얼마나 공들인지 알지만 내 취향은 [우상과 제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