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스텔라 스포있으니 안보신 분은 통과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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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어떤 우주조종사인가에 따라 <인터스텔라> 영화의 의미는 매우 달라질 것이다. 당신이 어떤 시간대를, 어떤 비행 노선을, 어떤 도킹을 선택할 것인가에 따라 '미래'는 달라질텐데, 그것은 '선택한 과거'라고도 할 수 있겠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늘 그걸 말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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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알려진 고대 그리스 격언 '너 자신을 알라'는 델포이 아폴론 신전 입구 현판에 새겨진 문구다. 소크라테스의 격언으로 흔히 알고 있지만 제대로 된 사실이 아니다. 현재 위키백과에는  이 경구의 출처로 6명을 거론하고 있다. 스파르타의 킬론, 헤라클레이토스, 피타고라스, 소크라테스, 아테네의 솔론, 밀레투스의 탈레스가 그들이다. <가르강튀아 · 팡타그뤼엘>에서 라블레는 킬론의 격언으로 거론하고 있다. 

인간처럼 그 기원이 불명확한 '너 자신을 알라'는 언어로 만들어진 우주선이다. 나는 이 우주선에 탑승한 상태에서 <인터스텔라>와 도킹하게 됐고 예상치 못한 인셉션에 빠졌다. '아니, 이건! … 아니, 이건! … 아니, 이건….' 계속 그 상태로 3시간 내내 부들부들 무슨 전기충격요법을 받는 듯이. 게다가 블랙홀 이름은 왜 가르강튀아로 만들어가지고 어휴. 어제까지만 해도 <가르강튀아 · 팡타그뤼엘>은 무수히 다르게 해석되어져야 한다고 신나게 말했다가 이렇게 우주 폭풍을 만날 줄이야;

라깡, 니체, 일리아스, 오뒷세이아 ... 쉽지 않은 리좀 산맥을 돌아다닐 일거리가 생겨버렸다. <코스모스>도 다시 들춰봐야되고... 정리가 언제 어느 정도 될 지 미지수. 친절하게도 <인터스텔라의 과학>이 나와 있으니 일거리가 좀 수월할지도. <솔라리스>가 렘의 원작을 완전히 다르게 해석한 것과 달리 <인터스텔라>는 킵 손과 협력이 잘 된 모양이다.
어쨌거나 내게 이 영화는 우주과학도, 사랑도, 지구종말의 구원 얘기도 아니었다.

<인터스텔라>는 인간 기원이라는 영원한 물음이 매트릭스화된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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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솔라리스>(1972)는 상징계 속의 분열을 보여줬다. 법, 질서가 와해된 솔라리스에서 인간은 과연 어떤 식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 죽음(자살/살인/희생 어떤 형식으로든)과 은폐는 인간이 애용하는 방식이다. 두 영화 곳곳에서 당신은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두 영화 다 주인공 아내의 빈 자리를 설정해뒀는데, 인간이 모태상실 속에서 오이디푸스적 현실과 만난다는 상징계 분석과도 맞아떨어진다. 인간의 위치는 이미 일어난 일이자 항상 무언가를 좌충우돌 해결해야 되는 '머피'(자아)이자 '쿠퍼'(초자아)였다.

 

다르게는 쿠퍼를 '오뒷세우스'로 분석해 볼 수도 있다. 알다시피 오뒷세우스는 트로이전쟁 후 귀향(일리아스)했다가 다시 길을 떠나는(오뒷세이아) 두 번의 여행을 거친다. 오뒷세우스, '미움을 받는 자'라는 이름의 뜻처럼 그는 결코 안주할 수 없는 존재다. 마찬가지로 쿠퍼도 온갖 역경 끝에 (우주시대이므로 위치가 바뀐)고향과 자식에게 도착하지만 원형적 모태 '브랜트 박사'를 찾아 다시 떠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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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기원, 지구의 기원, 우주의 기원, 외계 생명과 문명의 탐색, 인간과 우주와의 관계 등을 밝혀내는 일이 인간 존재의 근원과 관계된 인간 정체성의 근본 문제를 다루는 일이 아니고 또 무엇이란 말인가?" 

