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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전집 1 :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 ㅣ 사드 전집 1
D. A. F. 드 사드 지음, 성귀수 옮김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14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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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춤추는 죽음' 한 대목에서 따온 듯한 제목과 강렬한 흑백의 표지에 이끌렸다.
사드 특성상 내용은,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스타일이라기보다 라스 폰 트리에 <님포 매니악 2>스럽지 않을까 했다. 금욕주의 철학자 셀리그먼과 색정증 환자 조의 대화같을 거라고 말이다.
셀리그먼이 파멸했듯이 사드도 그렇게 만들겠지 하며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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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생각은, 왜 프랑스일까 였다.
라블레 - 사드 - 보들레르 - 로트레아몽 - 조르주 바타유 - 장 주네 … 알려진 작가만 짚어봐도 세계적으로 대단한 계보다.
그들이 그토록 외쳤던 "자유"의 토대가 어떻게 구축되어 왔는지 체계적으로 살펴보고 싶어졌다.
보르도, 브르타뉴 기타 등등 프랑스산 포도주의 성분 분석(반 농담)을 비롯해 프랑스 역사 공부도 해야 할까.
장정일을 읽기 위해 삼국유사부터 읽자는 식인가? 그렇다면 미안하다.
(※ 이 리뷰를 쓴 이후 그 "자유"의 중요한 가닥을 알게 되었는데, 기묘하게도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 <21세기 자본>에서였다. 나머진 여러분들이 찾아보시길.)
이 책은,
사드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입문서로는 적당할지 모르지만 작품 분량이 겨우 90페이지라 큰 수확은 기대하기 어렵다.
사드의 본격 방탕주의 편력기는 나오지 않는다. 그의 사상 기조와 생애를 훑어보는 정도 되겠다.
책 분량의 반을 차지하는 아폴리네르의 해설은 사드에 대한 전기(傳記)와 시대 양상, 사드 작품 자료에 대한 요약이다. 아폴리네르가 사드를 먼지 창고에서 구출해 현대에 알린 일등공신이긴 하지만 마찬가지로 장 주네를 감옥에서 구해낸 사르트르의 백과사전 분량 <聖 장 주네론>에 비하면 함량 미달이다.
사드 전집은 14권의 방대한 양이 기획되어 있다. 기존에 출판되었던 것들도 있고 잘 알려지지 않은 일기, 서한집 등의 구성도 있어 전집답다.
모리스 블랑쇼, 롤랑 바르트 등의 사드 관련 글도 차후 전집에 실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마 예상하기론 2권 소돔 <120일 혹은 방탕주의 학교> 출판 시, 올림피아 출판사 판에 실렸던 조르주 바타유가 쓴 <사드 읽기의 관하여> 에세이가 실리지 않을까 싶은데 맞을까요?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나름 조사와 정확한 검증이 필요한 부분이 많아 차후를 기약하며,
호기심으로만 접근하는 독자를 위해 몇 가지 당부만 남겨둔다.
사드 작품의 토대는 libertin(리베르탱) - 무신론적 자유사상이다.
"1. 종교(기독교)와 윤리의 형이상학적 도그마를 부정하여 그로부터 전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사상적 입장'과
2. 그 입장을 토대로 하여 모든 육체적, 물질적 쾌락을 무제한적으로 추구하는 '삶의 방식'"(p127)의 합이 그것이다.
무신론을 주장하고 일신론측 공박까지 하려면 종교론에 조예가 깊어야 한다. 신학 세계가 지배하는 당시 세계에서 많은 교리철학과 싸우려면 억지나 윽박으로 될 일이 아니다.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에서 사드는 그에 대해 논박을 가한다.
사드가 중무장한 18세기 계몽사상을 알고 독서에 임할 필요가 있다. 데카르트의 합리주의와 로크의 감각론을 제대로 숙지하고 들어가면 좋다. 이후 현대철학까지 공부하면 더 좋고. 그래야 사드 언어에 스며있는 계몽사상의 한계점과 오류를 (긍정이든 부정이든) 비판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과 관련해 이집트 중점으로 4대 문명을 공부하고 들어가라. 관련한 문답에서 사드의 오류와 억지가 있는데 그걸 모른다면 당신은 사드의 논조에 바로 휘말려들 것이다.
