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지적 전투력을 높이는 독학의 기술
야마구치 슈 지음, 김지영 옮김 / 앳워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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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만 해도 스마트폰, 소셜미디어가 이토록 생활 전반에 뿌리내릴지 몰랐다. 세상은 매일 급변하고 그리 달갑지 않게 수명도 늘어가니 기존의 지식으로만 살아갈 수 있는 삶이 아니다. 점점 더 많은 정보와 지식이 필요해지는데 나이를 핑계 댈 수도 없다. 미국 듀크 대학의 캐시 데이비슨은 "2011년도 미국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의 65퍼센트는 대학을 졸업할 때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직업에 종사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예전의 지식은 빠르게 낡아가고 노동력은 길어지며 기업의 전성기는 짧아진 혁신의 시대에서 이질적인 영역을 새롭게 연결할 수 있는 파이형 인재, 크로스오버 인재가 요구되고 있다. 베스트셀러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를 쓴 야마구치 슈는 지적 전투력을 높이는 게 필수라고 강조하며 ‘어떻게 독학할 것인가’를 소개한다.

 

  

슈는 독학을 ‘전략, 인풋, 추상화와 구조화, 축적’ 네 가지 모듈로 이루어진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전략] 어떤 테마에 대해 지적 전투력을 높이고 싶은지 그 방향성을 결정

[인풋] 전략의 방향성에 근거해 책과 기타 정보 소스로부터 정보를 획득

[추상화 및 구조화] 인풋 한 지식을 추상화하고 다른 것과 조합해 자신의 관점 만들기

[축적] 획득한 지식과 추상화 및 구조화로 얻은 시사점과 통찰력으로 정리하고, 자유롭게 꺼내 쓸 수 있도록 정리

 

 

 

최근 읽었던 대니얼 J. 레비틴 『정리하는 뇌』와 접점이 있다. 사람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다. 배운 걸 생각하면서 통찰력을 키우고 적재적소에 써먹을 수 있도록 정리하는 사고 시스템을 만들라는 소리다. “애초에 옮겨 적기의 최대 목적은 ‘잊어버리기’ 위해서다. 잊어버리는 것으로 뇌의 작업 용량을 확보해 눈앞의 지적 생산에 집중하기 위함이다. 필요한 때가 되면 외부의 지적 축적에서 정보를 다운로드해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밀한 검색 기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토드 로즈 『평균의 종말』과도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 “혁신 그 자체를 체계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어디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애매한 영역에 대한 직감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이는 예정조화적인 도구나 지식의 조성과 대비되는 ‘브리콜라주’(손에 닿는 재료를 짜 맞추어 창조적으로 활용한다는 뜻으로 문화 상품이나 현상을 재구축하는 전술의 일종) 능력이다. “독서를 그 사람의 독특한 지적 전투력에 얼마나 연결시킬 수 있는지는 바로 이 감각을 느끼는 감도에 크게 좌우된다.” 동질성이 높은 의견이나 책만 접하면 지적 축적이 독선에 빠지거나 편협해지므로 마음 편한 인풋만 받아들이는 건 경계해야 한다.

 

 