 

 ㅡ 칼 세이건 「코스모스」

우리가 우주로 가고자 함은, 인식과 시간이라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려는 존재론적 정복과 다름 없다.

인간 내에서 어떻게 완벽하게 인간을 조망할 수 있겠나. 지구에서 우리는 이 한계 속에 있을 수밖에 없다. '중력' 때문에. 이 과학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우리의 원죄는 '중력'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지구밖을 그토록 원하게 된다. 인간이라서 신을 찾듯, 삶이 있어 죽음을 향하듯.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신은 죽었다'를 21세기 어법의 영화로 선언한 셈이다. 이 영화에서 인간에게 답을 주는 것은 '유령'이거나 '외계인'이라 불렀던 차원 너머의 인간이다. 우리가 神이라 부르던 그 영역에서 온 존재는 바로 인간이라는 것, 이 설정은 SF 영화에서 제법 제기되었지만 <인터스텔라>는 가장 완성도높은 짜임새를 보여주고 있다.

고대 그리스 무훈 같은 <인터스텔라>의 끝에서 '너 자신을 알라'라는 아주 오래된 물음도 같이 출발한다. 첫번째 전쟁을 성공시켰던 '사랑' 또한 시공간을 움직이는 인간내 중력 중 하나일 뿐이다. <인터스텔라>는 미래에서 보기엔 원시적인 방정식에 불과하지만, 동시대 인류인 내가 보기에 인간 근본에 대한 처절한 사투임은 분명하다. 

 

 

ㅡAgalma

 

 

 

 

 

 

 

 

 

 

 

솔라리스 행성처럼 우리가 제어할 수 없는 <인터스텔라> 속 행성들

 

 

 

 

 

<솔라리스> 오프닝씬에서 불가해한 신비처럼 펼쳐져 있던 숲

 

 

<인터스텔라> 인간의 마지막 생명줄인 옥수수 밭

와, 이 밭 위로 날아가는 무인정찰기를 따라 차를 몰고 들어갈 때 기절할 듯 좋았다.

머피가 막상 잡혀버린 무인정찰기에 대해 잘못한 것도 없는데 다시 보내주면 안 되냐고 물었을 때, 쿠퍼가 그 쓸모를 다시 찾아야 한다고 말하던 장면은 정말 '인간다운' 발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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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1-02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타르콥스키 솔라리스와 램 솔라르스 둘 다 접했지만 둘 다 뛰어난 걸작입니다. 램은 카로큽스키 영화 보고 성질을 냈다고 하지만, 이살 솔라리스만한 영화도 걸작이죠. 아직 인터스텔라를 접하지 못했네요. 아직도 극장에서 하나요

AgalmA 2015-01-02 17:41   좋아요 0 | URL
네, 걸작들이죠. 이견없어요^^.
상영관 아직 많아요. 디지털로는 어렵지 않게 보실 거예요. 시간대는 이제 좀 뒤로 밀려난 감이 있지만요. 전 아이맥스로 한번 더 보려고요.

고양이라디오 2015-11-18 14: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맥스로 보셨나요? 전 <인터스텔라> 아이맥스로 봐서 너무 좋았어요ㅠㅠ

아~! Agalma님 저도 옥수수밭 속으로 차를 몰고 들어갈 때 정말 너무 신나고 좋았어요!!!

리뷰 너무 좋네요~ 잘 읽었습니다^^

AgalmA 2015-11-20 08:28   좋아요 0 | URL
아이맥스로 한 번 더 보려고 했는데 놓쳤어요; <그래비티>는 아이맥스만 보고...영화관에 두 번 가는 게 은근히 어려워요.
아, 옥수수밭 씬 때문에 아이맥스를 진짜 보고 싶었는데 말이죠ㅜ

고양이라디오 2015-11-20 10:5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인터스텔라 한 번 더 보려했는데 안되더라고요ㅠ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