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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 - 1994-2005 Travel Notes
이병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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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로 '책 버리기'가 있다. 책을 버리기 전에 반드시 확인 절차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책은 한번 읽고 나면 어지간한 이유가 있지 않은 다음에야 재차 펼치기가 쉽지 않으므로, '책 버리기'는 재독 혹은 책장에 꽂아두기만 했던 책과의 만남에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번엔 이 책이 당첨되었다. 10년 만의 재회이자 이별의 순간이기도 했다. 이 책은 개정판이 꾸준히 나오고 있어 (안타깝게도) 영영 이별의 아쉬움은 없을 듯하다.
우리가 에세이를 읽는 건 점쟁이가 내 미래를 읽어주길 바라듯 에세이스트가 우리가 놓치고 있는 생각들을 읽어내 주길 바라는 맘에서가 아닐까. 그래서 이 에세이집에 짐짓 괴상하게 여기면서도 내 에세이를 덧붙이고 있다.
이 책을 다시 펼치며 잊고 있던, 어느 날의 특이했던 햇살의 각도라던지 빈 공간을 순식간에 점령하고 사라지던 움직임을 재감각할 수 있었다. 모든 책 읽기가 전쟁터로 떠나는 일이라면 독서가들의 상당수는 떨어져 나갈 것이다. 책의 주요 기능 중 하나로 '여행'이 있을텐데 이 책은 그런 경험을 나눠주고 있다. 감상적일 지라도 내가 나를 버리지 못하듯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것이 분명 있었다.
ㅡAgalma
#009 탱고
"남의 발에 밟히는 일이 직업"인 탱고 강사
「사랑을 하면 마음이 엉키죠. 하지만 그대로 놔두면 돼요. 마음이 엉키면 그게 바로 사랑이죠.」
(Agalma) 하지만 그렇게 엉키기만 해서는 그저 감정이기만 한 건 아닐까.
#010 낙엽들
(Agalma) France _Paris 센 강을 찍은 이 사진은 색감과 구도에서 Eugene Atget(French, 1856-1927)가 연상되어 좋았는데, 사연 또한 그 풍경에 잘 어울렸다. 7억, 8천 8백 91만, 9백 서른아홉 개의 양말 같은 낙엽들이라니...
#022 끌림
(Agalma) 이 에피소드에서는 이 문장이 눈길을 끌었다. "여행이라고 하기엔 뭣할 정도로 가는 곳엘 가고 또 가고 하는 사람". 이 문장은 삶이 곧 여행이라는 말과 동의어다.
#026 내일과 다음 생 가운데
멋진 티베트 속담. '내일과 다음 생 중에, 어느 것이 먼저 찾아올지 우리는 결코 알 수가 없다!'
#042 거리의 악사
"중국 난징(南京) …… 점자로 된 가사집이었다. 노래와 가사가 이어지는 사이사이, 남편은 차가 담긴 병을 들어 아내에게 권했고, 남자는 아내가 마시기를 기다려 자신의 목을 축이곤 했다. 점자는 여인에게 노랫말을 알려주는 정도였겠지만, 그 점자에는 노랫말 이상의 기록들이 들어 있지 않나 싶을 정도로 여인은 목으로 낭랑하고도 처연히 자신의 인생사를 뽑아내고 있었다. 난징 부자묘 근처의 노천시장을 걸으면서 방금 전 만난 부부 악사의 그림이 떠올라 새(鳥)시장을 둘러보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멕시코는 대잇기를 통해 거리의 악사들이 배출되는 경우가 많은 나라 가운데 하나다. 거리의 악사를 '엘 마리아치'라고 부르는데, 이들의 경우에는 서서 움직이면서 노래와 연주를 동시에 한다. 걸으면서, 계단에 오르면서, 사랑에 빠진 연인 주변을 돌며 연주와 노래를 한다. 그것은 이들에게 있어 음악은 예술이라기보다 생활 차원의 눅진한 소품이라는 사실을 설명해주고 있다.
노천 카페를 도는 악사가 있고, 술집이나 식당을 돌면서 소리하는 사람이 있고, 열차나 버스 터미널 같은 곳에도, 좋은 일이나 슬픈 일이 생겼을 때도 그들은 있다.
그들은 연장 대신 악기를 들고 삶의 전장에 나가기도 하며, 풍경 한가운데 묵묵히 선 채 오래된 나무가 되기도 한다."
#046 고양이가 돌아왔으면 좋겠어
(Agalma) 그래서 고양이를 안 키워요. 고양이를 잃고 찾아 헤매는 일까지 겪고 싶지 않아요.
#048 뒤
(Agalma) 내 뒷모습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것의 뒷모습이 그토록 흥미로운지도...
#063 당신이 머물고 싶은 만큼
(Agalma) 티벳! 티벳! 티벳! 그곳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고향 같다. 우리가 가차없이 떠난 뒤 무수히 그리워하는 그곳 같은.
#070 포도나무 선물
(Agalma) 이미지들은 얼마나 우리를 풍요롭고, 평화롭게 만드는지 .... 쓸쓸함 마저 멋진 환각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