독서는 크게 ‘단기적으로 일에 필요한 지식, 자신의 전문 영역 심화, 교양 넓히기, 오락’이라는 네 가지 목적이 있다. 써두기만 하고 다시 들춰보지 않는 독서 노트 채우기에 급급해선 안 된다. 필요할 때 되돌아가서 참조할 수 있는 방법(독서노트, 밑줄 긋기, 태그 정리)을 책의 종류의 따라 선별한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정보는 가치가 없다. 타인과 다른 정보를 인풋 하는 것(차별화)이 독학 전략의 최대 포인트다. “평균적인 어른이 1분 동안 읽을 수 있는 글자 수는 대략 200~400단어이고, (전문서를 제외한) 평균 도서는 10~12만 자로 구성된다. 만일 독서 속도를 1분에 300단어로 가정한다면 보통 책은 한 권 읽는 데 대여섯 시간 정도가 든다.” 막무가내 비효율적 독서는 어리석다. ‘1년간 읽을 수 있는 최대치의 책 분량을 어디에 분배할 것인지’ 고려해야 한다. 슈는 장르보다는 ‘테마’에 따라 방향성을 추구하길 권한다. 테마와 장르가 크로스오버되면 더욱 좋다. 이건 나도 가지고 있는 습관인데, ‘시간’에 대해 알고 싶을 땐 그와 관련된 소스들,  ‘인간 심리’에 대해 파고들고 싶을 땐 장르 가리지 않고 주요 도서와 영화들을 찾아본다. 이런 것들을 고를 때도 내 본성과 흥미를 주축으로 하기 때문에 행위 자체가 즐겁고 다른 이와 차별된 시각이 나온다. 기록, 대화에서도 두루뭉술 하지 않고 육하원칙을 확실하게 아웃풋에 넣는 것도 지적 전투력을 높인다. “어떤 분야의 책을 한 시기에 몰아서 읽으면 한 권 한 권의 내용이 상호 연관되어 보다 단단히 머릿속에 정착”되므로 ‘관련 분야 묶어서 읽기’도 효율적인 독서법이다. 메타포(metaphor) 독서와 메토미니(metonymy:환유) 독서 두 종류로 나뉘는데, “메타포적 독서에는 독서의 대상이 되는 영역이 가로로 중첩된다. 예를 들어 리더십론을 읽고 처음으로 남극점에 성공한 아문센에 흥미를 느끼게 되어 다음으로 아문센의 남극 탐험기를 본다면, 메타포적 독서라 할 수 있다.” 메토미니적 독서는 책 사이에 종적 계층 구조를 형성해 전체의 형상을 떠올리기 쉽다. “베네치아에 관한 책을 읽고 베네치아에 흥미가 생긴다면, 다음에는 곤돌라나 베네치아가 수송 요청을 받은 제4차 십자군에 대해 조사해보는 식이다.” 이렇게 누적된 독서량이 어느 단계를 넘어 책과 책의 관계성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독서 속도에는 가속도가 붙고 정리 및 구조화에도 체계가 잡힌다. 그러므로 책과 책 사이의 관계를 메타포와 메토미니의 구조로 파악하는 습관을 들이자! 우리가 획득해야 하는 것은 인포메이션(단순한 정보)이 아니라 인텔리전스(정보로부터 시사와 통찰)이다. 빅 데이터가 인간의 지식을 압도하고 있지만, “사람이 독학의 미디어로서 효율적인 이유는 사람이 가진 고도의 필터링 능력과 문맥 이해력 때문이다.” 독학에서 독서, 영화, 인터넷, 광고 등 유효한 리소스가 많지만, 식견이 있는 사람을 만나 그 사람으로부터 가르침과 지식, 견문을 얻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학습 방법이라고도 슈는 권한다. TED, 북 토크 붐도 그런 현상의 연장이다.

 

 

질문은 모르는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알고 나서야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배워서 알고 있는 영역의 경계선이 조금씩 넓어짐에 따라 미지의 전선도 넓어지게 되어, 결과적으로 질문의 수는 점점 늘어나게 된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라는 질문을 출발점으로 하여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인풋을 하면, 그 과정을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효율과 정착률도 덩달아 높아지고, 결과적으로 축적도 충실해진다.”

 

 

이런 과정을 수반한 슈의 사고 프로세스는 이렇다.

 

[인풋] 런던 올림픽 개회식에서 메리 홉킨스가 나오는 장면

[추상화①] 영국은 양질의 판타지를 잇달아 내놓는 나라다

[추상화②] 판타지에 의해 리얼리티와 균형 관계가 성립된다

[추상화③] 뭔가 극단적인 것이 있는 경우, 그 배후에는 정반대의 극단적인 것이 있다

[구조화①] 예를 들어 중국에서 공자의 사상과 그 정반대인 한비자 사상의 양립

 

 

 

사소한 요소는 버리고 본질적인 메커니즘만 추출하는 추상화를 거쳐야 교양서에서 읽은 것들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 탄생한 걸작 중 다수는 행정 조직이 아니라 개인이 후원한 사례가 많다든가(미술사적 지식), 개미집에는 일정한 비율로 놀고 있는 개미가 없으면 긴급 사태에 대응할 수 없어서 전멸할 리스크가 높아진다든가(생물 및 생태학적인 지식), 폴리네시아와 멜라네시아에서는 부족 사이의 증여가 의무로 되어 있어서 부족 사이의 교환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문화 인류학적 지식)는 지식은 그것만으로는 비즈니스 세계에 직접적인 통찰과 시사로는 이어지지 않는다. 추상화는 개별성을 낮추고 어느 장소, 어느 시대에도 성립되는 명제로 바꾸는 작업이다. “①얻은 지식은 무엇인가? ②그 지식의 무엇이 흥미로운가? ③그 지식을 다른 분야에 적용한다면, 어떤 시사와 통찰이 있는가? 이것을 몇 번이고 반복하다 보면 개별적인 정보를 접함과 동시에 그것을 추상화하는 습관이 몸에 배게 된다.”

