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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카시지 - 세계문학전집 182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82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공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평점 :
외골수적인 소녀의 이기적 망상, 그에 휩쓸린 가족의 붕괴, 외로움과 성적 욕망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근본적 딜레마, 전쟁에 참여한 남성을 통해 본 인간의 집단 광기와 폭력 등의 소재가 이언 매큐언『속죄』(2001)와 무척 유사하지만,『카시지』의 원조는 오츠 자신의 1996년작 『멀베이니 가족』이다. 그 소설은 1970년대 이상적 가정이었던 멀베이니 가족이 강간 범죄로 이십여 년 동안 해체와 고립을 거쳐 용서와 화해를 위해 다시 모이는 과정을 그린 것인데, 『카시지』는 다른 시대 다른 변주라고 하겠다. 감옥의 열악한 환경, 사형 제도, 이라크 전쟁의 폐해, 페미니즘적 인권 문제 등이 이 소설에서 또 다른 감상 포인트다.
이 세상은 각자의 세계에 갇힌 자들이 모여 만드는 감옥이자 행복을 누릴 수도 있는 실험의 장이라는 것. 그것은 애초에 선악으로 말할 수 없다.
어떻게 힘이 자존심만큼이나 빨리 몸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지 끔찍했다.
인턴은 이곳이 미친 곳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상황의 표면, 테두리와 윤곽만 보았기 때문에 상황을 온전히 파악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겉만 봤다. 누군가의 자존심—자부심, 진실성—권력—아주 살짝만 건드려도 즉각적인 반발이, 광적인 반발이 튀어나왔다.
유한한 시간 속에서 무수한 개별적 발걸음. 제논의 역설을 고쳐 말하면 그랬다. 사람은 유한성 속에서 무한성과 마주한다. 당연히 머리가 조각조각 흩어질 것이다.
선善을 알면 선한 일을 하고 싶어진다. 선을 모르면 온전한 인간이 되지 못한다. 9학년 때 크레시다는 플라톤을 읽었다. 아버지의 대학교재였던 얼룩지고 두꺼운 『플라톤의 대화 선집』에 「공화국」 「법률」 「향연」이 있었다. 성실한 학생이었던 아버지가 책에 밑줄을 긋고 설명을 적어놓은 부분을 발견하는 것은 열네 살 소녀에게 황홀한 일이었다. 다른 교재들처럼 이 책 표지 안쪽에도 메이필드, Z라고 적혀 있었다. 「메논」의 한 대목 옆에는 빨간 펜으로 질문이 적혀 있었다. 소크라테스 진심일까? 「메논」은 미덕에 대해, 또 악을 알면서도 악을 원할 수 있는가에 대한 소크라테스와 청년 메논의 대화였다. 교육받은 적이 없지만 기초적인 기하학 지식을 가진 노예 소년이 등장해, 지식이 ‘자연적으로 회복시키는 것’이 기억이라고 이야기한다. 「메논」의 교훈은, 우리는 선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탐구, 모든 지식은 이미 기억된 것을 상기하는 것에 불과하다.
"시간을 멈추는 건 순리를 거스르는 거야. 시간을 멈추려고 애쓰는 건. 당신이 그랬잖아, 플라톤의 우매함은 그가 시간을 ‘멈출’ 수 있다고 믿었던 것, 변하는 것은 선할 수 없다고 믿었던 거라고. 하지만 우리 삶은 변해, 제노. 신은 우리가 변하지 않고 남아 있길 바라지 않으실 거야. 우리 딸이 우리 인생에서 사라진 건 하느님 계획의 일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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