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아름다운 - 2014년 전면 개정판
제프 다이어 지음, 한유주 옮김 / 사흘 / 201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프리 재즈란 용어는 있지만 프리 클래식이란 용어는 없다. 흑인의 저항과 역사를 대변하는 재즈와 백인의 역사라 할 클래식을 굳이 대결 구도로 만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금의 재즈도 더 이상 게토의 삶을 대변하거나 반항적인 모습이 아니고, 그 역시 재즈의 전통에 사로잡혀 있긴 마찬가지다. 용어가 비평가들이 만드는 구분일 뿐이지만, 두 음악의 특징 면면을 생각해보면 그 정형성과 대비는 흥미롭다. 어떻게 표출하든 예술에서 대전제는 동일하다. “예술에 대한 최고의 독법은 예술”(조지 스타이너 『그리스도의 실재』)이고, 훌륭한 음악은 예술의 본질에 대한 물음과 답변을 내놓는다. 예술가가 아닌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난관이지만, 우리가 전혀 감지할 수 없었다면 지금의 많은 예술 작품들은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앞선 시대의 누구의 영향을 받아 이런 연주를 하게 되었는지 모르는 채 후대 재즈에서 거슬러 올라가면 앞선 시대 연주자들의 특별함을 깨닫기 어려울 것이므로 제프 다이어는 재즈는 반드시 연대기적으로 감상해야 한다고 당부했지만, 재즈의 즉흥성처럼 그의 글 특징처럼 이 책은 전통적인 방식을 따르지 않았다. 재즈 하면 자동적으로 떠오르게 되는 거장 루이 암스트롱이나 존 콜트레인, 마일스 데이비스 같은 거장들을 거론하며 계보를 좇지 않는다. 제프 다이어는 1940년대에서 1950년대 재즈를 이끌었던 대표 뮤지션들에 집중했다. 모든 흑인 뮤지션들은 인종차별과 모욕을 피할 수 없어 쉽사리 경찰에게 두들겨 맞았다. 약과 술에 취해 병원에서 허물어지던 뮤지션이 부지기수였는데, “뉴욕 벨뷰 병원은 현대 재즈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버드랜드와 거의 동등한 위치”라고 할 정도였다. 레스터 영(1909~1959), 텔로니어스 멍크(1917~1982), 버드 파월(1924~1966), 찰스 밍거스(1922~1979), 벤 웹스터(1909~1973), 쳇 베이커(1929~1988), 아트 페퍼(1925~1982)의 이야기가 이어지며, 공연을 위해 이동하는 길 위에서의 시간이 많았던 듀크 엘링턴(1899~1974)과 해리 카나(1910~1974)의 여정이 막간처럼 툭툭 끼어든다. 이 구성 때문에 짐 자무시 《커피와 담배》 같은 영화를 보고 있는 기분도 든다.

음악계든 문학계든 천재 예술가들의 불운과 요절 소식은 역사적으로 자주 있었지만 재즈 뮤지션만큼 혹독하게 겪은 예술가도 없다. 색소폰 연주자 레스트 영은 군대 징집으로 엉망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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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트 결과 그는 매독을 앓고 있었다. 그는 늘 술에 절어 있었고, 약에 취해 있었다. 암페타민 중독이었던 까닭에 그의 심장은 시계처럼 째깍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체검사를 통과했다. 그들은 레스터를 군대에 집어넣기 위해서라면 그런 것쯤은 무시하기로 한 것처럼 보였다.

자신만의 소리를 낼 수 있는가, 다른 사람과 다르게 연주하는 방식을 찾아낼 수 있는가, 이틀 밤 동안 결코 똑같은 연주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재즈란 무엇인가에 결부된 질문들이었다. 그러나 군대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 같기를, 동일하기를, 식별 불가능하기를, 닮아 보이기를, 같은 생각을 하기를, 내일도 모든 것들이 오늘과 똑같이 남아 있기를, 아무것도 변하지 않기를 원했다. 모든 것들은 정확한 각도를 형성해야 했고, 예리한 날을 세워야 했다. 그의 침대 시트는 사물함의 금속 모서리처럼 정확하고 반듯하게 접혀 있었다. 그들은 나무토막을 대패질하는 목수처럼 그의 머리를 박박 밀어버렸다. 마치 머리통을 정사각형으로 만들려는 듯. 군복조차도 신체를 사각형으로 개조하려는 목적을 위하여 재단되었다. 곡선도 부드러움도, 색도, 침묵도 없었다. 군대는 마치 한 사람이 2주 만에 완전히 다른 세계에 속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공간처럼 보였다.