 

지적 축적은 통찰의 속도와 정확도를 높이고, 눈앞의 상식을 상대화하기 쉬워 ‘의심해야 할 상식’을 가려내는 선구안을 부여해준다. 다른 분야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하는 유추의 활용을 높여 창조성도 높아진다. 컨베이어 벨트를 응용한 회전 초밥집을 생각해보라.

 

저자는 연간 대략 300권 전후의 책을 읽는데, ‘밑줄을 쳐서 골라내고 옮겨 적는 귀찮음’과 확인의 편리 때문에 그중 반 정도는 전자책으로 읽고 있다고 했다. 나도 읽은 책의 반이 전자책인데 활용도 비슷하다. 밑줄 많이 긋고 끄적끄적 메모로 만족하는 독서에 그쳐서는 안 된다. 슈와 같은 자기주도적 활용이 우리를 성장시킨다.

 

 

 

[초독] 밑줄 긋기 : 읽으면서 ‘사실’, ‘시사’, ‘행동’의 세 부분에 밑줄을 긋는다. 자신의 깨달음도 적고, 고민이 된다면 계속해서 밑줄을 그어 더욱 더럽히면서 읽는다. 저자와 대화를 하는 지적 전투 단계.

[재독] 뽑아내기 : 밑줄을 중심으로 읽고 중요한 부분을 선별한다. 옮겨 적는 노력을 생각해 다섯 부분 이상, 아홉 부분 이내로 압축한다. 특히 중요하고 재미있다고 느낀 부분에는 메모를 붙인다.

[삼독] 옮겨 적기 : 메모를 붙인 부분을 읽고 나중에 참조할 것 같은 부분을 뽑아내서 옮겨 적는다. 검색할 수 있는 에버노트 등을 활용. 한 권당 10분 이내로 행하는 것이 비용 대비 효과가 좋다. 추상화로 얻은 가설, 시사, 행동을 세트로 적는다.

 

 

 

참고로 나는 문학도 내 나름의 포인트로 밑줄 긋고 노트 정리해 두기도 했다. 소설 경우 배경, 묘사, 대화 등으로 뽑아서 분석하고, 시집 경우 시인이 구축한 시점, 소재, 주제를 체크해 분석하기도 했다. 이런 습관은 작가나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 특이한 단어나 용어를 발견하면 나만의 단어장에 사전 배열로 적어둔다.

 

 

인풋, 추상화 및 구조화를 거쳐 축적된 정보를 ‘언런unlearn’(지우기)하는 것이 마지막 단계다. 환경 변화가 매우 빨라졌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새로운 콘셉트나 프레임워크로 전환을 이루기 위해서다.

마지막으로 슈는 혁신, 커리어 지키기, 영역 아우르기, 혁신 무기로 교양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역사, 경제학, 철학, 경영학, 심리학, 음악, 뇌과학, 문학, 시, 종교, 자연과학에서 참고할 책들을 추천하고 있는데 국내 미출간 일본 도서가 많고, 내 기준에는 그리 흡족하지 않았다. 앎이란 결국 스스로 찾아가는 모험 아닌가. 이제 슈가 제시한 ‘전략, 인풋, 추상화와 구조화, 축적’ 시스템을 참고해 각자 독학의 달인이 되어 보자! 이미 잘 하고 계신 분께는 더욱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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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4 2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9-09-04 21:38   좋아요 1 | URL
그래서 제목에 ‘독하게....‘ 라고ㅎㅎ
언어라는 게 이해 과정이 있어야 하는 난관이 있어서 그렇지 기본적인 메커니즘은 자전거 타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습관으로 잡히면 생체 시스템이 알아서ㅎ 너무 낙관적으로 보는 것일까요ㅎ;;
저도 제 나름의 독학 방식 잡는데 십수년 걸렸는데, 야마구치 슈가 이렇게 한방에 정리해주니 체계없이 우왕좌왕 독서하며 방책을 찾는 분에겐 유용할 듯 싶습니다^^

cyrus 2019-09-05 1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이 제가 하고 있는 독서 방식과 조금 비슷해요. 이 책만큼은 진짜 읽어보고 싶네요. ^^

AgalmA 2019-09-11 23:53   좋아요 0 | URL
저도 체감하는 독서방식이라 동감되는 부분이 많더군요^^ cyrus님도 그러실 거라 생각해요

서니데이 2019-09-11 2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a님, 더운 여름 잘 지내셨나요.
내일부터 추석연휴가 시작이라서 명절 인사 왔습니다.
올해도 어머님 뵈러 귀성하시나요.
가족과 함께 즐겁고 좋은 추석명절 보내세요.^^

AgalmA 2019-09-11 23:54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내려갑니다.
서니데이님도 추석 잘 쇠시고 건강히 뵈어요^^/