이를테면 사드「종교의 요람으로서 이집트에 관한 소논문」에 대한 퓌제 기사의 반론에 응답 중 사드는 이집트 태양 숭배에 대해 "종교는 지리적 측면보다 정신적 측면을 고려하여 판단해야만 한다."라고 강력 주장한다.
그러나 이집트의 종교와 문명은 지역성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지리적으로도 천문 관찰이 용이했을 뿐만 아니라, 풍요로운 곡창 지대지만 나일강의 범람을 늘 대비해야 했기에 천문학, 수학에 일찍이 관심을 뒀고 문명이 발달할 수 있었다. 그를 통해 부를 축적할 수 있었고 각종 교역과 함께 세계 최고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만들 수 있었으며 수많은 학자들의 연구에 공헌할 수 있었다. 천문관이 곧 신관이었기에 종교권력이 강력할 수밖에 없었다. 이집트가 내세론이 우세하긴 했지만 총체적으로 정신성의 우세로 이집트 종교를 보기엔 무리가 있다. 내분으로 들끓고 있는 지금의 이집트를 볼 때 사드의 소논문의 의의는 더 현저히 가치를 잃는다. 참고로 그리스 이오니아에 대해선 여러분들이 찾아보세요.
사드는 귀류법(어떤 명제가 참임을 직접 증명하는 대신, 그 부정 명제가 참이라고 가정하여 그것의 불합리성을 증명함으로써 원래의 명제가 참인 것을 보여 주는 간접 증명법)도 자주 쓰는데 앞서와 마찬가지로 궤변이 될 때가 있다. 나도 종종 그러는데 안타깝다-_-
자, 이제 내가 당신에게 바닥 짐을 갖추고 사드에게 접근하라는 당부를 이해하겠는지?
이 사드 전집으로 사드를 차례로 접하려는 독자여, 점점 강력해질 사드의 철학 논법과 일탈 행위의 충격요법을 그저 구경거리로만 보겠다고? 사드가 그토록 극단으로 밀어 부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정념이 아니었다. 당신과 세계를 뒤흔들기 위한 전쟁 선포였다.
철학과 악덕으로 무장한 사드 VS 관광지로 여기며 찾아온 반바지 차림 독자의 대결이라.
사드가 찌든 관습과 무비판적 신앙을 갈기갈기 찢으려 했듯 안일한 독자에게도 그렇듯 덤벼들 것이다.
히죽히죽 웃거나 이쯤이야, 무표정하게 넘겨버릴 독자라면 당신에게 사드를 읽는 게 무용하다는 것도 당부한다.
재밌는 에피소드들)
1. 사드의 정확한 외모를 알려주는 초상화가 남아있지 않은데, (감옥에서 케익을 배달시켜 먹으며 살찐 사드로 변모하긴 했다지만) 금발머리에 미소년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내 생각이 다분히 편견이라는 걸 알지만 이 책에서 가장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2. 바스티유 감옥으로 시민들이 쳐들어가게 만든 원흉이기도 했다는 일화. 1789년 7월 14일 프랑스 혁명 전날, 사드가 감옥에서 죄수들을 죽인다고 바깥에다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민심을 더욱 흉흉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날 당장 정신병원으로 이송되어 정작 본인은 바스티유 감옥에서 영광스러운 탈출을 못하는 불운을... 결국 사드는 다른 데서 탈출 경력을 쌓았고 심지어 정신 병원을 본인의 극장으로 만들어 병원 원장이 당국에 하소연 문서를 보내기도....역시 대단한 사드;
ㅡAgalma
[사드 전집 목록]
1.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 2. 소돔 120일 혹은 방탕주의 학교 3. 알린과 발쿠르 혹은 철학소설 4. 미덕의 불운 5. 쥐스틴 혹은 미덕의 불행 6. 라 누벨 쥐스틴 혹은 미덕의 불행 7. 언니 쥘리에르 이야기 혹은 악덕의 번영 8. 규방 철학 9. 사랑의 죄악, 영웅적이고 비극적인 이야기들 10. 짧은 이야기들, 콩트와 우화들 11. 강주 후작 부인 12. 옥스티에른 혹은 방탕주의의 불행 13. 이탈리아 기행 14. 노트와 일기, 서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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