(중략)

훈련하다 부상을 입어 찾게 된 병원에서 그는 신경심리학과 과장에게 몇 가지 질문을 받았다. 의사인 동시에 군인이기도 했던 그는 전장에서 못 볼 것들을 너무나 많이 본 나머지 정신이 나간 사내들을 주로 담당했다. 영의 문제가 전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그의 동정심도 한순간에 날아가버렸다. 영이 무의미하고 터무니없는 답변을 할 때마다 퉁명스럽게 반응하던 의사는 그가 동성애자라고 확신했지만, 진단서에는 보다 복잡하게 썼다. ”약물 중독(마리화나, 바비튜레이트), 만성 알코올중독, 떠돌이 생활로 인해 야기된 종합적인 정신병적 상태……. 전적으로 규율 부족 문제.“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그는 위의 기록들을 요약하기라도 하듯, 한 단어를 부가했다. “재즈.”▦



영은 삶이 군대 전과 후로 나뉘어버렸고,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했다. 그들에게 감옥과 정신병원과 군대는 언제라도 서로 제 역할을 바꿀 수 있는 곳이었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 재즈 연주자들은 ‘재즈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태양은 구리 심벌즈로 보였을 것이다. 평소에도 불안정한 재즈 피아니스트 버드 파월이 감옥을 견디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텔로니어스 멍크는 약물 소지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감옥에 가기도 했다. 결국 마약 소지 죄로 감옥에 갔던 파월은 감옥에서 정신 발작을 일으켰는데, 재즈계에 복귀하고서도 그리 긴 음악 생활을 하지 못하고 생을 마쳤다. 제프 다이어는 신경 쇠약과 약물 중독에 빠졌었던 버드 파월의 당시를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펼쳐 놓았다.

큰 덩치에 쉽사리 분노에 휩싸였던 벤 웹스터와 찰스 밍거스의 이야기는 funk(Jazz, R&B, Soul 음악이 혼합된 리드미컬하고 춤추기 좋은 음악)처럼 진행됐다면, 백인 재즈 연주자 쳇 베이커와 아트 페퍼 이야기는 무드 발라드처럼 펼쳐진다. 쳇 베이커 음악에 대한 제프 다이어의 해석은 100% 동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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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뮤지션들은 옛 곡의 선율이나 악구를 직접 해석하고 변형하거나, 그 곡에 완전히 자신을 흡수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쳇의 경우, 곡이 온전히 이런 역할을 수행했다. 쳇이 한 일이라곤 그저 곡들에 담겨 있는 상처 입은 부드러움을 끄집어내는 것뿐이었다.

이런 이유로 그는 결코 블루스를 연주하지 않았다. 그가 블루스를 연주한다고 하더라도, 진짜 블루스라고는 할 수 없었다. 블루스에 함축된 유대감과 믿음에서 그는 멀리 있었기 때문이다. 블루스는 그가 결코 지킬 수 없는 약속이었다.

그는 트럼펫을 침대에 남겨두고 화장실로 향했다. 문이 달각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녀는 이 사소한 순간에조차 슬픔이 서린다는 것에 놀랐다. 그의 등 뒤로 문이 닫히는 순간들은 다가올 이별의 순간을 예고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가 연주하는 곡의 모든 음이, 마지막 순간의 전조처럼 들리는 것처럼.

그는 항상 떠나고 있는 사림처럼 보였다. 당신은 그와 약속을 잡을 수도 있겠지만, 그는 서너 시간쯤 늦게 오거나, 아예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고, 전화번호도 남기지 않거나 최소한의 설명도 없이, 며칠이고 및 주고 훌쩍 사라져버릴 수도 있었다. 이런 사내를 이토록 쉽게, 중독적으로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가. 그에게 버림받았다는 기분은 다른 이들에게 동지애마저 느끼게 했다. 그는 누구나 지니고 있는 외로움을, 반쯤 빈 전철에서 만난 낯선 이의 애절한 얼굴에서 흘긋 엿볼 수 있는 외로움을 가져다줬다. 사랑을 나누고, 그가 그녀에게서 빠져나간 뒤, 몇 분 지나지도 않아 그녀는 그를 잃고 있다는 기분을 느꼈다. 누군가와 사랑을 나눈 뒤 여인의 몸에는 자궁 속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와 같은 열정의 각인이 남는다. 그가 곁에 없어도 여인은 그로, 그의 사랑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쳇은 그에 대한 갈망뿐인 공허함을 남긴다. 다시 한번 그대를, 다시 한번 그대를, 하는 바람만을 남긴다. 그 순간 여인은 그는 결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없고, 자신이 원하는 것은 오직 그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언젠가 쳇의 한 친구가 그녀에게 그의 연주에 대해 했던 말을 기억해 냈다. 그가 음을 다루는 방식은 여자가 울기 직전의 순간을, 그녀의 얼굴이 유리잔에 가득 담긴 물처럼 아슬아슬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순간을, 그래서 그녀를 다치게 하면 안 된다는 일념으로 무슨 일이든 하게 되는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는 말을. 그녀의 얼굴은 너무나 고요하고, 너무나 완벽해서 이러한 아름다움이 지속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순간만큼은, 영원할 그 무언가를 가진 듯 보인다. 그녀의 두 눈에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에게 해온 모든 말들의 역사가 담겨 있다. 이제 그녀에게 "울지 마, 울지 마"라고 말하지만, 바로 이런 말들이,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그녀를 울게 한다…….▦



제프 다이어는 후기에 재즈 역사와 의미에 대한 훌륭한 비평을 덧붙였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해당 재즈 뮤지션들의 음악도 찾아 들으며 도움이 아주 많이 됐다. 이를테면 듀크 엘링턴이 어머니가 사망했을 때 열차 속에서 작곡한 「템포 속의 회고 Reminiscing in tempo」에 대한 제프 다이어의 곡 해석은 적확했다. “이 곡은 남부를 달려가는 기차의 모든 리듬과 움직임이 담겨 있었다. 기차의 재잘거림과 휘파람은 꾸준히 그의 음악을 파고들었다. 특히 루이지애나에서 소방관들이 휘파람 같은 엔진 소리에 맞추어 연주한 블루스는 여자들이 밤에 부르는 노랫소리처럼 그를 홀렸다. 철로는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동시에 미국 흑인들의 역사를 관통했다. 흑인들은 철로를 건설했고, 철로에서 일했고, 철로를 따라 여행했고, 그는 철로를 따라가며 작곡했다. 기찻길은 그가 상속받은 전통이었다.”





이 책은 재즈 음악 전문가에게도 입문자에게도 전혀 문외한에게도 충만한 경험을 줄 책이다. 품절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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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오장원 2020-11-30 16: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간내서 읽어야겠어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AgalmA 2020-12-18 21:40   좋아요 0 | URL
도움이 되셨다면 다행이고요^^ 연말 재즈와 함께 훈훈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서니데이 2020-12-10 20: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Agalma님, 올해의 서재의 달인과 북플마니아 축하드립니다.
따뜻하고 좋은 연말 보내시고,
항상 행복과 행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AgalmA 2020-12-18 21:41   좋아요 2 | URL
그렇게 되었더군요. 감사드려요. 서니데이님도 축하드리고요. 이 시즌 되면 늘 이렇게 덕담 주거니 받거니 하는 거 같아요^^
날이 많이 춥더군요. 건강 또 건강하세요.

2020-12-10 2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18 2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18 2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